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닮아가는 호텔 비즈니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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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 2017

에디터 고성연

불황이니 어쩌니 해도 ‘이동의 시대’답게 전 세계적으로 여행·관광 산업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전 세계 해외 여행자 수는 2005년 5억2천8백만 명에서 10년 만에 2배가 넘는 11억9천만 명으로 껑충 뛰었고, 오는 2030년에는 18억 명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Stastista 참고). 가장 많은 해외여행자들이 찾는 지역은 유럽. 최근 유럽에는 ‘내 집 같은’ 공간을 말로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아예 집을 개조한 세련된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편리한 시설과 개성, 게다가 더러 진정성도 갖춘 이런 유형의 숙박업은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경제 모델, 그리고 모든 게 매끄러운 호텔과 견줘도 충분히 경쟁력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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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안심할 수 있는 시공간과의 만남, 이것이 호텔의 존재 이유다.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서비스가 담긴 설계의 산물인 호텔 게스트 룸을 찾아 스케치하는 여행을 앞으로도 절대 멈출 수 없을 것 같다.”_우라 가즈야의 <여행의 공간> 중에서



일본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우라 가즈야는 지구촌을 누비면서 자신이 머문 호텔방 구석구석을 재보고 이모저모를 스케치하는 취미를 오랫동안 지녀온 재미난 ‘탐험가’다. 신혼여행을 떠난 첫날밤에도 호텔 방을 실측하느라 아내(당시에는 ‘신부’였던)더러 줄자 끝을 잡아달라고 했다는 그는 자신에게 여행이란 ‘게스트 룸을 측량하고 그리는, 말하자면 호텔 탐험의 여정’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호텔 객실을 가리켜 ‘인간이라는 자연을 감싸는 공간’이라는 멋진 정의를 내렸다. 호텔이란 태생적으로 ‘여행자의 숙소’, 다시 말해 이방인이 하룻밤을 보내는 편안한 공간으로 고려됐기 때문에 객실은 휴먼 스케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호텔이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인간의 외로움을 한껏 증폭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냉기만 철철 흐르는 차갑기 이를 데 없는 객실도 있고, 아주 화려하고 근사하지만 왠지 쌀쌀한 분위기의 공간이 있는가 하면, 소박한 편이어도 청결하고 따스한 느낌의 인상 좋은 방도 더러 만날 수 있다. 사실 호텔 자체가 아무리 쾌적한 시설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췄다고 해도 낯선 내음과 분위기를 풍기고, 그 공간의 구조나 동선이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내 집, 내 공간으로 지은 게 아니므로 나 자신이나 가족의 손길과 정이 스며들어 있지 않아서다.

