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02, 2019
글 고성연
중앙경찰서, 빅토리아 감옥 등 옛 정부 건물들과 헤어초크 앤드 드 뫼론이 설계한 현대미술 공간 JC 컨템퍼러리 등이 모여 있는 홍콩 센트럴 지구의 복합 단지 타이퀀 센터 포 헤리티지 앤드 아트(Tai Kwon Center for Heritage & Art). 갤러리 3층의 ‘감옥’ 콘셉트 공간에 마련된 철제 침대에 누워서 영상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을 보면 ‘이래서 홍콩은 지지 않는구나’ 싶다. 홍콩뿐이랴. 상하이, 베이징, 타이베이 등 ‘차이나 네트워크’의 문화 예술 시너지는 엄청나다. 제약이 있다 해도 ‘예술’의 이름으로 허용되는 자유는 확실히 다른 것일까. ‘크리에이티브 허브’를 둘러싼 아시아 도시들의 행보가 흥미롭다.
지난해 가을, 국내에서는 개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전미 박스오피스 정상을 찍을 만큼 썩 괜찮은 성적을 거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 브러더스가 출연진을 100% 아시안 캐스팅으로 제작한 영화라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내용을 보면 현대적으로 변형한 신데렐라 스토리와 가족애를 섞은 뻔한 드라마다. 하지만 이런 전형성에도 아시아 슈퍼 리치의 화려한 위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면모가 있다. 영화 첫 장면에는 2백여 년 전 중국의 잠재력을 얘기할 때면 곧잘 인용되는 문구가 나온다. “잠자는 사자 중국을 깨우지 마라. 만약 그 사자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에는 전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당시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한 이 말은 요즘 들어 더욱 설득력을 지니는 듯하다. 2014년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을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 이 사자는 평화적이고 온화한 문명의 사자”라고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문화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멀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부시게 변모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 사자, 포효할 일만 남았을까
사실 중국은 이미 시장 규모로는 엄연한 ‘문화 대국’이다. 특히 대중문화 콘텐츠 시장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예를 들어 영화 시장을 보면 이미 수년 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자리를 꿰찼다. 럭셔리의 끝판왕이라는 미술 시장에서도 ‘차이나 머니’의 힘은 대단하다. 오죽하면 2015년 세계 미술 시장이 다소 위축됐을 때, 그 결정적인 원인이 반부패 정책과 경기 둔화로 이중 타격을 입은 ‘중국’이었을까. 물론 문화 산업은 탄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 파워가 균형 있게 어우러진 ‘스마트 파워’라는 만만찮은 내공이 필요한, 그저 자본을 퍼붓는 것만으로는 쉽게 발전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문화 대국이 곧 문화 강국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최대의 문화 산업 기지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 아래 하드웨어뿐 아니라 콘텐츠 역량에서도 경이로운 수준의 잠재력을 내보이고 있다. 화교권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네트워크 파워로 아시아 전역에서 영화 같은 미디어 산업만이 아니라 아트,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콘텐츠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것. 특히 ‘도시의 세기’라 일컬어지는 21세기에 문화 예술을 앞세운 크리에이티브 허브를 둘러싼 아시아 주요 도시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매우 역동적이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향한 이 같은 치열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아트, 디자인 페어, 도시 브랜드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미술관 같은 전시 공간이 자리한다. ‘탈아시아’로 일찌감치 분류된 일본 말고도 상하이, 홍콩, 베이징, 싱가포르, 서울 같은 도시들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문화 공간과 각종 문화 예술 콘텐츠가 생겨나기에 “내가 여기를 알아~”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하드웨어와 콘텐츠 천국
이렇다 보니 글로벌 문화 생태계의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아시아’다. 아트 페어만 해도 싱가포르의 현대미술 장터 아트 스테이지(Art Stage), 2016년 첫 행사를 개최한 인도네시아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Art Stage Jakarta), 상하이에서 열리는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WestBund Art & Design Fair) 등 각종 아트 페어가 범람하고 있다. 그중 대표 주자는 아트 바젤 홍콩.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스위스의 아트 바젤을 주관하는 MCH 그룹이 지역 페어인 홍콩 아트 페어(Art Hong Kong)를 인수해 아트 바젤 홍콩으로 재탄생시킨 2013년부터 파죽지세로 최고의 위상을 거머쥐었다. 베이징은 언제나 수도답게 대륙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문화 예술 중심지라는 수식을 누려왔지만,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보다 세련되고 글로벌한 면모를 덧붙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판도를 보면 상하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상하이 비엔날레,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살로네’의 상하이 에디션, 각종 아트 페어가 더 이상 상하이를 겉치레 가득한 메트로폴리스로 여길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내로라하는 사립 미술관을 꾸리면서 압도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큰손’ 컬렉터들의 힘, 정부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대만의 자존심 타이베이도 힘을 내는 모양세다. 올 초부터 새로운 아트 페어인 타이베이 당다이(Taipei Dangdai)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잠에서 깨어난 사자, 포효할 일만 남았을까
