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시선: 수집과 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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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5, 2023

글·인터뷰 황다나

19세기 중반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가 사진기를 발명하면서 미술사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초상화를 필두로 회화는 재현의 기능에서 사진보다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그러자 사진이 채 담아내지 못하는 표현에 초점을 맞춘 폴 세잔 같은 화가가 등장했다. 그 후 19세기 후반 근대미술과 20세기 현대미술은 점차 재현보다 본질의 표현을 찾아 나서면서 다양하게 전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움직임을 담아낸 영상 매체가 일상에 밀접하게 침투하면서 새로운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사각 프레임에 담긴 순간은 사진가가 우연 때로는 치밀한 계획에 따라 배열하고 수집, 채집한 경험을 시각화해 감각을 전달하는 표현의 역할을 겸하게 됐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담아낸 두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프랑수아 알라르(Franc¸ois Halard)와 사라 반 라이(Sarah van Rij).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거장과 혜성처럼 나타나 주목받는 젊은 사진가의 시선이 담긴 전시가 남산 자락과 찬란한 도시 풍경을 두루 품은 피크닉(piknic)에서 나란히 펼쳐지고 있다. 작년 이곳에서 열린 사울 레이터 사진전의 계보를 이을 전시다.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두 사진가는 여행을 삶 속 예술로 구현해온 루이 비통의 트래블 포토그래피 출간물 시리즈인 <패션 아이(Fashion Eye)> 컬렉션의 저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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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알라르: 시간의 궤적을 수집하다
사적인 공간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다는 것은 타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가 짜놓은 섬세한 인생의 틀과 침묵이 짙은 농도로 스며든 집을 방문해 햇빛 한 줄기, 공기의 흐름이 꿈틀거리는 순간마저 관찰하고 포착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프랑스 출신의 포토그래퍼 프랑수아 알라르(Franc¸ois Halard)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으로 프레임에 무엇을 둘지 단번에 알아내는 안목과 오랜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교감하듯 인간적인 친화력이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아늑함이 녹아든 공간, 빛과 조우해 시시각각 자태를 달리하는 정물의 내면,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았을 사물의 속삭임, 생명력이 사진 한 점 한 점에 깃든다.
피크닉의 정원 산책길을 거쳐 나무문을 열고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비지트 프리베(Visite Prive´e)’라는 전시 제목을 써놓은 폴라로이드 사진 프레임이 여느 현관 문패처럼 우리를 맞이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벨기에의 대표적인 갤러리스트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악셀 베르보르트, 텍사스 휴스턴의 이름난 컬렉터 존 드 메닐, 생 로랑과 베르제가 각각 생을 꾸려온 공간이 교차한다. 아프리카 마스크와 로만 조각, 혹은 몬드리안 작품과 아시아 조각이 한데 모인 풍경이 클로즈업으로 포착되는가 하면, 선명한 오렌지, 초록색 스트라이프 벽지가 감각적인 빌라 판자, 깊은 흑백 명암 속 빌라 노아유, 정제된 베이지 톤의 랑베르 저택까지, 색채의 향연이 연달아 펼쳐진다. 아일린 그레이 저택의 해 질 녘, 데이비드 호크니의 LA 저택 수영장,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는 조르조 모란디 스튜디오의 정물들, 루이즈 부르주아의 관심사로 가득 찬 뉴욕 집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분위기 너머로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과 신념이 버무러져 있다. 한때 로마제국의 위용을 과시했으나 현재는 지진과 내전으로 상당 부분 파괴된 레바논 인근의 작은 고대 도시 발베크, 사랑하는 연인이 떠난 후 쓸쓸함이 감도는 사르데냐 라 쿠폴라, 무너져가는 폐허가 된 엘레우사. 시간이 설계한 궤적, 세월이란 수레바퀴의 무게를 느끼며, 진정한 목적지는 장소가 아닌 새롭게 보는 방식이라는 한 소설가의 말이 맴돈다. 그의 다음 여정은 어디가 될까. 7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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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반 라이: 순간의 미학을 채집하다
피크닉 별관에서는 네덜란드 출신의 사라 반 라이(Sarah van Rij)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서울이란 도시의 진솔한 면을 부각한 사진전을 선보이고 있다. 루이 비통 <패션 아이(Fashion Eye)> 서울 편 출간을 기념해 책에 실린 69점을 망라한 전시다. 2022년 초여름, 한국은 물론 아시아 대륙 자체를 처음 방문한 작가는 아무런 편견 없이 온전한 백지를 위임받는다. 서울 시민이 으레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 평범한 매일매일은 순간의 이야기로 빚어진다. 사물에 가려져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의 모습을 포착하고, 동시대의 지표인 휴대폰이나 자동차는 의도적으로 배제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시대의 면면을 꿰뚫게 하고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든다. 원근감마저 사라진 듯한 프레임 안, 작가는 시간을 초월해 30년 전에도 존재했고, 30년 후에도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서울의 결을 직접 발로 뛰며 하나하나 소중히 채집한다. 우연이 빚어낸 결정적 순간을 여러 차례 중첩시킨 이미지 너머로 작가는 오래된 것들, 그래서 그곳에 사는 거주민에게 점점 잊혀가는 것들을 켜켜이 담아내 그리움을 자아낸다. 서울에 헌정해 무료로 공개되는 <루이 비통 패션 아이> 서울 전시는 7월 2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piknic.kr) 참고.



