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저앤워스의 30년 여정은 어떻게 유일무이한 메가 갤러리를 만들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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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3, 2022

글 고성연

Exclusive Interview with_ 마누엘라 워스(Manuela Wirth) 대표


세계적인 아트 페어 프리즈(Frieze)가 오는 9월 초 서울에 입성하면서, 안 그래도 역동적인 미술 시장이 그야말로 후끈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미술 애호가, 특히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그저 나들이 삼아 유유자적 ‘아트 산책’을 나서는 수준이 아니라 ‘작가 목록’은 물론 ‘갤러리 명단’까지 꼼꼼히 훑어보고 간만에 입시 공부하듯 ‘리서치’에 나서기도 한다. 기꺼이 지갑을 열 의향이 있는 진지한 컬렉터라면 결코 쉬이 작품을 대하고 페어로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법이니까. 해외의 유수 아트 페어에 가본 적이 있다면 익숙한,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페어에서는 직접 접해보지 못한 내로라하는 갤러리 이름을 발견하면서 벌써부터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더러 눈에 띈다. 그중에는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라는 스위스 갤러리가 있다.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상업 화랑의 매출을 정확히 추적할 길은 없지만 흔히 현대미술을 둘러싼 생태계에서 글로벌 3대 브랜드로 꼽히는 ‘메가 갤러리’다. 개인적으로 ‘메가 갤러리’라는 개념을 ‘추앙’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특정 ‘작가’를 선호할 뿐이다. 사실 경영의 세계를 조금 안다면 아무리 거래 규모가 큰 메가 브랜드라고 해도 워낙 ‘프라이빗 성향’이 강해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기 힘든 데다 관계성에 좌지우지되고 한쪽으로 지나치게 경도된 조직 문화가 만연하기 일쑤인 갤러리 비즈니스의 세계는 요상하게 보이기 마련이다(물론 그래서 더러 매력적인 경우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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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에서 하나의 갤러리에 대해 지면을 할애해 긴 글을 펼치게 된 것은 하우저앤워스의 공동 창업자들이 나란히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는 ‘파워 100’에서 1위(2015년, 아트 리뷰)를 차지했다든지 하는 가시적인 수치 때문은 아니다. 이 갤러리의 소속 작가를 전부 좋아하지도 않는다(90명 규모인지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갤러리인지, 라이프스타일 기업인지, 아니면 미술 기관인지’ 싶은 하우저앤워스의 독특한 다면적 정체성, ‘글로컬(glocal)’을 향하는 비전과 그 실천력에서 비롯된 관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199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탄생해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이 갤러리는 세계 곳곳에 다수(13개)의 지점을 두고 있고 가장 화려한 아트 페어에서 늘 돋보이는 콘텐츠를 선보이지만, 정작 그들이 제일 중시하는 프로젝트는 영국의 전원 마을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도시 재생 지역, 그리고 문화유산으로 보호받을 만한 지중해의 외딴섬에서 전개하는 ‘반전’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 세 곳의 공통분모는 ‘아트’를 중심축에 놓고 지역 커뮤니티와 협업과 유대를 쌓으며 문화 예술의 부흥과 지식 공유를 꾀하는 ‘아트 센터(Art Center)’라는 개념이다. 이 3색(三色)의 아트 센터를 돌아본 뒤 하우저앤워스의 공동 창업자이자 대표 마누엘라 하우저(Manuela Hauser)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실천적 철학과 비전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눠 들어봤다. 그녀는 하우저앤워스의 ‘반석’이라 할 수 있는 스위스 갤러리스트이자 컬렉터 우르술라 하우저(Ursula Hauser)의 딸이자 10대에 딜러가 된 이래 혈기 넘치는 경영 행보를 보여온 공동 대표 아이반 워스(Iwan Wirth)의 아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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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담은 전시와 출판으로 점철된 30년 여정
Seong Yeon Ko(이하 SY) 30년 전, 모친인 우르술라 하우저(Ursula Hauser)와 현재 남편인 아이반 워스(Iwan Wirth)와 함께 갤러리 비즈니스에 뛰어들기 전에 교편을 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에 관련해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당신에게 이 같은 직업 전환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나요? (내향적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전혀 다른 커리어로 들어서는 게 꺼려지지는 않았는지?
