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계 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대형 박람회 2016 Base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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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 2016

에디터 배미진(바젤 현지 취재)

올해도 어김없이 <스타일 조선일보>는 지난 3월 17일부터 24일까지 8일간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된, 시계와 주얼리 산업의 독특한 플랫폼인 바젤월드를 취재했다. 지난 수년간 스위스 시계 무역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중국에서 시계 판매가 줄어들고 있어 다소 주춤한 기색도 보였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박람회인 만큼 탄탄한 기반은 여전하다.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신제품 자체보다 스위스 시계 비즈니스에 대한 근본적인 화두가 던져졌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유통 시장에서 스위스 시계의 입지에 대한 긴밀한 논의가 이루어진 2016 바젤월드 리포트.

2016-Baselworld


“바젤월드는 매년 전체 산업계가 한곳에 모이는 독특한 박람회입니다. 또 시계와 보석의 세계 자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박람회에서 드러나는 창조성에 영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진정한 분위기에 압도당하기도 합니다.” _스위스 전시위원회 회장 프랑수아 티아보(Francois Thiebaud)

혁신과 창조의 전달 창구, 바젤월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바젤월드를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박람회의 시스템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마치 파리와 밀라노에서 신상품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개최하듯,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의 경계에 위치한 스위스의 무역도시 바젤에서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Baselworld)’가 개최된다. 개최 기간은 대략 8일 내외로, 스위스 시계 브랜드가 중심이 되어 전 세계의 시계 브랜드(국내 브랜드로는 로만손이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가 한자리에 모여 신제품을 선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급 시계의 대명사 롤렉스, 오메가, 파텍 필립, 브레게 등은 물론 스위스 시계 브랜드의 상징인 대중 브랜드 스와치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바젤월드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계를 구입하려는 바이어부터 대중, 전 세계 프레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열띤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다. 시계는 인테리어나 패션, 전자 제품과 달리 고급품으로 분류되기에 이렇듯 대형 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스위스, 그리고 바젤이라는 도시의 시스템과 오랜 박람회 역사가 이를 가능케 했다. 사실 바젤은 시계 박람회와 더불어 아트 페어로도 유명한 도시다. 각종 박람회와 세계적인 미술관이 아주 작은 도시 안에서 세계적인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바젤월드 박람회장은 전시 기간이 지나고 나면 해체되어 주차장으로 사용된다. 일종의 무대 세트를 해체하는 것처럼 박람회장 자체가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이다. 그 어떤 도시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매년 행사 기간이 되면 개회식이 개최되고, 부스들이 제자리를 찾고, 멋진 신제품을 선보인다. 그 안에서 한 해의 시계 생산량이 결정되고 국가 간의 거래가 이루어지며 브랜드를 알리는 전시가 펼쳐지기도 한다. 바젤월드에서 시계만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진주와 다이아몬드 같은 주얼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석부터 시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까지 시계와 주얼리 산업 전반을 이루는 요소가 모두 모여 있다. 시계 산업을 넘어 유통 비즈니스의 좋은 예로 산업계의 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시스템이 뛰어나다. 장인들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꾸준히 선보일 기회가 없다면 고정적인 유통 판로를 개척할 수 없으니, 기계식 시계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설적인 문화유산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렇듯 바이어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는 응집력 있는 바젤월드가 해마다 개최되기에 스위스 시계 비즈니스가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올해 바젤월드에는 70여 개국에서 4천 명에 달하는 프레스가 참석했다. 최초로 바젤월드 개막식을 생방송으로 중계해 전 세계 1만1천여 명의 기자들이 이를 시청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보다 널리 시계 비즈니스를 알릴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역시 이 박람회의 중요한 역할이다. 내밀하게 대를 이어 전승되던 시계 비즈니스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시계 산업의 가치와 혁신성, 창조성을 전하는 창구가 되는 것이 바로 바젤월드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시계 브랜드의 발전을 도모하는 컨트롤 타워

