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의 진화, ‘디지털 놀이터’를 즐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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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6, 2016

에디터 고성연

‘융합화’와 ‘지능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하이브리드 기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는 첨단 기술과 스마트 기기들이 극단적인 시각에서는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창조자’인 인간이 하기 나름이 아닐까.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피터 디아만디스는 쑥쑥 자라는 기술은 덩치 크고 굼뜬 종들은 멸종시키고, 기민한 자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고 했다.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두려워하고 피하는 대신 익히고 즐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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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대한민국은 물론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충격을 안겨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그 대국을 방송으로 지켜봤거나 소식을 접한 이들 중에는 ‘기계=도구’로 여기던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경우가 상당히 많았을 듯하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기 위해 만든 도구가 이제는 일 자체를 대신할 수 있는 가공할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 퍼뜩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을 터다. 미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랄프 왈도 에머슨이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상황을 빗대어 남긴 명언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물들은 안장에 앉아 있다. 그리고 사람을 타고 간다.” 사실 자동화(automation)의 위협적인 발달에 대해서는 그 메시지가 경고성이든, 옹호성이든 간에 각종 연구와 보도가 여러 형태로 꽤 나와 있었다. 예상된 수순이지만, 요즘 서점가에는 이미 수년 전에 나온 책까지 재발간될 정도로 인공지능(AI) 관련 서적이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자동화가 빼앗을지도 모르는 인류의 직장과 미래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내 직업은 안전할까”, “나도 기계를 군주로 모셔야 할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물음이 쏟아지고 있다.
<로봇의 부상>이라는 책을 쓴 실리콘밸리 사업가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마틴 포드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서빙 업무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처럼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고임금 고숙련 노동 영역에서도 딥 러닝 기법으로 무장한 AI 변호사나 의사, 교수 같은 출중한 로봇 인력이 머지않은 미래에 등장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근호에는 ‘로봇이 마케팅 업무를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글이 실렸는데, 현재 절반 이상의 마케팅 분야에서 기계가 일상적인 업무의 3분의 1 정도를 수행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고 한다. 심지어 마케팅 관리자의 업무도 기계가 10% 이상 대신할 수 있다고. 기술의 발달에 따른 ‘무풍지대’는 없다는 얘기에 무게중심이 기울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 탄생시킨 기계가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렇지만 인류사에서 사회, 문화, 기술의 발달과 변화에 따라 특정 직무 영역이 도태된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 역사학자들이 꼽은 소소한 예만 봐도 전화교환원, 변사, 숯쟁이, 석판인쇄공, 촛불 관리인, 실루엣 화가, 양봉가 등이 있다.
혼돈과 변혁의 시대를 이끄는 융합 트렌드와 창조적 파괴
도태와 소멸의 역사는 비단 인간의 직업 세계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국가와 기업의 역사 속에서도 흥망성쇠가 무수히 목격돼왔다. 컴퓨터 기술의 가속적인 발전과 디지털 흐름이 지배하는 21세기 초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이할 세대가 될 공산이 크다. 모든 장르, 플랫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혼돈’과 ‘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융합’의 시대이기도 하다. “도대체 우리의 아군과 적은 누구인가?”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이 파괴되고 새롭게 결합되는 작금의 시대에는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일, 또는 그 반대의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펼쳐지고 있다. 심지어 적이면서 동지인 경우도 있다. DVD를 대여해주던 넷플릭스(Netflix)의 변모를 보라. 동영상 스트리밍을 소화하는 플랫폼 기업이자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무려 5천만달러를 투자한 콘텐츠업체로 변모해 영화 제작사들의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고객사인 동시에 그들의 경쟁자로 부상하지 않았는가.
첨단 디지털 디바이스의 세계에서도 융합 트렌드는 ‘속도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노트북과 휴대폰을 결합한 ‘패블릿’ 싸움이 한창이더니, 언젠가부터 스마트 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 생태계를 둘러싼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고, 요즘에는 태블릿과 노트북의 경계를 무너뜨릴 만한 가공할 제품들이 출현하고 있다. 여러 기능을 융합한 ‘스마트’한 신제품이 등장하면 기존 제품 중에는 소위 ‘카니발라이제이션’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엄연히 ‘창조적 파괴’로 성공을 거두는 예가 많다. 그저 이것저것 덧대는 식의 융합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최상의 가치를 줄 수 있는 요소에 올인하는 전략이다. 20세기 중반 IT업계에서 놀랄 만한 ‘창조적 파괴’를 보여준 기업 중 하나는 소니였다. 덩치가 크지만 음질이 좋은 진공관 라디오가 최고로 여겨지던 그 시절, 소니는 잡음은 많지만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한 트랜지스터라디오로 ‘반전’을 꾀했다. 음질을 약간 포기하면서 ‘몸집 줄이기’에 집중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친 것이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는 애플 같은 혁신 기업들이 창조적 파괴의 대명사가 됐다. 일례로 플래시메모리 타입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 셔플 같은 경우에는 라디오 기능과 LCD를 버리면서 ‘편하게 음악 듣기’에 승부수를 걸어 시장을 압도했다. 모토로라는 카메라폰을 선보이기는 하되, 화소 수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한때 레이저폰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제품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21세기에는 ‘창조적 파괴’의 수명이 단축된 듯싶다. 하이테크 시대의 미래를 전망한 책 <볼드>의 저자들은 모든 기술이 주기적으로(반년이나 1년) 2배의 능력을 갖추게 되는 ‘기하급수 기술(exponential technology)’을 주목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만큼 똑똑한 기기가 많아졌고,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 만큼 사실 기능이든 디자인이든 웬만큼 ‘튀지’ 않아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 이처럼 치열한 생태계에서 21세기형 창조적 파괴를 일으킬 주인공은 과연 누굴까? 그 답은 누구도 모르지만, 이동성(mobility)이 뛰어난 융합형 기기가 대다수의 마음을 끌어당길 것이란 점만은 변치 않을 듯하다.