Manuela Wirth(이하 MW) 저는 이미 가장 넓은 의미의 창의성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예술, 공예, 요리 등을 가르쳤거든요.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처음 어머니에게서, 그 이후에는 아이반과의 공통된 열정에서 비롯됐죠. 저의 한결같은 롤모델인 어머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젊은 마인드에 호기심이 넘치는 분으로 1960년대 현지 스위스 예술가들을 모으기 시작했죠. 우리는 1992년 취리히 외곽의 장크트 갈렌(St. Gallen)에서 공간을 열었는데, 처음엔 상업 갤러리라기보다 예술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이었죠. 10대 후반부터 갤러리를 운영해온, 기업가 정신 충만한 아이반 덕분에 사업의 동력을 얻었지만, 우리는 초기부터 늘 ‘작가(artist)’ 중심으로 모든 결정을 내려왔습니다. 2000년 공동 대표인 마크 파요(Marc Payot)가 합류해 우리 갤러리 ‘가족’의 매우 소중한 구성원이 되었고요. 어머니는 이제 자선 활동에 집중하고 계세요.
SY 그렇다면 경영진은 3인 체제인데, 명실상부한 메가 갤러리를 꾸려나가는 과정에서 서로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나요? 세계 곳곳에 지점을 두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시를 열고, 눈코 뜰 새 없이 아트 페어에 참여하며 소속 작가들의 미술관 전시를 뒷받침하는 등의 복잡다단한 일이 많잖아요.
MW 지난 30년 동안 우리 갤러리는 글로벌 비즈니스로 발전했죠. 저희 셋은 비전을 공유하고 거의 모든 중대한 결정에 함께 하지만 (다행히) 상호 보완적인 면이 많아요. 아이반은 아주 즉흥적이고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가 지닌 특유의 창의력은 우리를 계속 긴장시키고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도록 만들어요. 저는 천성적으로 좀 더 침착하고 합리적인 편이라 아이디어를 육성해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거듭나도록 돕지요. 마크는 미국에 거주하는데, 프랑스 예술계와 강한 유대 관계를 갖고 있어요. 셋 다 소속 작가들과 매우 가깝게 지내고요. 그래서 내년에 파리 8구 샹젤리제 근처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새 갤러리를 여는 프로젝트에 앞장서고 있답니다.
SY 1993년에는 백남준 작가의 전시를 열기도 했는데, 당시 빈 공장 건물을 빌려 성공적으로 이끌었죠. 이 경험이 나중에 하우저앤워스가 어디에 ‘공간’을 열지 선택하는 데 있어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침 올해는 백남준 탄생 90주년이기도 합니다.
MW 백남준은 우리가 대단히 존경하는 작가예요. 당시 우리는 취리히 서쪽의 공업 단지에 있는 빈 공간을 빌려 전시를 하자는 제안을 했죠. 그렇게 <Jardin Illumine´>라는 전시가 탄생했는데, 이게 우리가 처음으로 했던 ‘팝업’ 개념의 전시였고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와의 첫 협업이기도 했지요. 피필로티는 그 전시의 도록 에세이를 직접 쓰기도 했고요(세계적인 영상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피필로티 리스트는 2012~2013년 영국에 있는 아트 센터 하우저앤워스 서머싯의 첫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소화한 작가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특이한 건축 공간을 짓는 것은 우리 갤러리의 ‘DNA’가 된 것 같아요. 1996년에는 애너벨 셀도르프(Annabel Seldorf)의 설계로 양조장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취리히에 공간을 열었죠. 저희는 역사적인 건물을 복원하고 주변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현대미술 공간으로서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공감적 소통을 이뤄내는 방식으로 인정받는 갤러리로 자리매김했죠.
SY (귀한 아카이브로 남을) 백남준 도록도 그렇지만 전시 도록이나 단행본, 정기 간행물 등 미술 출판 영역에서 진정성 어린 행보를 보여왔잖아요. 저도 모친인 우르술라 하우저의 컬렉션 여정을 다룬 단행본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을뿐더러 하우저앤워스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에 감탄합니다만.
