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민간사절
2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의 <컬렉터스 쇼(Collector’s Show)> 전시에 출품한 멜라니의 소장품. Aditya Novali, ‘Conversation Unknown’ (2015).
3 KIAF 기간 중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수자 개인전(2017년 2월 5일까지)을 찾은 멜라니 세티아완.
4 아트 스페이스의 외관. 위부터 에땅 위하소의 부조 작품, 오른쪽에 야니 마리아니(Yani Mariani)의 부조 작품, 그리고 중앙에 오키 레이 몬타(Oky Rey Montha)의 벽화가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손꼽히는 아트 컬렉터 멜라니 세티아완(Melani Setiawan)은 단순히 미술 애호가라고 하기에는 행보의 반경과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인도네시아 파빌리온의 후원위원인 데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 아트 페어(2016년 8월 초)에서 선보인 컬렉터 특별전을 주최한 4명 중 하나다. 이들 중 다른 한 명인 톰 탄디오(Tom Tandio)는 송은아트센터에서 <예술과 사랑에 빠진 남자, 톰 탄디오, 개인적 서사로서의 컬렉션(Tom Tandio – The Man Who Fell into Art: Collecting as a Form of Personal Narrative)> 전시회를 열고 있다. KIAF 개최 기간 동안 멜라니와 톰 탄디오, 그리고 세계적인 컬렉터로 내년에 상하이에 있는 본인 소유의 유즈 미술관에서 단색화 전시를 열 예정인 인도네시아 화교 부디 텍(Budi Tek)이 동시에 한국을 찾았다. 싱가포르, 대만 등지에서도 여러 컬렉터가 방문했는데, 이들은 워낙 촘촘한 네트워크로 엮인지라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데다, 멜라니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벨기에, 프랑스 등지에서 온 친구 컬렉터들까지 합세해 서울은 잠시나마 세계 컬렉터의 집결지를 방불케 했다. 세대와 국경, 언어를 초월한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 별 이해관계 없이도 예술을 향한 사랑 하나로 모인, 그야말로 ‘위 아 더 월드’의 현장이었다.
멜라니는 이미 의사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한 70대 여인이다. 그런데 한국에 머문 일주일 동안 아트 페어로, 미술관으로, 갤러리로, 작가의 스튜디오로 아침부터 밤까지 열정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낸 그의 체력과 열정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게 끝도 아니었다. 쉴 새 없이 바쁜 한국에서의 일정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발상지로 잘 알려진 욕야카르타(Yogyakarta)로 떠나 현지 작가들의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 컬렉터들의 투어 리더로 참여했고, 곧바로 싱가포르 비엔날레로 날아갔다가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본인의 소장품 3점을 포함한 욕야카르타의 예술가 단체 MES56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 <예술계여(Dear Art World)> 오픈식에 참석했다. 이것도 다가 아니다. 겨우 2~3일 휴식을 취한 뒤 그는 다시 상하이 아트 위크를 찍고, 그다음 주에는 타이베이 아트 위크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과거에는 큐레이터가 제트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온갖 비엔날레를 관장했지만, 이제는 컬렉터들이 세계를 누비며 온갖 미술 행사에 참여한다니, 멜라니 세티아완이야말로 ‘젯 셋 컬렉터(Jet Set Collector)’의 전형이다.
6 자택 내부. 벽 위에 걸린 가로로 긴 그림 역시 에땅 위하소의 작품. ‘Mermaid’(2005), oil on canvas, 150X600cm.
7 자택 정원. 나무 조각은 테구 오스텐리크(Teguh Ostenrik) 작품, ‘Little Bundle of Joy’(2010).
8 아트 스페이스에서 제일 큰 공간 내부. 벽 위에 보이는 검은 드로잉은 에땅 위하소가 직접 그린 벽화, ‘Expanded Dreams’(2011), 260X900cm. 이 밖에 왼쪽부터 헤리 도노(Heri Dono)의 ‘Maes-tro Affandi’(2009), 초록색 회화 작품은 에땅 위하르소 작품 ‘Rumah diatas Batu(Blue sunflower)’(2006), 맨 오른쪽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의 ‘I am the Truth’(2005).
멜라니의 모국 사랑은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컬렉션 스펙트럼이 자국 작가나 특정 장르에 한정돼 있지는 않다. 한국 작가의 경우로는, 몇 해 전 일본의 아트 도쿄 페어에서 갤러리 스케이프를 통해 구입한 정지현 작가의 키네틱 설치 작품이 있다. 어두컴컴한 전시 공간에 천장을 만들고 가운데 구멍을 뚫어 그 속으로 다락방을 훔쳐보는 상황을 연출했던 대안 공간 사루비아 다방에서의 정지현 개인전을 되돌아보면, 대다수 한국 개인 컬렉터들을 비롯해 웬만해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작품이라는 생각에 감탄스러웠다. 싱가포르 푸르덴셜 아이 어워드의 수상자 침↑폼(Chim↑Pom), 또다른 작가 리오타 야기(Lyota Yagi)의 작품들도 그의 컬렉션 목록에 들어 있는데, 전부 비디오 아트 작품이다. 장르나 유명세를 따지지 않고 그저 작가의 예술 세계에 반해 수집하는 이런 태도는 “작품은 아티스트와의 대화를 열어주는 매개체”라는 그의 발언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벽을 멋지게 장식하기 위한, 혹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가 아니라, 작가 그 자체만을 보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서포터형 컬렉터. 본래 컬렉터란 이런 모습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