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카날 그란데를 바라다보는 아름다운 호텔 아만 베니스(Aman Venice). 16세기부터 내려오는 대저택 팔라초 파파도폴리(Palazzo Papadopoli). 사진 SY KO
3 여전히 파파도폴리 가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아만 베니스는 베니스 중심부와 가까우면서도 호젓한 느낌을 주는 ‘내 집’ 같은 평온함이 특징이다.
4 대운하 전망을 갖춘 ‘옐로 다이닝 룸.’ 이탈리아 스타 셰프 다비데 올다니(Davide Oldani)가 개발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5 호텔 내부의 우아한 계단.
_윌리엄 딘 하우얼스, <Venetian Life> 중에서
7 프레스코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티에폴로(Tiepolo)의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는 알코바 티에폴로 스위트.
8 네오-바로크풍의 근사한 서재는 고서 컬렉션도 갖추었는데, 투숙객들에게 개방돼 있다.
9 베니스에서 드물게 정원과 운하를 동시에 끼고 있는 아만 베니스. 홈페이지 aman.com, 사진 아만 베니스 제공.
파파도폴리 가문 소유인 팔라초 파파도폴리가 호텔로 변모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원래는 1550년부터 존속해온 대저택을 스몰 럭셔리 리조트 브랜드로 유명한 아만(Aman) 그룹에서 5년 전인 2013년 베니스의 ‘잇 플레이스’로 낙점해 ‘아만 베니스’라는 호텔로 탈바꿈시킨 곳이기 때문이다. 이듬해 베니스에서 결혼식을 치른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가 허니문 장소로 택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는 했지만, 사실 아만 베니스는 이미 16세기 중반부터 존속해온 명소의 재탄생인 셈이다. 이곳은 처음에는 부유한 무역상이던 코치나(Coccina) 가문에서 16세기에 활동한 건축가 잔자코모 그리기(Giangiacomo Dei Grigi)에게 의뢰해 지은 저택이었는데,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손을 거치다가 19세기 중반에는 현 소유주인 파파도폴리 가문의 차지가 됐다. 당시 파파도폴리가 사람들은 네오-르네상스와 로코코 스타일을 이끈 미켈란젤로 구겐하임(Michelangelo Guggenheim)에게 건물 내부 리모델링을 맡겼다. 구겐하임(미국의 구겐하임 집안과는 상관없는 인물)은 나선형으로 우아하게 뻗은 계단이며 선장, 문손잡이 등에 가문의 문장(紋章)을 새겨 넣었고, 베니스 최초의 엘리베이터와 전기로 작동하는 샹들리에를 설치했다. 그리고 보다 완벽한 보금자리를 창조하기 위해 풍성한 녹음을 자랑하는 근사한 정원을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팔라초 파파도폴리는 카날 그란데에서 드물게 규모 있는 정원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릴케는 ‘(베니스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은 파파도폴리의 아름다운 정원입니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아만과 손잡으면서 호텔로 변신하기는 했지만, 파파도폴리의 후손은 여전히 건물 한쪽에 살고 있다. 물론 그들이 오랫동안 소중하게 가꿔온 정원 역시 건재하다. 호텔 투숙객들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면서 맛난 아침을 즐길 수 있는 아만 베니스의 정원은 때때로 갤러리나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매력적인 전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는 일본 홋카이도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칸 야스다(Kan Yasuda)의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담스러운 정원은 그저 아만 베니스가 지닌 다양한 매력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호텔로 지은 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공간이었던 만큼 널찍하고 구조와 동선이 안락한 객실은 물론이고 고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계단과 문, 벽, 천장 같은 인테리어는 오랜 시공을 거친 공간답게 존재감을 뿜어내면서도 21세기에 걸맞은 현대식 시스템을 고루 갖추고 있다. 많은 이들이 꼽는 아만 베니스의 백미는 ‘프레스코(fresco)’다. 그도 그럴 것이 18세기 초 이곳은 티에폴로(Tiepolo) 가문의 소유가 된 역사가 있다. 그래서 아직도 곳곳에 티에폴로 가문의 문장을 볼 수 있고, 네오-바로크풍의 황홀한 서재와 프라이빗 다이닝 룸에도 티에폴로 가문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 등 16세기 베네치아 거장들의 전통을 이으면서 프레스코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잠바티스타 티에폴로(Giambattista Tiepolo)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작품도 일부 객실과 특별한 공간에서 접할 수 있다. 한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미술사상 어느 화가보다도 프레스코화로 많은 벽과 천장을 메운 티에폴로는 ‘경박할 만큼 가벼운 색상’이라는 폄하를 받기도 했지만, 출중한 데생 기술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다양한 범위의 색과 그림자를 사용한 탁월한 실력, ‘전체’를 꿰뚫어보고 세심하게 계획한 뒤 작업에 임하는 대형 미술 작가로서의 천재성을 갖춘 경이로운 아티스트였다.
이렇듯 티에폴로의 프레스코와 1571년 레판토 전투에서 유래한 커다란 유리 전등 같은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만 베니스는 평온과 ‘나만의 집’ 같은 프라이버시를 갈구하는 방문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일 수 있다. 실제로 운하 반대편에서 걸어서 이 호텔을 드나들 때는 베니스 특유의 빨간색 숫자가 적힌 고풍스러운 대문 앞에 서서 집처럼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 자체로도 베니스의 명물이지만 산 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 라 페니체 극장 같은 명소들과 멀지 않으면서도 좁은 골목을 꽉 채운 관광 인파 속에서도 마치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아만 베니스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객실 수는 티에폴로의 프레스코와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스위트, 카날 그란데 전망과 운치 있는 벽난로를 갖춘 스위트 등 2개의 스위트룸을 포함해 24개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