MW 저는 애서가이고, 아이반과 마크도 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죠. 1992년에 설립한 하우저앤워스 출판 부문은 아주 역동적인 임프린트로 성장했는데, 그동안 작가 아카이브와 저작물에 중점을 둔 1백50권 이상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많은 책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장려할 만한 독특하고 소장 가치 있는 오브제 같은 수준의 책들입니다. ‘책’은 우리 아티스트에게 있어 창의성이 지닌 새롭지만 간과된 측면을 세상에 알리는 ‘대사(ambassodors)’ 같은 존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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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티스트와 우르술라 하우저 컬렉션(The Ursula Hauser Collection)
SY 하우저앤워스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라인업이 탄탄한 갤러리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우저앤워스 서머싯에서 2019년 전시로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던 모친의 ‘우르술라 하우저 컬렉션(The Ursula Hauser Collection)’도 여성 작가에 초점을 맞춘 소장품 컬렉션으로 유명하지요. 아직도 여성 작가들이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MW 교사 시절부터 저는 개인의 잠재력을 키워주고 더 평등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교육의 힘을 깨달았어요. ‘배움’이 지닌 강력한 힘에 대한 제 관심은 모든 복잡성 속에서도 인간애를 다루는 경이로운 작업을 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싹튼 것이죠. 저는 우리 갤러리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소피 타우버아르프(Sophie Taeuber-Arp), 에바 헤세(Eva Hesse), 마리아 라싱(Maria Lassnig)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부터 피필로티 리스트, 로나 심프슨(Lorna Simpson), 에버리 싱어(Avery Singer), 에이미 셰럴드(Amy Sherald) 등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동시대의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들을 대표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여러 면에서 개선됐고, 현대미술사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여성 작가가 많아지고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예술 생태계가 모든 형태의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 되겠죠.
SY 루이즈 부르주아는 실제로 당신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나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아주 오래 인연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W 최고의 여성 예술 아이콘이죠. 그녀는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인 동시에 어머니이자 아내, 그리고 심오한 사상가이자 불굴의 창조력의 상징이었어요. 우리는 1994년 루이즈의 작품을 처음 접했고 뉴욕에 있는 그녀의 집이자 스튜디오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점차 관계를 쌓아갔어요. 1996년 취리히에서 갤러리 레드 룸(Red Room)과의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건 작가와의 길고 특별한 관계의 시작점이었죠. 이후 우리는 런던, 로스앤젤레스, 서머싯, 취리히, 생모리츠, 홍콩 등에 있는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에서 그녀의 작품을 선보였고요. 오는 9월 서머싯에서의 새 전시도 기대되네요.
SY 그녀가 2010년 세상을 뜨기 전에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과의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당시 상황도 궁금하네요. 둘 다 강렬한 캐릭터지만 다른 개성을 지녔고, 세대 차도 꽤 있었죠?
MW 부르주아가 종이에 남녀 몸통의 옆모습을 그린 뒤 물과 함께 빨강, 파랑, 검정 구아슈 안료를 섞어 섬세하고 유동적인 실루엣을 만드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부르주아는 그 이미지들을 에민에게 넘겼고요. 에민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어요. “난 호주에서 프랑스까지 그 이미지들을 지닌 채 전 세계를 돌았지만 너무 무서워 손도 대지 못했어요.” 결국 에민은 부르주아의 형태에 환상을 불어넣고, 소인국 사람들처럼 작은 인물을 그려 신체의 욕망과 불안을 구현했어요. 에민의 손 글씨는 이미지에 내러티브를 새겨 넣었습니다. 부르주아의 생생한 구아슈에 표현된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서요. 이 판화 모음은 부르주아가 2010년 별세하기 전 마친 마지막 프로젝트 중 하나로, 아주 강력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2011년 부르주아-에민 전시가 런던에서 열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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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한 공유, ‘아트 센터’ 모델
SY 이제 하우저앤워스의 독특한 모델인 ‘아트 센터(Art Center)’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요. 서머싯 아트 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그곳의 교육을 맡다가 이제는 하우저앤워스의 학습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글로벌 디렉터인 데비 힐러드(Debbie Hillyerd)에 따르면 서머싯(2014), 로스앤젤레스(2016), 메노르카(2021)에 문을 연 아트 센터를 떠받치는 핵심은 ‘지역 커뮤니티를 서로 연결시키는 학습 활동을 동반하는 활기찬 현대미술 전시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라고 했습니다.
