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18/19 WINTER SPECIAL]_짝퉁의 도시에서 오리지널의 도시로, 상하이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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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2, 2019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 edited by 고성연

몇 해 전부터 <스타일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상하이의 새로운 미술관과 아트 페어를 소개해왔지만, 여전히 대중의 선호는 아트 바젤 ‘홍콩’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올해 상하이는 홍콩에 비해서도 손색없는 아트 도시로 급성장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국제갤러리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시관에서 거둔 홍보 효과를 아시아에서 다시 한번 거두려는 듯 상하이 파워롱 미술관에서 대규모 단색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제 상하이는 ‘베니스’에 비견될 만하다. 부동산에 눈이 밝은 혹자는 상하이가 곧 ‘뉴욕’처럼 성장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홈쇼핑 채널에서는 상하이를 ‘동양의 파리’라는 관광 상품으로 홍보한다. 홍콩의 대항마이자 아시아의 베니스이며, 뉴욕이고, 파리이기도 한 상하이. 대체 그 정체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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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의 도시라는 주홍 글씨?


타자와의 비교와 비유를 통해서만 비로소 자신의 특성을 소개할 수 있는 도시, 상하이. 상하이 아트 신이 특별했던 건 바로 이런 특성을 애써 숨기거나 반대로 이를 극복하려 애쓰지 않고, 그것이 바로 상하이의 본래적 특성임을 인정한 모습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유즈 미술관에서 열린 <The Artist is Present>는 스스로를 조롱하고, 그럼으로써 면죄부를 획득한 기상천외한 전시회로, 희대의 재주꾼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아이디어다. 그 자신이 작가이기도 한 카텔란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유명 퍼포먼스 제목을 전시명으로 그대로 따왔고, 중년 여성이 빨간 옷에 머리를 한쪽으로 땋아 넘기고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을 포스터로 사용했다. 언뜻 보면 마치 이 전시회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이 출품됐거나,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 유명한 퍼포먼스가 재연된다고 착각할 법하다.




그러나 전시장 어디에서도 이 작품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그녀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아니다. ‘나는 복제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관객을 맞이하듯, 전시장 내부는 짝퉁 천국이다. 제임스 터렐과 댄 플래빈을 결합한 것 같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작품은 카퐈니 키왕가(Kapwani Kiwanga)라는 캐나다 작가의 작품이고, 앤디 워홀의 ‘실버 클라우드’를 따라 한(혹은 영감을 받은) 작품은 잘 알려진 필리프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골드) 스피치 버블’이라 반갑다. 바티칸 대성당을 축소시킨 카텔란의 2018년 신작, 빔 델보예(Wim Delvoye)가 인간의 배설 기관을 복제해서 만든 똥 누는 기계 등 ‘복제’와 ‘모방’이 얼마나 중요한 예술적 동인인지 증명하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전시는 구찌와의 협업으로 이뤄졌는데,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카텔란에게 제시한 키워드는 단 둘, 바로 ‘상하이’와 ‘복제(copies)’였다. 짝퉁 쇼핑의 메카가 되어 오리지널의 복제품이 난무하는 도시 상하이에 대한 패션업체의 고민을 담은 지적인 화두를 던진 셈이다. 카텔란은 그것이 바로 상하이의 오리진이라는 답을 건네고 있다. 19세기 중엽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항하며 조계지라 불리는 각종 짝퉁 도시가 생겨난 곳이니 말이다. 촌철살인의 유머가 돋보이는 이 전시에 대해 인터넷에서 좀 더 리서치를 해보면 서구의 어느 도시 벽에 이번 전시의 포스터가 크게 그려진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먼저 유럽에서 열린 전시를 상하이에서 연 거구나! 상하이는 미술관(하드웨어)은 많지만 아직 전시 기획력(소프트웨어)은 부족하니 전시를 수입했겠지’라 짐작할 법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먼저 열렸을 전시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이 전시는 사실 열리지 않았고, 상하이 유즈 미술관 전시가 첫 전시다. 다만 그 포스터는 이 같은 짐작을 하도록 주최 측이 던져놓은 미끼다. 예술계에서 상하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패션계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복제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상하이의 고유성


롱 미술관, 유즈 미술관, 차오 스페이스, 탱크 등 상하이에 속속 들어서고 있는 뮤지엄은 대부분 개인 컬렉터가 운영하는 사립 미술관이다. 이들은 작가를 발굴하거나 전시를 기획하는 것보다는 크고 멋진 미술관을 압도적인 건축물로 과시하거나, 이미 해외에서 성공한 유명 전시회를 유치해왔다. 심지어 적극적으로 갤러리와 전시 협업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2017년 롱 미술관에서 열린 앤서니 곰리 전시회는 화이트 큐브 갤러리가, 올해의 루이스 부르주아 전시회는 하우저 & 워스 갤러리가 깊이 관여했다. 포선 파운데이션(Fosun Foundation)에서 전시 중인 신디 셔먼 전시회도 메트로 픽처스 갤러리가 기획했다. 곧 퐁피두 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니, 상하이를 두고 ‘동양의 파리’라고 한 표현은 점차 현실이 되어가는 듯하다.



외관을 복제하고, 콘텐츠를 복제하며 점차 글로벌 예술 도시의 면모를 갖추어나가는 이곳에 아트 페어가 빠질 수 없다. 아트 바젤 홍콩의 성공을 눈여겨본 중국인들이 본토에 아트 페어를 유치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만든 것이 바로 웨스트번드 아트 페어이며, 중국 컬렉터들이 자국의 아트 페어를 키우자며 만든 것이 바로 아트021 페어다. <The Artist is Present> 전시장에 걸려 있던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복제하고 복제하고 또 복제하라. 복제의 끝에서 당신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는 선언문처럼 각종 미술 기관이 생겨난 지 5년 정도 지난 지금, 각각의 열매가 무르익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제 상하이는 더 이상 당신이 알던 상하이가 아니다. 상하이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특히 단색화 전시회를 위해 상하이를 방문한 다수의 한국 미술 관계자와 컬렉터가 외치는 “여기 정말 외국(?) 같다!”라는 탄성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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