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of Bespoke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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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 2015

에디터 고성연

상향 평준화되어가는 자동차 세계에서 맞춤형 요소가 담뿍 들어가는 비스포크 제품은 점점 희소해지고 축소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희소성이야말로 비스포크 자동차를 더욱 뿌리치기 힘든 유혹의 대상으로 만든다. 하이엔드 카를 선택하는 한국인들도 예전처럼 검은색 대형 세단만 고집하는 시대는 지났다. 내·외장재를 고를 때 취향을 반영하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고, 그 연령대도 20~30대까지 아우르는 등 다양해지는 추세다. 세계 3대 명차로 불리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마이바흐의 비스포크 서비스 현주소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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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밀라노에서 만난 이탈리아 디자인계 구루 줄리오 카펠리니. 요즘 가장 흥미로운 작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동차’를 꼽았다. 주로 가구 분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그인지라 다소 의외의 대답이었는데, 알고 보니 전통 깊은 이탈리아 스포츠카 제조업체 에르미니(Ermini)가 선보인 ‘세이오토세이 바르케타(Seiottosei Barchetta)’라는 비스포크 자동차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686이라는 숫자를 뜻하는 ‘세이오토세이’를 차명에 넣은 이유는 바로 이 독특하게 귀여운 디자인의 스포츠카 차체 무게가 686kg밖에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1950년대만 해도 알파 로메오, 페라리 같은 브랜드들과 대적했을 만큼 전통과 명성을 지닌 브랜드인 만큼 카펠리니는 꽤 의미를 두는 듯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수공예 장인처럼 맞춤형으로 정성 들여 제작하는 브랜드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더구나 자동차는 쉴 새 없이 찍어낼 수 있는 산업화의 상징적인 품목 중 하나가 아닌가.
우리 눈앞에서 점점 맞춤형 자동차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그만큼 대량 양산 체제가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효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양산차 카테고리 내에서도 이미 충분히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치러지는 모터쇼에서 빼어난 ‘가성비’를 앞세운 신차가 물밀듯이 쏟아지는데, 어차피 자동차란 운동화나 옷처럼 자주 바꾸기도 힘든 물건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대부분 나만의 스토리와 개성이 담긴 물건을 더 사랑한다. 자동차업계에서도 소수지만(그리고 이들조차도 일부 플랫폼은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비스포크 요소가 담긴 제품을 제공하는 슈퍼 프리미엄 브랜드는 여전히 존재하고, 밀도 높게 사랑받고 있다. 단지 아무나 만들어내지도, 아무나 소유하지도 못할 뿐이다.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도 모자란, 진짜배기 명품만이 살아남는 세상인 셈이다. 아무리 3D 프린터로 원하는 물건을 찍어내는 세상이 오더라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탄탄한 기본기에, 혁신적인 기능, 그리고 감성을 자아내는 비스포크 요소까지 덧댄 진정한 하이엔드 카를 말한다. 그렇다면 비스포크의 대명사이자 세계 3대 명차 브랜드로 꼽히는 벤틀리(Bentley)와 롤스로이스(Rolls-Roycs), 마이바흐(Maybach), 이들 3인방은 요즘 각각 어떤 서비스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을까?

