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avier Veil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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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4, 2012

에디터 고성연(파리 현지 취재)

자비에 베이앙은 힘 있고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미학의 세계를 펼치는 작가다. 그것도 조각, 사진, 영상, 공연, 음악, 환경 전시 등 폭넓은 스펙트럼을 통해. 미니멀리즘을 그만의 스타일로 버무리면서 자신의 예술을 떠받치는 중심 축인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 욕심쟁이 아티스트의 인생담과 작품 세계를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접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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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수놓은 화제의 작품 ‘모빌’. (사진 저작권 The Selby).

2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자비에 베이앙. <사진 김정난>.

3~6 올봄 서울 313갤러리에서 열린 루이 비통 ‘아트 토크’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베이앙의 작품들. (3, 4번은 루이 비통 5, 6번은 313 Art Project에서 사진 제공).

7 지난 8월 9일에서 9월 16일까지 미국 LA의 뉴트라 VDL 하우스에서 개최된 전시회. 뉴트라는 베이앙이 어린 시절 동경했던 건축가 중 한 명. (사진  Joshua White, 저작권 베이앙 스튜디오).

8 베이앙의 스타일은 구체적인 생김새, 주름, 핏줄 등 디테일을 배제하고 추상화된 선과 면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요소만 남겨놓는 것. (사진 제공 루이 비통).

9 ‘우아한 미니멀리즘’에 반해 뉴욕 5번가의 메종에 베이앙의 작품 ‘모빌’을 설치한 루이 비통은 2010년 말 그를 초청해 아트 토크를 진행했다. (저작권 Louis Vuitton/Billy Farrell Agency).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길고 높다란 말뚝 위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전혀 야하지 않은 가녀린 나체의 소녀 조각상. 군더더기라고는 아예 처음부터 한 올도 담으려 하지 않은 듯 단아한 인상이다. 은색이 감도는 이 구릿빛 나체상은 첨단 3D 기술의 도움으로 매끈하게 깎은 표면을 꿰뚫고 진입하면 많은 스토리가 들어 있을 것만 같다. 왠지 슬퍼 보이기까지 한 소녀의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이번엔 강하지 않은 듯 하면서도 은근히 강한, 미묘한 느낌을 주는 보라색 다면체로 이뤄진 마차. 아무도 타고 있지는 않지만 용맹스러운 전사들을 가득 태우고 전장으로 질주하는 중세의 전차를 연상케 하는 역동적인 작품이다. 그 배경에는 마치 음악이라도 깔린 것처럼 달그락, 달그락 하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는 현재 프랑스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이 지난 2009년 파리 인근 베르사유 궁에서 선보인 9점의 작품 중 라 팜 뉘(La Femme Nue)와 르 카로스(Le Carrosse)의 사진을 보고 필자가 떠올린 생각과 이미지다. 그런데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냐고 물어보는 건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마주한 자비에 베이앙은 “누군가 내 작품을 바라볼 때 남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포착한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이 혹여 작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해도, 그 역시 실재하는 ‘진짜’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시각의 간극을 오히려 즐기는 눈치다. 그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도 비슷한 맥락이다. “전 얼마든지 제 작품에 대해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제가 옳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제 작업 자체보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제된 미니멀리즘 안에 품은 양파 껍질 같은 매력

단어 하나에도 성찰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 49세의 작가에게선 파리지앵 특유의 세련미, 중년의 성숙한 아티스트다운 노련미가 배어 나왔다. 최근 영국의 해트필드(Hatfield)에서 열린 전시회 책자가 방금 나왔다며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그는 바쁘다면서도 느릿느릿 할 건 다 하는 여유 있는 품세가 솔직히 결코 분주해 보이지는 않았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프랑스인이랄까.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상당한 에너지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흘러나왔다. 삶의 다채로운 이면에 대한 순수한 관심에서 비롯된 열정과 도전 의식을 그득 안고 있는 게 포착됐다. 그리고 그 자세가 꽤나 진중하고 반듯했다. ‘얼음 공예’처럼 시원스럽고 정교하게 다듬은 단색 계열의 다면체를 덮고 있는 면면을 벗겨보면 내면의 풍경을 구성하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숨겨져 있을 듯한 그의 조각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양파 껍질과 같은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나 할까. 이처럼 팔색조 같은 성향은 그가 도전해온 매개체의 다양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미니멀리즘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한 분파에 종속되지 않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오며 조각은 물론이고 사진, 비디오, 설치 작품, 전시 예술 등 광범위한 창조의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렉트로닉 밴드 에어(Air)의 음악을 배경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고,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세바스티앙 텔리에르와 함께 영상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디자이너 듀오인 로낭 & 에르완 부훌렉 형제와 퐁피두에서 공동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표현의 가능성(Possibilities of Representation)’이라는 중심 축과 잘 맞아떨어지는 행보를 꾸준히 이어온 셈이다. “제 작업에 진화(evolution)가 진행돼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변혁(revolution)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요. 핵심은 항상 그대로지만, 관점이 바뀐다고 할까요.”

