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ying Categor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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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 2017

글 이우영(미술 기고가)

interview with_Maggi Hambling


영국 원로 작가 매기 햄블링은 미술이 성 정체성에 따라 규정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저 현재에 충실하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잉글랜드 서퍽에 자리 잡은 그녀의 작업실에서 1960년대 런던의 문화적 번영기에 태동한 퀴어 문화,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만남, 그리고 평생 동안 매료돼온 오스카 와일드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Maggi Hambling refuses to be categorized by her sexual orientation. Rather, she strives to live in the moment, responding to what’s happening in life. During an interview at her studio in Suffolk, England, she talks about the queer art scene in London’s “Swinging Sixties,” her encounter with Francis Bacon, and her life-long fascination with Oscar Wilde and sea w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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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햄블링의 집과 작업실이 위치한 영국 남동쪽의 고즈넉한 마을 서퍽(Suffolk)의 풍경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영국의 여유로운 시골 풍경을 절로 연상시킨다. 호크니와 함께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햄블링. 올해 72세로 흰 머리를 나부끼는 노작가는 해안가에 위치한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인터뷰는 그녀의 아늑한 보금자리에 딸린 넓은 정원 뒤쪽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건초 헛간으로 사용하던 스튜디오의 문이 덜컹 열리자 햇볕이 그녀의 최신작인 파도 그림을 비추며 꽤 모던한 ‘화이트 큐브’ 형태의 공간이 자태를 드러냈다. 햄블링은 한 손에 들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네댓 개비를 줄줄이 피워댔다. “유화물감을 처음 묻힌 날부터 제 손에는 늘 담배가 들려 있었어요.” 햄블링은 14세에 학교 미술 교사의 말을 듣고는 처음 담배를 피웠다. 야외에서 유화를 그리고 있는데 자꾸 날벌레가 달라붙자 미술 선생님이 담배 연기로 벌레를 쫓을 수 있다고 귀띔해준 것.


The southeast English county of Suffolk, where artist Maggi Hambling lives and works, unfolds idyllic landscapes that are reminiscent of the English countryside paintings by David Hockney. Hambling, 72, is one of the foremost artists representing the British art scene today. The beautiful village on the east coast of England is where the artist was born and raised. The hay barn-turned-art studio, where the interview took place, sat comfortably in the back of her beautifully large garden. When she first opened the studio door, the sun shined through into a rather modern, white-cubed space displaying her latest paintings of the sea. She then lit her first cigarette and went on to smoke another four or five throughout the interview. “Since the moment I had oil paint on my hand, I had a cigarette,” said Hambling, adding that she started smoking when she was 14 after being told by her art teacher that cigarettes help repel insects from oil paintings.



성 정체성 찾아가기
햄블링은 흡연과 동성애가 금기시되지 않는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진보적인 환경에서 자란 덕분인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적극적이었다. 런던에서 미대에 막 입학했을 당시 19세이던 그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4명의 각각 다른 파트너?연상남, 연하남, 흑인 남성, 그리고 여성?와 만남을 가졌다. “여성을 선호한다는 걸로 결론을 내렸죠. 저는 다 시도해봤어요. 나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알아내기 위해 체크해야 할 쇼핑 목록 같은 거였죠. 꽤 합리적이지 않나요?” 20대 미대생으로서 햄블링은 런던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활기찬 시절 중 하나인 ‘스윙잉 1960년대(Swinging Sixties)’를 경험했다. 당시 영국의 젊은 세대는 성적 자유, 비핵화 운동, 그리고 자유롭고 실험적인 문화로 상징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햄블링은 자신이 속한 예술 사회에서는 ‘파티와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로 상징되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그녀가 베이컨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건 서퍽의 입스위치(Ipswich)에 위치한 자신의 스승 아서 렛-헤인즈(Arthur Lett-Haines)의 스튜디오. 그곳에서 햄블링은 여장 남자를 묘사한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그 작품 앞에 선 채 제게 그림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전 너무 수줍은 나머지 말조차 꺼내지 못했으니까요.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더니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쟤 귀가 먹은 거야, 아니면 벙어리야?’” 베이컨과 햄블링에게는 공통분모가 생기기도 했다. 둘 다 헨리에타 모라에스(Henrietta Moraes)라는 여성에게 영감을 받아 작업했다는 점이다. 모델이자 런던 소호의 사교계를 주름잡던 여왕 같은 존재였던 모라에스. 그녀는 베이컨의 작품 모델이자 친구였고, 나중에는 햄블링의 연인이자 뮤즈가 됐다.


