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quely Vien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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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7, 2019

글 고성연 | 취재 협조 비엔나관광청(wien.info/en)



찬란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펼쳐진 비엔나는 일단 ‘고전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래서 클래식 애호가들은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람스의 묘, 모차르트 기념비 등이 있는 공원 같은 빈 중앙 묘지를 찾아 ‘음악 성인’들에게 인사를 올리기도 한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클림트의 잔재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비엔나는 그저 고풍스러운 과거의 도시가 아니다. 현대까지 우아하게 이어진 카페 문화와 수준 높은 공연 문화,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댄스 문화, 한결 다채로워진 미식 풍경, 그리고 가장 ‘핫한’ 현대미술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하루 숙박객 수가 1천6백50만 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나오고, 꾸준히 ‘살기 좋은 도시’ 목록에 오르내리는 데는 전통과 현대가 다채롭게 어우러지는 매혹적인 문화 풍경이 버티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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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문화 예술을 얘기할 때 다분히 과거 지향적인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일례로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1, 2세와 같은 거성들은 19세기 전반기와 중·후반기,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에곤 실레(Egon Schiele) 등 쟁쟁한 근대미술 거장들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인물들이다. 대중문화 콘텐츠로 눈을 돌려 비엔나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 <비포선라이즈>를 끄집어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거의 25년 전, 그러니까 20세기 말의 작품이다. 요즘 우리나라 카페에서는 흔히 ‘비엔나커피’로 통하는 아인슈패너(Einspanner)가 인기라지만, 사실 비엔나의 본모습을 잘 아는 이는 별로 많지 않은 듯하다.필자는 학생 신분이던 지난 세기 말 다뉴브강이 흐르는 이 작고 아름다운 오스트리아의 수도에서 겨울 내내 머무른 인연이 있다. 그에 앞서 배낭여행으로 들른 적은 있지만, 하나의 도시에서 한 계절을 온전히 겪는 느낌은 사뭇 다른 법. 이방인에게 유럽의 겨울은 춥고 쓸쓸하게 마련이고, 실제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래도 음악당이나 미술관 등에서 마주하는 비엔나의 수준 높은 문화 콘텐츠나 근사한 카페에서 즐기는 매혹적인 디저트는 꽤 순도 높은 위로의 자양분이 됐던 것 같다. 자연주의 철학을 평생에 걸쳐 실천한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같은 비엔나 출신의 걸출한 괴짜 아티스트의 존재나 진한 초콜릿 스펀지케이크와 살구잼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자허 토르테(Sacher Torte)’의 맛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시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는 비엔나에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무려 20년여 년 만에 이 추억의 도시와 재회하게 됐다. 때마침 흥미 지수도 높아진 상황이라 더 반가웠다. 그 계기를 제공한 인물은 수년 전 인터뷰를 했던 베네통 그룹의 창업자 루치아노 베네통. 그는 은퇴한 이래 국가별로 다수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우편엽서처럼 작은 사각 캔버스에 현대미술을 담는 ‘이마고 문디’라는 이색 컬렉션을 꾸리면서 순회 전시를 해왔는데, 그중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독특하게 ‘Vienna for Art’s Sake’라는 ‘도시명’이 들어간 타이틀을 붙였다. 도록 자체도 표지 디자인의 현대적인 미학이 출중하게 돋보이는 터라 1백50개가 훌쩍 넘는 컬렉션 중 비엔나 도록을 택했다. 이를 계기로 클래식 음악이나 클림트가 아닌 동시대 문화의 현주소는 어떨지, 사람 사는 풍경은 어떨지,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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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매력과 변화의 흔적, 도시 풍경을 조화롭게 수놓다
사실 개인적으로 비엔나는 낭만적인 운치가 있지만 다소 보수성 짙은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 도록을 접하기 전까지는 ‘변화’라는 단어를 쉽게 연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의 비엔나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국립 오페라극장이 창립 1백50주년을 맞이할 만큼 오페라나 발레, 클래식 음악, 박물관 등 전통적으로 강한 콘텐츠는 여전히 고아하게 잘 간수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글로벌 트렌드를 받아들인 덕에 눈에 띄게 다채롭고 건강해진 식문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컨템퍼러리 아트와 음악, 일반 시민들이 루프톱 가든을 만들어 식물을 키우고 양봉을 하는, 그래서 훨씬 더 푸르러진 도시 풍경, 유럽 허브 도시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고 자부할 만큼 확대된 데다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교통 인프라 등이 긍정적인 변화로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계 어린 시선 대신 ‘외부’에 보다 열린 시각과 태도가 엿보이는 사람들의 인상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첫눈에는 여전히 고풍스러운 면모가 돋보이지만, 그 껍질을 벗겨내면 달라진 속이 드러난다. 변화의 간극을 가늠할 수 있는 재방문이든 첫 만남이든 비엔나는 걸어서 면면을 느끼기에 참 좋은 도시다. 비엔나의 도시권 면적은 서울시의 3분의 2 정도인 415㎢인데, 인구는 2백만 명도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비엔나의 절반가량이 정원, 공원, 숲, 그리고 농지로 이뤄져 있다. 도시 곳곳을 이어주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했고, 자전거 타기에도 좋지만, 느긋하게 거니는 ‘도시 산책’은 차별된 즐거움을 선사한다(특히 이방인에게는). 녹음을 한껏 만끽하거나,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때로는 흥겹고 때로는 애수 띤 음악을 듣거나, 스트리트 아트나 설치 작품 등 공공장소 혹은 매장에서 마주치곤 하는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한때 유럽 최고의 왕조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한 위용이 느껴지는 호프부르크 왕궁과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등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길거리 야외 사진전. 철제 담을 배경으로 세워놓은 커다란 사진 액자를 채우고 있는 얼굴들은 대부분 노인인데, 알고 보면 세계대전 희생자들이다. 오페라하우스 앞에 가면 1800년대 파리에서 초연된 발레 <해적(Le Corsaire)>을 야외에서 실황 중계로 볼 수 있다. 음악의 본고장답게 재즈 축제, 일레트로닉 뮤직 페스티벌 등 각종 축제가 열릴 뿐만 아니라, 영화음악도 비엔나를 수놓는 감각적인 콘텐츠다. 또 1백만 명 넘는 인파가 모여드는 동성애 축제 유로프라이드(EuroPride)가 열리기도 한다.