‘표현의 가능성’을 통해 본질을 포착하려는 몸부림

그 핵심은 아마도 그가 누누이 밝혀왔듯 ‘본질(Essence of Real Things)’을 낚아채는 것이리라. 인지의 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듯 주름이나 핏줄 같은 디테일이 전혀 없이 추상화된 선과 면의 미학을 바탕으로 힘과 정교함, 속도감이 느껴지는 최소한의 요소만 남기는 그의 작품 스타일도 오브제의 물성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인간과 사물의 정수를 포착하기 위한 방식인 것이다. 그의 언어로 직접 풀면 이렇다. “작가에게 주어진 건 단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뭔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뭔가를 골라 연결하는 일이죠. 그러한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제가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언제나 자신을 매료시켰던 건 오브제, 기술의 진보를 바탕으로 한 속도감과 현대성(modernity)과 연결되는 방식의 표현’이라는 것. 기계적인 작동 원리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90년대 말 포드 자동차의 T 모델을 거의 수작업으로 재현한 작품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1963년생인 그는 세대가 세대인 만큼 현대 철학의 거목인 들뢰즈와 가타리의 ‘유목적 사유’를 젊은 시절부터 접했고,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 도널드 저드를 비롯해 에드 루샤와 같은 관념주의 작가, 앤디 워홀, 제프 쿤스 같은 팝 아티스트에게서 복합적인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미에 대해 탐색하고, 그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을 형태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드 라인하르트의 미니멀 아트 작품이나 벨라스케스, 마네와 같은 수백 년 전 거장들의 고전적 작품에서도 ‘인간에 대한 관심’, ‘관능’, ‘정수로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 등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며 바로크 아트에도 점점 더 흥미를 느낀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미니멀리즘의 정공법을 구사하는 작가로서 역사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과거와 소통하려는 그의 자세가 매머드급 프로젝트인 베르사유 궁의 전시회에서도 빛을 발했던 것 아닐까.

