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지갑을 여는 문화 소비자가 많아지고 상대적인 도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다양한 규모와 개성을 지닌 생태계 구성원의 진출이 증명해준다. 팬데믹 시기에 한국 미술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주목받자 글로벌 아트 페어 브랜드인 프리즈가 지난해 서울에서 1회 행사를 열었고, 이를 전후해 내로라하는 갤러리들이 입성하거나 규모를 키우는 등 한층 한국 시장 투자에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협소한 공간을 꾸리던 페이스 갤러리가 대대적으로 공간을 확장했고, 갤러리 페로탕은 도산공원에 새 터전을 꾸렸으며, 타데우스 로팍은 2021년 가을 첫 지점을 낸 뒤 얼마 전 다시금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에는 ‘메가 갤러리’라 일컬어지는 화이트 큐브가 서울 상륙을 알렸다. 1993년 런던에서 출발한 화이트 큐브는 1990년대 세계 미술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이른바 ‘yBa(young British artists)’ 작가들(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이 대표적으로 알려진 이름이다)로 도약하며 세계적인 갤러리로 자리매김했고 홍콩, 뉴욕 파리 등에 지점을 두고 있다. 아직까지는 갤러리계의 최강 브랜드인 가고시안을 위시해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같은 강자들이 크게 각광받으면서 예전 명성만큼은 못하다는 평도 듣지만 안젤름 키퍼, 안토니 곰리, 게오르그 바젤리츠, 트레이시 에민, 안드레아스 거스키, 모나 하툼 등 쟁쟁한 작가 명단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계의 거장 박서보 화백을 대표하는 전속 화랑 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이해 쇄신에 애쓰고 있어 서울 입성이 어느 정도 예견되기도 했다. 한국에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을 통해 첫선을 보였고, 오는 9월 초(프리즈 기간) 서울 도산대로에 자리 잡은 화이트 큐브 서울 지점에서 개관전을 열 예정이다. 호림아트센터 1층에 300m²(약 91평) 남짓한 면적으로 전시 공간, 프라이빗 뷰잉 룸, 오피스 등을 꾸리게 된다.
2 지난해 초가을 프리즈 서울의 화이트 큐브 부스 모습. 박서보 작가(왼쪽), 시어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 가운데),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오른쪽)의 작품이 보인다.
※ 1, 2 photo by 고성연
3 오는 9월 오프닝을 앞둔 화이트 큐브 서울이 들어설 호림아트센터 건물 외관. 서울 지점은 양진희 디렉터가 이끌 예정이다. © Courtesy White Cube
서울 강남 선정릉역 사거리에서 멀지 않은 골목길에 자리한 아담한 건물의 1층에 자리한 99㎡(30평) 남짓한 전시 공간. 전 세계에서 열정 가득한 아티스트들이 모여드는 활기 넘치는 도시인 독일 베를린에서 2018년 문을 연 에프레미디스 서울 지점이 들어선 공간이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뿐 아니라 다양한 다국적 작가와 협업하고 있는 갤러리인 에프레미디스는 지난 5월 그 같은 다채롭고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6인 그룹전 <전환(Tapetenwechsel)>으로 개관전을 치렀다. 규모가 작은 전시지만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교수이자 큐레이터, 비평가로도 활약 중인 미셸 그라브너의 대형 회화 작품을 비롯해 저마다의 개성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이어 지난 6월부터 한 달 동안 또 다른 6인의 작가를 내세운 그룹전 를 열어 고유한 갤러리의 색채를 거듭 소개했다. 시류에만 맞추는 상업성이 다분하거나 화제성 덕분에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작품보다는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나갈 동시대 작가들을 알린다는 목표를 둔 갤러리답게 전시 작품을 골똘히 보노라면 아주 작은 미술관이나 베를린의 아트 랩에 온 느낌을 주는 듯한 작업 세계가 차츰 흥미롭게 와닿는다. 에프레디미스는 특이하게도 그리스 출신의 스타브로스 에프레미디스(Stavros Efremidis) 대표와 한국 출신 우승용(Tom Woo) 대표가 손잡고 만든 갤러리다. 미술 시장에 뛰어든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프리즈 런던, 피악, 아트 쾰른 등 세계적인 아트 페어에 참가하며 입지를 다졌고 한국에서도 키아프와 아트부산을 통해 컬렉터들과 만난 이력이 있다. 특히 지난해 오수환 작가의 개인전을 독일에서 여는 등 한국 작가에의 관심도 키워 가고 있다. 오는 9월 프리즈 서울 기간에는 아우라 로젠버그의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글 고성연
2 에프레미디스 서울의 두 번째 전시로 6월 30일 시작해 7월 말에 막을 내린 또 다른 6인 그룹전 에서 선보였던 작가 그자비에 로블스 드 메디나(Xavier Robles de Medina)의 작품들. 벽면의 왼쪽 작품은 ‘Rajio Taiso’(study), 2018, Graphite on coloured paper 26 x 20cm, 오른쪽 작품은 ‘Cult Value’, 2019, Graphite and plaster, 38.5 x 30 x 11cm
3 서울 강남 선정릉역 근처 건물 1층에 자리한 에프레미디스 서울.
※ 1~3 photo by 고성연
반세기가 훌쩍 넘는 이력을 지닌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아시아 지역 곳곳에 지점을 둔 대형 갤러리다. 1967년 도쿄에서 시작해 홍콩, 타이베이, 싱가포르, 베이징 등으로 판을 키웠고, 프리즈 서울 개최 시기에 맞춰 오는 9월 초 아시아 일곱 번째 지점을 서울 남산에 연다. 시장조사부터 장소 선정까지 오랜 기간 공을 들였고, 그렇게 서울 경치를 품은 남산 인근에 언뜻 인상적인 디자인이 눈에 띄는 공간을 낙점했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검은색 건물은 지하 1층~지상 4층, 총 700m²(약 2백12평) 규모로 3개의 주요 전시장을 품고 있고, 조각 작품을 설치하는 등 다용도로 쓰일 수 있는 루프톱도 갖추었다. 갤러리 인테리어 디자인은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왕성한 창조력을 펼쳐내고 있는 구마 겐고가 맡았기에 공간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방가르드 그룹인 구타이 작가들을 비롯해 다수의 동시대 작가들을 아티스트 목록에 올리고 있는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초점을 좀 더 ‘아시아’에 맞추겠다는 포부를 내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추상화가 권순익 개인전(8월 12일까지 타이베이에서 열리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만 컬렉터들에게 알리고 있기도 하다), 이번 9월 초 서울 개관전에서는 동아시아 전후 아방가르드 작가 전시, 그리고 차세대 예술가가 함께하는 그룹전 를 꾸린다. 이때 전시 참여 작가로 동양 전통의 동물과 신화의 이미지를 강렬하고 율동적인 질감으로 표현하는 고마쓰 미와(Miwa Komatsu)는 현장에서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2 9월 초 프리즈 서울 개막 시기에 맞춰 열릴 갤러리의 첫 전시는 라는 기획전인데, 이 전시에 참가할 고마쓰 미와(Miwa Komatsu)는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일 예정이다. 동양 전통의 동물과 신화의 이미지를 강렬하고 율동적인 질감으로 표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Komatsu Miw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