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모더니티를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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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7, 2017

글 이소영

우리는 그간 서구 중심으로만 근현대미술을 바라본 것은 아닐까? 근대성은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중동의 모더니티를 감상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시가 더욱 흥미롭고, 의미 깊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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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유럽과 미국, 러시아는 20세기의 각종 문화유산과 연구 기관이 밀집된 덕분에 ‘근대의 수도’로 불렸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비서구 지역의 근현대미술을 조망하는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고, 근대성이 사실은 얼마나 다양한지, 또 우리의 기존 관점이 얼마나 모순적일 수 있는지 증명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집트 초현실주의가 있다. 20세기 중반 이집트 미술가들은 유럽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그리고 남미의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와 동시대에 활동하며 교류했다. 그러나 이집트 초현실주의는 유럽, 남미 지역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개념을 추구했다. 그 시작점은 유학 중 프랑스 시인이자 초현실주의 주창자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과 교류하다가 귀국해 예술가들과 모임을 만든 조르주 헤네인(Georges Henein)이라는 인물이었다.

퇴폐 미술이여, 영원하라!

시인이자 문학 비평가였던 헤네인은1938년 ‘퇴폐 미술이여, 영원하라!’라는 선언문을 발표했고, 이집트 지식인 31명이 이에 서명했다. 이들은 당시 ‘퇴폐 미술(degenerate art)’이라는 단어로 모더니스트들의 상상력을 차단했던 나치와 파시즘 세력에 반발해 표현의 자유와 인간의 감정을 제한하려는 권위에 저항하고자 했다. 이 선언문을 계기로 1939년에 이집트 예술가, 문학가 등을 주축으로 한 ‘예술과 자유 그룹(Art and Liberty Group)’이 발족됐다. 유럽 초현실주의가 세계대전 이후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를 비판하며 무의식의 세계를 추구했다면, 이집트 초현실주의는 문화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국민을 교육해 예술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처음에는 헤네인이 시를 쓰면 미술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교류를 해나간 예술과 자유 그룹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자유 미술전>이라는 전시를 개최하고 시, 에세이 등을 펴내는 등 짧지만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의 흥미로운 작품으로 카멜 엘-텔미사니(Kamel El-Telmisany)의 ‘무제’(앉아 있는 누드,1941)와 인지 아플라툰(Inji Afflatoun)의 ‘딘샤와이 학살’(1950년대)을 꼽을 수 있다. ‘앉아 있는 누드’는 다리에 못이 박힌 여인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여성의 인권과 매춘을 할 수 밖에 없는 혹독한 현실을 보여주고, ‘딘샤와이 학살’은 영국군이 딘샤와이 마을 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역사적 사건을 담담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중동을 알고 싶다면
이집트를 하나의 거점으로 삼아라
이집트를 하나의 거점으로 삼아라
1946년, 예술과 자유 그룹의 활동이 뜸해지자 젊은 작가로 구성된 ‘현대미술 그룹(The Contemporary Art Group)’이 주목받았다. 현대미술 그룹은 예술과 자유 그룹의 모토를 계승하면서, 어떻게 하면 가장 이집트적인 예술을 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주로 신화와 전설, 이집트의 일상,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대표 작가 압둘 하디 알-자제르(Abdel Hadi Al-Gazzar)는 1948년에 빈 식기를 발아래에 놓고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시민 합창단’으로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구금된 미술가였다. 그가 구금된 이후 그림이 사라졌고, 이번 전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에 소개한 작품은 1951년에 다시 그린 것이다. 이후 압둘 하디 알-자제르는 수에즈 운하를 배경으로 한 ‘헌정’(1962)과 나세르 정권의 범아랍주의를 표방한 ‘평화’(1965)를 발표했는데, 기존 작품과 완전히 다른 화풍이라 눈길을 끈다. 강렬한 색감과 구도로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알린다.
이집트 혁명 이후 초현실주의는 군부의 억압을 받았고, 1965년 이후에는 추상표현주의에 밀려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21세기 이집트는 ‘중동의 할리우드’로 불릴 정도로 영상 분야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여전히 이 지역 문화 중심지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집트 역사와 시대정신에서 영감을 받은 영상 작가 와엘 샤키(Wael Shawky)와 영화감독 유스리 나스랄라(Yousry Nasrallah)의 작품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의 철학이 이집트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에서 비롯됐음은 의심할 나위 없다. 이집트는 세계 4대 고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지정학적, 역사적으로도 중동의 중심에 위치한 나라다. 새로운 문물과 지식이 중동으로 유입될 때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의 접점인 이집트를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중동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집트를 지나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은 중동의 근현대 문화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듯하다. 2016년 이집트 카이로의 팰리스 오브 아트(Palace of Arts)에서 처음 선보인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새로운 기획을 추가해 해외에서 최초로 공개된 것이다. 전시는 7월 3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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