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샴페인의 비밀을 찾아 떠나다 starry, starry Dr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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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1, 2011

글 심우찬(칼럼니스트, <프랑스 여자처럼>의 저자)

과연 지구상의 어떤 와인이 돔 페리뇽만큼 프레스티지와 럭셔리의 우성인자만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을까? 최고의 샴페인 돔 페리뇽의 히스토리를 따라 에페르네와 베르사유로 떠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


 

  

      


일찍이 전설적인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잘 칠링된 돔 페리뇽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천상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굳이 알랭 뒤카스 같은 셰프나 로버트 파커 같은 와인 평론가의 감탄을 인용하지 않아도 돔 페리뇽에 붙은 수많은 최고의 수식어는 이미 전 세계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돔 페리뇽은 1952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대관식용 샴페인으로 쓰인 후 많은 국가의 공식 만찬과 행사 등에 최고의 예의를 표하는 샴페인으로 사용되어왔다. 또 구미의 레스토랑에서조차 돔 페리뇽을 주문하면 서비스가 달라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이 전설적인 샴페인의 천상의 비밀을 캐는 은밀한 여행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 서쪽 언덕에 위치한 오빌레(Hautvillers)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포도 수확이 끝난 겨울의 샹파뉴 지방은 그야말로 전방 10m가 보이지 않는 안개에 싸여 있었다. 바로 이런 날씨가 퀄리티 높은 샴페인을 만든다니 더욱 호기심이 발동해 언덕 위,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젊은 수도사 돔 피에르 페리뇽의 소명

오빌레의 전설은 중세인 6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주교 성 니바르(Saint Nivard)가 수도원 자리를 물색하던 중, 신비한 새의 인도에 따라 구름과 태양이 교차하는 언덕 위의 성스러운 자리를 찾는다. 그곳이 바로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빌레 언덕의 수도원 자리이다. 이후 수도원으로 이어져오다 1668년, 당시 30세이던 수도사 돔 피에르 페리뇽이 수도원의 와인 담당 수도사가 된다. 수도사들이 초기 와인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베네딕트 수도회는 엄격한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성경 연구와 신부 각자에게 주어진 전문 분야에 성실하게 임하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돔 페리뇽의 돔(Dom)은 베네딕트 수도사들에게 붙이던 존칭이다. 젊은 수도사 돔 피에르 페리뇽은 포도밭을 이용해 수도원의 자원을 풍족하게 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는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지하 저장고에 저장되어 있던 와인 병 속의 효모 때문에 2차 발효가 진행되어 탄산가스가 생성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 47년간 그는 후세에 ‘샹파뉴’ 기법으로 알려진 제조법을 개발하고, 개선하며, 확립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신이 자신에게 내린 소명이라 굳게 믿은 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샴페인에 바친 것이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실험에 대한 열정, 지치지 않는 끈기는 곧 ‘돔 페리뇽’이란 샴페인으로 실현되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돔 페리뇽 샴페인 제조법은 최적의 배합, 조율, 위험 감수, 직감 그리고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무엇이 돔 페리뇽을 이토록 특별한 와인으로 만들었는지 그 비밀스러운 제조법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돔 페리뇽은 언제나 빈티지 와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돔 페리뇽이 매년 샴페인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 기온으로 포도 수확이 좋지 않을 때는 빈티지를 만들지 않는다. 1989년 빈티지를 포기한 예가 그렇다. 또 돔 페리뇽은 항상 완벽한 균형으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블렌딩하는데, 샹파뉴 지방의 포도 농장에서 난 그해 최고의 포도만 선별해 쓴다. 돔 페리뇽에 포도를 공급한 농장은 그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최고의 제품을 창조한다는 것은 품질 이외의 모든 타협을 거부함을 의미한다. 샴페인 제조에도 날씨나 이상 기온 등의 이유로 작황이 좋지 않거나 양질의 포도를 수확할 수 없는 해에는 아예 빈티지를 만들지 않는 품질 관리와 최소 숙성 기간 6년을 지키는 엄청난 정성을 기울인다. 즉, 단 하나의 돔 페리뇽만이 단 하나의 돔 페리뇽 빈티지가 되는 것이다.

“형제님,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어요!”

피에르 페리뇽은 평생에 걸쳐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소신과 야망에 충실한 수도사였다. 1694년 9월에 와인 26병을 판매하면서 남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와인 26병’이란 자필 기록은 그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보여준다. 17세기 말의 수도사로서 대단한 직관력과 상업적 마인드를 갖추고 있던 그의 마음속에는 단 한 가지 목표만이 있었다. 바로 최고의 와인, 돔 페리뇽이라는 고유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후세에 이르러 와인업계에 남긴 그의 업적은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는 유연하고 신속한 압축 방법을 통해 붉은 포도(피노 누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법을 완성했다. 또 다른 종류의 포도를 블렌딩해 더욱 최상급의 와인을 만드는 법을 고안해내는가 하면 코르크 마개와 이를 고정하는 철실을 생각해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샴페인을 사랑했는지는 샴페인을 마시다 동료 수도사에게 한 “형제님,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어요!”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오빌레의 수도원은 이런 돔 피에르 페리뇽의 열정을 기리고, 그가 완성한 샴페인이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덕에 고부가가치의 수익을 올리는 샹파뉴 지방 사람들의 오마주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샴페인의 전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 당시 유럽 최강국이던 프랑스 왕실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베르사유 여행이 필수적이다. 시간과 장소는 오빌레에서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의 베르사유로 이동한다.

