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assion for Authent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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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6, 2025

에디터 김유미

시원하게 높은 천장, 블랙과 아이보리, 그리고 골드 컬러가 고급스럽게 어우러진 명동 한복판, 신세계 헤리티지 샤넬 부티크에서 샤넬 워치 & 화인 주얼리 사업부의 글로벌 수장 프레데릭 그랑지에를 만났다. 2016년 샤넬에 부임한 이래 워치 & 주얼리 분야의 놀라운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그는 샤넬이라는 브랜드와 샤넬의 워치, 하이 주얼리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이번에 서울에 새로 오픈한 헤리티지 부티크에 대한 자부심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막힘 없는 답변 속 단단한 소신과 폭넓은 견해가 외유내강의 지혜로운 리더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감동을 주는 경험에 가치를 두고, 정직함과 진정성이 혁신의 기본이라 말하는 프레데릭 그랑지에.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새삼 알게 된 샤넬과 럭셔리업계의 나아갈 길, 그리고 리더십에 대하여.

프레데릭 그랑지에(Frédéric Grangié)

프레데릭 그랑지에는 2016년 7월 샤넬 워치 & 화인 주얼리 부문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1992년 인스티튜트 쉬페리외르 드 마케팅 뒤 럭스(Institut Supérieur de Marketing du Luxe)를 졸업한 후 LVMH 그룹에서 21년간 근무했으며, 최근에는(2010년까지) 일본 루이 비통의 CEO를 역임했다. 미국부터 일본, 유럽 등 다양한 지역에서 경력을 쌓으며, 고객 기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키웠다.



“리더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죠.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하지만 가장 필요한 건 ‘호기심’이죠. 리더는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해요. Be Cu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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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표님이 차고 있는 멋진 시계가 눈에 띄는군요. J12 얘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이번에 새로 선보인 J12 블루인가요?
이 시계는 사실 독보적인 워치입니다. J12 블루 컬러는 독특한 ‘샤넬 블루’인데 개발에만 5년이 걸렸죠. 저희가 찾는 완벽한 블루가 있었거든요. 워치메이킹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아르노 샤스텡(Arnaud Chastaingt)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완벽한 블루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세라믹은 빛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살아 숨 쉬는 소재이기 때문에 자연 채광에서 볼 때와 인공조명 아래에서 볼 때 다른 느낌을 주지만 샤넬의 블루는 변하지 않습니다. 촉감은 실크 같고 철강보다 7배나 더 단단해요. 부드러우면서 견고하니, 정말 특별한 소재죠.


Q J12는 지난 25년간 샤넬 워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아이코닉한 제품을 젊은 세대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가게 하면서 오리지낼리티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5년 동안 워치를 제작한다는 건 워치에 진심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2000년에 나온 원조 샤넬 워치는 천재적인 디자인이었고, 스포츠 워치 느낌으로 남녀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또 세라믹을 럭셔리 소재로 업그레이드한 것도 신의 한 수였습니다. 덕분에 2000년 출시 당시에도 독보적인 시계였고, 그후 계속 발전해 25년 만에 새로운 컬러로 제작되어 아이콘을 기념하면서 새로운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최근 몇 년간 고객층의 변화를 느끼셨나요?
고객이 확실히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인기가 많아요. 아르노 샤스텡이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J12 블루의 경우, 기존 블랙/화이트 모델의 가장 큰 차이는 마감인데, 무광/매트 처리해 정말 부드러워요. 사실 저는 이 시계가 출시되면 남성 고객을 사로잡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워치스 & 원더스에서 소개한 날, 즉 4월 1일 출시했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이 시계를 사는 고객의 20~30%가 남성입니다. 이렇듯 고객층이 확장되었고, 여성 고객의 사랑도 여전히 많이 받고 있습니다.