초호화에서 부티크 콘셉트, 게스트하우스까지, 집을 호텔로 개조하기 열풍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더 안락한 호텔은 있다. 초호화 호텔이든 트렌디한 부티크 호텔이든,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텔급 숙소든 ‘별 등급’에 따른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을 보다 포근하게 사로잡는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우라 가즈야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심’이라는 단어가 적합할 듯하다. 그는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호텔을 발견하면 마치 보물이라도 손에 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주’와 ‘이동’이 키워드인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여행이나 출장은 익숙한 일이고,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의 일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호텔도 단순히 잠만 청하는 게 아니라 좀 더 편히 머물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는 여행자들이 많아졌다. 호텔, 모텔, 에어비앤비 등을 비롯한 숙박업이 발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요즘 지구촌 호텔 풍경을 보노라면 하룻밤이라도 덜 낯설게 보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와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낯선 곳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내 집처럼’ 느낄 수 있는 안락함을 제공하겠다는 서비스 모토는 유행어처럼 넘쳐난다. 그러다 보니 아예 실제 집을 개조해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로 변신시키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 많고, 건축 규제가 까다로운 유럽에서는 최근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고령화 시대의 ‘이모작 비즈니스’로도 꽤 매력적으로 보인다. “물론 그냥 월세를 챙기는 식으로 임대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면 수입이 더 쏠쏠한 경우가 많고, 나름 직업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라 재미도 있어서 선호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만난 한 상인은 소유한 건물 중 일부를 작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로 변신시키는 이들이 점점 더 눈에 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궁전도 누군가의 집이었다, ‘팰리스 호텔’ 인기
물론 이런 주거용 공간을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한 비즈니스 모델은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유럽에서 고성을 개조해 호텔로 운영하는 곳을 종종 볼 수 있고, 인도에서는 지역을 통치하는 왕을 뜻하는 마하라자가 살던 집, 그러니까 궁전을 호텔로 개발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혹은 자신은 반을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호텔로 내주는).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주에 있는 우다이푸르(Udaipur)의 피촐라 호수(Lake Pichola) 한복판에 떠 있는 타지 레이크 팰리스(Taj Lake Palace), ‘블루 시티(Blue City)’로 불리는 조드푸르(Jodhpur)에 자리 잡은 우마이드 바완 팰리스(Umaid Bhawan Palace) 등이 그렇다. 조드푸르의 우마이드 바완은 2016년 한 유명 여행 사이트의 이용객들이 선정한 최고 호텔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물론 이런 슈퍼 럭셔리 유형의 경우에는 왕족이 살던 궁전이었으니 오죽 좋으랴, 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열대나 사막의 호화롭고 이색적인 리조트와 대도시의 세련되기 그지없는 호텔도 맹렬히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도 있겠다. 정원, 기둥, 돌 하나까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정취나 누군가 거주했던 배경과 얽힌 온갖 인간적인 스토리는 그것이 커다란 궁전이든 아담한 별장이든 오두막이든 독특한 매력을 더할 수밖에 없다.
4년 전 문을 연 아만 베니스(Aman Venice)는 그 스토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호텔이다. 세계적인 리조트 브랜드 아만이 선택한 베니스의 보금자리는 대운하(Grand Canal)에 자리한 팔라초 파파도폴리(Palazzo Papadopoli). 최초 설립 연도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저택은 아만이란 브랜드를 달고 호텔로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도 소유주인 파파도폴리 가문의 일원이 살고 있다. 호텔에 머무는 손님들도 운하 쪽 반대편에서 걸어서 드나들 때는 고풍스러운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들어간다. 베네치아 화가의 전통을 이은 프레스코의 대가 잠바티스타 티에폴로(Giambattista Tiepolo)가 직접 벽화를 그린 객실, 황홀할 만큼 근사한 서재, 1571년 레판토 전투에서 유래한 커다란 유리 전등 등을 볼 수 있는 아만 베니스는 집의 골격이나 품격을 해치지 않고 개조한 만큼 객실 수(24개) 자체가 많지 않고 베니스에서는 드물게 아리따운 정원을 2개 거느리고 있다. 산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 같은 명소들과 멀지 않지만 소음이 없는 조용한 곳에 위치해 도심 속 ‘평온함’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런 특장점이 작용했을까, 영화배우 조니 클루니가 허니문 장소로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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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더 ‘내 집처럼(homelike)’, 굳이 ‘호텔’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개 집을 개조한 숙소는 같은 가격대의 호텔보다는 면적이 넓고 부엌이나 거실이 분리된 경우가 많은 데다 주방이나 간단한 취사 시설을 갖추어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궁전이 아닌 다음에야 대형 호텔처럼 객실이 많지 않고 때때로 공간 내 동선이 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분명 낯선 공간이지만 여러모로 친숙해지는 데 걸리는 속도를 상대적으로 높일 만한 요소를 품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에어비앤비하고는 다르게 각종 문제를 해결해주고 서비스를 제공해줄 주인이나 매니저가 있다. 서비스드 아파트(serviced apartment),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 레지던스형 호텔…. 호칭이야 어쨌든 원래 집을 고친 여행자의 공간이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수백 년 된 고성, 으리으리한 궁전이나 저택이 아니어도 말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세련되고 활기 있는 미테(Mitte) 지역에는 스스로를 호텔이라고 부르지 않는 5층짜리 인기 만점, 개성 만점 부티크 호텔이 있다. 1백 년이 넘는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호텔로 탄생시킨 사례인데, 러시아의 대문호 막심 고리키(Maxim Gorky)의 이름을 딴 고리키 아파트먼트(Gorki Apartments)다. 20세기 초, 특히 독일의 황금기로 불리는 1920년대에 연극배우들의 사랑을 받는 거주지이던 이곳은 베를린 장벽이 생기면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가 현재의 소유주인 부동산 그룹이 사들인 다음 3년간의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2013년 대중 앞에 고혹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기반을 둔 건축 설계 사무소 푹스후버 & 파트너(Fuchshuber & Partner), 건축가 산드라 포케(Sandra Pauquet) 등이 팀을 이뤄 리모델링 작업을 했는데, 높은 천장과 고색창연한 벽, 크라운 몰딩, 오픈 플로어 같은 베를린 아파트 특유의 구조와 요소를 살리되 하이엔드 가구와 ‘무인양품’류의 소품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자칭 ‘베를린 스타일 럭셔리’를 뽐낸다. 2개 동에 나누어져 있는 36개 아파트는 저마다 크기, 구조, 인테리어가 다르고(모든 숙소에는 부엌이 있다) 심지어 각각의 숙소마다 붙은 ‘명패’도 ‘Lea Gru··n’, ‘Frau Werner’ 같은 평범한 독일인 이름을 차용했다. 베를린 트렙타워 공원 근처에 2호점도 생길 예정이라고.