돔 페리뇽, 베르사유를 사로잡다

절대왕정의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리며 항상 새로운 미각을 탐색하던 왕족과 귀족층은 돔 페리뇽이 만든 와인이 기존의 와인과는 다른 엄청난 것임을 즉시 알아차렸다. 마침내 ‘페리뇽의 와인’이라 불리던 이 발포성 와인은 완벽한 동시대인인 태양왕 루이 14세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플라콩(거품이 나는 샹파뉴산 와인 병을 이렇게 불렀다)’의 가격은 당시 가장 좋은 와인의 4배나 되었다. 제조 과정의 신비성에 상품의 희귀성이 더해지며 이 ‘페리뇽 와인’은 베르사유에서 가장 쾌락적인 왕이라 불리던 루이 15세 시대를 거치면서 최고의 와인으로 등극했다. 또 포도주 제조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이 와인은 맛과 풍습에도 일대 변혁을 초래했다.
그 후 페리뇽의 와인은 루이 15세 치하에서 번성한 자유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술이 되었고, 그 관능적인 매력 때문에 이 시대를 ‘쾌락의 시대’라는 칭호로 불리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루이 15세의 후궁이자 왕권을 등에 업고 문화 수호자 역할을 톡톡히 했던 퐁파두르 후작부인이 얼마나 열렬한 샴페인 애호가였는지는 많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샴페인을 가리켜 ‘여자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와인’이라고 칭했다.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한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향락에 빠진 마리 앙투아네트와 많은 귀족들이 당시 이 와인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렇게 샴페인의 우아함과 욕망, 섬세함과 풍요함 그리고 관능의 정신은 왕궁의 살롱에서 여인의 침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 영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돔 페리뇽의 역사와 함께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루이 15세의 직무실과 서재, 목욕탕, 게임 룸 등을 사학자와 함께 둘러보는 프로그램은 정말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저 몰락한 왕조의 침대를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실제 그들의 생활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왕과 귀족들의 폐쇄된 생활은 하인들이 일일이 음료 서비스를 하던 당시의 테이블 매너를 불필요하고 귀찮게 여기도록 했다. 굳이 그들이 없어도 간단히 병을 딸 수 있는 샴페인은 그 편안함 때문에 특권층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와인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돔 페리뇽은 왕실 납품 업체로서 국가가 주는 모든 혜택과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금욕 생활을 하는 수도사가 만든 와인이 당시 욕망과 권력의 대명사였던 베르사유 덕에 전성기를 맞게 된 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례나 성찬 등의 의식을 집행하던 수도원이란 배경은 돔 페리뇽이 와인임에도 성스러운 이미지를 갖게 하는 일종의 면죄부를 주게 한다. 현재까지도 모든 의식이나 축하 행사에 샴페인을 빼놓지 않는 이유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모엣 & 샹동의 2백60년간의 열정

돔 페리뇽이 개발한 샴페인이 세상에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743년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에페르네(Epernay)에 샴페인 하우스를 만들어 지금까지 2백60여 년이 넘게 최상의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모엣 & 샹동 하우스의 열정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모엣 & 샹동 하우스는 1832년 오빌레 수도원을 복원하면서 ‘샴페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수도사 돔 페리뇽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돔 페리뇽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피에르 페리뇽의 이름을 따 샴페인 최고의 명품인 ‘돔 페리뇽’을 탄생시켰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에페르네의 모엣 & 샹동 본사 앞 돔 페리뇽의 동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롭다. 모엣 & 샹동과 돔 페리뇽은 프랑스 역사와 함께한 자신들의 히스토리와 유산을 트리아농과 샤토 사랑(Saran)이란 성에서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이름이 귀에 익은 트리아농은 당연히 베르사유의 트리아농을 재현한 공간이다. 이곳은 나폴레옹과 조제핀 황후가 친밀한 유럽 국가의 수장들을 맞이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샴페인 투어의 백미는 피에르 페리뇽 신부가 직접 작성한 작업 노트를 특별 열람하는 일이었다. 기름을 먹인 종이에 그림 등을 곁들여 샴페인 제조 노하우에 대한 기록을 꼼꼼히 기록한 흔적은 세월을 거슬러 오르게 해준다. 또 지하 수십 킬로미터가 된다는 지하 저장 카브(cave)에 수십 년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최고의 샴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숙성 중인 병들의 산을 보면 샴페인 자체가 얼마나 거대한 산업인지 실감 나게 해준다. 프랑스의 총 샴페인 생산량은 우리나라 쌀 생산량과 맞먹으며 샹파뉴 지방을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등극시켰다. 카브 투어를 마치면 샤토 사랑에서 샴페인이 주는 행복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파스칼 탱고(Pascal Tingaud) 셰프가 직접 요리하는 만찬이 기다리고 있다. 샴페인의 역사와 배경, 유산을 살펴보는 시간 여행에서 급격히 현실로 돌아온,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자리에서 “아 보트르 상테(A Votre Sante, 건배)!”라고 외치고 잔을 들면서 드는 생각은 최고의 와인에 대한 놀라운 직관과 통찰력을 지녔던 돔 페리뇽에 대한 감탄이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와인은 이미 샹파뉴 포도에 감추어진 럭셔리한 미래를 예언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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