Discovering sexual identity

Hambling said she was fortunate to have spent her school years in a liberal environment, where smoking and homosexuality were not so taboo. Her progressive upbringing braved her to venture discovering her sexual identity. When she began as a student of Camberwell School of Arts in London at the age of 19, she decided to conduct a social experiment to test her sexuality. She decided she would meet four different partners ? an older male, a younger male, a black man, and a female. “I decided I prefer a lady. I tried everything to see,” Hambling said. “It was a shopping list that I had to get through to find what I like. It’s very sensible, isn’t it?” She continued on to spend the culturally vibrant “Swinging Sixties” in London as an art student. The mid-to-late 1960s ushered in a youth-driven cultural boom symbolized by sexual liberation, anti-nuclear campaigns, and a culture of free-spirited experimentalism. She referred to the art world at that time period as being characterized by “parties, Francis Bacon, and David Hockney.” Hambling had a personal encounter with Bacon at an art studio in Ipswich, Suffolk that belonged to her teacher Arthur Lett-Haines. Bacon happened to visit the place where Hambling was showcasing her painting depicting a drag queen. “He stood in front of it and talked to me about it. But I can’t remember what he said and I was too shy to speak. And I didn’t say anything. He went downstairs and asked, ‘Is that girl deaf and dumb?’” Bacon and Hambling also shared a muse in Henrietta Moraes, dubbed “Queen of Soho.” The model and a friend of Bacon later became Hambling’s lover.




햄블링은 1980년대 영화감독 데릭 저먼(Derek Jarman)을 비롯해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젊은 퀴어 아티스트 세대에 속한다. 그녀가 ‘게이(gay)’ 대신 ‘퀴어(queer)’라는 단어를 쓰게 된 것도 친구인 저먼의 영향이 크다. “모두가 ‘게이’라고 할 때 그는 ‘퀴어’라고 부르기를 주장했죠. ‘퀴어’가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공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퀴어’는 ‘기이한’이라는 뜻으로 19세기 말부터 동성애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용어로 쓰여왔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저먼과 같은 성 소수자 인권 활동가들 사이에서 억눌린 동성애에 대한 해방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하자는 운동이 시작되면서 오늘날 대중적으로 쓰이게 됐다. ‘퀴어’는 예술계에서 세련됨과 동일시될 정도로 신분 상승을 했지만, 햄블링은 성 정체성으로 작가를 분류하고, 그들을 ‘퀴어 아트’라는 범주 아래 두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쪽 영역에서 예술은 항상 운이 좋은 편이었죠. 작가들은 제약이나 관습 등에 억압받지 않은 채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작업을 해왔으니까요.” 그녀는 설명을 이어갔다. “피카소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 모두에게는 남성성도, 그리고 여성성도 내재돼 있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결국 예술만이 중요한 거죠.”


Hambling belongs to a generation of young, gay artists during the queer art scene of 1980s London, along with her contemporaries such as filmmaker Derek Jarman. “He made me promise when everyone was saying gay, always say queer. It used to be much more aggressive word than it is now,” she said. “Queer,” meaning strange, was used to pejoratively refer to homosexuals since the 19th century. Since the 1980s, the term was reclaimed by gay rights activists like Jarman to represent liberation from repressed homosexuality. The term “queer” has now become associated with chic style in arts, but she doesn’t like the idea of categorizing artists based on their sexual differences, or putting a label on them. “Art has been always lucky in that department. Artists have always done what they want to do regardless of any constraints or convention or any of that stuff,” she said. “You know the thing Picasso said: ‘We are all partly male, partly female, you have to bring the whole thing together to make a work of art.’ I mean, it’s only art that matters.”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그녀의 방식
“(죽은 사람을) 처음 그리게 된 건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였어요. 어머니는 말년에 몸이 무척 안 좋으셨는데, 숨을 거둔 직후에는 얼굴에서 모든 고통이 사라진 모습이었어요. 아주 평온해 보였죠. 제 아버지도 사후에 아주 평온한 모습이었어요. 반면 헨리에타는 몹시 화가 난 표정이었고요.” 많은 관람객들이 햄블링의 ‘사후 초상화’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햄블링은 사랑하는 이들이 죽은 직후 모습을 그리는 일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신만의 방식이며, 아티스트로서의 특권이라고 여긴다. 마치 음악가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음악을 만들거나, 시인이 시를 쓰는 것처럼. 그녀는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죽음 뒤에 밀려오는 공허함과 아픔을 극복해내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햄블링은 친한 친구나 가족 외에도 자신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를 기리는 조각품을 만들었다. 그녀가 동성애자인 와일드의 작품 세계에 빠진 계기는 일곱 살 꼬맹이 시절 학교에서 그의 작품을 낭독하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다. 약 40년 뒤, 햄블링은 와일드를 형상화한 조각을 만들고, 런던 중심가를 지나는 행인들이 조각품을 벤치 삼아 앉아서 영미 문학의 거장과 대화를 나누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작품명을 붙였다. 와일드가 부활한다면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싶으냐고 물었다. “저는 조용히 있을래요.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뛰어난 입담의 소유자거든요. 그냥 그가 말하게 놔둘 거예요.”


