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filled 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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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 2018

글 고성연 l Photo by SY KO

5년 전 스위스의 아트 페어 아트 바젤이 홍콩에 진출한 이래 이곳의 문화 예술 지형은 참 많이 달라졌다.
문화 자본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슈퍼 컬렉터, 세계적인 갤러리, 기업 후원까지 두루 갖춘 ‘글로벌 아트 허브’라는 위치는 시장 논리에 의해 정해지는 법. 올해도 8만 명 가까이 아트 바젤 홍콩을 찾았고, 하드웨어와 콘텐츠가 한결 풍부해졌다. 주 전시장만이 아니라 홍콩의 심장부인 센트럴 지구에서 각종 ‘프리뷰’ 행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발품’의 고통에 지프라인이라도 타고 고층 건물 사이를 다닐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주했던 ‘아트 위크’ 분위기를 전한다.

지난 3월 마지막 주에 홍콩은 ‘아트’라는 키워드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명실공히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장터로 위상을 단단히 굳힌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in HongKong)이 개최되는 기간(3월 29~31일)을 끼고 있는 ‘아트 주간’이어서다. 글로벌 도시의 매머드급 행사가 으레 그렇듯이 ‘파티’는 며칠 전부터 시작되는 법. 인구밀도 높고 마천루 많기로 유명한 도시답게 빽빽하게 늘어선 고층 빌딩에 입주한 주요 갤러리들은 대부분 월요일인26일에 앞다퉈 오프닝 파티를 열었고, 하버프런트의 천막을 무대로 하는 아트 바젤 홍콩의위성 페어 아트 센트럴(Art Central)도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전야제’로 손님맞이에 나섰다. 다음 날인 27일은 아트 바젤 홍콩의 VIP 오픈일이라 대부분의 전시 공간이 활짝 문을 열었다. 또 이 기간에는 문화 예술 마케팅에 남달리 공들이는 ‘아트 친화적’ 명품 브랜드들이 화려하게 펼치는 부대 행사도 심심찮게 맞닥뜨릴 수 있다.우아하거나 강렬하게 꾸민 전시장, 그리고 그 멋진 공간을 채운 각양각색의 미술품과 럭셔리 콘텐츠 못지않게 눈길이 가는 건 역시 ‘사람’이다. 멋쟁이 컬렉터와 미술계 인사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드니 그럴 수밖에. 특히 세련된 옷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이 좁다란 건물의 계단을 날렵하게 오가면서 층층이 자리한 전시장을 바삐 둘러보는 풍경은 홍콩이 아니라
면 흔히 접하기 힘든 흥미로운 볼거리다. 물론 진정한 주인공은 당연히 ‘아티스트’다. 자신의이름을 건 전시를 하는 아티스트만큼 설레고 긴장될 수는 없을 터. 아트 바젤 전시장이든 홍콩 곳곳에 있는 갤러리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작가와 그 창조적 영혼을 사랑하는 컬렉터의조우는 작품 감상과는 또 다른 ‘체험’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보고, 느끼고, 만나고, 토론하는 체험 경제의 장
아트 바젤 개최 기간에 홍콩은 이 같은 맥락에서 직접 보고, 느끼고, 만나고, 토론하는 체험 경제의 진수를 뽐내는 장이 된다. 위성 페어와 특별전 등 온갖 ‘장외’ 행사를 차지하고 메인 행사인 아트 바젤 홍콩만 놓고 봐도 엄선된 32개국 2백48개 갤러리가 참여하고 메인 세션인 ‘갤러리즈’만이 아니라 개인 작가와 미술사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인사이트’와 ‘캐비닛’,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디스커버리즈’, 대형 조각과 설치작업을 선보이는 ‘엔카운터스’ 등으로 나뉘어 수준 높은 다양성을 즐길 수 있다. 첫날 한화 3백70억원에 팔린 윌렘 드 쿠닝 같은 20세기 거장의 작품(‘Untitled XII’, 1975)부터 프랭크 발터(Frank Walter)처럼 생전에 전시를 한번도 하지 못했다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조명받은 작가의 전시(‘캐비닛’에 출품)까지 말이다. 올해는 특히 인도와 중국의 차세대 갤러리들이 두각을 나타냈다는 평이다 (한국 작가들의 다채로운 활약상도 눈에 띄었다). 행사장을 찾은 한 인도 기자는 “인도 갤러리들이 예년에 비해 더 많이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많이 받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미술과 좀 친숙하다면 각각의 갤러리에서 나올 ‘목록’이 제법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관람객의 시선과 발길을 가장 많이 잡아끄는 섹션은 아무래도 ‘스케일’과 ‘참신함’을 두루 갖춘 ‘엔카운터스’다. 세계적인 작가 수보드 굽타(Subodh Gupta)가 인도인의 도시락통과 냄비를 활용해 만든 설치물 ‘Start. Stop’(아라리오 갤러리), 커다란 북들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칠레 작가 이반 나바로(Iva´n Navarro)의 신작 ‘컴프레션(Compression, 폴 카스민 갤러리)’, 식기를 거대하게 확대한 무대를 선보인 중국 작가 저우위청(Chou Yu-Cheng)의 퍼포먼스 등이 12개 프로젝트가 공간을 수놓았다. 이 중 펄럭이는 하얀 천을 활용해 공기의 환영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보여주고자 했다는 일본 작가 오마키 신지(Shinji Ohmaki)의 작품 ‘Liminal Air Space-Time’(마인드셋 아트 센터)이 카메라 렌즈에 가장 많이 잡히지 않았을까 싶다.
운 좋으면 스타 작가들을 몸소 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를테면 홍콩 컨벤션 센터의 아트 바젤 홍콩 전시장이나 주요 갤러리를 바지런히 다니다 보면 정판쯔, 장샤오강 등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는 물론이요 미술계 최고의 이슈 메이커이자 스타 작가 제프 쿤스(Jeff Koons)가 보이고(신작 ‘블루버드 플랜터’가 전시된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부스에 나타난 그는 예의 폭발적인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영국의 저명한 조각가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와 한국이 낳은 거장 이우환이 반갑게 담소를 나누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가 하면, 삼성미술관 리움 개인전으로 우리나라 팬도 꽤 많은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이 ‘아트는 순수한 감상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 정치적 변화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라는 주제로 찬반 진영으로 나눠 벌이는 설전(CNN 스타일이 진행하는 ‘Intelligence Squared’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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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새로운 영감으로 수놓은 아트 호텔과 아트 빌딩
