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아트 마켓, ‘블루 오션’의 가능성을 정조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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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7, 2017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아랍권 미술 시장이 그동안 활성화되지 않았던 주된 이유는 ‘수요’다. 다시 말해 구매자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중동 지역이 근대화, 세계화의 대열에 들어서고, 모슬렘 소비 시장이 성장한 데다, 국가 발전 정책도 문화 예술 중심으로 방향을 틀면서 아트 마켓도 의미 있는 변화를 겪고 있다. 아직은 규모가 작지만 여러모로 성장 추이가 돋보이는 중동 미술 시장. 과연 세계 미술계 지형에 변화를 일으킬 블루 오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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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돌체앤가바나 등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에서 이슬람 문화권 여성의 전통 복식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에는 패션 잡지 <보그(Vogue)>의 중동판인 <보그 아라비아>가 화젯거리가 됐다. 인쇄판 1호를 내놓은 <보그 아라비아>는 카타르 공주의 후원 아래 이슬람 미술관에서 론칭 쇼를 열며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2015년 기준으로 2백58조원에 이르고, 오는 2019년께면 그 2배 수준인 5백43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모슬렘 패션 마켓을 잡기 위한 포석이다. 중동이 세계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이 지역의 아트 마켓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저마다의 성장세가 돋보이는 두바이, 아부다비, 샤르자, 도하를 중심으로 중동 미술 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세상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아부다비와 카타르의 뮤지엄 컬렉터
미술관은 그 첫 번째 견인차다. 대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주자는 카타르. 카타르 뮤지엄 본부는 무려 20억달러(약 2조2천억원)를 들여 약 9백 점의 소장품을 수집했다. 또 1903년 설립된 유서 깊은 이집트 카이로의 이슬람 미술관은 1천만달러(약 1백12억원)를 들여 8년간의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2010년 재개장했으며,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이슬람 미술관도 약 4만 점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수도 아부다비가 펼치는 행보 역시 돋보인다. 2007년 루브르 미술관과 협약을 맺고 분점을 준비 중이며,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에도 성공했다. 각각 장 누벨과 프랭크 게리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를 맡았고, 총 2백90억달러(약 32조원)의 예산을 들여 두 미술관이 들어설 사디얏 섬을 조성 중이다. 올해의 두바이 아트 위크에는 마나랏 알 사디얏(Manarat Al Saadiyat) 전시장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소개했고, 세계적인 건축 사무소 BIG이 설계를 맡은 전시장 ‘창고 421’에서는 <아랍에미리트인의 장신구들: 보이는 & 보이지 않는(Emirati Adornment: Tangible & Intangible)>이라는 제목으로 UAE 지역의 공예, 민속,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전시가 열렸다. 헤나 염색, 독특한 화장법, 차 문화 등 일상의 소소한 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한 이번 전시는 앞으로 이슬람 미술관의 방향이 단지 유물 수집에 머무는 게 아니라 무형문화재를 포함해 폭넓게 뻗어나갈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미술관 건립 붐이 단지 중동 지역 내에서만 일어난 건 아니다. 아부다비에 분관을 내기로 한 루브르와 구겐하임 외에도, 영국의 브리티시 뮤지엄, V&A 뮤지엄,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 가장 적대적인 미국에서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이 이슬람 문화 섹션을 신설하거나 강화하고 있다. 특히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2012년 이집트 출신의 현대 예술가 디아 알-아자위(Dia al-Azzawi, 1939~)의 작품 ‘사브라와 사틸라 학살(Sabra and Shatila Massacre)’(1982~1983)을 구매해 상설 전시 중이다. 너비가 7.5m의 대작으로, 레바논의 극우 기독교 군대가 사브라와 사틸라 수용소의 난민을 집단 학살한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었다.
