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of a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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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 2019

글 고성연

Brands & Artketing series_3

Fondazione Prada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아니더라도 프라다는 이미지가 꽤 강력한 브랜드다. 특히 정형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도전 정신이 연상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문화 예술 생태계에서의 출중한 행보가 끼친 영향도 상당하지 않나 싶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창성, 흥미진진한 실험성이 돋보이지만, 동시에 세련됨을 장착한 프라다 파운데이션(Fondazione Prada)의 면면을 보고 누군가 “미술관은 프라다를 입는다”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 남다른 유전자와 다면적인 매력을 우리는 정확히 10년 전인 2009년 서울 경희궁에서 펼쳐졌던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를 통해서도 목격한 바 있다. 4개의 면이 회전하면서 다른 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4면체 철제 건축물을 무대로 패션, 영화, 아트 등의 콘텐츠를 버무린 독특한 예술 프로젝트. 이 충격적인 구조물을 설계한 렘 콜하스는 “문화가 하지 않는 것을 건축이 할 수는 없다”라고 했는데, 프라다는 그들만의 문화 예술을 어떻게 만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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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은 새로운 방법으로 해나가고, 그러면서도 마치 5백 년 전부터 그 일을 해온 것처럼 훌륭히 해낸다.” 20세기를 풍미한 이탈리아 건축·디자인계 대부 조 폰티(Gio Ponti)는 자신이 태어나고 스러진 고향 밀라노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이렇게 찬사를 보낸 적이 있다. 그 같은 행보가 이탈리아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하면서. 따라서 로마나 피렌체처럼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를 지녀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참신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밀라노야말로 가장 이탈리아다운 곳이라고 그는 평했다.
21세기의 밀라노 역시 여전히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창조 도시다. 서유럽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주요 도시들은 그 깊고 장대한 역사 때문에 변신을 꾀하기가 쉽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경제 수도’이자 디자인의 메카인 밀라노는 여전히 특유의 ‘현대성’이 돋보인다. 그 배경에서 은밀하고도 힘차게 작동하는 ‘문화 엔진’으로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전시 공간을 꼽는다면 언뜻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 몇 년 새 밀라노 문화 예술 순례를 해본 이들이라면 이 생태계를 떠받치고 움직이는 하나의 큰 동력으로 프라다 파운데이션(Fondazione Prada)을 지목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당장 밀라노만 놓고 보더라도 도시 남동쪽의 산업 단지에 자리한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전시 공간은 2015년 봄 문을 열었을 때부터 당시 최대 화두였던 ‘밀라노 엑스포’ 못지않은 주목과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해마다 열리는 블록버스터 가구 박람회인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 기간이나 패션 위크에도 어김없이 많은 이들의 발길을 끌어당겨왔다. 그들은 멋쟁이들이 넘쳐나는 이 도시에서도 일부러 한껏 차려입고 전시를 보러 간다는 이른바 ‘핫플’이다.
하지만 허영이 어려 있는 그럴 듯한 ‘패션 피플’의 전당으로 본다면 큰코다칠 일이다. 프라다 재단이 지닌 풍부한 ‘글로벌 문화 자산’의 핵심 축인 이 공간을 수놓는 콘텐츠는 결코 녹록지 않은 깊이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계에서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존재감은 재단 설립자인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파워 아트 피플’에 선정되었다거나 ‘슈퍼 컬렉터’로 꼽혔다는 사실로 굳이 입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 독보적인 건축과 공간, 예술 작품이 관람객과의 호흡으로 일으키는 감각과 지각의 화학작용을 몸소 체험하면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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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문화 예술 풍경을 끌어올린 ‘트랜스포머’

