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재미있는 남자 구두 이야기

조회수: 3813
1월 01, 2011

글 강승민(패션 컨설턴트) | 일러스트 김상인

스타일의 완성, 사회적인 지위의 상징, 나만의 취향, 라이프스타일 혹은 히스토리.  남자들에게 있어 구두의 의미를 대변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닐까? 화려함과 다양함은 여성들의 구두에 비교할 수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성들의 구두는 더욱 섬세하고 엄격하며,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미처 몰랐지만 알아두면 재미있는 남자들의 비하인드 슈즈 스토리.



남성 패션은 오묘한 분야다. 가방이나 벨트 같은 것만 해도 여성들이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에 비하면 남성들의 것은 다양함에서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 이는 백화점 매장을 돌아보기만 해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브랜드 숫자도 숫자려니와 매장마다 들어찬 아이템의 개수도 남성 것은 여성 것의 절반 정도에도 못 미치니 말이다. 의상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소재와 실루엣, 패턴을 아무리 비틀고 꼬아도, 일반 남성들이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 큰 재미나 변화는 없다. 그런데도 멋쟁이들은 어디서 찾아내는지, 남들은 모르는 무엇인가를 입고, 걸치고, 뽐내며 다닌다. 그러니 오묘하달 수밖에 없는 게 남성 패션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가 보기엔 늘 심심하고 별 변화 없는 남성 패션이라고? 실망하거나 낙담하기엔 이르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진짜 멋쟁이는 디테일에 주목할 줄 안다. 광고 문구처럼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들 듯’ 진정한 위버 섹슈얼에겐 요란한 변화보다 자신만의 위트와 에지만 있으면 된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아이템 중 필자의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디테일이 훌륭한 슈즈다. 알고만 있었다면 반드시 눈여겨봤을, 모르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아이템들을 모아보았다.



고급 수제화가 지닌 코르크와 레몬의 비밀

수트 한 벌에 수천만원 하는, 이른바 VVIP 브랜드로 불리는 키톤은 슈즈도 자체 제작한다. 콘셉트는 브랜드 이미지에 맞춰 100% 수작업, 최고급 가죽의 핸드 스티칭이다. 이런 소개만 놓고 보면 다른 고급 남성 슈즈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구두, 공들인 염색과 섬세한 수공이야말로 고급 슈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키톤 슈즈의 디테일은 여기에 한발 앞선 특별함을 지녔다. 겉으로 봐선 알 수 없는 ‘코르크 굽’이 그것. 일반적으로 수제 고급화의 바닥은 나무로 만든다. 또각또각, 대리석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한 것은 그 때문이다. 소리가 경쾌한 반면 약간의 불편함도 있다. 고무 재질에 비해 푹신함이 부족해 처음 접하는 사람은 몹시 낯설어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멋쟁이들이 많다. 몸에 딱 맞게 재단해 암홀이 꽉 끼는 수트 재킷을 부의 상징으로 여겨 불편을 감수하는 것처럼 고급 수제화 나무 굽의 견고한 바닥도 기꺼이 참아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키톤 슈즈는 ‘조금 더 편안한 무엇’을 고민한 끝에 코르크 굽을 대안으로 택했다. 나무 굽의 외형을 갖추었으면서도 구두 안쪽 면과 나무 바닥 사이를 잘게 부순 작은 코르크 조각으로 채워 약간의 쿠션 작용을 하게 만들었다. 판형의 코르크를 넣지 않고 잘게 부순 조각을 채운 이유는 바닥면이 신은 사람의 발바닥 모양에 맞게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함이다. 처음엔 평평한 신발 안쪽 면이 신으면 신을수록 발바닥 모양에 따라 변한다는 게 키톤 측의 설명이다. 키톤 슈즈에서 한 가지 더 언급할 만한 부분은 레몬으로 마무리하는 컬러 터치 작업이다. 마무리 단계에서 레몬 조각으로 슈즈 겉면을 섬세하게 닦아내 구두 색의 톤을 조절해가며 광택을 내는, 구두 장인들의 비법이다. 이런 과정 덕에 스타일이 같은 신발도 모두 조금씩 색이 다르다고 한다.

