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in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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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3, 2024

글 고성연, 김수진

건축에 감동이 없다면 그저 건물만 있을 뿐이라고 했듯 내부 역시 감성이 없다면 그저 건조하거나 번잡스러운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 아름답지만 실용성은 떨어지기도 하고,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는데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게 공간 꾸미기의 아이러니다. ’비움’과 ‘채움’의 조화에 더해 개성 어린 ‘결’이 스며드는 나만의 혹은 우리만의 ‘공간’에 대한 관심은 ‘집콕’이 강제되기도 했던 팬데믹 시기를 기점으로 부쩍 더 커졌다. 이런 흐름을 타고 라이프스타일 감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다양한 유형의 브랜드와 콘텐츠가 생겨나고 있다.


‘Untitled’(1950s) ⓒ Saul Leiter Foundation
토안 응우옌이 디자인한 ‘그루브 앤 그루비 암체어’
피카부 백의 디자인을 응용한 ‘피카싯(Peekasit)’
암체어 서울 에디션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다, FENDI Casa
지상 최대의 축제라 칭해지는 ‘살로네’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가구 박람회에 가본 이들은 아마도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선보이는 인테리어 컬렉션의 화려한 쇼케이스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유의 창조적인 디자인 DNA를 접목하되 영역을 확장해 라이프스타일의 다채로운 면면을 아우르는 종합적 제안을 하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풍경이다. 그중에는 의외로 이 계통에서 자부심 깃든 ‘업력’이 꽤 축적된 브랜드도 있는데, 얼마 전 서울에 플래그십 매장(강남구 논현로 713)을 처음 연 펜디 까사(FENDI Casa)가 그런 사례에 속한다.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 펜디의 홈 컬렉션인 펜디 까사의 탄생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예술적 감성과 섬세하고 올곧은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패션 하우스를 이끌던 안나 펜디의 발상으로 이뤄졌다. 세월이 꽤 흐른 지금, 펜디 까사는 여전히 정수를 지키고 있지만 그동안 의미 있는 변화도 일궈냈다. 하이엔드 리빙 디자인 분야의 리더인 플로스 B&B 이탈리아 그룹과 펜디가 2021년 손잡고 FF 디자인을 창립해 펜디 까사 컬렉션을 개발하며 전문성과 유통 역량을 더욱 끌어올리는 데 힘썼고,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다. “한동안 큰 변화가 없던 펜디 까사의 라인업이 대대적으로 바뀌었어요. 상징적인 베스트셀러 품목을 제외하면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죠. 실비아가 이 일을 아주 즐기면서 변화를 이뤄내고 있어요.” 펜디 까사를 이끌고 있는 CEO 알베르토 다 파사노(Alberto Da Passano)의 설명이다.
이 같은 변화로 현 체제에서는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 비중이 훨씬 커져(7할) 참신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데, 그 목록을 살펴보면 마르셀 반더르스, 아틀리에 오이, 토안 응우옌 등 쟁쟁하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상업 패션만이 아니라 순수하게 재능을 키워내는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온 인물인 만큼 이 두 분야를 어떻게 조화시켜 변주해나갈지 주시할 만하다. 럭셔리 패션업계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파사노 CEO는 “로고는 덜 드러내지만 패션과의 창의적 연계도 세련된 방식으로 진행하고, 보다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며 고객 기반을 확장해가고 있지만 우선적인 타깃은 단연 펜디 애호가라고 강조했다. 탄탄한 고객층이 있기에 가능한 접근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두오모를 독점 파트너로 둔 펜디 까사의 서울 공간 역시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공들인 모습이다. 372㎡ (약 1백12평) 규모에 2개 층과 루프톱으로 구성된 펜디 까사 서울의 인테리어는 다분히 현대적이지만, 2개 층에 걸쳐 있는 대형 통창에는 브랜드의 근원지이기도 한 로마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아치를 둘러 LED로 은은하게 빛나도록 했다. 파사노 CEO가 “두오모가 멋지게 해냈고, 그냥 (원래) 우리 공간처럼 느껴진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펜디 까사 서울에는 깜찍한 퍼(fur) 쿠션부터 좀처럼 일어나기 싫어지는 ‘그루브 앤 그루비 암체어’, 펜디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루이스 폴센 조명, 아웃도어 가구 등 다채로운 구성의 홈 컬렉션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번 오프닝을 기념해 펜디의 스테디셀러 ‘피카부’ 핸드백에서 영감받은 ‘피카싯(Peekasit)’ 암체어의 서울 에디션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펜디와 펜디 까사의 풍부한 문화 예술적 자산을 꽤 오래 접해온 필자로서는 어쩐지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심도 있는 ‘전시 콘텐츠’를 기대하게 된다. 파사노 CEO는 “내년이 펜디 창립 100주년이기도 하므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지원사격을 할 의사는 넘친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알파 클럽 체어’(1972)
영화인들이 사랑한 디자인 아이콘, 피에르 폴랭
뉴욕 현대미술관(MoMA)부터 런던 빅토리아&앨버트(V&A) 뮤지엄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수많은 영화감독들이 스크린에 등장시킨 전설적인 가구 컬렉션을 빚어낸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폴랭(Pierre Paulin, 1927~2009)의 작업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의 디자인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종종 꼽히는 ‘텅 체어(Tongue Chair)’부터 구름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파샤(Pacha)’ 라운지 체어, 레스토랑의 접힌 냅킨 형태에서 영감받은 ‘리본 체어’ 등 대표적인 가구는 물론 1970년대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개인 공간을 장식한 ‘알파 클럽 컬렉션(Alpha Club Chair)’도 볼 수 있는 전시다. 오피스 가구 회사로 유명한 허먼 밀러와 함께 주거 단지를 위한 ‘폴랭 프로그램’까지 개발한 건축가, 디자이너이자 조각가이기도 했던 그는 ‘가구란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결함 없는 기능적 조각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특한 미적 오라 덕분인지 그의 작품들은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다(정작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홍보를 일절 거부했다고).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영화나 시리즈물에 등장했던 폴랭의 가구들(리본 체어, 텅 체어)은 SF적 소재로 다가올 사건이나 세계를 암시하는 오브제로 화면을 압도했고, 이후에도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한 리본 체어, 최근 <바비>의 주인공 마고 로비가 앉은 ‘오스카’ 소파 등으로 여전히 영화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피에르 폴랭의 아들 벤자민 폴랭이 주최한 이번 전시의 국내 조력자로는 폴랭의 팬인 배우 이정재가 함께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rendezvous@paulinpaulinpaulin.com).


