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High Jewelry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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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2013

에디터 배미진

주얼리는 패션과는 달리 오로지 ‘트렌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오라가 있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한 클래식은 있어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아보기 힘든데, 올해 유서 깊은 주얼리 하우스들이 지금까지 전혀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세상에 선보였다. 넘볼 수 없을 만큼 고고하기만 했던 하이 주얼리의 세계가 조금씩 문을 열고 대중과 소통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다. 새로운 하이 주얼리와 함께 열렬한 환희의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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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까르띠에와 티파니,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와 같은 전통적인 주얼리 하우스에서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였다. 봄과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매번 더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길 원하는 전투적인 패션 업계와는 다르게, 수년에 한 번 선보이기도 어려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다양한 브랜드에서 같은 시기에 대대적으로 선보인다는 것은, 주얼리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증거다. 주얼리 하우스에서 ‘하이 주얼리’의 의미는 패션계에서 디자이너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에 비견할 수 있다. 보석만이 갖는 매혹적인 빛깔과 그 특유의 감성을 기리며 보석의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이 주얼리이기에 공방의 장인들과 새로운 디자인을 완성하는 브랜드의 수장이 공들여 완성한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하이 주얼리가 데뷔 무대를 가지면 그 이후로 수년간, 혹은 더 오랜 기간 동안 같은 주제의 다양한 주얼리들이 선보이게 된다. 하이 주얼리의 디테일과 스토리가 대중적인 디자인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까르띠에는 팬더 라인을 꾸준히 변형해 하이 주얼리 컬렉션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까르띠에 매장을 방문하면 비교적 대중적인 아이템에도 팬더 모티브를 다양하게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십 년간 고민한 끝에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완성한 후 발표하면, 이를 모티브로 실현 가능한 수준의 주얼리를 선보여 실용적으로 접근한다는 논리다. 따라서 새로운 하이 주얼리의 탄생은 우리가 선택하는 주얼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모던 걸 파리지엔, 하이 주얼리의 뮤즈가 되다
파리를 주제로 한 까르띠에의 새로운 컬렉션은 그 이름도 파리지엔스러운 ‘누벨바그 파리’다. 이젠 프랑스의 아이콘이 된 파리지엔이 간직한 섬세한 뉘앙스와 컬러, 비밀스러운 매력과 스타일을 보여주는 주제로, 그 자체가 관념적이고 신선하다. 과거의 하이 주얼리들을 떠올리면 보다 구체적인 주제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부귀를 상징하는 뱀이나 그 자체로 아름다운 꽃이나 식물과 같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하이 주얼리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혹은 왕족이 소유했던 원석이나 크기, 컬러 면에서 압도적인 원석의 가치를 하이 주얼리의 주제로 삼기도 했다. 반면 이번에 선보인 까르띠에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보다 현대적인 가치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테마다. 하지만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언제나 그렇듯 완전히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기존 하우스의 모든 기록을 저장해둔 아카이브와 고유의 스타일은 어디에서나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주제가 ‘파리’, 혹은 ‘파리지엔’이 아닌 ‘누벨바그 파리’인 것이다. 과거 유럽을 뒤흔든 사조인 누벨바그(Nouvelle Vague, 프랑스어로 ‘새로운 물결’이라는 의미로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절정을 이룬, 프랑스의 젊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퍼진 진보적 영화 운동.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든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대표적이다)에 파리지엔을 결합한 것. 누벨바그 역시 그 시대의 ‘모던’이었기에 클래식한 지난날의 모던과 현재의 모던 걸인 파리지엔을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화학작용을 기대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성공적이다. 스토리를 모른 채 주얼리만 본다면 마치 수백 년 전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볼드하고 과감한 빈티지 주얼리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누벨바그 파리’ 컬렉션의 내용은 파리지엔의 일곱 가지 개성에 대한 멜로디다. ‘깜찍한 그녀, 관능적인 그녀, 도도한 그녀, 자유분방한 그녀, 톡톡 튀는 그녀, 섬세한 그녀, 글래머러스한 그녀’라는 테마로 일곱 가지 스타일의 주얼리를 선보였는데 마치 CM송 가사와 같이 가볍고 산뜻한 주제는 지금까지 그 어떤 브랜드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유니크함이 넘친다.