올해 아트 바젤 홍콩의 ‘장외’ 하이라이트는 단연 센트럴 지구에 새롭게 들어선 에이치 퀸스(H Queen’s) 빌딩이었다. 홍콩 최초의 ‘아트 특화 빌딩’이라는 수식어를 단 이 건물에는 하우저 앤드 워스(Hauser & Wirth), 페이스(Pace),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 등 그야말로 쟁쟁한 갤러리들이 들어서 있는데, 오프닝 당일에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북적거렸다. 하우저 앤드 워스에서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인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의 신작 시리즈, 페이스에서는 일본 팝아트 작가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나라 요시모토(Yoshimoto Nara)의 조각 작품 등을 선보였고, 펄램 갤러리에서는 이탈리아 작가 아르칸젤로 사소리노(Arcangelo Sassolino)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에서는 독특한 감성의 사진으로 유명한 볼프강 틸만(Wolfgang Tillmans) 전시가 각각 열렸다. 1층에서는 미국의 개념 미술가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 작품을 다수 소장한 힐 파운데이션이 작가의 특별전을 열었다. 또 이 건물 11층에는 우리나라 대표 경매 회사 서울옥션의 상설 전시장 SA+도 있는데, 개관전 <UFAN X KUSAMA>에 이어 첫 경매를 실시해 높은 낙찰률(82%)과 더불어 시서화 ‘항아리와 시’로 김환기의 구상화 기록(약 40억원)을 새로 쓰기도 했다.
아트 전문 빌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미술품이 곳곳에 빛을 발하고 있는 아름다운 호텔 더 머레이(The Murray Hong Kong a Niccolo)도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 아트 바젤 홍콩을 찾은 VIP 상당수가 머문 숙소이기도 한 이 호텔은 유서 깊은 행정부 건물을 영국 건축 스튜디오 포스터+파트너스(Foster+Partners)가 재디자인을 맡아 지난 2월 영업을 시작했는데, 박선기 작가의 설치 작품 두 점을 비롯해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 자하 하디드(Zaha Hadid) 같은 걸출한 작가들의 작품을 건물 안팎에서 볼 수 있다. 올봄 홍콩에는 독일문화원 괴테 하우스가 문을 열기도 했는데, 매력적인 음악성과 현대적인 율동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회화 세계를 지닌 독일 작가 다비트 슈넬(David Schnell)의 작품이 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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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문화 예술 특구와 조각 공원
미래의 랜드마크로, 홍콩 행정부 차원에서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시주룽 문화 지구(西九文化區·WKCD)도 빼놓을 수 없다. 구룡반도 침사추이에서 가까운 이곳에는 미술관, 콘서트홀, 대극장, 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갈 예정인데, 최고 기대주는 거의 ‘국보급’이라고 홍보하는 컬렉션을 보유했다는 현대미술관 M+. 이제는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 듀오 헤어초크 앤드 드 뫼론(Herzog & de Meuron)이 설계를 맡은 M+의 파사드를 일부 볼 수 있을 정도로 건설 작업이 꽤 진행돼 있는 상태다. 현재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M+파빌리온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 작가로 홍콩의 별로 쑥쑥 성장하고 있는 삼손 영(Samson Young)의 순회전 <Songs for Disaster Relief>가 낙점됐는데, 작가의 고향 땅에서 열린 전시여서일까? 복고 음악과 디지털, 실내 디자인이 묘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의미 있는 웃음을 던져주기도 하는 이 전시는 베니스와는 한결 다른 정취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항구도시다운 매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장소는 홍콩 최초의 국제 조각 공원이라는 ‘하버 아츠 스컬프처 파크(Harbour Arts Sculpture Park).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갤러리들이 주로 참여하는 아트 페어인 아트 센트럴이 자리 잡은 천막 전시장 옆에 있는데, 조각 사이로 유유자적 걸을 수 있는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아트 바젤 기간에는 그 유명한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을 비롯해 앤터니 곰리, 제니 홀저 등 명성 높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또 한국 작가 김홍석의 ‘곰 같은 형태’(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쓰레기 봉투가 개나 곰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는 데서 착안한 풍자적 작품)도 볼 수 있었다.
한때는 ‘문화의 사막’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홍콩이지만, 이제는 도시 곳곳에 문화 예술 공간과 콘텐츠가 쌓이고 있으니,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 브랜드인 아트 바젤이 홍콩으로 간 이유를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글 고성연(홍콩 현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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