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포더블 아트, ‘디지털’ 타고 지각변동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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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4, 2016

에디터 고성연

인류의 일상에서 ‘뉴 노멀’이 된 디지털 흐름이 콧대 높던 미술계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미술 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즈음, 국내외에서 온라인 기반의 경쟁력 있는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큰손들의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이는 미술 시장에서 투자 목적보다는 단순히 즐기고자 하는 밀레니엄 세대 컬렉터들이 갈수록 부각되는 데 따른 변화이기도 하다. 드디어 ‘어포더블 아트(affordable art)’라는 슬로건이 대중의 삶에 진정성 있게 반영되는 시대가 펼쳐지는 걸까? 과연 시장의 지형 자체를 바꿔놓을 만한 패러다임 전환의 단초가 될까? 어쨌든 변화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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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구입이란 함께 생활하고 싶은 작품을 사는 것이다. ” _애덤 린드먼

흔히 아트 컬렉터는 예술을 몹시도 사랑하는 ‘큰손’이나 미래의 자산 가치를 감안해 우량주를 수집하는 투자자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글로벌 미술 시장이 수년째 활황이라지만 ‘그들만의 리그’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수요자만이 아니라 공급자 측면에서도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블루칩 중심의 하이엔드 시장만 고공 행진을 할 뿐 애매한 중간 지대에 자리한 작가들이나 신진 작가들은 미술 시장 활황의 덕을 그다지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흔하디흔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예술 작품을 가까이 두고 즐기고픈 건 사실 누구나 품을 만한 마음이다. ‘예술 문외한’을 자처하는 이들조차 언젠가 미술관에서 본 명화 비슷한 그림 한 점을 집에 두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 정도는 해본 적이 있을 테니까. 그것이 마침 피카소나 모네, 워홀이었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접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말이다(물론 프린트 작품을 사서 벽에 걸어두는 대안을 택하기도 한다). 그래도 소소한 애호가 대열에 끼어드는 용감한 이들도 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희귀재라는 특성을 지닌 ‘오리지널’ 미술품을 사들이면서 컬렉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디지털을’ 타고 대중에 다가서다, 어포더블 아트의 부상
그런데 이때도 ‘블록버스터’의 논리가 고개를 불쑥 내민다. 아무리 좋아서 구매한다고 해도 미래의 자산적 가치를 감안하면 초우량주는 엄두를 내지 못하더라도 이미 세간의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를 선택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면, 아예 투자가치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부담없는 가격대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앞뒤 재지 않고 사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술 저술가이자 컬렉터 애덤 린드먼이 말했듯이 ‘함께 생활하고 싶은 작품’이면서 자신의 기준에서 가격도 합리적인 ‘어포더블 럭셔리’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상의 주목을 받는 ‘아트버스터’가 된다면 그건 고마운 ‘덤’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실제로 이런 유형의 수요자들을 둘러싼 변화가 온·오프라인에서 일어나고 있다.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갤러리(상업 화랑)들이 주축을 이루는 아트 페어에서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세계적 아트 페어 브랜드 아트 바젤이나 피악(FIAC, 파리 미술 축제)처럼 고고하고 우아한 이미지가 아니라 텐트 속에서 펼쳐지는 젊은 감각의 아트 페어인 런던의 프리즈(Frieze Art Fair), “누구나 미술 작품을 소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지난해 한국에도 상륙한 어포더블 아트 페어 등이 글로벌 차원의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 친화적인 아트 마켓을 이끌고 있는 주 세력이다.
더 흥미로운 변화가 싹트고 있는 영토는 아무래도 온라인이다. 디지털 시대가 꽃을 피우면서 미술품이 거래되는 온라인 플랫폼이 속속 등장했는데, 특히 신흥 경매업체들이 최근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스타 예술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투자한 업체로 1천달러에서 10만달러대까지의 미술품으로 젊은 층을 공략하는 미국의 패들에이트(Paddle8),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둔 옥셔나타(Auctionata)가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미술계 구글’이라고 불리며, 실제로 에릭 슈미트(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 회장)가 투자했다는 온라인 플랫폼 아트시(Artsy)는 정보 제공과 거래 중개를 주로 하다가 최근 10만달러 이하의 작품 위주로 자체적인 온라인 경매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미술계에서는 ‘초짜’인 온라인 강자 아마존도 미국 갤러리들과 협약을 맺고 ‘아마존 아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창조적 파괴’는 오프라인의 거성인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기존 강자들의 몫이 아닌 듯하다.

