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21-22 Winter SPECIAL] ‘로그 인 부산’, 미래의 시간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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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5, 2022

글 김수진(디블렌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 2021


최근 영화배우 유태오의 감독 데뷔작 <로그 인 벨지움>이 개봉했다. 벨기에 앤트워프로 촬영하러 간 유태오가 갑작스러운 팬데믹을 만나 낯선 도시의 호텔 방에서 격리를 하던 중 스마트폰으로 본인 모습을 기록한 데서 시작되는 영화다. 그가 느낀 외로움과 두려움, 혼란 속에서 인간미 넘치는 일상과 오프 더 레코드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이 외로울 때, 그 사람은 진짜가 된다.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지금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래가 그립나요>라는 전시와 맞닿는 공감대를 지니고 있다. 요즘처럼 불안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불확실한 시간의 작동 방식을 또 다른 방향으로 디자인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다국적 크리에이터들이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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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방에서 더 견디지 못할 상태가 되면, 아프리카의 확 트인 공간을 돌진하는 거대한 동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러자면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그 노력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해주었죠.”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 속 주인공 모렐은 이렇게 말했다. 나치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모렐은 한마디로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인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열악한 수용소에서 일종의 게임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코끼리를 상상하며 살아남는다.


아마도 오늘날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들도 작금의 난제에 둘러싸여 로맹 가리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았을까. 부산 망미동의 명소 F1963에 자리한 복합 전시 공간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 2021> 전시의 막을 올렸는데, ‘시간의 가치’라는 주제 아래 ‘미래가 그립나요(Do You Miss the Future)?’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멋지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의 시간은 과연 어떨지에 대한 의문들. ‘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은 글로벌 무대를 누빌 디자인 전문 큐레이터를 양성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첫 행사라 더욱 뜻깊다. 올해 1회 수상자로 심소미 독립 큐레이터의 아이디어가 채택됐는데, 현장에서 만난 그녀는 “이번 전시는 인류가 잃어버린 미래의 시간을 복기하고자 기획했다”고 말했다.


불안한 현실 속 삶에 밀접한 디자인 가치를 모색

미래학자들은 2050년이면 기후 난민이 2억 명으로 늘어나 현재보다 1백 배 가량 삶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위기에 대비하는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다룬 ‘포스트 시티’, 산업 현장과 노동,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관계를 다룬 ‘고스트 워크 & 휴먼’, 생명과 물질,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며 등장한 ‘하이퍼 오브젝트’, 가까운 미래지만 상상하기 쉽지 않은 시간대로 우리를 안내하는 ‘2050’ 등의 파트로 이어지는 전시는 영화적으로 펼쳐진다.
줄리앙 코와네와 심소미가 결성한 그룹 ‘리트레이싱 뷰로’의 작품 ‘아무것도?(Rien?)’는 팬데믹 이후 도시 공간의 위기 속 미래 도시를 향한 불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스크린 앞에 설치된 아크릴 패널은 봉쇄된 도시에서 시민으로부터 위협을 느낀 은행이 ATM을 보호하고자 사용한 재료로, 미래 없는 삶에 저항하는 공공과 금융 권력 사이의 긴장을 느끼게 한다. 안성석 작가의 ‘어린이’는 감성적인 톤으로 우리의 불안감을 담았다. 우리 모두 어린이였던 시기를 회상하며 어른의 세계에 담긴 불안과 좌절을 구름의 움직임, 아이들의 웃음 등으로 해소하는 듯하다. ‘2050의 서체’를 상상해본 디자이너 오예슬과 장우석의 작업도 재치 있다. ‘과연 기술이 더 발전할 2050년 무렵엔 우리가 영혼을 담는 말과 글을 더 수월하게 읽고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블라단 율러의 작품 ‘신채굴주의’는 금방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필름을 다 보고 나면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디지털 자본주의나 데이터 자본주의에서 채굴되는 주요 자원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니 말이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피플, 드로잉 아키텍처 스튜디오도 공간을 수놓는 감각적인 설치 작품으로 참가하는 등 요즘 ‘핫’한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전시에 생동감을 더해준다(오는 3월 31일까지).


평온한 사색으로 이끄는 F1963의 정원

전시를 보고 난 뒤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F1963으로 이어지는 작은 정원은 또 다른 사색으로 이끌어준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가득한 정원은 따듯한 정서와 비움의 미학이 담겨 있어 마치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정원 사이사이, F1963에서 운영하는 아트 라이브러리나 최근에 오픈한 유리 온실 도서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예스24 중고 서점, 최욱 건축가의 미감이 가득한 귀여운 카페 등도 만날 수 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이 위치한 F1963(고려제강의 옛 철강 공장 부지)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된 이후 부산의 상징적인 복합 문화 공간으로 명성을 떨쳐오고 있다. 부산에 사는 예술가들이 매일 아침 이 단지 내의 카페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F1963 자체가 마치 ‘문화의 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서점과 도서관까지 들어와 부산에서 가장 지적이고도 문화적인 명소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 연결선상에서 지은 최욱 건축가의 작품인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역시 기업들의 ‘문화적 협업’이라는 큰 상징성을 지니는 존재다. <하늘의 뿌리> 속 코끼리처럼, 인간을 살릴 수도 있는 강력한 상상의 코끼리는 이런 장소에서 커나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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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21-22 Winter SPECIAL]

1. Intro_일상의 조각들 응시하기 보러 가기
2. Front Story_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예술혼을 기리며_자유의지의 환상을 넘어서고자 했던 현대미술 거장 보러 가기
3. 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 2021_‘로그 인 부산’, 미래의 시간을 상상하다 보러 가기
4. 지상(紙上) 전시_Portraits of Our Times_서문(Intro) 보러 가기
5. 지상(紙上) 전시_Portraits of Our Times_앤디 워홀(Andy Warhol)보러 가기
     지상(紙上) 전시_Portraits of Our Times_알렉스 카츠(Alex Katz)보러 가기
     지상(紙上) 전시_Portraits of Our Times_플로린 미트로이(Florin Mitroi)보러 가기
     지상(紙上) 전시_Portraits of Our Times_빌리 장게와(Billie Zangewa)보러 가기
     지상(紙上) 전시_Portraits of Our Times_앤 콜리어(Anne Collier)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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