Interview with_ Franc¸ois Halard

스스로를 ‘영혼 사냥꾼’이라 칭하는 프랑수아 알라르는 혼이 깃든 오브제, 살아 숨 쉬는 공간, 그곳에 속한 인물의 정신이 녹아든 공간을 포착해왔다.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 부모님을 둔 알라르가 무수히 많은 잡지와 전 세계 각지의 촬영 스튜디오를 거쳐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안식처를 담아온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다소 내성적이던 소년 알라르는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활약한 이브 & 미셸 알라르 부부의 지인 예술가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어릴 때부터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 12세가 되던 해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파리 18세기 저택을 배경으로 화보 촬영을 하던 패션 사진계 거장 헬뮤트 뉴튼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사진가의 꿈을 확고히 하게 된다. 25세에 이르러서는 잡지 출판업계에서 독보적 권위를 지닌 콘데 나스트의 아트 디렉터 알렉산더 리버먼과의 만남을 계기로 패션계에 발을 내딛는다. 이후 <보그>, 등의 패션 화보는 물론, 유명인의 초상, 정물에 이르는 작품 활동을 전개해나가며, 차차 패션보다는 공간과 인물을 담아내는 데 매료되었고, 틈틈이 자신이 좋아하는 오브제를 수집하고 사진집을 내며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가장 사적인 공간과 추억을 포착해왔다. 세계 도처를 여행하던 청년은 이제 62세의 나이로 접어들었지만, 오늘도 돋보기안경 너머로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세계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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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travel과 프랑스어로 일을 의미하는 travail는 어원이 같다는 내용을 읽은 적 있다. 알라르에게는 특히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이는데,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

A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나의 작업에 필수다. 나는 물론 일을 위해서도 여행을 다니지만, 항상 나 자신을 위한 여행을 한다. 여행을 통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진정한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나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 17세기 중반 영국을 시작으로 구미 지역으로 확대된, 부유층 젊은이들이 교육의 일환으로 유럽 주요 도시를 둘러보던 대륙 순회 여행)’ 신봉자지만, 보다 친밀하고 개인적인 ‘방 주변으로 떠나는 여정’의 애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각각의 여행 모두 똑같이 보람 있다.

Q 스스로를 ‘영혼 사냥꾼(soul hunter)’이라 일컬었는데, 여전히 당신을 잘 묘사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물, 공간은 물론 사각 프레임을 통해 포착하는 빛의 모양새나 색의 조화에도 영혼이 담겨 있다고 여기는지 궁금하다.
A 그렇다. 나만의 유령들을 찍는 걸 좋아한다. 그들의 창조적인 정신을 소유하고자 노력하는 나만의 방법이라 볼 수 있다.

Q 개인적으로 당신이 찍은 루이즈 부르주아의 아틀리에를 보며, 예전에는 몰랐던 그녀의 진면모를 발견하게 됐다. 살아 있는 피사체나 인물이 아닌 사물 혹은 공간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탐험, 끊임없는 관찰, 대화, 호기심 등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가 당신으로 하여금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카메라 앞에 서도록 만들었는가?
A 우선, 무엇보다 호기심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창작자나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세계를 탐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매번 사진을 찍으면서 경탄할 만한 아름다운 상태를 포착하고 유지하고자 시도에 시도를 거듭한다. 만약 사진을 찍으면서 다시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진 찍기를 그만둘 것이다.

