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2012년 3천억원에 구입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의 소유자를 보유한 나라로 널리 이름을 떨친 카타르. 이후로도 2015년 고갱의 ‘언제 결혼할 거니’를 3천6백억원에,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을 2천억원에 구입한 이가 각각 카타르의 뮤지엄과 카타르 투자청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지하철 같은 기초적인 도시 인프라도 구축되지 않은 이곳에서 유명 미술 작품을 구매하고,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빙해 미술관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타르는 아라비아 반도의 오랜 토후국 중 하나로 영국 식민지 시대가 종식된 1971년 아랍에미리트연방(UAE)에 귀속되지 않은 독립국가로 출범했다.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여전히 왕족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우리나라 경기도 정도의 면적(약 11만m²)에 인구가 2백20만 명인 작은 나라다. 하지만 원유 외에도 가스 매장량이 세계 3위에 달하는 등 풍부한 천연자원 덕분에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로 손꼽힌다. 코르니쉬 해변을 따라 뉴욕의 마천루 못지않은 현대 도시의 위용을 뽐내는 카타르의 수도 도하는 이 작은 왕국의 번영을 뽐내는 결정체다. 바로 이 코르니쉬 해변의 남단에 세계에서 꼭 가봐야 할 7대 미술관으로 선정된 이슬람 미술관(Museum of Islamic Art)이 있다. 2008년 완공된 이 곳은 이슬람 국가에서 오롯이 이슬람 문화에 헌정한 최초의 미술관이다. 격동의 근대사를 겪은 데다 서방국가에 대척되는 정치적, 종교적 갈등 탓에 21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이슬람 문화를 집대성한 미술관을 세우게 된 것이다. 건축물은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로 유명한 중국계 미국인 아이밍페이가 맡아 이슬람 사원을 모티브로 설계했고, 내부는 루브르 박물관의 실내 건축으로 잘 알려진 장 미셸 빌모트가 담당했다. 2011년에는 미술관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의 끝에 높이 24m에 달하는 리처드 세라의 거대한 메탈 조각 ‘7’을 설치했다. 이슬람 모스크의 종탑을 상징하는 이 조각은 이슬람 문화에서 과학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담은 숫자 7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명성 높은 해외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유치하며 문화적 네트워크를 착실히 쌓아나가는 행보도 이슬람 문화를 서구의 유수 문명과 같은 차원에 올려놓기 위한 포석이다. 2012년부터 2013년에 연이어 개최한 무라카미 다카시와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가 대표적인 사례로, 자국민에게 세계 문화 예술의 흐름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도시명인지 국가명인지 혼동될 정도로 미약한 카타르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2015년부터는 ‘뉴욕타임스’와 공동으로 ‘내일을 위한 예술’이라는 행사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고, 소방서를 개조한 예술가 레지던시는 파리 시테 레지던시와 손잡고 2018년부터 카타르의 예술가들을 파리에 파견하고 있다. 사막의 모래꽃을 모티브로 한 장 누벨의 건축도 내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는데, 이로써 2008년에 개관한 이슬람 미술관의 확장 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한낮이면 열기가 50℃에 이르러 정류장까지 걸어나갈 수조차 없는 뜨거운 사막의 나라. 그래서 아직 카타르에는 지하철도 없고 버스도 간간이 다닐 뿐이다.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이제야 대중교통 등 기반 시설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장 누벨, 렘 콜하스, 이소자키 아라타 등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고, 루이즈 부르주아, 수보드 굽타 등 세계적인 예술가의 조각이 도시 곳곳에 놓여 있으며, 수준 높은 무료 전시와 공연이 상시로 열리는 이 나라의 국민들은 결국 그 혜택이 그들 자신을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천연자원에 의지했던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국민들의 계몽을 위한 교육 개혁으로 전향하고, 나아가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며 선진국으로 빠르게 도약하기 위해 문화를 선택한 나라 카타르. 성공을 이룩한 뒤에 문화를 확립하기보다 문화를 통한 성장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더 쉽고 현명한 방법이라는 점과, 교육 수준이 높아진 다음에는 궁극의 지향점이 문화적 욕구로 귀결될 것임을 미리 간파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지정학적 열세에 있기 때문일까. 눈에 보이는 효율이 아니라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는 카타르의 문화 정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