Q 최근 샤넬 워치 & 화인 주얼리 부문이 굉장히 인상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표님이 부임한 이후 최대의 성장이나 변화를 경험한 모멘텀이 있었다면 언제일까요?
대대적인 변화를 두 번 감지했는데, 2018년 후반 코코 크러쉬 라인에 몇 년 동안 집중하기로 결정했을 때입니다. 2020년이 코로나 원년이었는데도 몇 년 만에 아이코닉한 라인으로 자리를 잡았고 아직도 인기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크게 성공해 코코 크러쉬는 모멘텀과 규모의 변화를 제일 잘 보여준 컬렉션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멘텀이 오면 공장의 생산 능력, 공방의 실력, 연구 개발, 최고의 툴, 팀, 장비 등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창작과 이미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제품도 완벽해야 하는데, 코코 크러쉬는 엄청난 성공을 한 특별한 주얼리 라인입니다. 이때 큰 변화를 감지했고, 한국에서 성공한 것을 보고 세계적인 성공을 예감했어요. 두 번째로 제가 감지한 큰 변화는 2019년에 J12를 다시 론칭할 때, 아르노 샤스텡이 새롭게 디자인해서 눈으로 볼 때와 착용했을 때의 느낌은 같았지만 시계를 80% 바꿨을 때입니다. 어찌 보면 살짝 시술해서 재탄생시킨 셈인데, 극도의 정밀함을 구현해낸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때 샤넬이 세라믹 소재는 섭렵했으니, 시계 무브먼트는 꼭 자체 생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위스 시계 제조사 케니시(Kenissi)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사업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케니시는 최상급 무브먼트를 제작하는 회사입니다.



“지금 저에게 진정한 혁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샤넬 부티크에서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프레데릭 그랑지에 (Frédéric Grangi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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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J12를 착용해보니 두께도 무게도 착용하기에 아주 적당한 느낌이에요.
맞아요. 착용 시 느낌과 무게도 시계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죠. 비율뿐 아니라 무게도 착용감에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샤넬도 여기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워치메이킹은 극도의 정밀함이 관건이에요. 저는 워치메이킹을 종종 자동차 산업과 비교합니다. 슈퍼카는 빠른 속도나 좋은 엔진을 장착했는지 따져야겠지만, 명품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문을 열고 닫을 때의 소리입니다. 문이 닫힐 때 나는 소리가 차의 급을 알려줘요. 시계도 마찬가지죠. 같은 원리로 시계를 착용할 때도 감각이 반응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문소리를 듣고 품격을 느끼는 것처럼, 지금 보시는 버클도 특별한 소리로 샤넬이 특허를 받았고 타 브랜드에 납품하고 있어요. 샤넬 고객과 샤넬의 버클을 사용하는 타 브랜드에 버클 소리는 최고의 품질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매개체입니다.


Q 버클을 오픈할 때 나는 소리까지 신경 쓴다니, 이런 부분은 정말 신선하군요!
그런가요?(웃음) 버클 소리가 J12의 성공에 더 많이 기여했을 거예요. 조금 전에도 말했듯 포르쉐 911 같은 슈퍼카도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로 품격을 확인할 수 있어요. 같은 원리입니다.


