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돼야 한다. 물론 고유의 전통적 기능을 부정하거나 완전히 무시할 수 없고, 미술관이 위치한 맥락에 따라 그 전략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런던에 개관한 테이트 모던 신관은 새로운 도시적, 자연적 경관을 만들기 위해 미술관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3 호수 위에 떠 있는 무신 아트 뮤지엄의 아름다운 모습. Pho-tography by Shen Zhonghai_Courtesy of OLI Architecture.
4 로니 혼(Roni Horn)의 ‘핑크 톤스(Pink Tons)’, 2009. Pur-chased with funds provided by Tate Americas Foundation, the North American. Acquisitions Committee, the Art Fund, Tate Members, Tate Patrons, the artist and with additional assistance. from Dominque Levy in honor of Dorothy Berwin, 2016.
오늘날 미술관은 우리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모나리자’와 ‘게르니카’ 같은 그림들이 인류의 역사와 사건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며, 전시장에 놓인 마르셀 뒤샹의 변기 작품 ‘샘’은 미술에 대한 관념과 표현을 새롭게 선언하기도 했다. 또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이미 고유한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색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중을 유혹하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도서관, 아카이브와 결합된 형태의 미술관이 새로운 복합체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미술관 내부의 고유한 역할 변화 못지않게 최근 요구되는 미술관의 덕목 중 하나가 바로 도시 경관에서의 ‘스타일’이다. 단지 진귀한 예술 작품을 쌓아놓고 보관·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술관의 건축이 그 자체로 예술이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미술관은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회색으로 덮인 삭막한 대도시에 생기를 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야 하는 책무를 짊어지게 됐다. 이런 상황 가운데 최근 전형적인 형태를 비튼 미술관 스타일이 눈에 띈다.
2016년 6월 새롭게 문을 연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신관을 보자. 2000년, 근대 산업 유산인 발전소를 재활용해 세운 구관은 아주 네모반듯한 건물이다. 1950년대 지어 근대의 기능주의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곳은 굵직한 작가와 작품으로 가득하지만, 사실 발전소 건물을 그대로 살린 건물의 외관을 보자면 좀 아쉬운 감이 있었다. 그러나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신관 건물은 이런 아쉬움을 싹 날려버린다. 옛 건물과 똑같이 벽돌을 사용했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몸을 비틀고 있는 듯한 형태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기존 건물과 같은 재료와 색을 사용한 터라 도시 경관 차원에서 서로 닮은꼴 형제처럼 느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뉴 테이트 모던은 “나는 달라!”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모습이다. 또 그냥 콘크리트나 유리로 지은 게 아니라 한 장 한 장 작은 벽돌이 쌓여 과감하게 비틀어진 형태를 이뤘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동이 또 다르다. 자세히 살펴보면 벽돌을 바짝 붙여 쌓지 않고, 옆으로 빈 공간을 두면서 다공성 면을 쌓았는데, 그 덕분에 높이 64.5m의 10층 건물 규모가 여느 벽돌 건물처럼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테이트를 방문하는 연간 5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신관에 올라 주변 360도로 펼쳐진 템스 강의 스펙터클한 경관을 만난다는 건 전시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흥분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곳의 신관과 구관을 모두 설계한 건축계의 거물 듀오 헤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형태와 재료를 결정하는 건축가들이다. 작은 재료의 패턴에서 전체 형태를 추출해내고, 전체 형태와 공명할 수 있는 재료의 섬세한 사용법을 찾아낸다. 그러면서 늘 기존의 맥락을 비틀어버리는 역발상의 설계를 보여준다. 2010년 스위스 비트라 캠퍼스에 들어선 비트라 하우스 역시 단순한 박공집 몇 개가 비틀어진 축선 위로 쌓이면서 새로운 풍경과 공간을 빚어냈다. 단순한 유형을 틀어 쌓는 것만으로 이렇게 흥미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창의적 접근에서 비롯된 혁신이 아닐까. 최근 헤어초크 & 드 뫼롱이 서울 송은아트스페이스의 설계를 맡았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도시적 문맥을 어떻게 비틀어놓을지 궁금해진다. 이 밖에 형태나 면의 비틀기를 통해 새로운 조형을 창조한 사례로는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파리의 루이 비통 미술관이나 중국의 MAD 아키텍츠의 하얼빈 차이나 우드 스컬프처 뮤지엄(China Wood Sculpture Museum) 등을 꼽을 수 있다.
네모난 박스 형태가 넘쳐나는 오늘날 대도시의 획일적인 분위기를 비틀어보려는 의도에서 최근의 ‘비틀기’ 전략은 형태적으로 보나 프로그램 측면에서 보나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건축의 근본적 가치를 보여주는 평범함 상자로서의 미술관도 다른 방향으로 계속 변모해나갈 것이다. 이 둘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그 사이에서 확인되는 미술관에 대한 새로운 양상이 도시와 자연을 더 풍요롭게 가꿔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