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비스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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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2020

글 김동현(런던 새빌 로의 한국인 테일러) | edited by 장라윤

수트와 비스포크가 위기를 맞고 있다. 다가올 사회는 더 이상 패션에서 장인 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듯 보인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새빌 로 양복점들의 몰락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할 패션과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아름다운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른 봄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새빌 로를 비롯한 런던 전역의 상점이 문을 닫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대다수 양복점은 휴업을 유지하고 있다. 개중에 서너 곳은 다시 개점했지만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누적된 부채를 견디지 못해 폐업한 곳도 상당수다. 나는 겨울이 끝나갈 즈음 완성한 수트를 마지막으로 휴업한 양복점을 떠나 한국에 잠시 귀국했다. 영국처럼 양복업계가 마비된 것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의 사정도 그리 좋지 못한 듯하다. 서울 모처에서는 테일러들의 회동이 열렸는데, 표면상으로는 여러 부자재를 공동 구매해 재료비를 절감한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지금의 사태를 맞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불미스러운 세계적인 재앙 앞에서 강제로 격리된 후 나는 한동안 바늘을 잡지 못하고 그저 침상과 책상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미래에 닥칠 거대한 파도에 지금까지 해온 바느질이 순식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새빌 로의 황량한 거리, 그리고 한국 맞춤 양복업계의 위기를 보며 생각한다. 과연 미래에 비스포크는 필요한 것일까.


특정한 산업이 필수적인가, 그리고 문화적으로 향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판단하기 전에 비스포크의 의미부터 되짚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비스포크의 의미는 능동적으로 시대와 호흡하는, 역사가 검증한 의복이다. 한 철학자가 말한 ‘영원의 시점에서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는 아름다운 가치’ 중 의복에 해당하는 것이 비스포크다. 이 의미가 발전되어가는 내일의 특성에 부합된다면 예술과 기술이 오묘하게 결합된 이 아름다운 산업이 유지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비스포크를 위협하는 미래의 요소는 항상 존재해왔다.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시작된 신사복의 대량생산으로 국내 양복점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미래에는 적은 시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계에 밀려 비스포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만연했다. 기계는 사람의 손이 거쳐야 할 여러 작업을 대신해왔다. 빠르고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옷을 정확히 꿰매는 의류 작업의 기계화는 미래의 가장 큰 특징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한 치의 오차 없이 기계적으로 바느질했거나 몸에 맞춘 옷은 도리어 무언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훌륭한 바느질과 인체를 감싸는 패턴이 비스포크의 특성은 맞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수 없으니까. 이 산업이 매력적인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공예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Been Spoken for’라는 단어의 어원처럼 오차 없는 기계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주고받는 상호작용, 그리고 인간의 눈으로 보는 심미안이 옷의 아름다움을 완성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기계화는 장인과 비스포크를 위협하는 요소가 아니라 테일러나 디자이너의 쓸데없는 반복적인 시간을 줄이고 인간 본연의 창조 시간을 마련한다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올바르다. 미래의 비스포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패션에 공예적인 창조성을 부여할 기회를 마련할 것이고 개성 있는 디자인의 옷을 생산하는 토대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트렌드의 측면에서도 전통적인 양복의 대중적인 인기는 시들해졌다. 시대가 갈수록 우리는 단순함을 좇는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남성 아우터의 경향은 넉넉한 실루엣과 복잡하지 않은 디테일이었다. 코트나 재킷의 원단에 들어가는 심지를 가볍게 하거나 생략한 옷도 많았다. 경량화와 단순화로 향하는 패션의 흐름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스포크 수트를 벗게 했다. 1880년부터 이어진 유명한 양복점인 킬고어(Kilgour)의 폐점,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스타일리스트이자 전속 디자이너 하디 에이미스(Hardy Amies)의 몰락은 시대가 더 이상 그런 옷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전통을 고수해온 다른 양복점들도 쇼윈도에서 갑옷 같은 수트를 잠시 치우고 사파리 재킷이나 일명 샤켓이라 불리는 셔츠의 형태로 출시된 캐주얼한 재킷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양복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오랜 습관을 고민 없이 답습하거나 새로운 영감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테일러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러나 래글런 백작이 불편한 팔을 넣기 쉽도록 만든 것이 래글런 코트의 원조였고,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참호에 숨기 위해 고안된 것이 트렌치코트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옷을 디자인한다면 비스포크는 위기를 넘어 미래에도 유지될 것 같다는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손길을 극도로 최소화한 옷을 생산하는 것도 미래의 특성 중 하나다. 사람이 하나의 옷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한 가지 디자인의 수많은 옷을 컨트롤한다. 대량으로 빠르게 생산되고 쉽게 소비되어 버려지는 SPA의 흐름은 미래 패션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브랜드에서 감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비스포크는 이러한 부분을 파고든다. 일례로 나는 최근에 중동 국가의 왕자를 위해 옷을 만들었다. 그는 체형상 허리가 곧은 편이었지만 목이 심하게 앞으로 굽어 기존 수트의 목 부분이 가지런하게 놓이지 않았다. 주름 없이 매끈한 양복이 입고 싶어 양복점을 찾아왔을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민 끝에 칼라에 덧대는 심지를 여러 겹 손으로 누벼 목 부분에 넣어 재킷을 만들었다. 비스포크에는 주문자를 위해 양복을 꿰매는 기술뿐 아니라 고객을 위해 골똘히 고민하는 시간도 포함된다. 무인화로 대표되는 미래의 옷은 예민한 착용자에게 만족감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다양한 체형이 존재하는 만큼 각기 다른 감성과 그에 맞는 기술이 존재한다. 이것은 아직 미래의 옷이 충족하지 못하는 비스포크만의 장점이다.
‘Classic Does Not Stay Long’이란 말이 있다. 이 표현이 비스포크가 나아갈 방향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 비스포크는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변화를 거듭하며 과거에 안주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4백 년 전 런던 전역이 잿더미가 되고 국가 위기 상태에 놓였을 때 수트라는 의복이 탄생했고,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오트 쿠튀르는 혁명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다. 비스포크는 미래의 유행에 항상 열려 있고 그것을 수용하며 현재에 맞게 가공되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묵묵하게 지켜온 전통의 힘으로 미래를 선도해나갈 추진력을 얻은 것이다. 지금 비스포크가 위기를 맞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그 의미를 제한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스포크가 지닌 상상력과 예술적 영감은 미래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패션 산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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