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혼 담긴 바늘땀이 빚어내는 쿠튀르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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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 2024

글 고성연

궈페이(Guo Pei), <Fashioning Imagination>展

M+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그리고 서울 청담동의 송은을 설계하기도 한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피에르 드 뫼롱과 자크 헤어초크)가 이끄는 HdM이 맡아 일찌감치 화제가 된 프로젝트다. 구룡반도 서쪽의 매립지에 야심 차게 건설한 시주룽 문화 지구(WKCD)의 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정말로 ‘맨땅에’ 미술관을 세우는 일인지라 “처음엔 약간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고 지난해 홍콩에서 만난 피에르 드 뫼롱이 털어놓기도 했다. 기나긴 공사 끝에 2021년 늦가을 드디어 베일을 벗은 M+는 외국인의 발길이 거의 없던 시기에도 15개월 만에 3백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였다. 전시 공간 규모만 17,000㎡(약 5천1백 평)에 이르는 이 새로운 랜드마크는 ‘뮤지엄, 그 이상(+)’을 품어낸다는 포부를 지녔다. 그래서 현대미술, 디자인, 패션, 영화 등 다양한 범주를 아우르는 ‘비주얼 아트 센터’를 표방한다. 이런 배경에서 개관 3년 만에 ‘패션과 현대미술의 대화’를 시도한 첫 기획전의 주인공이 베이징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궈페이(Guo Pei)라는 점은 놀랍지 않다. 자신만의 오트 쿠튀르 언어로 공고히 성을 쌓아온 그녀의 미학이 M+ 컬렉션과 조응한 전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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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페이(Guo Pei, b. 1967)는 오트 쿠튀르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중화권과 구미 지역에서는 명성 높은 ‘브랜드’ 그 자체인 패션계 거성이다. 중국의 궁중 자수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그녀의 쿠튀르 패션은 미국 팝 스타 리한나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매해 봄 열리는 패션 자선 행사 ‘멧 갈라(MET Gala)’에서 2015년 입은 노란색 드레스로 널리 알려져 어쩌면 이 사진을 ‘해외 토픽’이나 패션 잡지에서 접한 이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이 테마였던 그해 궈페이가 2년에 걸쳐 공들여 준비했다는 이 드레스는 뒷자락이 계단을 온통 뒤덮을 정도로 길고 웅장한데, 원래 무게가 45kg에 이르렀다고 한다(이번 M+ 전시장에서는 25kg짜리 버전을 선보이고 있다). 일부러 여성의 강한 힘을 상징하고자 했다는 이 드레스는 호오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종종 멧 갈라 역대 의상에 꼽힌다. 궈페이는 이듬해 1월 파리 오트 쿠튀르 무대에 데뷔를 했고, 2016년 미국 시사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목록에 올랐다. 이미 중국 여배우들이 그녀의 옷을 입고, 2008 베이징 올림픽 공식 행사 의상(여성용)을 제작한 톱 디자이너였지만 세계적인 주목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패션’이란 개념이 별로 없던 당시 베이징에서 그저 드레스 만드는 게 좋아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30대(1997년)에 접어들며 자신의 아틀리에(로즈 스튜디오)를 낸 이래 쉼 없이 달려온 창조적 여정이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이미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개인전(2015년 7월)을 가지는 등 궈페이의 아카이브가 대중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M+에서 진행하는 <Guo Pei: Fashioning Imagination> 전시는 현대미술과의 접합점을 찾는 첫 시도다. “저는 ‘다른 형태의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과의 대화라고 생각해요.” 아담한 몸집에 생글생글 웃는 동그란 눈매가 아직도 소녀 같은 궈페이는 이렇게 답하며 ‘패션의 예술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열정을 바쳐온 분야도 엄연히 동시대 미술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음을 알렸다. 사실 궈페이의 작업 영상이나 섬세하기 그지없는 드레스의 면면을 보면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기가 힘들다. 첫 쿠튀르 컬렉션인 ‘삼사라(Samsara)’(2006)를 예로 들면 은은한 금빛 자수가 놓인 이 황홀한 드레스를 만드는 데 무려 5만 시간을 들였다고. 그녀는 자신에겐 이런 작품에 함께 영혼을 갈아 넣는 수많은 장인들이 협력자로 있다면서(로즈 스튜디오에서는 5백 명 가까운 장인이 일한다), 순수한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를 상장하거나 딱히 투자를 받을 계획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M+ 전시에는 삼사라를 비롯해 수십 년의 여정을 채운 궈페이의 컬렉션과 더불어 주제에 따라 맥락이 맞닿는 회화나 조각, 오브제 등을 M+ 소장품에서 병치한 구도를 택했는데, 그녀 자신은 과연 어떤 ‘조합’이 마음에 들었을지 궁금했다. 첫 섹션인 ‘The Joy of Life’에 전시된 중국 작가 류예(Liu Ye)의 귀여운 소녀 그림이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궈페이의 선택은 마지막 섹션인 ‘On Dreams and Reality’에서 삼사라 컬렉션과 병치된 이광호 작가의 검은 선으로 엉킨 카리스마 넘치는 조각 작품과의 어우러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립서비스’가 아니라고 했다). 통역으로나마 얘기를 나누다보니 사랑스러운 여유로움과 더불어 기개와 배포가 남다른 그녀를 가리켜 어째서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베이징스타일’이라고들 하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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