고풍스러움과 세련된 동시대 감성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21세기의 비엔나
잘츠부르크와 함께 ‘음악의 도시’로 꼽히는 비엔나지만, 그렇게만 부르기에는 건축, 공예, 미술,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겨왔다. 미술을 잘 몰라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황금빛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도시 아니겠는가.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아르누보풍 작품으로 잘 알려진 클림트는 세기말의 혁신을 주도한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젊은 동료들과 함께 ‘오스트리아 미술가연합’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당시 제도권의 틀에 박힌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변화를 추구한 ‘분리’의 움직임을 꾀한 것. 그래서 ‘빈 분리파’라고 불렸는데, 그들의 전당이던 공간이 ‘분리’라는 뜻을 지닌 제체시온(Secesssion)이다. 제체시온 운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분리파 회원이자 건축의 대가 오토 바그너의 제자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Joseph Maria Obrich)가 설계했는데, 클림트의 프레스코 벽화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가 영구 전시돼 있다. 클림트 추종자라면 그 유명한 ‘키스’와 ‘유디트’가 소장돼 있는 벨베데레 궁전과 더불어 반짝반짝 빛나는 장식적인 외관 덕분에 ‘금색 양배추 머리’라는 별칭이 붙은 제체시온을 필수적으로 찾는다. 하지만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피터 도이그(Peter Doig) 같은 동시대 스타 작가들의 최신작도 만나볼 수 있는, 작지만 내실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클림트가 끔찍이 아끼던 천재 에곤 실레(1890~1918)를 위시해 오스카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같은 표현주의 화가를 만나려면 레오폴트 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1925년생인 미술품 수집가 루돌프 레오폴트(Rudolf Leopold)가 1950년대부터 실레의 작품을 열심히 모아둔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석회암 파사드의 레오폴트 미술관 건물이 들어선 뮤제움 콰르티어(MQ)는 일종의 ‘아트 허브’로, 레오폴트 말고도 진회색빛 현대미술관 무모크(Mumok), 어린이 미술관 등 10개 전시장이 모여 있다.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MQ의 야외 광장을 지나다 보면 K-팝 걸 그룹의 대표 주자 트와이스의 노래에 맞춰 열심히 춤추는 10대를 비롯해 다양한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또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자리한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은 그야말로 시대를 관통하는 미술의 보고다. 벨라스케스, 루벤스, 렘브란트, 티치아노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을 말해주는 듯한 눈부신 컬렉션을 자랑한다. 고풍스러운 내부와 마크 로스코의 초기작부터 대표적인 추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획전의 조화는 ‘발품’을 기꺼이 팔 만한 이유다. 뒤러의 ‘토끼(Der Hase)’로 유명한 알베르티나 미술관 역시 그토록 값나가는 소장품보다 빼어나다는 평을 듣는 팝아트, 사진전 등 폭넓은 기획전으로 명성 높다. 주요 근현대 전시만 ‘섭렵’해도 3박 4일이 모자란 비엔나의 미술관 풍경이다.


달콤쌉싸름한 디저트, 카페 문화의 매혹
앞서 언급한 빈 미술사 박물관의 또 다른 인기 콘텐츠는 다름 아닌 카페다. 높다란 천장과 격조 있는 샹들리에, 가구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즐기는 커피와 둘째가라면 서러운 디저트의 조합은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다. 웬만한 미술관을 비롯해 비엔나는 곳곳에서 멋진 카페를 발견할 수 있는 도시인데, 17세기 말에 처음 카페가 등장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특유의 커피 문화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됐을 정도다(2011년). 비교적 이른 아침부터 카페를 찾아 ‘식사’처럼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즐기고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는 비엔나 현지인들도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웬만한 카페는 장사가 안 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특히 역사 깊은 스타 카페들은 평일에도 1시간 동안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클림트 같은 화가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지식인을 단골로 뒀던 곳으로, 1876년 문을 연 카페 첸트랄(Cafe´ Central), 역시 19세기에 등장해 비엔나의 명물 자허 토르테로 유명세를 누려온 호텔 자허의 카페와 데멜(Dehmel) 등이 대표적인 장소들. 비엔나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계적인 유통 기업인 맥아더글렌 그룹이 운영하는 판도르프 아웃렛이 있는데, 이곳에 카페 자허의 분점이 들어서 쇼핑도 하고 길게 줄 서지 않고도 자허 토르테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는 것도 좋겠다. 디만 비엔나를 찾아 카페에 들른다면 아인슈패너는 한국에서 회자되듯이 ‘비엔나커피’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두자. ‘마차를 끄는 마부’라는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실제 마부들이 말고삐를 쥔 채 손쉽게 피로 해소제처럼 마시도록 고안된 터라 입구가 약간 길고 좁은 커피잔에 받침도 없다. 이 도시 사람들이 사랑하는 비엔나커피는 카푸치노와 비슷하게 우유 거품을 올린 부드러운 ‘멜랑주(Melange)’. 어쨌거나 둘 다 시도해봄직하다. 단, 웬만하면 비엔나에서만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를 빼놓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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