테이트 미술관의 결단은 단지 이집트 출신 현대 예술가의 작품 구매라는 협소한 의미를 넘어선다. 마치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쟁화로 기록되듯이 이 작품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객을 만날 때마다 이슬람 국가에서 일어난 종교적 갈등의 역사가 환기될 것이다. 이에 고무된 카타르는 지난 3월 두바이 아트 위크 기간에 맞춰 무라카미 다카시와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회가 열렸던 현대미술관에 프랑스 큐레이터 카트린 다비드의 기획으로 알-아자위의 전시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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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마켓 플랫폼을 제공하는 두바이
아부다비나 카타르가 미술관을 중심으로 아트 마켓의 성장을 이끌었다면, 두바이는 아트 페어, 갤러리, 옥션 등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면서 미술품 거래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트 두바이는 두바이 통치자인 알 막툼 가문과 중동 지역 전역에서 부동산 사업과 각종 투자를 이끌고 있는 아브라즈 그룹(Abraaj Group)의 후원 아래 2007년에 시작됐다. 세계 미술 시장이 가장 고조됐던 시기와 맞물린다. 같은 해 설립된 알세르칼 애비뉴(Alserkal Avenue)는 아트 두바이와 함께 중동 미술 시장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알 쿠오즈(Al Quoz) 공업 지역에 남아 있는 39개의 창고를 묶어 만든 이 ‘갤러리 타운’은 아얌 갤러리(Ayyam Gallery)의 입주를 시작으로 지금은 25개 갤러리와 아티스트의 작업실과 레지던시, 디자인 스튜디오,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2015년에는 새로운 창고 62개를 추가해 공간도 2배인 25만ft²에 이르게 됐고, 작년에 프랑스의 유명 컬렉터 장 폴 나자 파운데이션이, 올해는 건축 거장 렘 콜하스가 이끄는 OMA가 설계를 맡은 새로운 다목적 공간 콘크리트(Concrete)까지 생겨나며 잇따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동 미술 시장의 저변에는 알-아자위의 성공 사례처럼 이슬람 문화권의 현대미술가를 세계 미술사의 역사에 새기려는 시도가 꿈틀거리고 있다. 1920~1940년대에 태어나 서구의 미술을 처음으로 배우고 접한 모던 예술가들이 첫 번째 타깃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아트 두바이의 모던 세션에 참여한 이집트의 아트토크(Arttalks) 갤러리는 이집트 현대미술의 거장 맘두흐 아마르(Mamdouh Ammar, 1928~2012)의 작품을 선보이며 작고한 작가의 재평가를 꾀했고, 컨템퍼러리 세션에서는 갤러리 를롱(Lelong)이 베이루트 출신의 에텔 아드낭(Etel Adnan, 1925~)을, 두바이의 권위 있는 갤러리 더 서드 라인(The Third Line)은 이란 출신의 모니르 샤흐루디 파르만파르마이안(Monir Shahroudy Farmanfarmaian, 1924~)을 적극 알리고 있다.
한편 일찌감치 두바이에 진출한 경매업계 양대 산맥 크리스티는 매년 아트 위크 시즌에 특별 전시와 경매를 개최하는데, 올해는 명성 높은 미술 전문 출판사 스키라(SKIRA)와 손잡고 이집트 작가 마흐무드 사이드(Mahmoud Sad, 1897~1964) 탄생 1백20주년을 기념하는 ‘카탈로그 레조네(전작 도록)’를 새로 발간했다. 2차 시장에서 카탈로그 레조네를 통한 위작의 예방이 중요하고 건전한 신뢰 속에 미술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전략이다. 크리스티가 자리한 두바이 국제 금융 센터(DIFC)는 10여 년 전부터 고급스러운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들어서 커뮤니티 스타일의 알세르칼 애비뉴와는 다른 방식으로 두바이 미술 시장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다. 올해는 크리스티의 경쟁자 소더비도 이곳에 사무실을 열고 중동 공략을 위한 태세를 갖췄다. 2008년 본햄즈가 두바이에서 처음으로 중동 현대미술 경매를 열어 예상가의 3배를 뛰어넘는 약 1천3백만달러(1백46억원)의 성과를 거둔 이후 각 경매사의 현대미술에 대한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슬람 미술품 구매의 36%가 이뤄지는 런던의 경우 매년 4월 크리스티, 소더비, 본햄즈 등 세계 3대 경매사가 이슬람 아트 위크를 열고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중동 지역의 모슬렘 부유층이 런던으로 많이 이주한 덕분이다. 현재 런던 시장 역시 쿠웨이트 출신의 모슬렘이고, 런던 최대의 백화점 해러즈의 소유주가 카타르 정부이며, 런던 시민 8명 중 한 명은 모슬렘이라는 통계가 있기도 하다.

