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디자인, 일상과 소비의 중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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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1, 2011

글 구병준(croft 실장)

과거에는 단지 생활용품에 불과했던 가구, 조명과 같은 디자인 제품들이 새로운 예술품으로 인정받으며 경매를 통해 팔려나가고 있다. 상품과 작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생활 속에서 소비하고 있는 매스컬처 아트의 시대에 빈티지 가구와 수억원을 호가하는 테이블, 소파가 조명받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디자인의 대중화 속에서 ‘진짜’ 디자인 찾기

예술과 상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지금, 수많은 예술가들은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춘 사업자를 만나 대중이 자신의 예술을 소비할 수 있도록 상품화하길 원한다. 안정된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중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는 상품화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으로 통한다. 예를 들어 일본 리빙 브랜드 무지(Muji)에서는 주거 트렌드를 산업화해 조립식 주택을 효율적으로풀어냈고, 유명 건축가들은 기업의 수익 사업을 위한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매뉴얼화하고 누구든 만족할 만한 샘플 하우스로 완성한다. 또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들이 대중 브랜드와 만나면서 상품과 작품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스타 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신용카드를 수만 명이 사용하고, 루브르박물관을 건축한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 아파트에 사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상적인 작품을 추구하면서도 반면 현실 속 소비문화에서는 대중적인 상품화를 실현해 그 경계를 없애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수준급의 작품에 대한 가치 투자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디자인이 상품화되며 대중 속에 녹아드는 이러한 현상이 고급 예술에 대한 소비의 촉매제가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중화는 소량 생산 또는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이슈를 만들고 제품군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타깃 선점이 되지 않은 리미티드는 의미가 없으며 고가 제품일수록 영향력 있는 유명인을 내세워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 이런 현상의 목적은 대중화가 아니다. 트렌드를 이끄는 집단이 되기 위한 노력이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하는 대중의 호기심을 신뢰로 바꾸는 과정이고 전략이다. 이러한 리미티드 에디션은 전설로 자리 잡게 되고, 이 상품을 리바이벌한 제품이 소비를 자극할만한 가격으로 출시된다. 초기에 출시한 리미티드 에디션에 대한 소유욕이 그대로 대중화된 제품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소비의 극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처럼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마케팅과 소비 패턴 덕분에 작품과 상품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며 ‘작품 같은 상품’이 새로운 시장을 이끌어가게 되었다. 최근 화제가 된 신세계 백화점의 제프 쿤스(Jeff Koons) 전시는 마치 수많은 대중을 위한 전시 같지만 실은 수백억의 가치를 지닌작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예술품 박람회다. 2003년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와 루이비통의 컬래버레이션 역시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컬래버레이션의 붐은 디자인을 알리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진짜 좋은 디자인을 알아보기 어렵게 하는 방해꾼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업적인 디자인의 범람으로 요즘은 ‘디자인’이라는 이슈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대중적인 관심거리로 전락한 면도 없지 않다. 쉽게 말해, 새로운 유행 상품이라는 이름 아래 관심을 끌기 위한 변종이 탄생하고있으며 그것이 또 다른 공해를 양산하는 주범이 되고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화려한 장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소수 전략가들에 의해 ‘디자인’의 개념이 재정리되고 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인간미가 흐르는 작품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조지나카시마의 작품이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치를 드높여가는 북유럽 가구와 같은 리빙 디자인 제품들이 이러한 ‘진짜 디자인 찾기 운동’의 발화점이 되어 ‘디자인’이라는 이름이 잃어버린 과거의 빛을 다시 찾고 있는 중이다.

조명과 가구, 투자가의 마음을 사로잡다

이러한 디자인 가치 투자가 집중 조명됨에 따라 흔하게만 생각하던 조명과 가구 작품 등이 미술 시장에 나오고 있다. 회화 위주의 평면적인 작품이 미술 시장이나 주거 공간 등 한정적인 곳에서 각광받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거실에 놓이는조명과 책장, 의자 등 고가의 작품이 실제 주거에 사용되면서 아트 퍼니처의 신흥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디자인 작품의 소장 가치와 판매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아트 테크’의 새로운 ‘블루 오션’으로 떠오른 것이다. 억대에 이르는 가구가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현상이 그 현실을 입증한다. 가구는 이제 실용성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과학’이라는 단어를 넘어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구 제작이 기계화되고 새로운 생산 과정이 정착된 이후로 현대 가구 디자인은 더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 지역·생활 문화, 소재의 특성 등이 시대상을 반영한 디자인 양식으로 정리되었고, 가구와 조명은 문화와 일상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즉 가구가 기능을 갖춘, 스토리가 있는 하나의 현대 조각 작품이 된 것이다.

