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끊임없이 과거를 추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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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 2010

글 정지민(패션 칼럼니스트)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어쩌면 21세기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는 ‘이루지 못할 꿈’ 일지도 모르겠다. 일찌감치 그 진리를 깨달은 눈치 빠른 디자이너들은 예전으로 돌아가 과거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었다.


웃지 못할 중세 서양 복식사의 에피소드들

패션은 끊임없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유행의 시계는 그 사이클만 다를 뿐 언제나 과거를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엔 중세의 복식에서 영향을 받아 재해석한 패션들이 선보여 때론 웅장하게, 때론 신선하게 과거로 의 회귀를 통한 패션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2010년 가을 패션에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 중세 패션은 단순한 옷차림 이상의 역사와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 언제나 가치와 흥미를 유발한다. 복식의 중요한 디테일과 더불어 귀족 문화의 ‘우스꽝스러운’ 권위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역사 속 이야기들. 현대 패션과의 연관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한번 살펴보도록 한다.

귀족 여성들의 도를 넘어선 가발에 대한 집착

17세기 유럽에서 가발 착용은 패션 리더의 상징이자 귀족들 간의 예의였다. 흑사병 때문에 사망한 사람, 머릿니가 들끓어 삭발을 한 사람들의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귀족들은 오히려 개인 이발사에게 더 많은 돈을 지급하면서 가발 관리(세탁, 빗질, 새로운 스타일 만들기 등)를 했고, 가발에 대한 사랑은 전혀 식지 않았다. 18세기 마리 앙투아네트 시대에는 건축물과 같이 거대한 장식물을 얹은, 역사상 가장 기묘한 형태의 가발들이  등장했다. 그 전까지는 리본, 진주, 보석 핀 등이 머리 장식물로 쓰였던 반면, 이 시대에는 쿠션, 인형, 과일, 야채 등이 장식품으로 머리 위에 올라갔다. 이런 헤어스타일은 전문 미용사를 두고 반나절은 걸려야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일반 서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발을 포함한 머리 장식은 그 높이가 무려 96cm에 달하는 것도 있어 마차를 탈 때나 문으로 들어갈 때 매우 조심스러웠으며 심지어 마차 바닥에 앉아야만 겨우 마차 안으로 머리까지 들어갈 수 있기도 했다. 또 머리에 파우더를 뿌리는 것이 매우 유행했는데, 파우더를 공중에 대고 털어내면 그 가루가 고운 눈처럼 모발 위에 내려앉게 하는 형식으로, 당시 귀족들은 이 작업을 위한 별실을 만들 정도였다. 최고의 파우더는 녹말로 만들고, 대부분 옥수수, 밀, 쌀과 같은 곡물에서 추출한 것을 썼다. 서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가고, 귀족들은 한 달 치 식량을 하루 만에 머리 치장에 써버리는 사태가 계속되자 영국 정부는 헤어 파우더를 사용하는 권리에 대해 승인받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에 머리에 파우더를 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매년 허가증을 갱신해야 했다. 정부에서 이런 제도를 마련할 정도로 머리에 대한 귀족 여성들의 집착은 도를 넘어섰는데, 그것은 이들에게 가발의 부피와 머리 장식의 높이는 신분을 대변하는 것이었고, 패션의 상징이었으며 창의성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위험한 멋 내기, 코르셋

당시의 사회는 코르셋을 입어 허리를 최대한 조이고 척추를 곧게 세우지 않는 여성들을 부도덕하거나 정신이 해이하고 행동이 풀어진 여성으로 간주했다. 이런 도덕적 잣대의 결과로 탄생된 코르셋 착용은 지독한 입 냄새, 창자를 비롯한 내장 활동이 둔화되어 결국에는 소화 기능이 마비되는 현상, 척추 기형 등 여러 가지 심각한 신체적 결과를 낳았다. 당시 <란셋(Lancet)>과 같은 저명한 의학 전문지는 계속적으로 코르셋의 위험성을 강조했지만 여성들은 일, 시간, 삶의 단계, 기분 등에 따라 끈을 조절했을 뿐 코르셋은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심지어는 임신 기간에도) 매일 착용했다. 근육이 위축되고 등이 불편해지다 결국에는 폐활량이 줄어들어 호흡 곤란이 오는 것도 모르고(혹은 알면서도) 그것은 그저 삶에서 느끼는 단순한 불편함이라 여기며 여자들을 침묵하게 만든 코르셋은 패션 역사에서 4백 년간 지속되었다. 코르셋 착용은 남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어깨를 부풀리고 히프나 허벅지를 풍성하게 만들어 위엄 있는 남성상을 만들기 위해 허리를 조였다. 이 때문에 당시의 여자들처럼 평균 수명이 40세를 넘기는 일이 드물었다.