주인을 닮은 개성 있는 공간과 여유, 진정성 담긴 맞춤형 서비스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의 중심지 뒤셀도르프(Du··sseldorf)에도 거주 공간을 미니멀리즘이 묻어나는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시킨 모범 사례가 있다. 중앙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자리한 B-보딩하우스(B-Boardinghouse). 1914년에 지은 건물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세련미 느껴지는 현대식 공간으로 바꾼 인물은 고든 베르닝(Gordon Berning).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자신의 레스토랑을 경영하던 셰프 출신으로 고향에 돌아와 올봄 이 호텔을 열면서 인테리어 소재, 가구, 소품, 샴푸 브랜드까지 손수 골랐는데, 한눈에 봐도 센스가 빼어나다. B-보딩하우스 역시 원래의 공간을 살렸기에 집마다 크기와 구조가 다르지만, 인테리어 스타일은 일관성 있는 편이다. 고든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미리 신청하는 투숙객에게는 1층 카페 겸 비스트로인 M-이트 데일리(M-EAT Daily)에서 맛난 아침 식사를 손수 차려주고 예약 손님 위주로 ‘프라이빗 쿠킹’ 서비스도 제공한다. 건물주이자 셰프, 매니저 등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데 힘들지 않냐고 묻자 “아직까지는 괜찮다. 그렇지만 점차 사업을 확장해나가면 또 모르겠다”며 싱긋 웃는다.

이처럼 정성과 애정이 배어든 호텔에 머무는 투숙객의 만족도는 확실히 높을 수밖에 없다. 큰 호텔이 지니는 다양한 서비스는 없을지언정, 가장 기초적인 청결함과 편리함만 유지된다면 인간적인 대화와 따뜻하고 유연한 서비스(예컨대 체크인 & 아웃 시간을 잘 조정해준다)에 호감이 절로 솟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시 찾게 될 확률도 높다. 주인이나 매니저의 관여도가 높은 곳의 경우에는 확실히 공간에도 개성이 묻어난다. 한번은 파리에 작은 아파트 두 채를 갖고 있다가 하나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는 곳에 묵었는데, 다음 날 ‘손님’이 밤늦게야 도착할 예정이라면서 (청소에 소요되는 시간만 확보하고) 저녁까지 마음대로 쓰라는 인심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 주인은 할머니였다. 아침이면 손수 바게트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커피를 내려주는데, 우리나라 시골 민박집에서 가끔 마주칠법한 마음 착한 할머니의 서양 버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이 주인장한테는 바로 필요한데 딱히 사기는 애매한 물건(예컨대 가위 같은)을 빌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 여독이 쌓인 유랑자나 출장자를 위로해주는 건 단지 ‘집 같은’ 분위기의 쾌적한 공간만은 아니다. ‘사람’도 톡톡히 한몫한다. 집을 리모델링한 호텔 비즈니스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다고 해도 그 바탕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까다로운 글로벌 나그네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자연스레 사업도 번창하는 게 순리 않을까. 그런 공간을 사용하는 여행자 역시 존중과 배려를 지녀야 함은 물론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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