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18 SUMMER SPECIAL] ‘아트 허브’ 전쟁, 도시 중심에 성전 대신 미술관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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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4, 2018

글 유진상(계원예술대학교 교수·전시 기획자·미술평론가)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은 마치 중세의 종교를 방불케 한다. 교회나 사원이 서 있던 도시 중심부에 이제 컨템퍼러리 아트를 위한 미술관이 세워진다. 뉴욕, 파리, 런던에서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온라인 예매를 하고서도 긴 줄을 서는 광경은 흔하다. 전시 도록이 초반에 매진되고 몇 개월 뒤 경매 사이트에서 천정부지의 값에 팔리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기간 내 전시를 못 보는 관객을 위해 미술관은 24시간 개방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렇듯 동시대 미술관은 막대한 관광 수입과 흥행을 일으키는 태풍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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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각 도시의 중심에 미술관이 건립되는 추세가 눈에 띄게 빠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1949년 중국에는 미술관 수가 25개였는데, 2016년에는 4천1백9개로 늘어났으며 매년 1백 개 이상의 미술관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각 도시의 중심에 현대미술관이 들어서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의 국공립기관을 위시해 리움, 아모레퍼시픽, 롯데, 아라리오 등 사립 미술관도 활발하게 컬렉션과 전시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다른 아시아 지역을 보면 국가나 도시의 미술관 정책이 불과 5~6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더욱 경쟁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지역 문화 예술의
헤게모니를 노리는 중국의 야심찬 행보
최근 홍콩 정부는 구 중앙경찰국(CPS) 부지를 새로운 현대미술센터로 결정했다. 28,000m²에 16개의 유서 깊은 건물로 이뤄진 타이쿤 센터 포 헤리티지 앤드 아트(Tai Kwon Center for Heritage & Art)의 초대 관장은 뉴질랜드, 한국, 홍콩의 동시대 미술 기관을 두루 거쳤으며 백남준 아트 센터와 M+의 큐레이터로도 일한 바 있는 토비아스 버거(Tobias Berger)가 맡았다. 미술품 면세 지역인 홍콩은 이제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세계적인 경매 회사, 아트 바젤 홍콩,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새로이 이주한 수많은 세계적 메이저 화랑의 클러스터에 이어 M+와 타이쿤 등 최정예 미술관을 거느린 현대미술계의 거대 항모전단이 됐다. 세계 미술품 거래액을 60조원이라고 할 때, 20%에 해당되는 12조원 정도가 중국에서 발생한다. 그중 대부분이 홍콩을 통한 매출이다. 이제 홍콩은 중국을 발판 삼아 아시아 지역의 동시대 미술과 문화 관광 전반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한편 상하이는 2013년부터 푸둥에 면세 구역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상하이 면세 구역 국제문화투자공사와 상하이 국립해외문화무역기지가 참여해 68,000m²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보세 서비스 센터를 연내 완공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의 예술품 보세 수장고, 경매·매매 플랫폼, 감정·보험 기관 등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미 이 구역에서 발생하는 문화재 거래 수익은 매년 5조원대에 이르는데, 이 중 상당수가 매매, 경매, 아트 페어 등을 위한 수장고를 거친다. 상하이에는 최근 수많은 미술관의 신축과 개관이 이뤄지고 있다. 대개 2010년 이후 건립된 미술관은 상하이미술관과 더불어 문화 예술 산업의 전략적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개인 투자가인 류이첸(Liu Yiqian)이 세운 사립 미술관인 롱 뮤지엄(Long Museum)은 2012년 푸둥과 웨스트번드 두 곳에서 개관할 당시 중국 최대 규모의 사립 미술관으로 떠들썩했고, 지금도 상하이를 동시대 미술의 거점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2014년 충칭에 세 번째 미술관이 개관했으며, 올해 우한에 새 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의 세계적인 컬렉터 부디 텍(Budi Tek)이 동명의 자카르타 미술관에 이어 2014년 9,000m²에 이르는 상하이의 룽화(Longhua) 공항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해 설립한 유즈 뮤지엄(Yuz Musuem) 역시 핵심적인 미술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미술관은 특히 인도네시아 아트 신(scene)과 예술가들이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 무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전략적 통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사립 미술관들의 활약은 정부와 시의 전략적 지원과 더불어 상하이가 아시아의 문화 중심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도 금일미술관(Today Art Musuem, 사립, 2002), 중간미술관(Inside-Out Museum, 사립, 2008), 중앙미술학원미술관(CAFA Art Museum, 2008)을 위시해 큰 성공을 거둔 ‘798 미술 단지’에 자리 잡은 UCCA,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 등과 같은 동시대 미술 기관은 중요한 문화적 허브가 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압도적
인 문화 우위를 점하려는 중국의 행보 자체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홍콩,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 보이는 변화는 중국 공산당과 각 도시 정부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돌이킬 수 없는 역학 구도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측을 낳게 한다.
아트 허브 쟁탈전, 투자 경쟁에 나선 동남아시아와 중동
중국뿐 아니라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잇따라 새로운 국제 미술 허브가 들어서는 추세다. 싱가포르 역시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National Gallery Singapore)를 비롯한 10여 개의 주요 미술관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아트 바젤 디렉터 출신의 거물 기획자 루돌프 로렌조(Rudolf Lorenzo)가 만든 아트 페어인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Art Stage Singapore)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트 스테이지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 중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도 진출했다. 이외에도 태국 치앙마이의 MAIIAM, 방글라데시의 다카 아트 센터(Dhaka Art Center), 베트남의 팩토리 컨템퍼러리 아트 센터(The Factory Contemporary Arts Centre) 등은 규모는 작지만 활발한 활동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구 미술의 성공적인 브랜드를 지역의 발전 동력으로 삼으려는 프로젝트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부다비의 사디야트(Saadiyat) 섬 문화 특구의 루브르 아부다비와 구겐하임 아부다비. 건축계 거장 장 누벨이 설계를 맡아 작년 11월에 개관한 루브르 아부다비는 1천5백억원의 건립 비용 외에도 추가로 루브르에 지급하는 로열티 6천억원과 콘텐츠 임대 비용 8천5백억원이 소요되는, 엄청난 고비용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아랍 문화를 중심으로 동시대 미술 전시를 보여줄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30,000m² 부지에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지을 예정이다. 이 미술관들은 부유한 엘리트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명시적 목표를 갖고 있지만, 콘텐츠의 상당 부분을 서구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다. 명품 건축물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지역에는 자하 하디드의 공연 예술 센터, 노먼 포스터의 국립박물관, 안도 다다오의 해양박물관 등도 함께 들어선다. 건축물도 중요하지만, 결국 미술관 전쟁의 핵심은 기획력과 콘텐츠다. 하지만 한국 미술관의 기획력과 콘텐츠는 아직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과 자웅을 겨룰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MoMA, 테이트, 퐁피두까지는 아니더라도 명확한 국제적 수준을 목표로 운영, 인력, 예산, 그리고 무엇보다 컬렉션의 규모와 내용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토비아스 버거는 아시아에서 한국이 가장 역동적인 동시대 미술 작가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단지 작가들을 세계화하고 미술관과 미술 시장에서 탁월한 콘텐츠로 제작하는 시스템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한류 가능성이 궁금하다면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세계적인 감성과 소비의 생태계 속으로 유통하고 순환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K-드라마, K-팝, K-무비가 그러했듯이 동시대 미술 역시 ‘글로벌 무대’에서 뛰놀아야 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성장에 핵심적 요소는 바로 미술관을 국제화하는 것이다. 미술관 전쟁의 막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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