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한숨 달래는 ‘경계 확장형’ 행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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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3, 2017

에디터 고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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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책이 1백만 권 팔리기보다는, 한국 작가 1백 사람 책이 1백 군데 출판사에서 나와 각각 1만 권 팔리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의 이런 글을 보고 심히 동감한 적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출판 세계에서도 저자 브랜드를 업은 블록버스터의 법칙이 꾸준한 위세를 발휘하는 게 현실이다. 서점업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 브랜드 서점이 장악하고 있는 책 세상에서 동네 책방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취향 저격’을 외치며 고군분투하는 독립 서점, 소규모 자금과 인력으로 꾸려가며 나름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1인 출판사의 행보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요즘이다.


“요즘 젊은 애들은 책을 통 안 읽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한탄이다. 커피값은 좀처럼 아끼지 않으면서 마음의 양식이 될 책에 투자하는 데는 인색하다면서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의 모습은 세계 어디 가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책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은 수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문명과 지식의 진화를 오래도록 이끌어온 매체 아닌가. 그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시들어가는 ‘상품’으로 내버려두는 냉정한 태도를 취하기에는 너무도 위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너도나도 ‘책 읽는 사회’를 외치기는 하는데,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서점이나 출판사 같은 공급자 진영에서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푸념하지만, 수요자인 독자들은 과연 잠시라도 카페인보다 행복감을 선사할, 금쪽같은 시간을 내줘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양서(良書)가 충분히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하냐는 반문을 한다. 출간된 지 한참 지난 책도 할인 대상이 되지 않는 도서 정가제가 외려 부담이 된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카·페·인’ 우울증과 디지털 디톡스, ‘웃픈’ 현실

물론 새롭고도 좋은 책은 여전히 존재한다. 열혈 독자도 존재한다. 비록 책을 잘 접하지는 못해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곱게 품고 있는 ‘잠재 독자’도 분명 꽤 많을 터다. 문제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아닐까 싶다. TV와 PC, 게임기, 스마트폰 등 온갖 디지털 기기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우리네 스마트 세상. 애써 멀리하려고 해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인터넷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이퍼텍스트’에 노출돼 있다. 전통적인 텍스트가 아니더라도 항시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 네트워크 세상의 읽을 거리, 볼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단지 ‘종이 책’이라는 형태가 아닐 뿐, 어쩌면 넘칠 정도로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있기에 그걸 소화하기에도 힘이 달리는지 모른다. ‘디지털 피로’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이니 말이다.
심지어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로 저도 모르게 타인과 비교를 일삼으며 ‘행복 강박증’을 겪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또 컴퓨터에서 멀어진 상태에서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게 어렵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인터넷이 수많은 정보의 연결 고리를 제공하는 데는 유능하지만, 깊고 지속적인 사색을 유도하지는 못하고, 당연히 사고를 통제하는 능력도 약화시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에 따라 일부러 스스로를 비(非)네트워크 환경으로 밀어 넣어 강제 휴식을 취하면서 평온과 집중력을 되찾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라는 개념도 덩달아 떠오르고 있는데, 이런 요법 중 하나로 ‘종이 책 읽기’를 추천하고 있다. 단 몇 시간이라도 스마트 기기에서 벗어나 종이 책의 활자에 집중하는, 어쩌면 아주 간단한 일이 모처럼 큰맘 먹고 도전해야 하는 과제 혹은 비결처럼 여겨지는, 그야말로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종이 책의 부활, 먼 나라 얘기?