거대한 페티코트의 황홀한 불편 

파팅게일, 후프 페티코트, 크리놀린 등은 엉덩이를 양옆으로 적어도 60cm는 더 크게 만들어주는 커다란 속옷이었다.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교회 의자에 크리놀린을 입은 여성이 겨우 두 명 앉을 수 있는 상황(덕분에 교회는 하루 예배 횟수를 두 배로 늘려야 했다), 4백 석 기차는 후프 페티코트를 착용한 여성들 때문에 2백 명도 태우지 못하고 만석으로 떠나야 하는 기가 막힌 일(당시 철도국은 만성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표를 구입하고도 기차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줄을 지었지만, 여자들의 엉덩이는 커져만 갔고, 그들은 어떻게 하면 엉덩이가 커 보일까 고민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거리를 걷다가 치맛자락이 물건들을 확 쓸어버려 같이 넘어져버린다고 해도 타인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옷 때문에 도움을 주려고 뻗은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심지어 거실 난로에 치맛자락이 닿아 불이 옷을 타고 올라와도 치마를 벗는 것이 복잡하고 오래 걸려 그냥 서서 타 죽은 여자들도 있었다고. 엉덩이에서부터 부풀려져 마치 종처럼 퍼져 내려오는 당시의 치마 둘레는 1m를 훌쩍 넘기도 했는데, 문제는 그 스커트 자락을 모두 쫙 펴서 둥글게 만들어 다녔다는 것이다. 거대한 엉덩이에 그것보다 더 거대한 치마 둘레. 거리는 한 사람 걷기에도 좁았고, 웬만한 집에서는 과년한 딸이 둘 이상 부모와 같이 살기엔 부엌에서 같이 식사 준비를 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패션과 역사의 끊임없는 조우

1927년에 선보인 샤넬의 블랙 원피스는 치렁치렁한 드레스와 답답한 코르셋에 갇혀 뒤뚱거리는 여성들에게 실용적인 옷이 주는 심플함의 미학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획기적인 옷이었다. 1947년 디올은 전쟁의 영향으로 당시의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밀리터리 룩을 뒤집어엎을, 새로운 보디라인을 만들어주는 페미닌한 실루엣의 ‘뉴 룩’을 선보였다.


이들과 함께 현대 패션은(그 전에도 꾸준히 그래왔던 것처럼) 길고 긴 시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모든 물자가 부족했지만 그래서 깔끔하고 우아한 룩이 성공할 수 있었던 1940년대, 1960년대 모즈 룩, 1970년대 히피를 거쳐 지금 2010년까지 패션 디자이너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 끝없이 돌고 돌며 시대에 맞는(또는 앞서가는) 수많은 새로운 디자인을 발표했다. 게다가 매스 마켓 패션 브랜드들은 이들이 선보인 옷에 약간의 변형과 응용을 더한 수천 벌의 옷들을 빠르면 2주, 늦으면 6주에 한 번씩 발 빠르게 매장에 진열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패션 필드에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뒤집어엎을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21세기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일 것이다. 긴 패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것’ 은 이미 거의 다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계속되는 불경기와 테러, 재해, 이상기후 등으로 미래에 대한 현대인들의 불안은 높아가고 과거에 대한 향수는 강해지고 있다. 발 빠른 패션 디자이너들도 이런 사회 흐름을 놓치지 않았는데, 이들은 2010 F/W 시즌, 어디서도 보지 못한 획기적인 것을 창조하기 위해 고갈된 아이디어를 쥐어짜기보다는 역사적 실루엣과 디테일을 현대 패션이 만들어낸 다양한 소재와 기술에 접목해 재구성하고, 컨템퍼러리 아이템들과 믹스 매치하는 것 등의 방법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추구하고자 마음먹은 듯 보인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세기의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유작 16벌은 중세 암흑기에서 영감을 받아 그 속에 존재하는 빛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전개되었고, 크리스토퍼 데카르냉이 이끄는 발맹은 골드와 시퀸, 브로케이드 등을 이용해 16세기 바로크풍을 더한 로큰롤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리스 디자이너 소피아 코코살라키는 신전의 조각물처럼 흐르는 듯한 실루엣과 몸을 가볍게 감싸는 방식의 여밈을 선택해 고대 그리스 여신을 떠올리게 했고, 18세기 초상화 등에서 영감을 받아 로코코풍의 프릴과 보석 장식을 디지털 프린팅으로 선보인 메리 카트란추도 주목을 받았다.