매년 바젤월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이 박람회의 얼굴이자 매년 가장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매니징 디렉터 실비 리터(Sylvie Ritter)다. 바젤월드 오프닝 하루 전 열린 개막식에서 “한 해에 8일간 열리는 바젤월드는 시장 현황을 피부로 느끼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시계 산업의 중추신경입니다”라고 선언하며 행사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세계에 어떤 박람회도 이렇게 유명한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또 어떤 시계 및 보석 박람회도 1백여개 국 이상, 15만 명의 관람객을 불러들이지 못합니다. 매년 1만3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20억 스위스프랑의 경제적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도 대단한 점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세계경제가 침체되고 정치 상황이 불확실하기에 스위스 시계 비즈니스가 힘겨운 시기를 견디고 있는 만큼 바젤월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지난해의 예상과는 다르게 기계식 시계의 보다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스마트 워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부터 전 세계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스위스 시계 비즈니스의 해법까지, 시장 자체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이슈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바젤월드 현장을 찾아보니 브랜드별로 신제품 수와 새로운 무브먼트를 발표하는 횟수가 적어졌지만, 품질과 매력을 증진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오메가의 경우 품질 보증 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 시스템을 새롭게 선보였다. 지난해 스위스 계측학연방학회(METAS, 메타스)와 협업해 보다 견고해진 인증 시스템을 선보인 데 이어 이를 증명하고 보증할 새로운 인증서를 완성한 것이다. 최고급 시계와 대중 브랜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스위스 시계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오메가의 행보는 여타 브랜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이는 매우 주목해야 할 이슈다. 바젤월드에서 가장 많은 신제품을 선보이는 오메가가 보다 많은 고객들에게 스위스 기계식 시계의 가치를 알리고 그 완성도를 보장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품질 보증 서비스에 가장 큰 비용을 투자한다는 것은 스위스 시계 산업의 자존심과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 상황을 감안해 브랜드별 아이템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CS 투자 비용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기에 시계 비즈니스는 지난해보다 더욱 진취적인 방향성을 띠고 있다고 느껴졌다. 브랜드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고객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제품 자체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한층 까다로운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는 브랜드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 연령을 불문하고 그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계를 구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계는 한 사람의 특징과 스타일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수공예 예술 작품이며 그저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보다 누군가의 개성을 훨씬 더 많이 보여줍니다.” _오메가 회장 스티븐 우콰트(Stephen Urquhart)

기계식 시계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의 공존

이렇듯 브랜드가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는 데 바젤월드는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과 스마트 워치가 기계식 시계 비즈니스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도 바젤월드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올해는 스마트 워치를 본격적으로 새롭게 출시한 눈에 띄는 브랜드는 없지만, 그 역할과 공존 방식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무브먼트를 개발하는 과정부터 고객 데이터 수집과 분석까지, 디지털 기술 없이 기계식 시계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디지털과 시계 비즈니스가 발걸음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바젤 시 주 의회 의원 크리스토프 브루친(Christoph Brutschin)은 오프닝 연설에서 “전 세계가 처한 어려운 상황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트렌드를 통해 시계 비즈니스도 새로운 산업화에 접어들었고, 더 많은 기회가 펼쳐진 것이 사실입니다. 디지털 기술을 연구에 활용하고, 새로운 소비자를 위한 상품 개발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이러한 발전이 시계 제조 산업에 새로운 혁신과 창조로 이어지는 잠재력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수공업이 중심이 된 럭셔리 비즈니스에 디지털을 접목하는 것은 새로운 산업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브라이틀링에서 쿼츠 시계를 부활시키고, 태그호이어 역시 구글 시스템을 접목해 보다 활발한 인터랙티브 기능을 갖춘 스마트 워치의 특성을 담은 커넥티드 워치를 선보였다. LVMH 시계 그룹의 리더이자 태그호이어의 CEO인 장 클로드 비버는 “까레라 커넥티드 워치는 태그호이어 역사상 가장 큰 성공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낮은 가격대가 아님에도 출시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8만 개의 제품을 판매했지요. 이를 통해 저희는 태그호이어 까레라 커넥티드 워치가 스위스 시계 제조 역사에 남을 제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예상했던 것보다 4배 이상에 달하는 수요에 맞게 공급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말입니다. 물론 스마트 워치 역시 스위스의 기술력과 모던하고 정교한 디자인이 핵심 요소이기에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스마트 워치 시장이 더욱 뜨거워질 것을 언급했다. 태그호이어 같은 대형 브랜드에서 꾸준히 이 영역을 발전시킬 것임을 밝혔기에 내년 바젤월드에서는 이러한 요구에 맞는 다양한 브랜드의 스마트 워치가 출시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디지털이 불러온 급격한 변화와 요동치는 세계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고유의 가치를 지키며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스위스 시계 비즈니스의 핵심 바젤월드. 8일간 전 세계 시계 시장의 중심임을 선언하고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비전을 제시하는 박람회는 마치 생물과 같이 살아 움직이고,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비롯된 트렌드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2016 바젤월드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람회를 채우는 시계 브랜드와 바이어, 대중, 바젤월드를 이끄는 리더는 시계의 진정성에 감동하고 시계 산업이 향해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시계 산업의 창조성과 진정성을 모두 담고 있는 바젤월드의 현장, 시계 시장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들이 지금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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