이렇듯 디지털 환경 속에서 지친 영혼을 달래려는 독서 수요가 커지고 있어서일까? 최근 미국에서는 종이 책이 부활할 조짐을 보인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출판협회(AAP)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페이퍼백 서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8% 증가한 10억1천만달러, 하드커버(양장본) 서적은 0.9% 증가한 9억8천9백만달러에 이르렀다고. 대조적으로 e북 매출은 20% 하락했다. 또 미국 서점 매출이 2014년 전년 대비 1.6% 감소한 이래 2년 연속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점도 눈에 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내내 감소 일로를 걸어온 상황이라 예전의 규모를 회복한 건 아니지만, 나름 의미 있는 변화다. 전자 서적 시장이 상승세를 타면서 주요 출판사들의 e북 가격이 인상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주요한 이유는 전자 기기 사용을 더는 늘리지 않거나 줄임으로써 디지털 피로를 극복하려는 수요 덕분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또 책 시장의 지형을 바꿔놓은 온라인 서점의 포화 속에서 꾸준히 제 갈 길을 모색하던 오프라인 서점의 노력도 빛을 발하는 듯하다. 특히 저마다 다른 개성을 내세운 독립 서점의 반격이 눈길을 끈다. 니혼 게이자이 신문 등 주요 언론 보도를 인용하자면 2009년 1천6백51개이던 미국 독립 서점 숫자는 2016년 2천3백11개로 증가했다. 아마존 같은 거대한 온라인 서점업계의 공룡, 그리고 이에 대적하기 위해 한층 대형화 추세에 합세하던 전통 오프라인 강자의 틈바구니에서 독립 서점, 동네 서점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많은 이들이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자리매김한 미국 포틀랜드의 파월즈 북스(Powell’s City of Books)가 있다. 독립 서점으로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파월즈 북스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1백만 권 이상의 장서를 갖추었는데, 중고 책, 새 책, 양장본 같은 두꺼운 책과 얇고 저렴한 책을 함께 진열해 다양한 이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있다. 또 같은 책이라도 표지 유무와 훼손 상태 등을 따져 가격 차이를 두는 유연성도 발휘한다.


책이 아니라 문화를 제안하는 공간의 부상

사실 이 같은 오프라인 서점의 부활은 예고된 바 있다. 온라인상에서 지적 자본이 될 수 있는 유료 콘텐츠를 파는 마켓 플레이스인 퍼블리에서 펴낸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 리포트>에도 미국 시장에서는 오프라인 서점의 파이가 줄어들고 그나마 남은 서점은 모두 대형화되던 추세는 이제 종착점에 가까워진 듯하다는 전망이 나와 있다. 단지, 서점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파월즈 북스처럼 지역성을 바탕으로 대형 서점이 제공할 수 없는 끈끈한 독자 커뮤니티를 창출해내는 미국 독립 서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주말이면 ‘도깨비 여행’으로 찾는 이들이 많은 일본의 쓰타야(TSUTAYA) 서점 등을 비롯해 ‘라이프스타일’을 부각하는 새로운 유형의 오프라인 서점도 있다. 쓰타야 서점 같은 경우에는 따스한 느낌이 드는 목재 선반에 아늑한 조명으로 여유를 샘솟게 하는 공간도 그렇지만, 제공하는 콘텐츠 자체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요리책 코너에 파스타 책이 있다고 치면 그 옆에는 이탈리아 파스타 면, 소스, 그리고 디자인 브랜드의 프라이팬도 있다. 일본인이라면 절반은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는 멤버십 카드(T포인트)는 서점뿐만 아니라 방대한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수많은 제휴사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고객에게 맥락이 있는 편리함과 감성을 선사한다는 ‘가치’는 온라인 서점이든 오프라인 서점이든 독립 서점이든 서점 산업의 필수 요소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추세를 뒤따라가는 움직임이 보인다. 온라인 서점의 강세가 압도적으로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최근 종이 책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프라인 서점과 독립 서점이 활발하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1백 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종로서적이 ‘여성’ 고객을 주 타깃으로 삼는다는 선언과 함께 14년 만에 문을 열었고, 교보문고는 쓰타야 서점을 벤치마킹해 쇼핑, 휴식, 사교 등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표방한 서점을 일산점, 광교점에 이어 최근 합정점까지 열었다. 전통 있는 출판사 한길사는 얼마 전 서점과 아트 갤러리, 강연장과 회의실 등을 한데 묶은 다목적 문화 공간 ‘순화동천’을 서울 중구 순화동에 선보였다. 책뿐 아니라 미술, 음악, 담론 등이 함께하는 문화적 아지트를 염두에 뒀다고.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비춰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종이 책이 마냥 한숨만 쉬란 법은 없다.