비스포크 자동차의 대명사, 롤스로이스

“최고를 사는 사람들은 모두 롤스로이스만 구입한다.” 1912년 영국의 신문왕 노스클리프 경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을 정도로 롤스로이스는 태생부터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인식되던 브랜드다. 지금은 BMW 그룹에 속하지만 여전히 영국 굿우드에 위치한 롤스로이스 본사에서 맞춤형 차를 만들어내는데, 최근 3년 연속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달리고 있다. 그 핵심 동력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롤스로이스 비스포크’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고가 모델인 팬텀(Phantom)의 경우 롤스로이스의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 지역에서 비스포크를 적용한 차량의 비중이 95%에 이를 정도라고 하며, 고스트의 경우에도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는 거의 비스포크 디자인이 가미됐다고(2013년 1분기 기준).
이 프로그램은 장인과 기술자, 디자이너가 협력해 ‘빈 캔버스를 채운다’고 표현할 만큼 긴밀한 협업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 면면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선 팬텀 1대에 필요한 가죽 세트를 만드는 데 17일이 걸린다. 무려 4백50여 개의 가죽 조각을 사용하며 색이 가죽에 잘 스며들게 하는 ‘드럼 다이’ 공정을 거친다고 한다. 물론 고산지대의 황소가죽만 쓴다. 목재에 대해서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팬텀 1대당 최대 42개 나무 패널이 필요한데, 차량 인테리어에 사용할 수 있는 무늬목으로는 마호가니, 오크, 엘름, 버드 아이 메이플, 월넛, 피아노 블랙 등 여섯 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특별한 목재를 사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집 앞에서 키우던 나무를 잘라 패널을 만들어달라고 한 사례도 있다. 외장 페인트 색상 후보는 무려 4만4천 가지에 이르며, 역시 ‘나만의 컬러’도 가능하다. 파리의 한 여성 고객이 평소에 좋아하던 샤넬의 핑크색 립스틱과 동일한 색상의 차량을 요구해 수개월에 걸쳐 주문 제작한 일화가 있다. 롤스로이스 고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비스포크 프로그램으로는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Starlight Headliner)’가 종종 꼽힌다. 차량의 천장을 1천3백40개의 광섬유 램프로 장식해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서비스인데, 자신의 별자리로도 장식할 수 있다. 이 밖에 피크닉 세트, 여행 가방 세트, 빌트인(built-in) 샴페인 쿨러 등도 선택할 수 있는데, 롤스로이스의 한정판 컬렉션 셀레스티얼 팬텀의 경우 님펜부르크 유리 제품으로 ‘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의 저녁’이란 테마를 엮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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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이 사랑하는 수제차 벤틀리의 뮬리너 서비스
벤틀리는 원래 1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영국 브랜드다(롤스로이스와 형제 브랜드였다). 폭스바겐이 1990년대 말 벤틀리를 인수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출중한 전략적 한 수였던 듯하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벤틀리의 행보는 눈이 부실 정도니 말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의전 차량으로 쓰이고 있으니 여전히 영국의 애정도 받고 있는 셈이다. 여왕의 차는 그녀가 평소 모자를 즐겨 쓴다는 점을 고려해 몸을 숙이지 않고도 탑승할 수 있도록 차체를 특별히 높게 제작했다고 한다. ‘뮬리너(Mulliner)’라고 불리는 벤틀리의 주문 제작 시스템은 장인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 유래를 보면 브랜드보다도 역사가 길다.  1760년대 영국에서 마차(coach)를 제작하던 장인 프랜시스 뮬리너의 후손이 자동차용 차체를 수작업으로 만든 데서 유래됐기 때문이다(벤틀리는 유일무이한 차를 만들기 위해 뮬리너를 인수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동차를 제작하기 위해서라면 ‘고객이 원하는 건 뭐든 가능하다’는 게 뮬리너 서비스의 원칙이다. 단, 탑승자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은 따르지만. 외관 페인트 색상, 인테리어에 사용하는 가죽과 베니어 색상 등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한 디자이너는 평소에 사용하는 형광펜 색을 원하기도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매니큐어와 동일한 색상을 주문하는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는 고객이 상담하던 직원의 넥타이 색깔이 마음에 든다며 차량 색상도 똑같이 해달라고 주문한 경우도 있었죠.” 벤틀리 수입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과연 넥타이 일화는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담당 직원은 넥타이를 뚝 잘라 본사에 보냈고, 벤틀리에서는 그와 동일한 색상을 차로 재현해냈다는 후문이다. 벤틀리 역시 소재 자체에도 엄청나게 공을 들인다. 인테리어용 목재는 천연 목재만 사용하는데, 천연만이 좌우대칭을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목장에서 방목한 소의 가죽만 쓴다. 소가 울타리에 부딪히면 살갗에 상처가 남는다는 이유에서다. 날씨가 차가운 곳에서 자란 황소를 선호하는 것도 모기에 물린 자국이 없고 가죽이 처지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1대를 제작하는 데 3백 시간이 소요된다는 플래그십 모델 뮬산의 경우에는 차 1대를 위해 15마리분의 소가죽이 동원된다. 이 중 1백70시간을 인테리어 작업에 할애한다니, 그 정성을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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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자존심 마이바흐, S클래스로 다시 태어나다

지난 2011년부터 수년간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많은 자동차 애호가들이 아쉬워한 대상이 있다. 바로 마이바흐다. 지난해 말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최상급 모델로 부활한 마이바흐는 최근 서울모터쇼에서 ‘더 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완전한 비스포크 차량은 아니지만 벤츠 S클래스와 마이바흐를 결합했다는 이 차는 최고급 세단답게 기존 S클래스보다 더욱 넓어진 실내와 고급스러워진 사양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강력한 성능도 자랑이지만 비행기 1등석처럼 센터 콘솔에서 좌우 2개의 테이블을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시트와 움직이는 집무실로 탈바꿈시키는 뒷좌석 접이식 테이블 같은 내부 사양도 인상적이다. 또 비스포크 요소를 갖춘 인테리어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은장 수제 샴페인 플루트와 냉장고를 넣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메르세데스-벤츠가 AMG라는 서브 브랜드를 통해 ‘수작업 엔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스포티 세단, SUV, 쿠페 등 다양한 차를 제작하는 스포츠카 브랜드인 메르세데스-AMG는 원래 작은 튜닝 회사로 출발했는데 ‘1인 1엔진’ 철학을 반세기에 걸쳐 지켜왔다. 모든 메르세데스-AMG 엔진은 수작업으로 만드는데, 엔지니어 1명이 아팔터바흐(Affalterbach)에 위치한 AMG 퍼포먼스 스튜디오에서 엔진 전체를 책임지고 조립한다. 제작이 완료되면 담당 엔지니어의 이름을 해당 엔진에 새긴다. 게다가 AMG 퍼포먼스 스튜디오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는 맞춤형 개별 사양을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S63 AMG 모델의 경우, 블랙 피아노나 카본 파이버 소재를 적용할 수도 있다. 일종의 비스포크형 엔진인 셈이다. 마이바흐에도 비스포크형 엔진 서비스를 적용할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하이엔드 자동차 브랜드들이 저마다 차별화를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또 비스포크의 요소나 느낌을 적용하기 위한 노력도 보다 섬세하고 다채로워지고 있다. 감성 마케팅이 대세인 요즘, 많은 브랜드들이 고객과의 스토리텔링을 엮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건 사실 그만큼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의 감성과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는 비스포크의 면모를 지닌 브랜드들은 그러한 차별화에서는 단연 앞설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3대 명차라고 불리는 이유일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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