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 2025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interview with_ 고소미(Ko somi)
섬유의 직조를 표현한 ‘Entangled and Woven(엮음과 짜임)’. 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새로운 특별전으로 선보인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의 주제처럼 한국와 인도 작가의 작품이 얽혀 공예의 미래를 탐색했다. 한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8팀이 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내년 2월 인도 국립공예박물관, 7월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으로 순회 전시를 가진다. 그 가운데 한국 작가로 선정된 고소미 작가를 잊혀가는 우리의 전통 소재가 가득한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전통 소재의 현대화 작업으로 서울의 다이내믹한 일상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공예는 한국 디자인의 미래가 될 수도 있고, 전통 장인들의 명맥을 이어줄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것이 만들어낸 풍경일 것이다. 율포의 바닷가, 보성의 녹차밭, 홍화꽃이 깔린 어느 정원. 전통을 발전시켜가는 사람들을 둘러싼 풍경과 기억, 그리고 미래의 공예를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발견했다.
먹물이 한지에 스미는 것처럼 백색의 벽과 메탈 프레임으로 제작한 전통 들창 등 따뜻한 햇살이 머무는 한지 커튼 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시간을 되살리는 연구자의 작업실 같다. 가족의 오랜 흔적을 그대로 담아 현대적으로 되살린 고소미 작가의 스튜디오는 작가의 정체성을 바로 깨닫게 해주는 공간 같았다. 전통 소재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수납장엔 작업에 사용하는 재봉실이 빈틈없이 가지런하다. 무명천이 책처럼 쌓여 있고, 한지로 만든 그녀의 현대적인 설치 작업이 다정한 존재감을 발하는 공간은 잊힌 시간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여기 있구나 싶었어요.” 청주공예비엔날레 특별전인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를 위해 인도로 리서치 트립을 다녀온 고소미 작가는 현지 작가들의 수공 작업을 보면서 전통 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들의 삶이 쌓여 주름이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인도 작가들의 작업 한 점 한점에 ‘오랜 삶’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인도의 민속 자수 기법인 ‘미러 워크(mirror work)’에서 신작의 실마리를 찾았다. 인도의 미러 워크 기법이 우리와 일제의 역사, 인도와 영국의 역사와 닮았다고 느꼈다. “거울을 밖이 아닌 원단에 설치해 각자의 고유성을 설명하고 싶었어요. 여러 방향에서 봐야 하고 시간을 쌓아서 봐야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요. 한 사람이 완성되어갈 때 필요한 많은 외부 요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신작 3점을 선보인 고소미 작가는 이 모든 게 결국은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람 그 자체의 고유성을 주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 사람의 시간성에 의해 모두 다른 모양의 주름이 생기죠. 들어내서 보려면 펼쳐봐야 하잖아요.” ‘한 사람의 사람들-연속’은 35벌의 옷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보여주는 작품이고, 미러 워크 작품인 ‘한 사람의 사람들-찰나’는 그 사람의 순간을 표현했다고. 이 모든 작품의 주제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설치미술과 공예미술의 경계를 오가며 한지로 무한한 작업을 펼치는 그녀의 시선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펼친 듯 그녀의 작업에는 ‘타인의 고통’을 쓰담는 위로의 흔적이 먹처럼 배어 있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여기 있구나 싶었어요.” 청주공예비엔날레 특별전인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를 위해 인도로 리서치 트립을 다녀온 고소미 작가는 현지 작가들의 수공 작업을 보면서 전통 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들의 삶이 쌓여 주름이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인도 작가들의 작업 한 점 한점에 ‘오랜 삶’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인도의 민속 자수 기법인 ‘미러 워크(mirror work)’에서 신작의 실마리를 찾았다. 인도의 미러 워크 기법이 우리와 일제의 역사, 인도와 영국의 역사와 닮았다고 느꼈다. “거울을 밖이 아닌 원단에 설치해 각자의 고유성을 설명하고 싶었어요. 여러 방향에서 봐야 하고 시간을 쌓아서 봐야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요. 한 사람이 완성되어갈 때 필요한 많은 외부 요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신작 3점을 선보인 고소미 작가는 이 모든 게 결국은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람 그 자체의 고유성을 주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 사람의 시간성에 의해 모두 다른 모양의 주름이 생기죠. 들어내서 보려면 펼쳐봐야 하잖아요.” ‘한 사람의 사람들-연속’은 35벌의 옷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보여주는 작품이고, 미러 워크 작품인 ‘한 사람의 사람들-찰나’는 그 사람의 순간을 표현했다고. 이 모든 작품의 주제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설치미술과 공예미술의 경계를 오가며 한지로 무한한 작업을 펼치는 그녀의 시선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펼친 듯 그녀의 작업에는 ‘타인의 고통’을 쓰담는 위로의 흔적이 먹처럼 배어 있다.