전시 기간 9월 8일까지, 아티스트컴퍼니(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430)




덴마크 모더니즘을 이끈 전설, 폴 케홀름
핀 율, 한스 웨그너, 아르네 야콥센 등과 함께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황금기(1945~1975)를 수놓은 폴 케홀름(Poul Kjærholm,1929~1980). 당시 목재 중심이었던 덴마크 가구 시장에 스틸 컬렉션을 제시하며,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 신을 새롭게 열었던 그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북유럽 디자인사를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디자이너다. 신체적 기능부터 심리적 기능까지, 재료와 공법의 선택을 철저한 작업의 규칙으로 삼았던 그는 스스로를 ‘가구 건축가’라고 생각했다고. 대표작인 의자 ‘PK25’는 한 판의 스틸을 구부려 만든 섬세한 악기, 혹은 건축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도의 정교함과 스틸 소재 프레임을 갖춘 이 의자를 보고 단숨에 매료된 프리츠 한센은 바로 그를 소속 디자이너로 채용하기도 한다(‘PK25’를 시작으로 폴 케홀름의 가구 컬렉션 ‘PK 시리즈’가 이어진다). 이때의 인연으로 폴 케홀름의 가족은 케홀름 컬렉션의 제작과 판매를 프리츠 한센에게 위임한다. 프리츠 한센은 지금까지 폴 케홀름의 정교한 제작 방식을 지키고 있는데, 지난 5월 31일부터 한국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첫 단독전을 열고 있다. 덴마크 모더니즘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구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구조를 만든 디자이너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예컨대 PK0, PK22 같은 제품의 요소를 분해하고 해체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전시 기간 7월 7일까지, 유스퀘이크(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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