MW 아트 센터 프로젝트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진화했어요. 서머싯에서 18세기 농장을 발견하고는 이 유서 깊은 건물을 보존하고 아주 근사한 전원 환경에서 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포착한 데서 비롯되었죠. 저희 집이 바로 근처에 있어요. 우리 가족의 터전으로 택한 곳이죠.
SY 하우저앤워스 서머싯이 있는 브루턴(Bruton)은 서머싯에서도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데, 아무리 의외의 장소를 택해왔다고는 하지만, 우려되는 바는 없었나요?
MW ‘전통적인’ 갤러리 모델을 넘어선 하우저앤워스의 모든 프로젝트에는 항상 우리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예술을 지원하고 육성하며 지역 사회와 소통하려는 우리의 열망이 담겨 있어요. 개관한 지 8년이 된 지금, 전시 공간뿐 아니라 활발한 학습 프로그램,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의 정원, 아티스트 레지던시,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도 있습니다. 우리 갤러리 소속 작가들도 프로젝트 초기에 방문 했는데 다들 격려해줬어요. 피필로티 리스트 같은 경우는 아티스트 레지전시 1호 작가인데, 그 이후로 18명의 작가를 모셨죠.
SY 로스앤젤레스와 메노르카의 경우는요? 어떤 잠재력을 봤나요?
MW 일단 서머싯 사례가 로스앤젤레스 갤러리의 모델이 되었죠. 우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 방문차 로스앤젤레스로 여행을 자주 갔는데, 항상 도시의 에너지를 사랑했어요. 우리 갤러리 최초의 전속 작가인 제이슨 로드(Jason Roades)의 소개로 그곳의 예술 현장에 대해 알게 됐고요. 1970년대 버려진 공장의 광활한 공간이 예술가들을 끌어들였는데, 그들은 이 지역을 다시금 개척하고자 나섰고 지금 아츠 디스트릭트(Arts District)라고 불리는 창조 산업의 허브로 점진적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 초기 동력이 됐죠.
SY 그런 의미 있는 경험이 메노르카 프로젝트로도 이어졌군요.
MW 메노르카는 완전히 마법 같은 장소예요. 서기 6세기의 바실리카 유적에서 볼 수 있듯이 수천 년 동안 사색의 장소였지요. (현재 하우저앤워스가 있는) 이슬라 델 레이를 처음 방문했을 때 역사적인 건물을 보존하고 새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지역 차원의) 아이디어에 영감을 받았어요. 이 아트 센터는 5년간의 보존 프로젝트 끝에 작년에 문을 열었는데, 개관전인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 전시에 5만8천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어요.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 섬의 보존을 돕는 관리인으로 합류하게 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SY 하우저앤워스를 가리켜 갤러리가 아니라 미술 기관 같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머잖아 갤러리 규모 면에서도 1인자가 될 수도 있을 만큼 성장세가 두드러진 메가 갤러리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결코 운영하기 녹록지 않은 수준으로 향해 가고 있는 듯한데요?
MW 예술가에 대한 열정과 예술, 배움이 삶을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믿음으로 힘을 얻고 있어요. 언제나 예술 세계의 한계를 넘어 따뜻하고 포용적인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고, 앞으로 성장을 거듭하더라도 이러한 핵심 가치가 계속해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르포] 하우저앤워스 아트 센터를 가다

01. 하우저앤워스의 30년 여정은 어떻게 유일무이한 메가 갤러리를 만들어냈을까 보러 가기
02. SOMERSET_a field Embroidered with Art 보러 가기
03. LOS ANGELES_Welcome to the Arts District  보러 가기
04. MENORCA_a new Mediterranean Art haven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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