룩인아트(Lukinart), 관람객이 가격 산정에 참여하는 신개념 온라인 갤러리
한국에서도 의미심장한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어포더블 아트를 내세운 개성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해외에서는 단색화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미술 시장은 주춤한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은 미술 시장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도 반가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얼마 전 문을 연 룩인아트(www.lukinart.com)는 자못 기대가 되는 이색 온라인 갤러리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대중에 소개한다고 주장하는 갤러리답게 그 면면이 꽤나 흥미롭다. 일단 작품가를 산정하는 방식이 여느 갤러리들과 다르다. 일방적으로 작품가를 제시하는 대신 작품을 감상하는 대중의 ‘여론’에 따라 호당 단가를 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룩인아트에서 개최하는 온라인 전시에 출품한 신인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고 치자. 관람객은 페이스북의 ‘좋아요’처럼 하트 표시를 눌러 정서적인 ‘지지’를 보내거나, 별 표시를 눌러 ‘후원’을 할 수 있다(1천원 단위에서 출발한다). 물론 신인의 기준가는 있지만(대개 호당 4만~8만원) 전시 중에 얻은 상대적 지지도를 반영해 다음 전시 작품의 가격을 정하는 것이다. 여론이 척도가 되므로 작품가에 공감할 수 있고, 관객은 좋아하는 작품을 지지하며 후원해줄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가격 산정 알고리즘으로 국내외 특허도 출원했다는 룩인아트 박정호 대표는 20년 넘게 광고 기획계에서 뼈가 굵은 AE 출신의 사업가인데,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공감의 여론’을 모아 수요를 창출하고, 집단 지성을 바탕으로 가격을 산출한다면 대중이 만들어낸 새로운 스타 작가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베테랑 기획자의 역량을 살려 관람객들의 작품 이해를 돕는 큐레이션 메커니즘도 만들었다. 아티스트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된 문장으로 표현한 ‘작가의 메시지’와 평론가들의 감상 포인트를 게재하고 관람객들의 의견도 ‘댓글’로 달 수 있도록 했다. 룩인아트는 이렇게 작품과 세상의 소통을 돕는 작가 후원 플랫폼이자(실제로 수익금 중 일부는 작가 후원에 쓰인다) 관람객이 보다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커뮤니티 갤러리’를 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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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Blue), 서울옥션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통합 온라인 플랫폼
미술품 시장은 ‘중고’가 대접받는 희귀한 장터다. 그래서 갤러리 전시를 통해 검증을 받고 좋은 가격에 거래된 작품은 ‘중고 프리미엄’을 안은 채 경매 시장으로 향할 수 있다. 최근 경매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핫’하다. 단색화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 경매업체들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미술 시장 조사업체인 아트프라이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은 세계 경매 시장에서 매출 7천5백만달러로 10위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톱 10’에 올랐다. 국내 경매업계의 양대 산맥인 서울옥션과 K옥션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쾌거다. 이들에게 온라인 경매 플랫폼이란 글로벌 흐름에 동참하는 행보이기도 하고 미래의 성장 동력이기도 하다. 세계 미술품 시장에서 온라인 비중은 33억달러(2014년 판매액 기준)로 전체의 6% 수준이지만,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무적이다. 경매 시장도 유사한 흐름을 타고 있다. 국내 1위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의 경우에도 지난해 온라인 매출 비중이 6%대 정도로 추산되는데, 성장률로 따지면 훨씬 더 빼어난 성적이다. 온라인 브랜드인 이비드 나우(eBid Now)가 지난해 총 8회 경매에서 낙찰액 43억7천1백만원(수수료 제외)으로 전년 대비(4회, 23억8천6백만원) 2배 가까이 성장했다. “횟수와 규모도 늘어났지만 품목의 다양화 경향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2014년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의 미술품이 중심을 이뤘다면 미술품은 물론 빈티지 가구, 도자기, 보석 등 다양한 경매품이 나왔거든요.” 서울옥션 손지성 홍보 수석의 설명이다. 아무래도 고객 연령층이나 거주지도 더 다양해진 것은 물론이다.