Ways to remember loved ones

“My mother was the first person I drew in the coffin. And she had been quite ill at the end of her life and all the pain had gone out of her face. She looked sort of serene. My father looked quite serene as well. Henrietta looked furious, absolutely furious,” she said. Many viewers have found her portraits odd or surprising, but Hambling thought it was a privilege for her to grieve someone who was close to her in her own unique way, just like musicians compose music and poets make poetry for the passing of loved ones. The process helps her cope with the pain and emptiness that follows death, she said. Apart from her close friends and family, Hambling made a commemorative sculpture for playwright Oscar Wilde, who, she said, had a great impact on her life. She was gripped by his stories since she was as young as seven years old. Some forty decades later, she created the sculpture of Wilde and named it, “A Conversation with Oscar Wilde,” hoping passersby would sit on it and converse with one of the greatest writers in English literature. When asked what she would say to him if he ever came back to life, she responded: “I would keep quiet because he is one of the best conversationalists ever been. I would let him talk.”




‘삶의 순환’

햄블링은 나이가 들수록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겨우 서너 살 됐을 때, 바닷가에 나가면 바다가 마치 제 친구인 듯 말을 걸곤 했어요. 이제 나이가 좀 드니까 반대로 바다가 제게 하는 말을 듣고 있어요.” 2002년부터 역동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파도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 찾아가던 해변가에서 접해온 바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녀에게 파도는 ‘삶의 순환’을 의미한다. “무섭지만 아름답잖아요. 파도가 해변가로 돌아오며 부서지는 모습, 다시 올라가고, 다시 돌아오는.” 햄블링의 파도 시리즈는 극지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담은 그녀의 최근작 시리즈로 자연스럽게 옮겨 가는 계기가 됐다.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문제를 상징하는 ‘만년설’ 시리즈는 지난 3월 그녀가 20년 동안 전속 작가로 함께해온 런던의 말보로 파인 아트(Marlborough Fine Art)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도 선보였다. 이 전시에서는 최근 대두되고 있는 난민 위기나 중동 분쟁 등 국제 이슈를 다룬 작품도 공개됐다. 오랫동안 다룬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 세계에 관한 주제에서 정치적인 주제로 옮겨 간 계기가 궁금했다. “아티스트는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무섭도록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정세와 삶 속에서 현재 그녀가 가장 관심을 쏟는 이슈는 무엇이고, 작품에는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그녀는 자세하게 얘기하기를 꺼렸다. 작업에 대한 내용을 너무 많이 공개하면 운이 나빠진다고 장난스레 대답하면서. 그런데도 자신에게 6개월 뒤에는 무슨 그림을 그릴 거냐고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나도 잘 몰라요! 나는 점쟁이가 아니라고요.” 아마도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야말로 햄블링이 자신의 삶에서 예리함과 열정을 유지하는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글 이우영(미술 기고가)


‘Cycle of life’

Now that she is growing older, Hambling says she prefers to listen rather than talk. “When I was a toddler, three or four, I used to walk into the sea and talk to the sea as if it was my friend. Now, a little bit older, I listen,” she said. Since 2002, she has been painting expressive sea canvases, inspired by the seaside scenes she has been observing since childhood. She likens the sea waves to “a cycle of life.” “It’s terrifying, but beautiful. This sort of return of waves crashing down, going up against, returning again,” she said. Her paintings of the sea has led her to create a new painting depicting melting icecaps that addresses current environmental concerns. Her latest paintings, showcased in March at Marlborough Fine Art gallery in London, explored global issues such as the global refugee crisis and conflicts ? a rather political shift from her previous studies depicting personal subjects. When asked what prompted her to shift her subject focus, Hambling said, “I think an artist has to respond to what happens in life.” So, what artistic subjects are intriguing her at this moment? She hesitated to give details, saying it’s a bad luck to talk about what she’s been working on. She did, however, mention there are people who ask her what is she going to paint in the six months and exclaimed: “I don’t know! I’m not a fortuneteller.” Living in the moment may be what keeps Hambling sharp and passionate to this day. by Wooyoung Lee (art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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