경계의 확장, 어디까지? 작은 서점+1인 출판을 둘러싼 열기

그런 맥락에서 규모는 작지만 저마다 다른 색깔의 콘텐츠와 인상적인 프로그램을 내세우는 독립 서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수치로만 볼 때 전반적인 상황은 굉장히 열악하다. 국내 시장에서 지난 10년간 대형 서점의 비중은 7.6%에서 13.4%로 커졌지만, 약 66m2(20평) 미만의 소위 ‘동네 책방’ 비중은 급감했다. 2005년 1천7백79개이던 소규모 서점 수가 2015년 6백85개로 10년 새 3분의 1로 줄었으니 말이다(‘2016 한국서적편람’).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상당수 독립 서점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면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몇몇 예를 들자면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있는 문학 서점 고요서사 같은 곳은 주민들이 와인을 즐기면서 책 읽기 모임을 갖고 토론을 벌이는 등 각종 프로그램을 꾸리면서 동네의 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양재천 근처에 있는 마이북은 여행 에세이, 자기 계발서, 심리학 서적 등을 다루는 북 카페 겸 서점인데, 이곳에서 구입한 책을 되팔 수 있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정가로 판매하지만 그중 10%를 적립금으로 반영해 인터넷 서점과 동일한 할인율만큼을 돌려받을 수 있고, 다 읽은 책은 70%에 되팔 수 있는데, 돈이 아니라 ‘커피 마일리지’로 돌려받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책 판매는 정체돼 있는데도 책을 만드는 쪽의 움직임은 나름 활기를 띤다는 점이다. 특히 저자 발굴과 참신한 콘텐츠 창출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듣는 대형 출판사가 아니라 소규모 브랜드나 1인 출판업의 존재감이 단연 눈에 띈다. 사실 우리나라 전체 출판사 중 1인 출판업체(4명 이하 직원이 일하는 출판사를 일컬음)가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3이 넘는다(2015년 기준 76.1%). 그렇지만 유통과 마케팅 면에서 이들의 투자 역량은 보잘것없다. 하지만 ‘취향의 시대’답게 다채로운 독자 기호를 겨냥한 콘텐츠가 가끔씩, 그리고 조금씩 더 자주 ‘중박’, ‘대박’을 일궈내고 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와 2위 자리를 <언어의 온도>와 <자존감 수업>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둘의 공통점은 지난해 하반기에 처음 선보였다가 입소문에 힘입어 ‘역주행’으로 치고 올라왔다는 것, 그리고 둘 다 1인 출판사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1인 출판사는 인력과 자금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는 있지만 오히려 한 분야에 집중해 전문성을 키울 수 있고, 책 한 권 한 권에도 훨씬 더 성의를 보일 뿐만 아니라 제반 상황에 더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생태계 전체를 봐도 다양성을 키울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1인 출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는 현상에는 확실히 명암이 드리워 있는 듯하다. “한때 ‘나도 카페나 차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카페 창업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요즘은 ‘나도 출판업이나 해볼까?’, 심지어 ‘나도 책이나 써볼까’ 하는 정서가 엿보이는 게 사실이에요. 백 세 시대에 살 길을 찾다가 이쪽에도 눈길을 보내는 거죠.” 현재 1인 출판 기획을 하고 있는 전직 출판사 편집자의 말이다. “일본에 성공적인 1인 출판 사례가 있지만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또는 압도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솔직히 우리나라 1인 출판사는 적은 투자로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한 건’이 터지겠지, 하는 심정으로 임하는 이들이 많아요.” 물론 도전 정신은 좋다. 하지만 아직도 ‘1쇄’가 온전히 소화되지도 못한 채 잊히는 책이 대다수라는 게 엄연한 현실임을 기억해둬야 할 듯싶다. 글 고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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