Q 최근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하이엔드 시계와 주얼리 시장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샤넬만의 차별화된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요?
샤넬은 가족 소유의 독립 회사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운영됩니다. 샤넬이 이 시장에 기여한 것은 지난 40년 동안 타 브랜드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크리에이션을 시장에 소개했다는 것이고, 최고의 워치 브랜드와 동등한 품질을 약속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는 뜻입니다. 정말 중요한 얘기인데, 샤넬은 시계를 대충 제작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최고의 시계 기술을 샤넬의 창의력, 이미지와 접목하죠. 고급 시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자면, 아르노 샤스텡의 작품을 보면 기술과 무브먼트는 크리에이션을 위해 존재합니다. 샤넬은 무브먼트를 먼저 제작하고 시계를 만들지 않아요. 무브먼트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브먼트도 크리에이션의 일부이니까요.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를 소개할게요. 샤넬의 다이아몬드 투르비용 워치를 보면 다이아몬드가 60초마다 회전하는 혁신적인 기술을 갖추었습니다. 저희는 투르비용 케이지 안에 부유하는 다이아몬드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를 위해 투르비용을 자체적으로 디자인, 개발했을 뿐 아니라 하이 주얼리 팀에 다이아몬드 커팅을 달리해서 평평한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최대한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57면의 컷 대신 샤넬이 등록한 65면의 컷을 개발했죠. 덕분에 다이아몬드가 정말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크리에이션이 기술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샤넬의 하이엔드 워치는 혁신을 위한 혁신을 하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복잡하게 제작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최고의 시계 기술과 크리에이션을 접목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워치를 완성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Q 마켓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다른 시장과 비교할 때 한국 시장이 어떤 점에서 특별하다고 느끼시나요?
한국과 샤넬의 관계와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한국 시장과 한국 고객의 에너지, 세련된 안목 덕분에 항상 특별한 인연을 맺었고, 한국은 언제나 트렌드를 주도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처음 나온 멋진 콘셉트와 고객 경험이 많습니다. 지금 저희가 있는 이 헤리티지 부티크도 그런데, 이런 건물은 전 세계에 하나뿐일 겁니다. 한국은 가장 많은 창작과 놀라운 에너지가 넘치는 시장입니다. 사실 시장은 언제나 상승세와 하락세를 반복하면서 움직입니다. 살다 보면 이런 우여곡절이 항상 있고, 사업에도 이런 주기가 있는데, 샤넬과 긴 인연을 지닌 한국은 큰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시장입니다. 한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우리는 장기적으로 시장을 보는데, 워치와 화인 주얼리 사업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시장 기준을 높여주었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한국 시장과 샤넬 코리아 팀, 한국 고객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Q 그동안 럭셔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셨을 텐데,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과 럭셔리 브랜드에서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제일 중요한 건 호기심을 갖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럭셔리 산업만 보지 말고 시야를 넓혀야 해요. 그래서 저는 호기심이 특히 경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요즘 우리는 점점 더 다양한 팀이 협업하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일하죠. 그럴 때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곤 합니다. 디지털 기술 덕분인데, 저도 일을 하면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즉각적인 소통을 통해 디지털 환경의 진화 과정을 거치고 경험했어요.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리더는 자신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해요. 그래야 더 오래, 멀리 갈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저보다 실력 있는 전문가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해요. 이것이 제가 일을 하면서 터득한 점입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건 각자 맡은 일에서 내 브랜드, 내가 일하는 메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우리는 결정을 할 때 단기·중기·장기 결정을 하지만 단기 결정도 매번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떠난 다음에 브랜드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죠. 수년 뒤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보면 방향이 잡힙니다. 리더십에는 이런 요소들이 다 필요한데, 역시 제일 중요한 건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Q 샤넬과 같은 럭셔리 브랜드에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중요한 일이겠죠? 대표님에게 ‘혁신’은 어떤 의미인가요?
샤넬의 경우 혁신은 다양한 곳에서 발동하고 여러 형태로 발현됩니다. 저는 혁신이 꼭 새로운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객의 여정과 경험을 지원하는 혁신은 다양합니다. 지금 우리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건물도 30년의 리테일 경력을 갖춘 제가 본 최고의 리테일 혁신입니다. 이 건물을 보면 특별한 하이테크 혁신은 없어요. 배경만 있죠. 콘셉트 자체가 놀라운 혁신인데, 우리는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를 없애야 해요. 혁신은 우리가 자리한 이 오프라인 부티크가 될 수 있고 큰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어제 여기 와서 아트리움에 있는 미할 로브너(Michal Rovner)의 설치 작품을 보고 감동했어요. 이 작품은 한국의 사계절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1935년에 지은 이 역사적인 빌딩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샤넬 부티크 중 하나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혁신은 그래서 기술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고 비전 있는 사람들이 주도해 이루어낸 결과물입니다. 저는 이런 조합이 특별하고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혁신 하면 늘 AI를 떠올리지만, 그게 아니라 이런 게 혁신입니다.


Q 한국 고객들이 이 헤리티지 부티크에서 어떤 경험을 하길 바라나요?
18개월 전 한창 공사 중일 때 제가 여기를 걸어 다니다가 역사적인 디테일에 눈길이 갔어요. 엘리베이터, 벽, 벽지, 동전 등. 이 건물은 은행이었으니까요. 이 공간을 다니면서 건물과 교감하는 느낌이었어요. 피터 마리노(Peter Marino)가 부티크를 디자인하면서 마법의 손을 통해 공간이 완성되면서, 2025년 현재 샤넬 브랜드의 모습과 역사적 추억이 담긴 건물의 유산을 보존하고, 샤넬 브랜드의 가장 최신 워치 & 화인 주얼리 & 패션의 섬세함, 디자인 패브릭의 놀라운 사용, 건축 요소를 부각한 디테일을 느낄 수 있었어요. 샤넬은 리테일을 통해 어떤 브랜드인지 표현하고 알려줍니다. 샤넬은 시계, 주얼리, 패션 모두 전자상거래를 하지 않아요. 고객의 경험이 리테일 공간에서 더 확장되는 것이 어떤 AI 솔루션보다 혁신적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진정한 혁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샤넬 부티크에서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챗GPT가 아니라 이런 것이 진정한 혁신입니다. 이 부티크는 정말 특별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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