샬럿 페리앙부터 앙드레 퓌망까지

20세기 대표 가구 작품으로 분류되는 샬럿 페리앙(Chalotte Perriand),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 론 아라드(Ron Arad) 등 거장의 작품은 수억원을 호가하며 미술계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그 가구보다 더‘좋은’ 상품이 즐비한 시점에서도 디자인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오리지널 작품과 역사에 기록된 손때 묻은 빈티지 작품이 1천만~2천만원을 호가하며 현재의 디자인 시장을 리드하는 것이다. 형태가 같더라도 소재를 다르게 사용했거나 장인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정교한 마감과 같은 특징을 지닌 소량 생산된 오리지널 가구의 가치가 아직도 우리를 매료시키고 있고,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유명브랜드의 상품 속에서도 오리지널 가구들이 살아남는다. 대표적인 샬럿 페리앙의 책장은 상품과 오리지널의 가격이 10배 넘게 차이가 나고 현재까지도 ‘작품’에 대한 가격의 기준이 되곤 한다. 일상 속에서 이러한 가구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하는 과정 자체에서 새로운 미학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또최근 디자인 가치 투자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미적 균형감과 절제를 통해 가장 정제된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도하는 프랑스 파리의 앙드레 퓌망(AndreePutman)이나 뉴욕의 로맨 앤드 윌리엄스(Roman &Williams), 밀라노의 로사나 올란디(Rossana Orlandi)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같은 유명 작가들이 제시하는 이슈는 앞으로 디자인 관련 미술계와 산업계에 필요한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비전문가는 쉽게 구별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소재의 대비, 유동적 라인을 완성하는 작업은 섬세한 감각과 오랜 훈련을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요즘처럼 순간적이고 강렬한 효과 위주의 인테리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을불러일으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디자인이 지닌 생명력은 디자이너가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인 ‘사람을 현혹시키는 디자인’이 아닌 지극히 편안한 디자인을 추구하고,보이지 않는 요소에 대한 섬세한 접근에서 비롯된다. 즉,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미묘하게 조율하는 감성적인디자인을 브랜드가 잘 활용한다면 상품을 넘어 예술까지 아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리빙 컬렉터의 저변을 넓히는 패션 브랜드와의 조우
이러한 오리지널 리빙 디자이너 이외에도 에르메스, 디젤, 미소니, 아르마니, 펜디 등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카사(casa)를 지향, 홈 데코 시장에 뛰어들어 기존의 침구류는 물론 가구와 조명까지 제작하는 것도 이러한 디자인 가치 투자에 관한 이목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수석 디자이너를내세운 패션 브랜드들의 이러한 위세는 기존 가구업체들을위축시키며 대변화를 앞당겼다. 기업적인 측면에서는 급격히 상승하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로 새로운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보다 제품에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해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기도 하다. 몇 대째 내려오는 장인들의 기술력을 확보한 다음엔 어떤 예술가의 터치로 포장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해진다. 때로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예술가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패션 산업이 세계 트렌드 시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건축가들이 예술가로 인정받는 요즘, 패션 분야의 트렌드 리더와 건축가의 만남은 21세기 리빙 시장에서 또 다른 예술 작품을 탄생시킬 것이다. 국내 갤러리들도 2005년부터 앞다투어 디자인 관련 기획전으로 현대미술과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다. 그 분야는 조각과 공예를 넘어 건축과 미디어, 가구와 조명 등 소비되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디자인이 예술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어디든 빈티지 가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보여지는 것’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실제 가치 투자가 형성되고 있다. 당시 문화와 생활 속에서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유명 예술품처럼 디자인만의 경계가 존재하던 시대는 지났다.기능적인 혹은 소비 상품을 넘어서 예술의 경계, 즉 미술, 디자인, 건축의 경계가 교차되면서 또 다른 조형 언어와 실용예술로 해석되는 시대가 도래했기에 당분간 가구와 리빙 아이템에 대한 투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1960년대 디자인 매거진 <눈(L’oeil)>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해 패션계에서 마케팅 컨설턴트로도 일하는 등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1978년 파리에 ‘Ecart International’을 설립했고, 그곳에서 제작한 20세기 모던 가구 컬렉션은 앙드레 퓌망의 대표적인 작업으로 손꼽힌다. 이브 생 로랑, 칼 라거펠트, 티에리 뮈글러, 아제딘 알라이아,카르티에, 에벨 등의 인테리어를 비롯, 마네킹 디스플레이와 에어프랑스의 콩코드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1984년 모건스 호텔(Morgans Hotel)로 ‘부티크 호텔’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 후 보르도 현대 미술관과 호텔, 레스토랑, 뮤지엄, 콩코드 기내 디자인에서 장난감, 안경, 가구, 영화의 세트 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통해 심플함과 우아함을 생명으로 하는 절제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단순한 디자이너 또는 건축가가 아닌,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지닌 공간을 창조해내는 뮤즈이다”. 자크 랑 전 프랑스문화부 장관은 그녀에게 이렇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집에 둔 유일한 가구라 소개해 더욱 유명해진 조지 나카시마. 20세기 가구를 대표하는 거장 조지 나카시마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1941년부터 미국에서 가구를 만들었다. ‘좋은 디자인은 국제적인 언어로 통용된다’는 신념으로 자연의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고대 인도, 유럽, 아메리칸 인디언 등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포용하면서 자신만의 미학을 추구했다. 특히 일본의 가내 목공예를 미국식 생활에 접목한 조지 나카시마 컬렉션은 작품 전반에 동양적인 선(禪) 스타일과 미국적인 실용성이 어우러져 간결함과 실용적인 디자인을 완성했다. “표정이 다양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 중 하나이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자연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갖고 있던 조지 나카시마는 자연 앞에서 겸허히 자신을 낮추고 나무의 영혼에 귀 기울이며 나무껍질을 벗기는 작업부터 재단, 칠을 입히는 작업까지 모든 과정을 손으로 작업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맛을 내는 가구를 제작했다. 나무에 생긴 옹이, 불에 탄 자국까지 그대로 살려 디자인했다. 1990년 타계한 이래 하버드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의 딸 미라 나카시마(Mira Nakashima)가 그 장소에서 그대로 조지 나카시마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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