Q 때로는 명징하고 때로는 흐릿한 선, 형태, 색채가 층위를 이뤄 하나의 시선, 시각적 어휘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사진 미학을 정의 내릴 수 있는가? 젊은 나이에 커리어를 시작해 빠르게 승승장구했는데, 이에 따라 사진 작업을 전개하는 방식이 변했다고 생각하는가?
A 사진을 찍는 방식은 젊은 시절 사용하던 방식과 변함이 없다. 때로는 나 자신이 수맥을 찾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안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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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주 시작 전 악기를 조율하는 연주가처럼 사진기를 들기 전 당신만의 습관이 있는지?

A 카메라에 실버 필름이나 폴라로이드를 넣는다.

Q 당신이 출판한 수많은 책 역시 놓칠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사진가인 당신 외에도 디자이너, 인쇄 기술자, 출판인이 합심해서 혼을 담아낸, 상대적으로 평등하게 누구나 보유할 수 있는 책이 출판될 때 도시의 파노라마나 자연 풍광, 삶의 모습이 여행지마다 다르게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출판 작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A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수집하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만들게 된 것이고 그 역시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종이에 밴 잉크 냄새를 좋아하고,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Q 흑백과 컬러를 각각 구분해 사용하는가? 혹은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는가? 이번에 발베크, 빌라 케릴로스, 빌라 노아유 연작 등에서 흑백사진을 볼 수 있는데, 옛 영광이나 흔적을 담을 때 흑백을 쓰는 편인가? ‘영혼을 사냥하고’ 분위기를 간직하는 과정이 어떤 절차를 거쳐 펼쳐지는지, 어떻게 색채를 선정하는지도 궁금하다.
A 컬러와 흑백,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이용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나중에 궁극적으로 가장 알맞는 사진을 선택한다.

Q 영감의 원천, 소유를 넘어 당신이 수집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있는가?
A 내가 수집하는 오브제는 마치 부적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여행과 만남의 추억을 상기하게 한다. 그것들은 자전적 요소와 같으며, 내 창조적인 예술 작업의 기초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Q 수집은 불치병인가?
A 확실히 그렇다.

Q 서울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했나?
A 나는 이 도시의 에너지를 사랑한다. 서울의 따뜻함과 서울 사람들의 환대를 사랑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는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한옥에 머물면서 백자와 공예 예술을 감지하고 가까이할 기회가 있었다. 특히 장안요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도예가 신경균의 작업실), 특히 분청사기와 마주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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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울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거대 도시다. 하지만 당신이 사랑해마지않는 그리스, 아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옛 건물을 허물고 재개발 지구를 지정한다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오랜 세월을 머금은 전통을 지키는 올바른 방식이 있을까? 당신의 견해가 궁금하다.

A “신이란 무엇인가? 신은 길이, 너비, 높이와 깊이를 동시에 의미한다. 이 네 가지 신성한 속성은 많은 이들에게 명상(고찰)의 대상이다”라고 말한 12세기 성직자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Abbe′ Bernard de Clairvaux)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Q 오늘날에는 누구나 사진을 찍는 문화에 익숙하다. 고성능 사진 촬영 기능을 갖춘 휴대폰, 텀블러,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도 한몫했다. 예로부터 여행의 자연스러운 동반자였던 사진은 이제 매일매일 떠나는 일상이라는 여행지에도 동행한다. 비전문가가 여행 예술을 표현하기에 제격인 방식으로 사진을 택하는 현시대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이들이 창의적인 시선을 키울 수 있도록 조언하자면?
A 실용적 측면에서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예술성을 띠기도 하는. 하지만 이 매체로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기란 어렵다. 이미지의 회화적인 측면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Q 직관(intuition)과 느낌(sense) 중 택한다면?
A 항상 둘 다 필요하다. 매번 영혼과 이성 간에 싸움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Q 미래에 꼭 하고자 하는 작업이 있는가?
A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표현 방식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언급하고 싶다. 사진과 회화를 넘나드는 새로운 이미지를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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