  

 

남성 슈즈, 이제 위트와 실용성으로 어필하다
부침을 겪는 여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달리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에 합류한 1998년 이후 현재까지 나날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존 카마니카는 최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기사에서 “뉴욕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에선 마크 제이콥스가 마이클 블룸버그이며 샘 월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뉴욕 시장, 샘 월튼은 월마트의 창업주다. 하이 패션과 그 서브 라인, 영 캐주얼을 비롯해 북 카페와 인테리어 등 마크 제이콥스가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으며, 웨스트 빌리지에 자리 잡은 다른 패션 하우스의 상점들은 그저 동네의 액세서리 같다는 표현까지도 썼다. 다재다능함을 무기로 삼는 스타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그가 이번 시즌 내놓은 남성용 롱부츠에는 위트가 살짝 가미되었다. 지금껏 그가 구사해온 ‘뭔가 다른’ 디자인의 연장선에 있는 이 슈즈는 무릎 바로 아래까지 닿는 길이다. 갈색과 검정 투톤을 사용했는데, 복사뼈 바로 위쪽에 단 은색 지퍼를 경계로 위쪽은 갈색 가죽으로, 아래는 검정 가죽으로 되어 있다. 길이가 38cm인 이 롱부츠는 지퍼를 열어 윗부분 가죽을 떼어내면 15cm짜리 앵클부츠로 변신한다. 고급 승마 전문 학교인 ‘비엔나 스페인 승마학교’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부츠의 이름은 ‘아카데미(Academy)’다.  20세기 초,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에곤 실레(Egon Shiele)가 활동하던 시대를 모티브로 삼은 이번 시즌 아이템은 비즈니스와 레저를 함께 했던 그들만의 창의적인 패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롱부츠 ‘아카데미’의 ‘2단 변신’은 이런 면에서 위트 있는 디테일이다. 승마용 부츠로 레저를 즐기다가도 앵클부츠에 블레이저 차림으로 비즈니스 업무를 볼 수 있는 실용성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럭셔리 슈즈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 깔창

요즘은 대놓고 ‘깔창은 남자의 자존심’이라 이야기한다. 키 작은 남자를 ‘루저’라고 표현해 설화(舌禍)를 겪은 방송 출연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예능 출연자는 굽 높은 부츠에서 결코 내려올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하니 ‘큰 키’에 대한 남자들의 집착 혹은 욕망은 여자들이 하이힐을 선호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버렸다. 외국의 유명 쇼핑 거리에 가면 이런 현상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키높이 운동화를 파는 어떤 명품 브랜드 숍 앞에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고객들이 줄을 선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운동화와 다름없지만 안쪽에 숨은 굽을 넣어 키높이 효과를 낸 신발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게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 셈이다.

그러니 드라이빙 슈즈는 ‘깔창 애호가’에겐 결코 가까이해선 안 될 아이템이다. 본래 목적 자체가 운전을 최적화하는 발의 편안함이니 부가적인 깔창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카신 형태가 대부분인 드라이빙 슈즈는 마치 여성들의 ‘덧버선’처럼 발을 감싸주는 정도의 역할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드라이빙 슈즈를 신고 운전만 하란 법이 어디 있는가. 그러다 보니 드라이빙 슈즈를 신고 걸으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라고 주장하는 남성들도 많다. 깔창이 대세인 시대에 ‘無 깔창’을 용납할 수 없어서다. 다른 이들이 최소 2~3cm 되는 깔창의 도움을 받아 높은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굴욕적인 느낌 따윈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 되면 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키높이 드라이빙 슈즈’가 눈에 띄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 브랜드에서 이번 시즌에 선보인 드라이빙 슈즈 ‘프란츠 2(Franz 2)’에는 숨은 굽이 들어 있다.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드라이빙 슈즈를 신을 때도 자존심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남성 고객들을 위해 안쪽에 2cm짜리 깔창을 넣은 것이다. 본래 구두 굽과 합하면 높이는 총 3cm다. 약간의 굽이 있긴 하지만 드라이빙 슈즈의 편안한 본질을 해칠 만큼은 아니다.

  

 