아이패드 프로, 서피스 프로, 갤럭시 탭 프로…하이브리드 랩톱의 대세는?
이런 맥락에서 요즘 최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새로운 융합형 기기를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패드(iPad) 프로, 서피스 프로, 갤럭시 탭 프로 등 랩톱(노트북 PC)과 태블릿을 합친 하이브리드 제품군이다. 요즘 신형 스마트폰 화면이 꽤 커졌다고는 해도 문서 작성이나 디자인 작업을 하기에는 턱도 없는 상황에서 동영상이나 게임은 물론 PC에서 가능했던 일부 전문적인 업무까지도 척척 해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이동성을 갖춘 제품이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애플의 아이패드 프로가 돋보인다. 이 제품이 지난해 말 처음 나왔을 때, 가장 찬사를 받은 요소는 데스크톱 수준의 CPU라든지 선명한 레티나 디스플레이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애플 펜슬’과 ‘스마트 키보드’였다. 픽셀 단위의 효과를 내면서 때로는 볼펜처럼, 때로는 색연필처럼, 때로는 붓처럼 작동할 수 있는 ‘만능’ 펜슬인 애플 펜슬은 아이패드 프로의 존재감을 빛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존재의 이유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사용자가 손가락을 쓰는지 애플 펜슬을 쓰는지 감별할 수 있는 스마트함은 물론이요, 펜촉이 얼마나 세게 눌리고 있는지 감지해 섬세한 음영도 표현할 수 있다.
괜히 프로를 가리켜 ‘전자 스케치북’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당연히 이 디지털 스케치북을 위한 온갖 앱이 나와 있다. 요즘 인기가 높은 ‘피그먼트(Pigment)’ 앱을 활용하면 아동은 물론이고 어른도 애용하는 실감 나는 컬러링 북이 되고, ‘프로크리에이트(Procreate)’ 앱으로는 극도로 정교한 작업도 가능하다. 작업한 이미지를 SNS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메모 앱을 활용하면 애플 펜슬로 손쉽게 글도 쓸 수 있다. 얇게 접을 수 있는 스마트 키보드는 글을 끄적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패드 프로를 노트북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그런데 ‘하이브리드’답게 스마트 커버와 합친 덕에 별도의 키보드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을 없앴다. 아이패드 프로에 부착하면 충전이 되므로 충전용 어댑터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여행이나 출장 등 이동이 잦은 사람들의 경우에 스마트폰 따로, 랩톱 따로 챙길 것 없이 ‘프로’만 있으면 다용도로 쓸 수 있다. PDF를 편집할 수 있는 PDF 엑스퍼트 같은 앱을 활용하면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 된다. 심지어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도 여유롭게 끄적일 수 있다. 문서 위에 필기나 서명, 문서 첨삭 등을 손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앱이 유료(10.99달러)임에도 인기를 끄는 이유다.
인류에 위협이 아니라 기회를 창출하는 ‘증강의 시대’로 만들기
이처럼 ‘이종교배’를 거듭하는 똑똑한 디지털 기기는 결국 많은 이들이 경탄해마지않는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한 수준 높은 인공지능까지 장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인간의 노동력을 위협하는 ‘로봇 군주’나 ‘로봇 팀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나가는지는 인간의 몫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인류 대다수가 해야 할 일은 ‘흐름’에 적응하되 휩쓸리지는 않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듯이, 21세의 ‘뉴노멀’인 디지털 변화를 어느 정도 흡수해야 미래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자동화의 위협을 막연하게 두려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증강(augmentation)’의 기회로 봐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봄직하다.
뱁슨대 교수이자 MIT대 디지털경영센터 연구위원인 토머스 데이븐포트는 노동이 제로섬 게임이며 기계가 점점 많은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는 대신, 오히려 고용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점점 더 똑똑하고 영리해질 기계들과 ‘협업’을 혈치고, 그들의 역량을 활용해 업무를 축소하기보다는 ‘심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요즘 빈번히 화두가 되는 빅데이터를 예로 들어보자. 흔히 ‘소비자 통찰’이라고 하면 빅데이터를 통해 구매 행동에 대한 정보가 낱낱이 드러나는 이 시대에는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영역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한 분석의 차원을 넘어 그 데이터를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더 큰 맥락에서 해석하는 일은 컴퓨터가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증강의 영역이라는 논리다. 이 같은 ‘증강’ 행보를 위한 구체적인 보법은 저마다의 역량이나 입지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핵심 메시지는 인간과 컴퓨터가 섞이고 도울 수도 있는 ‘융합’의 환경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다만 그저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즐기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다행히도 공연한 두려움만 품지 않는다면 ‘새로운 풍요’라고도 일컬어질 만큼 ‘즐길 거리’, ‘할 거리’가 넘쳐나는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직관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손 가는 대로’ , ‘마음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스마트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식이다. 풍요로운 스마트 환경을 굳이 다 활용하려 들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일상을 약간 더 편리하게 만들어줄 장점은 더러 꿰차도 좋지 않을까. 필자가 아이패드 프로를 활용해 이동 중에도 카페에 느긋하게 앉아 책 편집을 하고, 기사를 쓰면서 문득 든 생각은 ‘적어도 지금은 디지털 놀이터에서 뛰놀 때’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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