이들처럼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좀 더 가까운 과거로 돌아간 디자이너들은 누굴까? 1960년대 영국 TV 시리즈 <The Avengers>를 리메이크해 영국 신사의 모티브들을 표현한 에르메스의 장 폴 고티에와 그레타 가르보, 메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과 같은 지난 할리우드 스타들의 우아한 룩을 재해석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르네티, 그리고 1950~60년대 여배우들의 관능미 넘치는 보디 실루엣을 스커트를 통해 표현한 루이 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1980년대 글래머러스 섹시 무드를 자아낸 오스카 드 라 렌타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디자이너들이 메종의 아카이브나 서양 복식사 책들을 뒤적거리며 옛것에서 차용할만한 무드, 콘셉트, 디테일을 찾고 있을 때 마치 패션 스냅 샷과도 같이 해부학적으로 몸의 부분부분을 나누고 그들 각각에 독립적으로 옛것들을 접목하려고 노력한 디자이너들도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에 깃털을 장식해 마치 승리한 군인의 투구와 같은 느낌을 준 맥퀸처럼 준야 와타나베는 밀리터리 룩에 그와 대비되는 풍성한 구름 가발을 매치해 극적인 효과를 주고자 했다. 히프를 강조하는 미니스커트 형식의 벨트를 선보인 마르니의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종이접기의 달인임을 증명한 빅터 앤 롤프, 가슴에 풍성한 니트 프릴을 장식한 프라다 등도 역시 신체를 부분적으로 나누어 패션 역사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과장법을 사용하고 있다.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으며 단지 기존의 요소들을 조합한 후 컬렉션이나 디자이너스 레이블을 통해 좀 더 창조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패션” 이라고 했다. 이미 존재해오던 것들의 부분부분을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차용해 다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새로운 것’ 이라 부르는 활동. 만일 정말 그것이 ‘패션’ 이라면 이번 시즌 이 디자이너들은 기립 박수를 받아도 모자랄 듯하다. 하지만 패션 디자이너의 목표가 100% ‘고객 만족’ 이라면 ‘저렇게 과장된 옷을 어떻게 입어? 다들 내 가슴과 엉덩이만 쳐다보겠네!’ 라고 생각하는 21세기 현대인은 물론이거니와 “저렇게 어정쩡하게 부풀린 것은 내 취향에 맞지 않군요! 머리를   30cm 더 올리고, 허리를 10cm 더 조이고 히프를 20cm 더 넓혀주세요!”라고 말할 ‘신체 과장술’ 의 달인인 17~19세기 귀족들에게도 분명 실망만을 안겨줄 것이다.

다행히 21세기에서 패션은 디자이너의 영감과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세상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패션 하우스의 콘셉트와 철학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계속해서 패션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뒤적거리고 패션 역사서를 펼쳐보는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할지도 모르는 옷들을 (비록 선택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별실에서 반나절을 투자해 준야 와타나베의 구름 머리를 만들고, 프라다의 바스트 업 프릴 원피스를 입기 위해 수명을 줄이는 코르셋을 3백65일 24시간 착용하며, 엉덩이를 크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양옆으로 20cm 넓히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바지를 더 크게 수선해 입을 사람, 아마도 지금은 (적어도 필자 주위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옷을 입는다’ 는 것을 ‘애티튜드를 입는다’ 와 동일시하는 21세기 패션 리더들은 과연 ‘역사를 만난 패션들’ 을 선택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필자가 유난히도 덥고 긴 2010년 여름에 가을의 새로운 트렌드를 기대하고 고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알렉산더 맥퀸, 소피아 코코살라키, 장 폴 고티에, 마크 제이콥스와 같은 패션 디자이너들은 암표를 구해서라도 제일 먼저 그곳에 가고야 말 것 같다. 2010년 가을 시즌, 패션 역사서를 뒤적이며 과거를 탐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감질 나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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