모든 것에 대한 존중과 화해, 한지로 건네다
한지는 단편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은 시선을 갖추기 위해 선택한 재료다. 한국화를 시작으로 설치, 공예와 텍스타일 디자인까지 확장해온 고소미 작가는 한지에 빠져 ‘소미사(물레에 종이를 넣어 돌리면 종이가 꼬이면서 실이 되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한지 소재의 실)’까지 개발했다. 사람, 지역, 자연 등 모든 곳에서 ‘흔적’을 더듬어가는 것에서 모든 작업을 시작하는 그녀는 한지 연구를 위해 13년 동안 일본에 머무르며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했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세계 섬유 미술계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다나카 히데오 교수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애제자가 되며 한지의 물성을 연구했다. “제 작품 주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흔적’이에요. 저는 비문증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데, 풍경이건 인물이건 제가 그려야 할 대상 앞에는 늘 동그라미나 선이 줄지어 떠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릴 때는 이 선이 비가 내리는 것으로 보였는데, 막상 밖에 나가보면 비가 아니어서, 그것이 바람이라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점과 선이 마치 어떤 흔적처럼 무엇인가를 추측하게 만드는 단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가상의 동그라미와 선이 눈앞에 흩날리며 떠다니면, 저 자신의 상념과 관념이 바깥의 다른 것과 한데 섞여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공명은 살아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지역 장인들과의 협업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로 전주랑 안동에서 한지를 주문하는데, 한지 농가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주문량을 늘리기도 하고 삼베 농사를 지을 때는 농사 운영비도 지급한다고. “장인과 저의 관계는 주름과 겹주름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고유성으로 주름을 만들고, 그 작업 위에 저는 겹주름만 잡아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진짜 럭셔리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장인들의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향할 미래라고. 그래서 스스로도 ‘옛 기법을 이용해 현대화하는 과정 중에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는 시대에서 수공예적인 모든 것으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덧붙이고 싶다.
지역 장인들과의 협업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로 전주랑 안동에서 한지를 주문하는데, 한지 농가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주문량을 늘리기도 하고 삼베 농사를 지을 때는 농사 운영비도 지급한다고. “장인과 저의 관계는 주름과 겹주름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고유성으로 주름을 만들고, 그 작업 위에 저는 겹주름만 잡아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진짜 럭셔리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장인들의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향할 미래라고. 그래서 스스로도 ‘옛 기법을 이용해 현대화하는 과정 중에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는 시대에서 수공예적인 모든 것으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덧붙이고 싶다.
1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에서 선보인 고소미 작가의 ‘한 사람의 사람들-연속’과 ‘한 사람의 사람들-찰나’.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는 한지의 주름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성을 습곡 같은 주름으로 표현한다. 이미지 제공_현대자동차
2, 3 문화제조창 로비에 설치한 고소미 작가의 ‘한 사람, 한 사람’. 시간성에 의해 다른 모양의 주름이 차곡차곡 쌓인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 같다. 4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은 부모님이 살던 곳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옛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외관에 나무 파사드를 더했다.
5 그녀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한지와 소미사를 개발하기까지의 흔적, 실험 중인 작품이 켜켜이 쌓여 있다. 원래 동양화 전공이라 수묵화로 작품 드로잉을 했던 작가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수묵화로 드로잉하다 보니 망치는 그림이 많았다고. 그런 종이들을 모아서 잘라 실을 만들었다.
6 작업실 창가에 자리 잡은 다도 공간. 이곳에서 손님도 맞이하고 창가 풍경도 멍하니 바라본다. 2층은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개방감을 주고 작업 공간은 외부 노출을 줄여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벽체는 한지를 발라 마무리했다.
7 스스로의 기억이 흔적으로 담겨 있는 실을 꼬아 한지사로 만들어 그 흔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만든 작업. 그녀가 만든 한지사에는 간격과 차이가 수없이 중첩되면서 반복되어 있고, 많은 기억과 상념이 깃들어 있다. 질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주름이 습곡처럼 얽혀 있다고.
2, 3 문화제조창 로비에 설치한 고소미 작가의 ‘한 사람, 한 사람’. 시간성에 의해 다른 모양의 주름이 차곡차곡 쌓인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 같다. 4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은 부모님이 살던 곳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옛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외관에 나무 파사드를 더했다.
5 그녀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한지와 소미사를 개발하기까지의 흔적, 실험 중인 작품이 켜켜이 쌓여 있다. 원래 동양화 전공이라 수묵화로 작품 드로잉을 했던 작가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수묵화로 드로잉하다 보니 망치는 그림이 많았다고. 그런 종이들을 모아서 잘라 실을 만들었다.
6 작업실 창가에 자리 잡은 다도 공간. 이곳에서 손님도 맞이하고 창가 풍경도 멍하니 바라본다. 2층은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개방감을 주고 작업 공간은 외부 노출을 줄여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벽체는 한지를 발라 마무리했다.
7 스스로의 기억이 흔적으로 담겨 있는 실을 꼬아 한지사로 만들어 그 흔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만든 작업. 그녀가 만든 한지사에는 간격과 차이가 수없이 중첩되면서 반복되어 있고, 많은 기억과 상념이 깃들어 있다. 질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주름이 습곡처럼 얽혀 있다고.
※ 1, 2, 3, 5 이미지 제공_작가 스튜디오
※ 4, 6, 7 Photo by 고성연
※ 4, 6, 7 Photo by 고성연
Craft Special
01. Craft Special_ ‘공예다운’ 것, 태도의 가치에 관하여 보러 가기
02. Cheongju Craft Biennale 2025_ 지구의 내일을 사랑하는 법, ‘세상 짓기’ 보러 가기
03. Interview with Ko Somi_ 잃어버린 흔적을 찾아서 보러 가기
04. Antony Gomley_ 안토리 곰리와 ‘동물의 신화’ 보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