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assion for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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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 2016

에디터 권유진(바젤 현지 취재) | photographed by koo eun mi

“전 바젤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첫 번째 일도 바로 이곳에서 시작했어요. 그 당시 바젤은 예술이 발달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지금, 전 여전히 같은 곳에서 아트 딜러이자 파운더로 일하고 있죠.” _에른스트 바이엘러 여기, 자신의 근간이 바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바젤이라는 한 도시의 저력이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 아트 컬렉터와 세계 최대의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을 탄생시켰다. 바젤이라는 작은 도시에 조용하고 품위 있게 예술의 꽃을 피운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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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계를 지휘하는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바젤 중심부에서 트램으로 약 15분 거리, 바젤의 끝자락인 리헨(Riehen). 바젤이라는 작은 도시에서도 생소한 이곳에 수수해 보이는 붉은색 벽돌로 둘러싸인 미술관이 있다. 1997년에 개관한 이곳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나 뉴욕의 모마 미술관처럼 규모 큰 미술관이 아닌, 목가적인 아름다운 정원에 자리 잡은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이다. 조경 건축가 파울 숀홀처(Paul Schonholzer)와 요헨 비데(Jochen Wiede)가 만든 매듭 모양의 산책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지금까지 보아온 현란한 미술관과는 조금 다른, 마치 별장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작은 연못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단순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건물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 휴스턴의 메닐 컬렉션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 렌초 피아노의 작품이다. 마치 품위 있는 사람의 개인 별장과도 같은, 작지만 존재감이 확실한 이 미술관은 바젤을 대표하는 아트 딜러이자, 바젤이라는 도시를 예술의 도시로 만든 아트 역사의 거인,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의 소장품을 모아놓은 곳이다.
렌초 피아노라는 위대한 건축가의 터치, 청동 인물상으로 현대미술의 상징이 된 알베르토 자코메티, ‘힐링 아트’로 열풍을 일으킨 마크 로스코와 클로드 모네가 모두 모여 있는 이 미스터리한 미술관의 담장을 넘어서면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로지 리드미컬한 새소리만 들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바이엘러의 정원엔 원래부터 이곳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조형물들이 잔디밭, 혹은 나무 사이에 무심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 눈에 띈다. 여기서 반전이 펼쳐진다. 목가적인 풍경 사이에 놓인 이 조형물들이 하나같이 세계적인 명성과 가치를 지닌 유명한 작품이라는 사실. 특히 무성한 나무를 배경으로 놓인 알렉산더 콜더의 ?나무(The Tree, 1966)’는 파리 라데팡스에서 본 거대하고 구조적이며 차갑기까지 한 그의 작품과는 다르게, 메탈 구조물임에도 서정적이고 따스한 느낌이 가득하다.
바젤에서 위대한 아트 딜러가 탄생하기까지
이 공간을 탄생시킨 에른스트 바이엘러는 바젤이라는 도시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위스는 권위 있는 공공 아트 뮤지엄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개인 아트 컬렉터가 무수히 많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국가다. 특히 인구가 고작 2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인 바젤에는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미술관인 쿤스트 뮤지엄과 바젤 시립 미술관, 팅겔리 미술관, 샤울라거 미술관 등 무려 약 27개의 미술관이 있다. ?뮤지엄 시티’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이러한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바이엘러는 바젤을 파리, 런던, 뉴욕과 견줄 만한 아트 도시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남다른 안목과 취향을 갖춘 위대한 컬렉터이자 아트 딜러, 그리고 뮤지엄 파운더인 에른스트 바이엘러와 바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그와 나눈 대담을 담은 책 <A Passion for Art>에서 언급한 바 있듯, 그는 바젤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바젤에서 성공적인 업적을 일궜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 아트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바이엘러는 20세기를 주도한 거의 모든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약 2백50회 개최했고, 무려 1만6천 점의 역사적인 그림과 조각품이 그의 손을 거쳤다. 무엇보다 그는 피카소의 작업실에서 직접 작품을 고르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장 뒤뷔페의 작품을 독점적으로 거래하는 대리인 역할을 했으며 칸딘스키의 작품을 그의 미망인과 함께 공동 관리하기도 했다. 또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을 만들고 방대한 파울 클레의 컬렉션을 사들였으며, 인상파부터 후기 인상파, 클래식 모더니즘, 컨템퍼러리 아트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 약 40명의 눈부신 컬렉션을 구축해왔다. 이처럼 우수한 예술 작품과의 긴밀한 관계, 수많은 전시를 조직화하고 시스템화한 풍부한 경험, 파워풀한 작품을 끊임없이 찾아온 수십 년의 시간을 통해 바이엘러는 자신만의 남다른 안목과 풍부한 식견을 키웠고,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가 설립한 세계 최대의 미술 장터, 아트 바젤 페어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까지 전 세계 미술계를 리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1997년에 비로소 그의 역사적인 소장품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인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을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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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아트가 융화된, 기능에 충실한 건축물
