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Expec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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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15

에디터 배미진

패션 거장 칼 라거펠트와 로마의 위대한 브랜드 펜디의 협업이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그 어떤 곳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업계에서 반세기에 걸쳐 함께 지속적으로 컬렉션을 선보인 것은 패션 신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사건이다. 모피를 현대적인 소재로 재탄생시키고, 로마의 위대한 유산을 패션으로 재해석한 칼 라거펠트와 펜디는 올해 7월 처음으로 파리 오트 쿠튀르 무대에 서기로 하며 제2의 행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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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의 협업, 놀라운 패션의 진화
펜디(FENDI)의 FF 로고가 단순히 브랜드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Fun Fur’라는 칼 라거펠트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구태의연한 표현임에도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칼 라거펠트와 펜디의 협업이 올해 50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반세기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로마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브랜드와 천재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트렌드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고, 패션의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갔기에 이 기록들을 올해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하거나 패션 디자이너와 협업해 브랜드를 발전시키는데, 그 어떤 브랜드도 한 명의 디자이너와 50년이라는 긴 시간을 공유한 예가 없다. ‘패스트 패션’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패션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펜디와 칼 라거펠트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피와 가죽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의 위대한 유산은 1925년 로마에서 아델 펜디와 에두아르도 펜디 부부가 세운 패션 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뒤이어 모피와 가방을 판매하는 최초의 펜디 매장도 문을 열었는데, 1950년대에 창립자 부부의 다섯 딸인 파올라·안나·프랑카·카를라·알다 펜디 자매는 여성의 취향이 급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열정적인 고객들을 위해 새로운 모피 제작 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1965년에는 드디어 칼 라거펠트가 펜디에 합류했는데, 이때부터 변신을 넘어 혁명적인 디자인이 등장했다. 값비싸고 무겁고 뻣뻣해 신분과 부를 과시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모피를 현대적인 흐름에 맞는 트렌디한 의상으로 재창조해 모피의 스타일은 물론 소재와 제작 기법에 변화를 준 것이다. 그 시대에는 모피가 ‘없어 보인다’는 이미지로 통할 정도로 진부한 카테고리였기에 칼 라거펠트의 역할은 더욱 놀랍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연구소를 세워 모피 재발견의 선봉장이 되었다. 가죽을 자르고 섞는 것은 물론, 무늬를 새기고 새로운 태닝 기법과 처리 기술을 연구했다. 그렇게 가볍고 부드럽고 편안한 데다 입기 편한 모피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펜디는 새로운 종류의 모피를 선보였다. 1966년 펜디와 칼 라거펠트가 처음으로 선보인 1966~67 F/W 컬렉션이 언론에서 찬사를 받은 이유다. 그 후 칼 라거펠트는 펜디의 새로운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Fun Fur’를 의미하는 더블 FF 로고는 모피를 위한 특별한 수공예 기술을 보유한 로마 브랜드, 메종 펜디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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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1971~72년 F/W 컬렉션을 통해 펜디와 칼 파거펠트는 아스투치오(Astuccio)라는 비대칭 밍크 케이프를 선보였다. 이는 렛아웃 기법을 사용한 모던한 디자인으로, 지금까지도 그와 유사한 디자인이 출시되고 있다. 새로운 직조 기법을 개발하거나 모피에 주름과 색을 넣고 안감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줄무늬 효과를 실험하기도 했다. 가죽의 무게를 줄이고 안을 뒤집어 밖으로 보이도록 고안한 것도 펜디가 처음 선보인 방법이다. 1980년대에는 이러한 기술을 발전시켜 인상파 화가처럼 모피에 색을 입히거나 부풀린 모피를 디자인하는 등 실험을 계속해 모피가 패션 트렌드를 이끄는 요소로 안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사회·문화적 요구에 부합하며 창조 정신을 발휘해 끊임없이 모피를 연구하고 해석해온 펜디의 노력 덕분에 모피는 다시 중요한 소재로 자리매김했고, 펜디는 새 천 년을 맞이한 후에도 혁명의 여정을 이어갔다. 칼 라거펠트가 스케치한 모순적이고도 개성 있는 모피 디자인처럼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하고, 압착하고 부풀렸기에 모피가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패션의 중심에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이다. 1983년에는 칼 라거펠트가 펜디를 위해 디자인한 새로운 패턴인 페퀸을 디자인했는데, 짙은 갈색과 어두운 갈색을 번갈아 배치한 줄무늬인 이 패턴은 모피 제작과 의류, 액세서리에 적용되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펜디와 칼 라거펠트는 긴 시간을 보낸 만큼 이탈리아, 로마의 모든 순간과 함께했는데, 1985년 GNAM(로마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펜디와 칼 라거펠트, 작업 여정(FENDI and Karl Lagerfeld, Un Percorso di Lavoro)>전을 개최했고, 이듬해에 오페라 <카르멘>에서 데님과 모피를 조합한 무대의상을 선보이는 진귀한 기록을 남겼다. 1990년 로마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는 결승전을 앞두고 머리에 로마의 기념물을 쓰고 공연을 펼친 무용수들의 의상을 디자인했고, 2007년에는 중국 만리장성에서 패션쇼를 선보이며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해가 질 무렵 중국인 44명과 국적이 다양한 44명으로 이루어진 총 88명의 모델이 80m에 이르는 만리장성 캣워크를 걸어 내려오는 장면은 패션계에서도 여전히 회자되는 일대 사건이다. 이 모든 것은 놀라운 가치를 지닌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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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의 기록이 담긴 <FENDI BY KARL LAGERFELD> 출간