다이아몬드와 유색 젬스톤의 향연, 티파니
지난 8월 홍콩에서 첫선을 보인 티파니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주제는 ‘Beyond the Blue’. 바다의 상쾌한 기운과 장엄함을 강렬한 색채의 젬스톤과 다이아몬드로 표현했다. 사진에 등장한 제품들처럼 투명하고 청명한 그린과 블루 컬러가 눈을 사로잡는데, 전 세계의 컬러 젬스톤을 발굴해 새로운 컬렉션으로 선보여 그들만의 숨겨진 매력을 세상에 알리는 티파니의 노력이 돋보였다. 다양한 블루, 그린 컬러의 투르말린 주얼리들은 원석이 지닌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중 ‘쿠프리언 엘바이트 투르말린’은 원석 내에 구리가 내포되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티파니 블루’ 컬러와 거의 유사한 색상을 띤다. 이렇게 꾸준히 새로운 컬렉션을 위해 원석을 발굴하는 노력을 계속했기 때문에 티파니를 상징한다고 느껴질 만큼(원석 자체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자연적인 산물임에도) 특별한 컬러의 원석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티파니의 수많은 제품 중에서도 예술적 가치와 유니크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잔 슐럼버제(Jean Schlumberger) 컬렉션은 이번 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화룡정점. 자연에서 받은 모든 영감을 주얼리로 표현하는 예술가인 잔 슐럼버제의 작품이 이번 컬렉션인 주제인 바다와 만나 지금까지 보지 못한 과감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모두를 감동케 했다. 그중 4백84개, 총 1백14.61캐럿의 터키석에 다이아몬드와 옐로 골드, 플래티넘이 어우러져 밧줄 모양의 태슬을 형상화한 ‘터키석 태슬 네크리스’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잔 슐럼버제는 1968년 자신이 디자인한, 재클린 케네디의 시그너처 주얼리로도 유명한 에나멜 팔찌를 2013년 버전으로 재해석했다. 디자이너만의 시그너처인 볼드한 골드, 2백7개의 라운드 다이아몬드, 플래티넘을 함께 세팅해 오묘한 아름다움을 완성한 것이다. 이 팔찌는 제작하는 데만 6개월 이상 소요되는 티파니 고유의 시그너처 하이 주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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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함과 대범함이 만든 연금술
올해 대대적으로 선보인 불가리의 ‘디바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보면 아주 먼 옛날 이야기만이 하이 주얼리의 영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전설적인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원불변의 아이콘으로서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뮤즈가 되었다. 과거에서 영감을 받은 대담한 스타일에 현대적인 여배우를 아이콘으로 삼았지만 불가리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브랜드 고유의 과감함과 볼드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에 그 어떤 컬렉션보다 클래식하다. 사실 ‘하이 주얼리’라는 소재 자체가 일상과는 너무 거리가 있는 데다, 스토리를 보면 보통 인도나 아랍의 왕족과 연관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담은 것이 대부분이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가리는 이 모든 기존의 명제를 번복하면서도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하이 주얼리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반클리프 아펠의 경우 주제나 스토리보다 ‘연금술’이라는 매력적인 요소를 최우선으로 하는데, 보석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황금 비율로 디자인했을 때 예상을 뛰어넘는 특별한 오라를 풍기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 희귀하고도 품질 높은 하드 스톤이 서로 절묘하게 어울릴 듯하면서도 과감한 대조를 이루는 것은 하이 주얼리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로, 클라우드 아펠은 “모든 보석은 그만의 혼을 가지고 있다”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특별한 보석에 대한 열정이 높다. 올해 선보인 ‘피에르 드 케렉테르(Pierres de Caractere, 프랑스어로 특별함과 개성이 있는 원석이라는 의미)’ 컬렉션 역시 이러한 마술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진귀한 스톤에 올드 컷과 섬세함, 대범함을 더해 눈을 뗄 수 없는 예술 작품으로 완성한 것이다. 하이 주얼리를 창조하는 과정 자체에는 기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반영했지만, 주얼리 자체를 보면 기존 디자인들보다 훨씬 유니크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주로 사용하지 않았던 옐로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것은 물론, 기존 주얼리보다 볼륨감 넘치는 링들을 대거 선보이며 장인의 섬세한 터치를 더욱 극대화했다. 샤넬이라는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에서 시작한 샤넬 화인 주얼리의 2013년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용맹한 사자를 모티브로 한 ‘수 르 신 뒤 리옹(Sous le Signe du Lion)’ 컬렉션. 베니스의 몽상적인 도시 리옹을 사랑한 가브리엘 샤넬의 삶, 샤넬의 아파트에 있는 다양한 소재와 모티브의 사자 오브제, 샤넬의 별자리가 사자자리였다는 것, 베니스의 상징이 사자라는 요소까지 더해 절묘한 스토리로 완성한 새로운 모던 판타지다. 이 역시 하이 주얼리를 완성한 스토리 자체는 디자이너의 과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니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진 속 디자인을 보면 지금까지 그 어떤 브랜드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조각에 가까운 대범한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생활 속의 값비싼 예술, 하이 주얼리 컬렉션
이렇듯 조금은 친근해지고,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요소를 접목한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현실의 달콤함과 동시에 도피하고 싶은 마음을 ‘보석’이라는 우아한 언어로 훌륭하게 표현했다. 과거의 하이 주얼리들이 영원한 생명력과 신성함을 염원했다면, 현재의 하이 주얼리는 과감함과 완벽함의 조화를 추구한다. 물론 어느 것이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새로운 주얼리 하우스의 도전은 말 그대로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물론 수백 년간 쌓아온 완성도에 대한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새로운 ‘모던’을 추구할 수 있는 원동력도, 성취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가치를 이어가며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 세계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올해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백화점을 걷다가 쇼윈도를 볼 때나, 잡지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에 한 번쯤 들여다보고 즐겨볼 만하다. 모던한 새로운 주얼리의 하모니가 우리로 하여금 주얼리라는 예술품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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