앞에서 언급했듯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모습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나 뉴욕 모마 미술관처럼 관람객을 압도할 만큼 스케일 큰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다. 예술 작품을 최대한으로 배려한 독특한 구조와 건축물, 아트, 자연환경이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을 본다면 서정적이고 따스한 이 미술관의 매력에 단번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건축가 렌초 피아노는 에른스트 바이엘러의 의견을 반영해, 너무 드러내지도, 과시하지도 않으면서 절제된 미를 보여주는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바이엘러가 고민 없이 단번에 선택한 건축가 렌초 피아노는 기능에 충실한 건축물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보다는 그 공간에 맞는, 그곳에 필요한 건축물을 짓고, 무엇보다 전시물이 잘 드러나게 하도록 건축적 요소를 최소한으로 절제하는 것이 렌초 피아노가 고수하는 철학이다. 바이엘러는 바로 이런 그의 기능적이고 독창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바이엘러의 요구 사항 중 하나는 그가 태어나고 뿌리를 내린 바젤의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역사를 대변하는 라타우스 시청 건물의 적벽돌을 미술관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전시 투어를 위해 만난 바이엘러 관계자는 건축물의 외관을 설명하며 “그 벽돌은 물에 쉽게 색이 바래는 단점이 있어 이와 가장 흡사한 파타고니아산 붉은색 반암을 사용했어요. 바이엘러가 직접 돌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컨펌했을 만큼 그는 이 건축물의 첫인상을 좌우할 외벽을 건축하는 데 굉장히 까다롭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죠”라고 그날을 회상했다. 예술 작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그와 그의 아내, 힐디 바이엘러가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공간을 예술로 꾸민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이엘러의 목표였다. 또 이곳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는 아트에 대한 관심을, 기성세대에게는 예술에 관한 넓은 식견을 심어주는 교육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기에 이들의 만남은 기존 상식과는 전혀 다른 품위 있는 미술관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자 건축학적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불투명한 유리로 제작한 지붕이다. 이는 단순한 지붕이 아니라, 공간을 따스하고 아름답게 비추는 조명이자 에어 컨디션 장비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유리 너머 들어오는 태양광은 매우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조성해 관람객들이 가장 편안한 빛 아래에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실제로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도시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념이 사라지고 몸이 노곤해질 만큼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 특별한 천장에는 바깥 날씨, 채광 상태, 내부에 디스플레이한 작품에 따라 빛을 조절하는 센서를 장착해 흐린 날씨에도, 가을과 겨울에 비 오는 날에도 자연광이 적절하게 작품의 컬러 속으로 녹아든다. 특히 빛에 민감한 파울 클레의 작품을 전시한 전시실에는 천장의 레이어를 한층 더 추가해 더욱 은은한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고 하니 역시 공간을 위한 빛의 마술사, 렌초 피아노답다.
60년간 이어져온 약 2백50여 점의 바이엘러 컬렉션
전원적인 이 미술관을 가득 채운 작품의 스케일은 대단하다. 바이엘러가 사랑한 피카소의 작품은 무려 35점에 달하고, 앙리 마티스, 세잔, 칸딘스키, 몬드리안, 페르낭 레제,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파울 클레, 알베르토 자코메티, 알렉산더 콜더, 장 뒤뷔페,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의 그림까지 방대한 양의 진귀한 컬렉션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전시장의 몇몇 공간에는 유럽과 미국 작품 사이에 아프리카, 알래스카 등지에서 수집한 부족 미술의 작품이 함께 진열되어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연출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Water Lilies, 1916)’이 전시된 공간이다. 이 전시관에 들어서면 마치 그림 속 연못이 창밖에 펼쳐진 실제 연꽃 연못과 연결된 듯한 환상적인 효과를 선사해 마치 모네의 정원에 초대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더불어 옆 전시관에서는 창밖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거대한 사이즈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황동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전시관 옆에는 관람객들이 쉴 수 있는 통로 형태의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다. 라운지의 안락한 긴 소파는 네모난 창밖을 바라보게끔 배치했는데, 이는 풍경조차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바이엘러와 렌초 피아노의 합작품이다. 바이엘러 미술관에서는 영구적인 소장품 전시 외에도 1년에 네 번, 현대 작가들과의 상설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실제 프랑스 화가이자 조각가 장 뒤뷔페는 바이엘러의 도움으로 유명해진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스타일 조선일보> 팀이 방문한 지난 3월에 한창 이 위대한 작가의 상설전이 전시되고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비트라 뮤지엄과의 공동 프로젝트인 ‘24 Stops’를 오는 6월 아트 바젤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이는 바이엘러에서부터 비트라 뮤지엄까지 걸어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길을 따라 24개의 작품을 전시하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또 미술관 옆에 새로운 미술관을 지을 예정으로 현재 11명의 건축가가 경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한다.
장소의 정신, 바젤과 바이엘러
이처럼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은 공간 자체가 살아 있는 아트이자 생동하는 뮤지엄이다. 더불어 아티스트들에게는 기회의 장이고 영감의 장소다. 과거부터 그가 별세한 후인 지금까지도 유럽 예술계에서 ‘바이엘러’는 그 이름 자체가 믿을 만한 보증수표이자 브랜드로 통한다. 지난 2010년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 바스키아 회고전이 열렸을 때, 그해 아트 바젤에서 바스키아의 작품이 쏟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이엘러가 개최하는 전시는 아트 바젤은 물론 다른 대형 미술관의 전시 일정을 바꾸게 할 뿐 아니라 전 세계 아트 시장을 뒤흔들 만큼 영향력이 크다. 여기서, 그가 프랑스나 뉴욕 출신이 아닌 스위스 ‘바젤’ 출신이자 그곳을 기반으로 한 아트 딜러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한다. 관광도시가 아닌 바젤에 위치한 이 작은 미술관이 개관한 이래 6백만 명의 전시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하니,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지닌 도시의 저력과 한 사람의 인생이 만나 예술적 풍요로움을 이끌어냈다는 결론을 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생동하는 도시와 자양분을 흡수해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 아름다운 조우, 우리가 바젤과 바이엘러의 만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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