올해 서울옥션은 온라인 시장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듯하다. 최근 ‘블루(Blue)’라는 명칭의 온라인 플랫폼(http://seoulauctionblue.com)을 새로 선보이고 동명의 자회사도 설립했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에는 이비드 나우를 통합해 단독 온라인 플랫폼 역할을 할 예정인 블루가 야심 차게 선보인 첫 서비스 ‘프라이스 잇(Price It)’을 보면 아직은 발아기 단계인 온라인 경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서울옥션의 열정이 꽤나 뜨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프라이스 잇은 그림이나 골동품 등 집에 있는 소장품의 가치를 의뢰하면 손쉽게 알려주는 모바일 앱으로, 심지어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1분 정도 시간을 투자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작품 정보를 간단하게 입력하면 ‘접수 완료’다. 며칠 내로 전문가들이 추정가를 알려주는데, 원하면 나중에 경매품으로 위탁할 수도 있다. 누구나 집에 가격을 알 수 없는 소장품이 하나둘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꽤나 구미가 당기는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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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옥션의 투트랙 전략
수요자 입장에서 온라인 경매의 매력으로는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는다는 점이 종종 꼽힌다. 서울에 있는 경매 회사를 굳이 찾지 않아도 지방 고객들이 얼마든지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접근성을 선사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순기능은 갤러리 문턱을 넘기 힘들어하던 이들에게 진입 장벽을 허물어준다는 점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초보 컬렉터들에게 미술 시장으로 부담 없이 진입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온라인 경매 시장의 개척자를 자처하는 K옥션은 이러한 장점을 ‘체득’한 사례다. 2006년부터 온라인 경매를 시작했으니 이미 10년 차다. 미술 시장이 디지털 영토에 큰 공을 들이지 않던 시기부터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온라인 경매에 정점을 찍었다. 무려 20회의 온라인 경매를 진행했고, 평균 낙찰률 90%를 달성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횟수가 많아지고 워낙 다양한 위탁품을 관리하다 보니 좀 더 체계적인 운영 체제를 갖춰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해외 온라인 시장에서는 1천달러에서 5만달러대 작품이 가장 활발하게 거래된다는 통계가 있지만 국내 사정은 다소 다르다. 물론 ‘온라인=저가’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경매 회사를 신뢰하는 단골 고객들이 있기에 온라인 경매에서도 1억원대까지 치솟는 작품이 나오긴 하지만 1백만원 선을 훨씬 밑도는 각종 소품류 작품도 즐비하다.
지난해 말 K옥션은 ‘미술품 소장의 대중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중저가 온라인 미술품을 주로 취급하는 경매업체 옥션온(auctionon.co.kr)을 설립했다. 중저가 근현대 미술품과 한국화, 서예, 고가구 등 다양한 고미술품을 두루 다루는 플랫폼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한국 근현대 미술만 아니라 저평가된 한국의 고미술 거래도 활성화할 수 있는 전략적인 접근으로 새 플랫폼을 발족한 것이다. K옥션은 옥션온과 별도로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프리미엄 미술품과 중저가 미술품을 위한 플랫폼을 따로 운영하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을 택한 셈이다. “주로 젊은 고객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저희 기존 고객들을 봐도 늘 무게감이 큰 작품만 소장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작가들의 소품류도 많이 찾습니다.” K옥션 손이천 실장은 이원화 전략을 채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일상에 윤기와 활력을 더해주는 예술의 순기능만 생각한다면 플랫폼이 어떻든 품목의 장르가 어떻든 무슨 상관이랴 싶다. 누구나 아트를 스스럼없이 대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 친화적인 생태계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흐름을 탄 ‘어포더블 아트’가 미술 시장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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