‘구두 장인의 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구두에 경의를 표하라

고급 신사화의 정상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브랜드는 무수히 많다. 특이한 것은 각축을 벌이는 브랜드는 명품 패션 하우스와는 또 다른 브랜드라는 점이다. ‘신사’의 대명사인 영국의 수제화 브랜드부터 장인을 앞세우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브랜드는 물론, 최근엔 일본 브랜드들도 이 대열에 끼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마다 ‘특별한 무엇’을 만들어내려 안달을 한다. 이런 와중에 ‘존 롭’이란 브랜드의 행보는 다소 독특하게 다가온다. 본래 영국의 구두 장인 존 롭이 창업한 이 브랜드는 영국 왕실에 납품하기도 해 영국 왕실의 인증 문장을 사용하는데, 현재 에르메스 그룹에 속해 있다. 여전히 영국의 전통 기술로 구두를 제작하지만, 디자인 총괄은 에르메스의 디자이너 필리프 무케(Philippe Mouquet)가 맡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굳이 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의하자면, ‘프랑스 회사가 운영하는 영국의 정통 신사화 브랜드’인 셈이다. 에르메스라는 브랜드가 그러하듯 존 롭 역시 특별한 무언가를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존 롭은 존 롭’이라는 명제에 충실할 뿐이다. 최고의 구두를 만들면 최고의 고객에게 선택받는다는 사실을 상품으로 입증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화려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은 이 브랜드에서 기념하는 것은 ‘구두 장인의 날’이다. ‘Saint-Crepin’s Day’라 명명된 이날은 매년 10월 25일로, 장인들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날이다. 유럽 지역에선 이날을 기념해 대규모의 구두 디자인 경진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브랜드 존 롭이 무엇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상품이 ‘John Lobb Saint-Crepin’s  0000’이다. 매년 이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디자인이 나오기 때문에 ‘0000’은 상품 출시 연도를 뜻한다. 존 롭 측은 이 상품에 대해 “구두 장인들의 뛰어난 재능을 뽐내는 진정한 명작의 창조를 통해, 존경받던 수호성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탐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장인들이 그들의 직업에 대한 진정한 열정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정통화를 지향하는 슈즈 애호가라면 눈여겨볼 만한, 의미 있는 날을 되새기는 구두인 셈이다. 외형의 아름다움보다 제품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고급 슈즈를 신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니 말이다.

 

  

신다가 다른 컬러로 바꿔주는 신개념 커스터마이징, 염색 서비스

단단한 향나무로 만든 슈 트리(shoe tree)는 구두 모양이 틀어지지 않도록 하고 가죽에 밴 땀과 악취를 제거해준다. 한번 신고 벗을 때마다 챙기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장인의 손길을 오래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남성용 고급 구두에 대한 투자가치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이만한 수고쯤은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신다 보면 닳아 없어지는, 말 그대로 생활 필수품이지만 이런 고급 슈즈 애호가들은 뛰어난 품질 못지않게 서비스에 대한 기대도 큰 편이다. 사람들이 명품을 명품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고액을 지불하는 이유는 거기에 평범한 제품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가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이든, 명품 매장에서 받는 서비스든, 완벽한 품질이든, 분야는 상관없다. 그런 면에서 아. 테스토니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안티카토 서비스’는 디테일에 신경 쓰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방법인 듯하다. 이것은 일종의 염색 서비스다. 구두 구입 시, 기존 제품의 색상을 취향에 따라 바꾸거나 디테일을 추가할 수도 있고, 일단 구입해 신다가 다른 색상으로 바꿀 수도 있는 서비스다. 비용은 무료다. 블랙 라벨과 스튜디움 라인 제품의 브라운 계열 정장화에 적용된다. 신던 신발의 색상을 변화시키고자 할 땐 가죽이 너무 심하게 손상되지 않은 경우라야 가능하다. 색상 변화는 미묘한 디테일이지만 구두 신기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충분해 보인다. 총 네 종류 중 원하는 것을 고르면 된다. 매끈하고 균일한 색상의 브라운 정장화 전체를 앤티크하게 꾸미기도 하고, 나무색처럼 아주 옅은 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공하기도 하며, 앞코와 뒤꿈치 부분에만 그러데이션을 추가할 수도 있다. 또 구두의 스티치나 장식 구멍 등을 따라 진한 그러데이션 처리를 해 밋밋한 디자인에 포인트를 줄 수도 있다. 네 가지 방법 중에서 중복 선택도 가능하다.



(오른쪽 맨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바탕에 크게 자리한 구두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가에타 2 슈즈. 최상의 송아지 가죽에 정교한 스티치, 그리고 트라메짜 라인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루버 솔(고무 밑창)은 페라가모 슈즈 장인의 소재에 대한 실험 정신과 자신감을 드러낸다.

왼쪽에 있는 구두는 키톤의 블랙 스웨이드 로퍼. 정교한 스티치가 섬세하고 날렵한 인상을 준다. 모델이 신은 부츠는 루이 비통의 다기능 라이더 부츠.

지퍼를 활용해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가운데 스케치로 형상화한 구두는 존 롭의 다크 브라운 슈즈. 더블 버클 장식이 시크한 매력을 더한다. 왼쪽 아래에 있는 구두는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세상에서 하나뿐인 구두를 만들어주는 맞춤 구두 서비스로 제작한 존 롭의 비스포크 슈즈.

맨 아래의 구두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모카신 스타일 드라이빙 슈즈 프란츠 2. 구두 안에 2cm의 굽이 숨어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