Empire of the sun

조회수: 735
11월 02, 2022

석양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지평선을 등지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강인한 여전사들이 힘 있게 런웨이를 행진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옷과 빛, 선이 만드는 태양과 건축물의 완벽한 조화.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쇼가 시작됐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2023 루이 비통 여성 크루즈 컬렉션.


1
2
3
4
5
6
7
8
태양, 바다와 맞닿아 대화를 나누다
마치 시대 배경을 알 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낯설지만 아름다운 경험.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2023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은 시작되자마자 모든 관객을 압도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라호야에 있는 소크 생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는 크루즈 쇼가 패션쇼인 동시에 건축적인 여정이길 원하는 그의 희망을 실현해준 완벽한 장소였다.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 1901~1974)의 작품이자 생물 의학 연구소인 이곳은 수도원과 예술적인 휴양지가 오묘하게 결합되어 고요함과 성찰의 장소인 동시에 공상과학 소설에 나올 법한 은신처 같은 은밀함을 지니고 있다. 루이스 칸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연구소를 1965년에 완성했는데, 침묵과 빛의 건축가라는 명성답게 빛을 활용하기 위해 태양을 건물 중심에 놓았다. 일몰 시간 동안 태양은 중앙 분수의 정확한 축 안에서 완벽한 건물의 프레임을 완성한다. 햇빛과 반짝이는 물의 조합은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그 빛이 닿는 모든 것은 금빛으로 변한다. 바로 이 태양의 마법에 걸리는 시간에 열린 크루즈 컬렉션을 보는 관객들은 기꺼이 그 마법 속에 빠져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9
10
11
12
13
14


그가 선보인 의상들 역시 태양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옷들이 빛과 사람 사이에서 그 빛을 반사하며 존재감을 발휘하기를 원했다. 시각적인 절정으로 향하는 태양과의 조화. “이번 크루즈 쇼의 특별 게스트는 태양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쇼의 첫 번째 파트는 강렬한 태양과 사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과장된 실루엣의 구조적인 스타일과 몸을 넉넉히 감싸는 유동적이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이 때론 당당한 여전사, 때론 우아한 여신의 카리스마를 표현했다. 중세의 기사와 성직자를 아우르는 서사적인 스타일이라고 할까. 빛을 반사하는 색조와 장식 역시 태양을 향한 경외감을 표현했다. 금속 장식은 마치 프리즘처럼 영롱하게 빛을 반사하고, 볼레로와 같은 상의는 빛나는 날개를 연상시켰다. 또 바다, 모래, 절벽 등에서 영감받은 아름다운 프린트 의상들은 자연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기술적 요소를 가미해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발휘하며 감탄을 자아냈다. 천연 소재에 환상적인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소크 연구소에서 영감받아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사진으로 프린트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표면감을 변형해 때론 해진 듯 반들반들하게, 때론 시간이 지날수록 산화된 느낌으로 변하는 유니크한 트위드, 시퀸, 가죽, 메탈릭 데님 등을 창조해냈다. 물론 이 모든 시도가 ‘빛’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액세서리 역시 빛으로부터 출발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막 부츠, 스니커즈, 뮬 형태가 섞인 하이브리드 슈즈를 선보였는데, 부츠와 신발에는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축적하는 작은 태양전지판같이 빛을 반사하는 밴드가 장식되어 있었다. 가방에 더한 금속 장식은 태양 빛 아래서 더욱 반짝이며 눈이 부시게 만들었다. 태양, 빛, 사막 지평선과 선셋으로 붉게 물든 미지의 시공간에서 잠시 태양의 유목민이 된 느낌이 들었다. 2023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여정이었다.


15
16
17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