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hmere—The Origin of a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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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6, 2019

글 고성연(상하이 현지 취재) | 사진 제공 로로피아나 | 사진 Giulio Di Sturco

뤽 자케-로로피아나 다큐 필름 프로젝트_1부








시련은 아무에게나 꽃이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때때로 궁극의 아름다움을 품은 자연의 선물은
가장 까다로운 환경을 극복해내야만 얻을 수 있다. 패브릭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소재로 꼽히는 베이비 캐시미어, 비쿠냐, 더 기프트 오브 킹스ⓡ 등을 내세우는 이탈리아 브랜드
로로피아나(Loro Piana)는 지구촌에서 가장 척박한 환경이나 극한의 기후 조건 속에서도 6대에 걸쳐 내려오는 고유의 노하우와 열정으로 ‘패브릭 로드’를 진화시켜왔다. 인간과 동물의 ‘공생’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진귀한 소재의
기원을 진정성 있게 짚어보고 공유하는 차원에서 이 브랜드는 3년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오스카상’에 빛나는 프랑스의 영화감독 뤽 자케(Luc Jacquet)와 함께하는 머나먼 ‘패브릭 여정’을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담아내기로 한 것. 그 첫 작품으로 몽골에서 촬영한
<캐시미어-비밀의 기원>이 최근 상하이의 문화 예술 공간 MIFA 1862에서 공개됐다.










이탈리아 하이엔드 패브릭 브랜드 로로피아나(Loro Piana)는 6세대에 걸쳐 최상의 품질을 지닌 특별한 섬유를 찾아
세계 각지로 먼 여정을 꾸려왔다. 그중 브랜드를 대표하는 섬유 중 하나인 캐시미어를 얻는 염소가 살아가는 내몽골 지역.※ <캐시미어-비밀의 기원>은 로로피아나 웹사이트(www.loropiana.com)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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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라고 하면 고원 지대에 끝이 보이지 않을 듯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 그 드넓고 목마른 대지 위에 모질게 휘몰아치는 바람, 바위마저 쪼개진다는 혹독한 기후를 빼놓고 얘기하기 힘들다. 대표적인 지역이 몽골어로 ‘사막’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고비(Gobi) 사막. 그래도 낭만을 읊조리는 여행자들에게는 이 적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의 별빛 가득한 밤하늘이 지친 심신을 토닥여주는 기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낭만적인 풍경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존재가 있다. 아름답지만 척박한 몽골의 초원과 사막을 삶의 무대로 삼은 채 살아가는 유목민, 그리고 그들의 벗이자 동반자인 가축이다. 특히 고비 사막 인근에 위치한 내몽골의 아라산(Alashan) 지역은 낮밤과 여름·겨울의 온도 차가 극심한 곳인데(영상 40℃~영하 40℃), 털이 하얀 희귀한 염소 무리와 그들과 ‘공생’하는 목동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카프라 히르커스(Capra Hircus)라고 불리는 이 염소는 계절에 따라 유목 생활을 하는 목동만큼이나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줄 안다. 작은 체구를 감싸는 바깥쪽은 비와 햇빛을 견뎌내도록 다소 거친 털로 덮여 있지만, 그 안에는 놀랍도록 보드랍고 단열 효과가 뛰어난 속털이 숨겨져 있다. 바로 ‘캐시미어’다. 특히 생후 3~12개월 된 히르커스 새끼 염소의 곱고 가벼운 속털을 섬세한 빗질을 통해 채취하는 ‘베이비 캐시미어ⓡ’는 일생에 단 한 번, 1마리당 30g 정도만 나온다고. 하지만 무리하게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육 방식의 등장으로 몽골 염소의 생태계는 위험에 빠지게 됐다. 이에 로로피아나(Loro Piana)는 오래된 전통을 고수하는 농장주들과의 협업을 다지면서 ‘최상의 소재’ 지키기에 나섰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영화감독이라면 당연히 구미가 당길 만한 촬영지이자 이야기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남극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펭귄, 위대한 모험>(2005)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뤽 자케(Luc Jacquet)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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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속에 피어난 캐시미어의 연금술, 몽골의 기적