베르사유를 무대로 나래를 펼치다
그렇다. 베이앙은 제프 쿤스 다음으로 베르사유 궁에서 대규모 개인전(2009년)을 개최한, 좀처럼 손에 쥐기 힘든 영예를 누린 작가다. 쿤스만큼 요란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미궁(美宮)을 무대로 특유의 굵고 힘찬 역동성과 단순미, 독특한 질감과 색채가 어우러진, ‘환경 조각’의 한 획을 긋는 거대한 명작을 탄생시켰다. 이 글의 앞머리에도 언급한 벌거벗은 소녀상과 보라색 아크릴물감으로 칠한 금속 마차를 비롯해 궁 안에는 은색 바탕과 창백한 연보라의 조화가 인상적인 러시아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형상이 누워 있는가 하면 클로드 파랭, 렌조 피아노, 리처드 로저스, 안도 다다오 등 세계적인 건축의 대가들이 분수 옆 광장에서 관조하듯 앉거나 서 있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이 시간 여행으로 궁에 도착한 상황을 연출한 SF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전시는 3D 스캔을 통해 인물이나 사물의 형상을 디지털화한 뒤 폴리우레탄, 알루미늄 등으로 기하학적인 느낌의 ‘모노크롬 조각품’을 빚어내는 그의 작업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전시됐던 작품 중 커다란 원형의 보라색 공들이 허공에 매달려 움직이는 ‘모빌’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의 심미안에 부합해 이듬해 뉴욕의 5번가 메종에 설치되기도 했다. 또 베이앙은 루이 비통 아티스트의 한 사람으로 올봄 방한해 서울 도산공원 근처의 313갤러리에서 소규모 전시회와 함께 ‘고고학적 현대성’이라는 주제의 아트 토크에 주빈으로 참가했다. 베르사유 프로젝트로 뭔가 달라진 게 없냐는 질문에 그는 “엄청난 규모 때문에 전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명확하게 감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덕분에 제 자신 안의 뭔가가 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시가 모두 끝났을 때 좀 더 차분하고 고요해졌다는 건 기억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베르사유 전시는 일을 실제로 시작했을 때도 꿈과 같이 흐릿하고 모호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이 궁전이 실체라기보다 관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반해 이러한 흐릿한 이미지를 역사와 결부시키고자 했어요. 그래서 제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같은 궁전에 대한 이미지를 실제 공간과의 접촉과 만남이라는 사람들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데 두었죠”라고 덧붙였다.
대가족의 품에서 자라난 호기심 많은 소년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았다지만, 이 같은 메가톤급 프로젝트 덕에 작가의 명성에 한층 더 큰 폭의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했을 터. 그는 언제나 지금처럼 단단하고 자신만만했을까? “전 예술가로 살 것이라는 데는 한 점의 의구심도 품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죠. 제겐 ‘그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고 작품 세계를 남들에게 펼쳐 보이는 데 제약이 따르는 상황은 솔직히 좌절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가 어릴 때부터 ‘예술을 하겠다’고 정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간단한 가구, 작은 배, 이미지 등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했기에 크리에이터의 운명에 대한 막연한 예감을 지녔던 것일지도 모른다. “뭔가를 만드는 건 제게 사고하는 방식의 하나였지, 예술가로서의 커리어를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수로 살기에는 제가 뭔가 더 필요로 한다는 걸 깨닫게 됐죠.” 다분히 남성적이면서도 섬세한 그의 캐릭터를 고려하자면 좀 의외지만 그는 5명의 아이를 둔 대가족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파리 출신도 아니다. 그 자신도 세 자녀를 두고 집에서 늘 뭔가를 뚝딱거리면서 스스로 발주하는 ‘DIY’ 일감과 씨름하는 평범한 아빠이며 가장이다. “늘 시끌벅적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대가족이란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모두 음악에 홀딱 빠져 있었어요. 전 개인적으로 토목, 건축에 흥미를 느꼈지만 집안 분위기상 항상 음악과 함께하는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영향일까. 그는 음악과 건축이라는 소재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프로젝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나는 지난 8, 9월 어린 시절 동경했던 건축가의 집에서 벌인 전시로 일명 ‘뉴트라 프로젝트.’ 리처드 뉴트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약하면서 모더니즘을 주도한 20세기 중반의 건축가이다. 베이앙은 자라면서 잡지에서 그를 자주 접했는데, 우연히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다가 뉴트라의 집을 발견하고는 체류까지 하게 된 인연이 전시로 이어졌다고.

이유 있는 욕심과 도전 의식이 사랑스러운 중년

“책으로만 접했던 집을 몸소 보고는 아주 강력한 자극을 받았죠. 뉴트라의 VDL 하우스에 한 달 반쯤 머물다가 가족까지 불러 함께 시간을 더 보내면서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그냥 사진으로 보는 것과 그 공간 안에서 직접 샤워를 하는 건 정말 다른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프로젝트에 대한 베이앙의 애정은 무척 특별했다. “VDL 전시는 타자의 상업적인 개입이 없이 제 자신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어요. 특히 리처드의 아들들을 만나 집과 얽힌 그들의 추억을 들으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찾기도 했고요. 삶의 흔적에 뿌리를 둔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건축물을 바라보면서 작품에 임했으니까요.”  뉴트라의 책을 직접 펼쳐 보여주면서 차분히 설명하는 베이앙의 목소리는 묵직한 가운데서도 은근한 흥분과 설렘이 배어 나왔다. 또 하나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음악인들과 함께하는 공연으로 이를 위한 준비가 ‘현재 진행중’이다. 베이앙의 음악 사랑은 이미 수차례 진행한 음악인들과의 협연과 2인조 밴드 에어의 앨범 재킷 디자인으로도 충족될 수 없는 모양이다. 마침 스튜디오에 공연에 가담할 멤버들이 찾아오자 베이앙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우리 동지들”이라고 소개했다. “만약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느냐”고 묻자 다시 10대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아마도 뮤지션이 되고 싶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음악의 힘은 육체적·정신적 감각을 동시에, 절대로 분리되지 않은 채, 자아낼 수 있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각적 예술이 성취할 수 없는 모든 걸 가지고 있기에 보완적인 속성이 있지요. 그래서 이 둘을 한데 모으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제 자신이 ‘완전한 경험’을 얻기 위해서지요.” 눈을 빛내며 열심히 ‘썰’을 풀어내는 이 남자, 참 밉지 않은 욕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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