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20 Summer SPECIAL] 약자를 돌보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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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20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 Edited by 고성연

21세기 들어 지구촌 최대의 난적으로 등장한 코로나19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숨어 있던 이들을 수면 위로 불러내고 있다. 정신병원, 노인 보호 시설, 이주 노동자, 특이 종교, 동성애 클럽….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들. 미국에서는 바로 이 자리에 흑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한 흑인 시민이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사건이 모두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 역할을 하기도 하는 미술계에서는 이미 이 같은 현실에 날카로운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약자를 위한 미술의 존재감이 보다 드러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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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어이없이 사망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그는 8분 46초 동안이나 경찰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전에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됐다. 과거 흑인 미식축구 선수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차 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대신 택한 자세가 바로 이 안타까운 생명의 사인이었기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은 함께 무릎을 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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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에도 불어온 블랙스플로테이션 바람
이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5일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버락 오바마의 공식 초상화를 공개하는 40년 전통의 행사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간에서는 이 그림의 정체에 대해 더욱 관심이 고조됐다. 미국의 젊은 흑인 미술가 케힌데 와일리(Kehinde Wiley, 1977)와 에이미 셰럴드(AmySherald, 1973)가 각각 그린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부부의 초상화가 다시 회자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이미 2018년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내셔널 갤러리에서 공개된 작품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그린 흑인 예술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그 결과 평년의 2배에 달하는 2백10만 명의 방문객을 불러 모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린 케힌데 와일리는 영웅이 등장하는 명작의 주인공을 흑인으로 대체하는 화법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화려한 무늬를 배경으로 스포츠 웨어를 입은 그의 작품 속 흑인 청년들은 예수나 영웅처럼 포즈를 취한다. 반면 미셸 오바마를 그린 에이미 셰럴드는 파스텔 톤 배경에 차분하게 인물을 그려낸다. 스타일이 대조적이긴 해도 두 작가는 거대한 캔버스에 인물을 담아 그동안 흑인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고귀함을 부여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마치 흑인을 선한 주인공으로 내세운 블랙스플로테이션 장르의 영화처럼. 미셸 오바마는 자신의 초상화를 넋 놓고 바라보던 어린 흑인 소녀의 사진이 보도되자, 그녀를 초청해 함께 시간을 보내며 ‘큰 꿈을 가지면 훗날 내가 너의 초상화를 자랑스럽게 올려다보겠다’는 메시지를 인스타그램에 남기기도 했다. 포즈와 그림, 이 모두는 글과 말 이상의 힘으로 ‘만인의 평등’이라는 구호가 지닌 취약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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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아프리카에 이은 미국 출신 흑인 작가들의 부상
재능 있는 흑인 예술가들이 주류 미술계에서 활약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2000년대부터 제3세계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촉발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주로 미국 태생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 결이 다르다. 이들은 제1세계 작가여서 외려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이 급부상 할 때조차 주목받지 못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백악관에 작품이 소장되면서 블루칩 작가로서 입지를 다진 글렌 리곤(Glenn Ligon, 1960)은 흑인으로 변장했을 때 받은 수모를 기록한 백인 기자의 회고록,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흑인 누드 모델 사진에 대한 반응 등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흑인의 삶을 메타 비평하듯 작품에 담아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 대표로 참가한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는 어머니의 미용실에서 흔히 보던, 흑인들의 곱슬머리를 펴는 데 사용하는 종이, 흑·백인이 사는 동네가 철저히 나눠진 지도 등 여전히 남아 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흑인 예술가의 작품, 그리고 흑인 커뮤니티의 역사와 삶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젊은 블루칩 작가뿐 아니라 하마터면 잊힐 뻔했던 과거의 작가도 다시 조명받을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2018년 가을, 뉴욕 현대미술관 재개관을 장식한 첫 전시로 주목받은 베티 사르(Betye Saar)가 대표적이다. 1926년생으로 올해 95세인 그녀는 흑인 하녀의 전통을 비판 없이 가져다 쓴 대중문화의 아이콘 ‘앤트 제미마(Aunt Jemima)’를 통해 청소나 요리 같은 여성의 가사 노동을 인종, 계급의 문제로 연결시킨다. 페미니즘 미술사를 통해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소환되면서 재평가받았지만, 그런 흐름 속에서도 흑인은 또다시 배제된 존재였음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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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메시지를 앞세운 인권 운동에 반하는 입장도 분명 존재한다. 특히 우리 민족 입장에서는 흑인들이 한인 상점을 대거 약탈했기에 그들을 곱게만 볼 수 없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때문에 우리의 시각이 여성만이 아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듯이, 흑인에 대한 관심은 다른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와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그래야만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고 미술관이 정상화될 때, 흑인을 위시한 소수 커뮤니티에 속한 예술가들의 활동이 정책적으로라도 더 견고하게 뒷받침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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