“일단 촬영지 자체가 아주 흥미로웠던 것도 맞아요. 몽골에서, 그리고 (다음 행선지인) 페루와 뉴질랜드에서 촬영한다는 건 영화감독으로서 정말이지 매력적인 기회죠.” 지난 10월 중순 상하이의 문화 예술 공간 MIFA 1862에서 <캐시미어-비밀의 기원> 상영회가 개최된 다음 날 아침, 시내에 있는 한 호텔의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뤽 자케 감독. 오랫동안 몽골의 자연환경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작업을 꿈꿔왔다는 그는 “진귀한 섬유의 역사를 탐색할 수 있다는 건 영감의 바다에 빠져 그 감동을 나누는 일”이라고 미소 지으면서 “이렇듯 배급사나 제작사에 대한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느낀 대로 해보라’는 식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특히 염소를 키우는 지역 목동들 곁에서 관찰하고 심지어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강조했다. “촬영 기간 동안 그들과 늘 같이하면서 우리 사이의 연결 고리가 꽤 단단해졌어요.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는데, 촬영이 끝난 다음에 저는 그분들로부터 살아 있는 낙타를 받았어요. 선물 같은 거였죠.” 그는 비록 프랑스로 낙타를 데려올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선물’을 건넸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특별한 유대를 쌓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냐면서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로 꼽았다.
몽골 촬영에 대한 뤽 자케 감독의 애정은 스크린에서도 잘 드러났다. <캐시미어-비밀의 기원>을 수놓은 장면마다 염소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목동 가족들로 이뤄진 일종의 ‘공동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여실히 느껴졌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자연경관과 더불어 나름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앙상블 덕분에 별도의 내레이션 없이도 지루할 새 없이 20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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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에 걸친 3부작 다큐멘터리 대장정

영상이 길지 않아도 촬영에는 상당한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 법이다. 실제로 몽골 편의 경우에도 사전에 장소를 답사하고 등장인물을 찾는 작업에만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고. 이제 뤽 자케 감독은 내년에 있을 페루 촬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귀한 섬유로 꼽히는 비쿠냐(Vicun?a)의 원산지다. 내후년에는 이름 그대로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칭송받는 최상급 울(wool) ‘더 기프트 오브 킹스ⓡ(The Gift of Kingsⓡ)’의 공급지인 호주와 뉴질랜드로 향할 예정이다. 사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에 걸친 다큐멘터리 3부작을 택한 데는 촬영지의 매력이나 자신의 일에 장인 정신과 열정을 지닌 사람들을 만난다는 이점만 작용한 건 아니다. ‘브랜드’ 자체에 대한 호감 없이는 내리기 힘든 선택이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다음에 자신이 움켜쥔 엄청난 행운을 어떻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될지 고민해왔다는 그는 “규모 있는 기업이나 브랜드들과의 경제적 연계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첫 만남부터 로로피아나는 흥미로웠습니다. 일부러 ‘지속 가능한’ 존재가 되려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그런 기업이었으니까요.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직물의 소재가 되는) 섬유를 확보하고 목동과 관계를 쌓아나가기 위한 방법, 그러니까 ‘경제적 현실’이라고나 할까요.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사례라 무척 마음에 들었죠.” 어린 시절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랐고, 생태학을 전공했으며, 환경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를 몸소 설립하기도 한 인물답게 다분히 ‘현실 감각’이 묻어나는 설명이다. 실제로 로로피아나는 10년 전부터 개체수는 줄이면서도 개체당 솜털 수확량을 높게 유지해 섬유 선도를 향상시키는 ‘로로피아나 방식’을 실천해오고 있다. 환경도 지키고, 품질도 최적화하겠다는 의도다. 실제로 품질을 끌어올린 로로피아나는 2015년부터 ‘올해의 로로피아나 캐시미어상’을 지역 생산자에게 수여하고 있다. 또 페루에서는 비쿠냐의 멸종을 방지하기 위해 ‘프랑코 로로피아나 자연보호 구역’도 만드는 등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행보에 대해 로로피아나의 CEO인 파비오 디안젤란토니오(Fabio d’Angelantonio)는 센스 있는 설명을 곁들였다. “우리는 환상적인 브랜드 자산과 스토리만이 아니라 흥미로운 고객군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품질을 중시하고 안목이 뛰어난 로로피아나 고객들은 어떤 제품이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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