펜디와 칼 라거펠트가 함께한 시간들은 패션 아카이브에 기록해야만 하는 모두의 유산이기에 올해 이들이 매력적인 책을 발간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기사에 더한 아름다운 패션 일러스트들이 펜디와 칼 라거펠트가 함께 출간한 특별한 책 <펜디 바이 칼 라거펠트(FENDI BY KARL LAGERFELD)>에 담겨 있는 패션 거장의 작품이다. 펜디 아카이브를 심도 있게 탐구한 이 책에는 칼 라거펠트가 이 특별한 책을 위해 새롭게 작업한 흥미로운 자료와 단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스케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펜디의 창조 정신과 모던함, 브랜드의 유산에 대한 경이로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기 위해 칼 라거펠트는 스크랩북을 모티브로 책을 완성했다. 긴 세월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 상자에 다양한 모티브를 담았는데, 칼 라거펠트가 펜디와 함께 일하면서 작업한 스케치 2백 점, 그의 스케치 5만 점을 아주 작은 크기로 줄여 조합한 특별 포스터, 칼 라거펠트가 회상하는 펜디와의 추억, 그가 스케치를 하는 모습을 담은 DVD, 영상 내용을 기록한 일러스트레이션 부클릿, 그와 펜디의 오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새로운 일러스트레이션까지 패션 세계의 모든 면면을 엿볼 수 있는 기록적인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또 다른 부클릿에는 칼 라거펠트가 수년간 디자인해온 펜디의 모든 로고와 1백20점가량의 스케치가 있으며, 마지막 부클릿에는 칼 라거펠트와 나눈 50문 50답이 수록되어 있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5월 21일 칸 국제영화제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해 그 의미를 더했다.
펜디는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을 전했는데, 바로 이 책을 처음 선보인 프랑스 칸에 펜디 부티크를 다시금 연다는 것. 명망 높은 크루아제트 거리 44번지에 위치한 이 매장은, 푸른색과 미색, 금빛으로 우아하게 장식해 품격 있는 코트다쥐르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펜디 액세서리와 가죽 제품이 보이며, 짙푸른 카펫이 여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모피와 의류를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을 아름다운 패턴의 벽지로 꾸민 것도 눈에 띈다. 이 곳에서 새로운 책을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과 함께 개최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펜디의 회장이자 CEO인 피에트로 베카리가 “국제적이며 화려한 도시 칸에서, 특히나 영화제가 열리는 때 완벽한 펜디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 매장은 칸이라는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프랑스인을 위한 것이며, 세계를 향한 펜디의 창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 공간에는 펜디와 칼 라거펠트가 지난 2013년 7월 파리에서 열린 <물의 영광(The Glory of Water)>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을 다시 담아냈다. 로마의 분수들을 촬영한 이 사진 컬렉션의 주제는 펜디가 설립된 곳이자 무한한 영감의 원천인 로마를 배경으로 한 러브 스토리다.
마지막으로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오는 7월 펜디가 최초로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 위크에 데뷔할 것임을 발표했다. ‘오트 푸뤼르(Haute Fourrure)’라 명명한 새로운 컬렉션을 통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의상을 선보이며, 1925년부터 펜디가 모피 분야에서 고수해온 최상급의 창조 정신과 장인 정신을 궁극적으로 표현한다.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 첫 오트 푸뤼르 패션쇼 역시 칼 라거펠트와 펜디의 협업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피에트로 베카리는 “오트 푸뤼르 컬렉션을 통해 처음으로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 위크에 참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펜디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모피에 대한 우리의 전문성과 창조 정신을 궁극적으로 표현하며, 현대적인 관점에서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모피의 세계에 혁명을 불러온 펜디 고유의 장인 정신을 펼치는 길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칼 라거펠트가 펜디와 함께하기 시작한 1965년부터, 미래를 향한 시선과 서로에 대한 열정, 존경을 바탕으로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유대관계가 지속되었다. 칼 라거펠트는 “나에게 모피는 펜디, 펜디는 모피이며, 모피는 유쾌하죠(Fur is Fendi and Fendi is Fur, Fun Furs). 펜디는 내 창조 정신의 이탈리아 버전입니다. 펜디 오트 푸뤼르 패션쇼는 화려한 모피 중의 모피를 보여주는 기회이기에 주목해야만 합니다”라고 밝혔다. 1960년대 패션의 메인 스트림에서 사라진 모피라는 구태의연한 소재를 다양한 컬러와 기법, 실루엣으로 다시 탄생시킨 펜디와 칼 라거펠트의 가치가 21세기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이번 쇼를 통해 더욱 명백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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