사실 중국은 이미 시장 규모로는 엄연한 ‘문화 대국’이다. 특히 대중문화 콘텐츠 시장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예를 들어 영화 시장을 보면 이미 수년 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자리를 꿰찼다. 럭셔리의 끝판왕이라는 미술 시장에서도 ‘차이나 머니’의 힘은 대단하다. 오죽하면 2015년 세계 미술 시장이 다소 위축됐을 때, 그 결정적인 원인이 반부패 정책과 경기 둔화로 이중 타격을 입은 ‘중국’이었을까. 물론 문화 산업은 탄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 파워가 균형 있게 어우러진 ‘스마트 파워’라는 만만찮은 내공이 필요한, 그저 자본을 퍼붓는 것만으로는 쉽게 발전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문화 대국이 곧 문화 강국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최대의 문화 산업 기지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 아래 하드웨어뿐 아니라 콘텐츠 역량에서도 경이로운 수준의 잠재력을 내보이고 있다. 화교권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네트워크 파워로 아시아 전역에서 영화 같은 미디어 산업만이 아니라 아트,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콘텐츠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것. 특히 ‘도시의 세기’라 일컬어지는 21세기에 문화 예술을 앞세운 크리에이티브 허브를 둘러싼 아시아 주요 도시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매우 역동적이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향한 이 같은 치열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아트, 디자인 페어, 도시 브랜드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미술관 같은 전시 공간이 자리한다. ‘탈아시아’로 일찌감치 분류된 일본 말고도 상하이, 홍콩, 베이징, 싱가포르, 서울 같은 도시들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문화 공간과 각종 문화 예술 콘텐츠가 생겨나기에 “내가 여기를 알아~”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하드웨어와 콘텐츠 천국
이렇다 보니 글로벌 문화 생태계의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아시아’다. 아트 페어만 해도 싱가포르의 현대미술 장터 아트 스테이지(Art Stage), 2016년 첫 행사를 개최한 인도네시아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Art Stage Jakarta), 상하이에서 열리는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WestBund Art & Design Fair) 등 각종 아트 페어가 범람하고 있다. 그중 대표 주자는 아트 바젤 홍콩.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스위스의 아트 바젤을 주관하는 MCH 그룹이 지역 페어인 홍콩 아트 페어(Art Hong Kong)를 인수해 아트 바젤 홍콩으로 재탄생시킨 2013년부터 파죽지세로 최고의 위상을 거머쥐었다. 베이징은 언제나 수도답게 대륙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문화 예술 중심지라는 수식을 누려왔지만,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보다 세련되고 글로벌한 면모를 덧붙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판도를 보면 상하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상하이 비엔날레,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살로네’의 상하이 에디션, 각종 아트 페어가 더 이상 상하이를 겉치레 가득한 메트로폴리스로 여길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내로라하는 사립 미술관을 꾸리면서 압도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큰손’ 컬렉터들의 힘, 정부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대만의 자존심 타이베이도 힘을 내는 모양세다. 올 초부터 새로운 아트 페어인 타이베이 당다이(Taipei Dangdai)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에 질세라 홍콩은 콘텐츠 강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해 예술 특화 빌딩인 H 퀸스(H Queen’s)가 들어서 현대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데 이어, 현재 최고의 ‘핫 플레이스’로 부상한 타이퀀 센터 포 헤리티지 앤드 아트(Tai Kwon Center for Heritage & Art)가 문을 열었다. 영국 식민지시대의 역사적인 정부 건물들을 단장해 완성한 이곳은 ‘빅 스테이션(big station)’이라는 뜻을 지닌 다목적 문화 공간답게 현대미술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 등 다채로운 콘텐츠를 품고 있다. 홍콩 행정부 차원에서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시주룽 문화 지구(西九文化區·WKCD)도 빼놓을 수 없다. 구룡반도 침사추이에서 가까운 이곳에는 미술관, 콘서트홀, 대극장, 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는데, 이 중 ‘국보급’이라고 홍보하는 컬렉션을 보유했다는 현대미술관 M+가 올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최근 홍콩에서 만난 한 문화 예술계 인사는 작금의 풍경이 단시일 내에 이뤄진 게 절대로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진짜 차이나가 (문화적으로도) 어떤지 슬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야말로 잠자는 사자가 막 깨어났다는 얘기다. 물론 문화 예술이란 도시·국가 간 경쟁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고, 도시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모습이 조화를 이룰 때 아시아가 더 빛날 테지만, 중국의 기지개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글 고성연
[ART+CULTURE 18/19 WINTE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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