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te jewel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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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4, 2020

에디터 이주이

의상에 오트 쿠튀르가 있다면, 보석에는 하이 주얼리가 있다.
진귀한 원석에 메종의 모든 노하우와 장인 정신을 쏟아붓는 마스터피스. 파리에서 메종의 혼을 담아 완성하는 주얼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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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부터 23일까지 파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열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상적인 영감을 옷으로 표현하되 디자이너와 장인의 찰떡궁합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오트 쿠튀르는 판매를 위한 컬렉션인 레디투웨어와 확실히 구분된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 딱 한 벌만 존재하는 하이엔드(high-end) 맞춤복이다. 이 기간에 주얼리 메종은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인다. 하이 주얼리는 매우 구하기 힘든 진귀한 원석으로 만드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원석을 사용한 단 하나의 피스만 생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만일 고객이 이미 판매된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더라도 같은 스톤을 또다시 구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물론 1~2년 또는 10년 후에라도 구한다면 같은 디자인으로 제작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처럼 하이 주얼리는 예술 작품을 방불케 하는 디자인과 희소성 높은 원석의 조화로 탄생한다. 메종은 더 화려하고, 더 기술적이고, 더 감동적인 컬렉션으로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둘째 날 오전에 본 샤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예상했던 것보다 수수하고 차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진 수도원(이자 고아원)에서 영감받은 별 모티브 바닥,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 소소한 모티브로 완성했으니까. 그에 반해 이번에 선보인 하이 주얼리 컬렉션 트위드 드 샤넬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컬렉션 이름 그대로 가브리엘 샤넬이 그토록 아끼던 소재, 트위드의 특징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골드, 다이아몬드, 진주, 사파이어 등으로 트위드 소재를 표현해 총 45개 작품을 선보였는데, 트위드의 불규칙한 면모까지 고스란히 담아 풍성한 질감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마치 손으로 짠 스코틀랜드산 울 트위드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 듯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기록하며 기염을 토한 영화 <기생충>의 여주인공 조여정이 택한 주얼리로 큰 이슈가 된 다미아니는 디.사이드 컬렉션 탄생 20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피스를 선보였다. 방돔 매장에서 만난 부사장 실비아 다미아니는 유쾌하고 솔직한 여성이었다. 영화로 시작해 문화, 시대를 이끌어온 스타일 아이콘 여배우들의 주얼리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대화 후 만난 컬렉션 탄생 20주년 기념 디.사이드 하이 주얼리. 2000년 브래드 피트가 본인의 웨딩 링으로 선택해 화제가 되었던 디.사이드 컬렉션은 원을 둘러싸고 세팅한 다이아몬드에 정직과 성실, 개방성과 열정, 아름다움과 힘, 부드러움과 신뢰, 확고함과 존경 등 부부가 지녀야 할 미덕을 담았고, 짝수로 세팅해 평등과 존중의 의미까지 반영했다. 6백10개 이상의 총 5.91캐럿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네크리스로 선보인다.
파리 출장을 떠나기 직전 루이 비통이 1천7백58캐럿에 달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 원석의 주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운 좋게도 방돔 매장에서 그 원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방언으로 ‘희귀한 발견’이라는 의미를 지닌 슈엘로(Sewelo)로 명명된 다이아몬드의 무게는 352g, 크기는 테니스 공만 하다. 루이 비통은 다이아몬드가 발굴된 광산의 주인인 루카라 다이아몬드사(Lucara Diamond Corporation)와 마스터 다이아몬드 커터인 앤트워프의 HB 컴퍼니(HB Company)와 손잡고 이 희귀하고도 놀라운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변신시키는 유례없는 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원석을 구입한 고객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맞춤 제작 다이아몬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카로웨 광산에서 채취하고 파리 방돔에서 디자인해 완성되는, 이 의미 있는 여정을 함께할 고객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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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서 찾은 모던한 감성

파리의 아침,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이 완성한 8개의 퀘스천 마크 네크리스를 만나러 부쉐론 방돔 부티크로 향했다. 광장이 훤히 내다보이는 긴 창 너머 맑은 하늘이 펼쳐지고, 기분 좋은 햇살이 스며드는 26번지 부티크는 취향 좋은 어느 가족의 집 같은 안락함이 느껴졌다. 1879년 부쉐론에서 처음 선보인 퀘스천 마크 네크리스는 메종의 절대적인 시그너처 컬렉션이다. 심플한 물음표 실루엣에 연꽃, 포도송이, 양귀비 꽃잎, 그리고 뱀 모티브 등의 디테일로 볼륨감을 살린 오리지널 피스는 목을 부드럽게 감싸는 비대칭 원형, 풍성함, 그리고 곡선을 둘러싼 디테일의 미학을 바탕으로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림같은 이 네크리스는 매일매일 습관처럼 착용하는 데일리 네크리스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파리지엔을 위한 최고의 주얼리는 부쉐론이라 칭송했다고 한다.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자주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유연하고 심플하지만 열정을 가진 파리 여성들과 공통점이 있기 때문. 메종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감성과 표현의 아름다움까지 담아낸, 그야말로 모든 것을 집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네크리스에 클레어 슈완은 어떻게 현대적인 감성을 접목했을까?
먼저 플럼 드 파옹 네크리스는 자연 모티브를 생동감 넘치는 형태와 유연한 움직임으로 구현해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로즈, 트라이앵글, 브릴리언트, 그리고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움직임에 따라 각기 다른 각도로 화려한 빛을 발한다. 19세기 말에 사용하던 세팅과 조정, 금속 작업 기법을 그대로 재현해 만든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깃털 모티브는 분리해서 브로치로도 사용 가능하다. 두 번째로 리에르 드 파리 네크리스는 에메랄드 세팅을 한 움직이는 나뭇잎 모티브가 포인트. 메종의 워크숍 기술을 보여주는 이 나뭇잎 모티브는 크고 작게 움직이는 잔물결의 효과, 배열, 볼륨까지 정확히 계산된 결과물. 여기에 클레어 슈완이 추구하는 극사실주의까지 더했는데, 마치 유럽 고택 벽면의 풍성한 덩굴 한 부분을 떼어 온 듯하다. 이외에도 뉘아쥬 드 플레르 네크리스는 클레어 슈완의 딸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선물한 꽃인 수국을 자개로 표현했고, 펄 네크리스는 환상적인 진주 드롭으로 순수한 느낌을 끌어올렸다. 푀유 다캉트 네크리스는 상징적인 장식 모티브를 격자 세공해 굴곡진 나뭇잎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건축물의 일부 같은 식물 모티브가 모던하고 창조적이다.
클레어 슈완이 재해석한 퀘스천 마크 네크리스는 시그너처 컬렉션의 모던한 감성에 현대적인 디자인과 발전된 기술적 전문성을 더해 완성한 결과물이다.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 시대정신과 영원불멸의 정수를 결합하는 메종의 역량을 다시금 증명하기에 충분한 컬렉션. 다음 스케줄을 위해 총총걸음으로 부티크를 나왔지만, 여운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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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슈완(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부쉐론의 스타일은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특히 퀘스천 마크 네크리스는 개인적으로도 부쉐론의 스타일을 가장 완벽하게 정의한다고 생각합니다. 메종에 합류한 시점부터 퀘스천 마크 네크리스를 부쉐론의 대표 시그너처 피스로 확립시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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