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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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3, 2016

글 강미숙(헬스조선 기자)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별들의 들판)로 걸어가는 길이다. 일생에 한 번쯤 걸어보고 싶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해마다 20만 명의 사람이 전 세계에서 찾는다. 환상 속 그 길을 5일에 걸쳐 맛본 여기자의 첫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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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속에 환상 하나쯤은 갖고 있다. 결혼식에 대한 환상은 깨진 지 오래지만, 나에게도 아직 남은 환상이 있었다. 수평선까지 기다랗게 누워 있는 길. 끝도 없는 그 길을 고독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결코 서두르지 않고 하루 종일 묵묵히 걷고 나면, 남루한 숙소에 도착해 몸을 누이는 것. 오늘도 몸을 누일 수 있다는 데 감사하면서 잠이 드는 것. 이것은 내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적 이미지다. 언젠가는 나도 저런 구도자가 되어보리라 생각했다. 만약 산티아고를 걷게 된다면 쉰이 되었을 때일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2014년 가을, 나를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데려다놓았다. 꿈이 이렇게나 빨리 이뤄질 줄 몰랐다. 오랫동안 신발장 안에 놓아두었던 등산화를 꺼내고, 배낭도 챙기고, 카메라 상태도 살폈다. 헬스조선 비타투어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걷기’ 프로그램에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먹고, 입는 데 필요한 짐을 모두 메고 걷지 않아도 되고,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호텔에서 편히 잠자고, 길을 안내해줄 가이드가 동행한다니! 커질 대로 커진 여행의 설렘은 오버차지(수하물 기준을 초과하는 것)될 듯했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길

도보 일정은 스페인 북서부의 갈리시아 지방, 사리아에서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은 프랑스 작은 마을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대성당에 이르는 길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111.5km 떨어진 사리아는 나와 같은 ‘단기’ 순례객의 단골 출발지다. 안개가 자욱한 사리아는 중세 마을처럼 고풍스러웠고, 순례길에 대한 환상처럼 근사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는 ‘노란 화살표’가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지도가 없더라도, 노란 화살표만 잘 찾아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 친절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대문에, 담벼락에, 표지석에 노란 화살표를 새겨 넣었다. 길치인 나도 눈만 크게 뜨면 되었다. 기능적으로도 그렇지만, 심미적으로도 노란 화살표는 훌륭했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어떤 것은 타일이었고, 어떤 것은 페인트였고, 어떤 것은 부조였다. 화살표 위에는 여러 나라 언어로 쓰인 응원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에스파냐어도 있었고, 영어도 있었고, 중국어도 있었다. 길을 걷다 지치면 노란 화살표를 보고, 다리에 힘 한번 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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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그림자를 쫓아서

첫날에는 22.4km를 걸었는데, 이튿날에는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까지 무려 25km를 걸어야 했다. 짙은 안개가 걷히자 끝도 없는 평원이 드러났다. 싱그러운 이슬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초록의 땅으로 힘차게 발을 내딛고 싶었지만, 여독이 풀리지 않은 발은 늪을 걷는 듯 더뎠다. 잠시 바르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켠 뒤에야 조금 나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볕은 따갑게 내리쬐었고, 숲을 벗어난 도로 가에는 그늘 한 조각 없었다. 등과 목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물 한 병과 소형 카메라만 든 가방이 10kg은 되는 듯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멀었는데, 압박감이 몰려와 어느 순간부터 바닥만 보고 걸었다. 바닥에서는 지친 그림자가 걷고 있었다. 순례길은 서쪽을 향해 난 길이어서 모든 순례자는 해를 등지고 걷게 된다. 아침이면 전날 피로만큼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앞에서 걸어가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그림자는 점점 작아지다 뒤로 물러난다. 보기 싫어도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걸어야 한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림자는 애처로웠다. 할 수만 있다면 힘껏 끌어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그림자 하나가 걸어왔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나를 지나쳐가며 파란 눈동자의 순례자가 인사를 건넸다. ‘부엔 카미노’는 ‘순례 잘하세요’ 혹은 ‘당신에게 행운이 있기를’ 정도의 의미인, 산티아고 순례자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순례자는 자신의 머리 위로 한 뼘쯤 솟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는 한 달 일정으로 걷고 있다고 했다. 그가 행운을 빌어주어서인지 몰라도, 이후 걷는 데 익숙해졌다. 몸에 자동으로 프로그래밍된 듯 발이 저절로 걷고 또 걸었다. 피곤하기보다는 상쾌했다. 몸을 쓸수록 마음은 조용해졌다. 감정이 찰랑찰랑 밀려왔다가도 이내 가라앉았다. 낮에 녹초가 되도록 걷는 것의 좋은 점은 또 있었다.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드는 마법이다. 내일 해야 할 일 생각에, 낮에 했던 실수를 반추하느라 뒤척이던 서울에서의 밤과 달랐다. 이곳에서는 걷고,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내일 걸어야 할 길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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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산티아고로 걷는 길
걷기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달은 마지막 날 일어났다. 전날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신발 뒤축을 구겨 신은 게 화근이었다. 신발 목이 돌돌 말려 아킬레스건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처음에는 불편한 정도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걷기 힘들어 발을 절뚝거리게 됐다. 속상했다. 오늘이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날인데, 이대로 망쳐버리는 건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왜 섣불리 도전한다고 손을 들었을까. 왜 다른 사람은 내게 그런 충고를 하지 않았을까. 후회와 원망이 밀려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야속할 만큼 평온했다. 하얗게 빛나는 유칼립투스나무에 기대앉으니 하늘이 더 잘 보였다. 뒤따르던 일행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는 능숙하게 신발을 손봐준 뒤 퉁퉁 부은 발목에 손수건을 감아주었다. 한결 편안했다. 천천히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앞서 도착한 순례자들의 환희로 가득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의 산티아고 순례 여행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걷는 데 서툴렀고,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찾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 산티아고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꼭 다시 이 길을 걸을 것이다! 순례 여행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발에 물집도 잡히고, 몸도 무겁고, 지금 당장은 목적지까지 걷느라 길이 좋은지, 어떤 생각도 안 날 거예요. 그렇지만 집에 돌아가 한 달이 지났을 때 문득 산티아고가 생각날 거예요”라고. 여행이 끝난 지금,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내 앞에는 산티아고 길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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