국제 교류의 장, 샤르자 비엔날레
샤르자는 두바이, 아부다비 등과 더불어 UAE의 7개 토후국 중 하나로, 이 지역의 미술 전문가들이 국제적인 교류를 펼치고 수준 높은 동시대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아트 비엔날레의 개최지로 유명하다. 1993년 중동 최초의 비엔날레로 시작된 샤르자 비엔날레(Sharjah Biennale)는 그 자신이 큐레이터이기도 한 샤르자의 공주 후르 알-카시미(Hoor Al-Qasimi)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이 지역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비엔날레로 자리 잡았다. 공주가 10대 시절 시작된 샤르자 비엔날레는 그녀가 미술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여전히 관람객들의 편의를 뒷받침하는 행정의 미숙함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이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작가나 작품의 수준만큼은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2013년에 일본의 하세가와 유코, 2015년에는 한국의 주은지 등 중동 문화권 출신이 아닌 큐레이터를 총감독으로 초빙하는 등 국제 미술계의 인지도를 얻는 데도 성공하면서 최근 들어서는 점차 글로벌 행사로서의 위상을 높여나가고 있다. 올해에는 샤르자 북부 해변에 위치한 알 함리야(Al Hamriyah)에 예술가 창작 스튜디오 겸 전시장을 신설했는데, 이로써 작가와 큐레이터의 지적 활동을 장려하는 프로젝트가 보다 다양하게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전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도 샤르자 재단과의 협업 아래 진행되는 것으로, 중동의 예술을 세계에 알리려는 정책의 일환이다.

삼각 편대의 이점을 등에 업고 성장 가도를 달리다
딜로이트 리포트(Deloitte’s Digital Islamic Services Report)에 따르면 2011년 7천9백만달러(약 8백80억원) 수준이던 이슬람 미술 시장은 연평균 22%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2015년 1억9천만달러(약 2천1백50억원) 규모에 이르렀다. 유럽순수예술재단(TEFAF) 보고서의 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2015년 기준 약 6백38억달러(약 72조원)에 달하는 세계 미술 시장 규모에서 이슬람 아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음은 물론이다(0.2%에서 0.3%).
미술 시장의 성장은 갤러리 전시회, 전문가들의 평론, 경매를 통한 리세일, 그리고 미술관의 소장에 이르는 다차원적인 측면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국제 미술 시장의 관심이 고조됐을 때 서로 비슷비슷한 아트 페어, 비엔날레를 경쟁적으로 유치하면서 소모적이고 식상한 방식으로 그 흐름을 끊어버리는 안타까운 실패 사례를 많이 목격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부유한 현지 소비자층의 태동으로 문이 열렸지만, 각 도시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 구도에 힘입어 아직은 작지만 세를 점점 더 불려나가는 중동의 아트 마켓은 주목할 만하다. 이 같은 유기적인 성장은 아부다비와 카타르의 미술관이 궁극의 수요처를 맡고, 두바이의 갤러리와 아트 페어, 경매가 유통의 플랫폼을 담당하며, 샤르자는 비엔날레를 통해 새로운 작품의 생산뿐 아니라 전문가들과의 국제 교류를 통한 담론 형성에도 기여하는 삼각 편대의 힘 덕분이 아닐까. 아직까지는 이름 있는 미술관 하나 두고 있지 않은 두바이가 아트 위크 기간에 전 세계의 컬렉터를 불러 모을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곧 완공될 세계적인 미술관, 2020년 두바이 엑스포, 그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등을 거치며 중동의 아트 마켓이 어떻게 더 성장할지 관심이 기울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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