운 좋게도 맑고 청정한 하늘이 펼쳐진 날에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 건물의 자태를 처음 접했다면 살짜기나마 숨을 ‘헉’ 들이마시게 될지도 모르겠다.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금색과 회색 건물들, 그리고 가장 높이 솟은 하얀색 타워 등 형태와 높이가 저마다 다른 건축물이 자아내는 묘한 조화. 게다가 옛것과 새것의 융합으로 뭔가 특별한 오라(aura)가 밴 이 넓은 전시 공간을 접하고는 반하지 않기는 힘들다. ‘도시 재생’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건축 거장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이끄는 OMA가 설계를 맡았는데, 새롭고 매혹적인 랜드마크가 주는 힘을 여실히 증명해냈다. 허름한 산업 단지 라르고 이사르코(Largo Isarco)에 있는, 1910년대 지은 옛 증류주 공장이 경이롭게 탈바꿈한 사례다. 외관을 유지한 채 어린이 도서실,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 특유의 동화적인 솜씨를 발휘해 디자인한 카페 등으로 개조한 기존 건물들에 새 건물을 추가한, 1만9,000㎡에 달하는 방대한 복합 공간이다. 1년에 2~4차례 열리는 대규모 기획전을 품을 수 있는 다용도 공간 포디엄이 입구에서부터 펼쳐지며, 마당 한가운데는 영화나 음악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극장도 있다. 2018년 완공된 60m 높이의 흰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인 ‘타워(Torre)’에서는 9층에 걸쳐 소장품을 전시하는데, 바로 제프 쿤스(Jeff Koons)의 커다란 ‘튤립(Tulip)’이라든지 카르슈텐 횔러(Carsten Ho··ller)의 ‘업사이드 다운 머시룸 룸(Upside Down Mushroom Room)’ 같은 ‘킬러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안쪽에 자리하며 황금빛 외관을 뽐내는 ‘유령의 집(Haunted House)’에는 섬뜩하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로버트 고버(Robert Gober)와 루이스 부르주아(Louis Bourgeois) 작품이 영구 전시되고 있다. 건축물이든 현대미술의 다면적인 매력이 폭넓고 깊게 펼쳐져 있는 이 도발적이기까지 한 ‘매혹의 전당’의 등장을 계기로 썰렁했던 이 근방에 활기가 감돌기 시작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빈 공장이 많았던, 버려지다시피 한 산업 단지였는데, 재생의 기운이 퍼지고 있어요. 갤러리들이 들어서고 새로운 현대미술 센터도 세워졌지요. 우리 ‘공간’ 바로 뒤에는 건축가 안토니오 치테리오(Antonio Citterio)가 설계한 오피스 빌딩도 생겼고요. 밀라노는 이렇듯 흥미로운 도시 재생의 움직임이 보이는 곳들이 있어서 고무적인 상황이에요.”
지난봄 아시아 지역 최대 현대미술 행사인 아트 바젤 홍콩에서 조우했고, 이어 밀라노에서 다시 만난 프라다 파운데이션 소속의 아스트리트 벨터(Astrid Welter)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프라다 파운데이션 공간이 생겼을 때 “밀라노의 도시 풍경을 한층 더 세련되게 바꿔놓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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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이 ‘의도’대로 쌓아온 혁신적인 문화적 자산

굳이 이 글에서 ‘미술관’이라 칭하지 않는 이유는 프라다 파운데이션 스스로가 ‘문화와 예술에 헌신하는 센터(A Centre Dedicated to Art and Culture)’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세워두고 있어서다. “우리는 절대로 ‘뮤지엄’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관용적으로 ‘미술관(museum)’이라는 단어를 어쩔 수 없이 쓰기도 하지만, 자체적으로는 하나의 기관이자 문화 예술 센터로 여기고 있고, 또 그렇게 조직을 꾸려왔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그녀의 직함도 ‘head of programs’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평가이자 큐레이터로 프라다 재단의 콘텐츠를 이끄는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도 내부적으로는 ‘관장(director)’이라 불리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지휘(directing)’하는 개념보다는 같이 아이디어를 모으고 행동하는 집단 지성으로서의 면모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조직은 출발점부터 남달랐다. 2015년 모습을 드러낸 라르고 이사르코의 새 복합 공간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지만, 프라다의 ‘행동가’적인 예술 후원은 꽤 탄탄한 역사를 자랑한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그녀의 경영인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가 자신들의 DNA와 닮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프라다 밀라노아르테(Prada MilanoArte)’를 만든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말이다. 이어 2년 뒤 프라다 재단이 설립되면서 뜻과 결이 맞는 지구촌의 다양한 동시대 아티스트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벌였다. 1995년 제르마노 첼란트가 합류하면서 전개한 애니시 커푸어의 개인전(마루를 둥글게 파내고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을 넣은 ‘Turning the World Inside Out’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최근 그래미상을 받기도 한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과의 협업(1998년) 등에 이어 2000년대에 들어서도 마크 퀸(Marc Quinn), 엔리코 카스텔라니(Enrico Castellani),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등과 도전적이고도 의미 있는 작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미국의 미니멀리스트 개념 미술가인 댄 플래빈(Dan Flavin)과 함께 밀라노 변방인 키에사 로사(Chiesa Rossa)에 있는 작은 성당 산타 마리아 안눈차타(Santa Maria Annunciata)에 설치한 형광 설치 작업(1997년)은 여전히 도시의 명물로 남아 있으면서 세계 곳곳에서 온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도 있지만, 현대미술이 녹아 있는 안눈차타 성당도 도시 풍경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는 셈이다.
‘밀라노 성당 프로젝트’가 전개될 무렵 프라다 재단에 들어왔다는 아스트리트 벨터는 “처음에는 흥미로운 아트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가 점차 철학 세미나라든지 영화 등 다른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추가하게 됐다”면서 “중요한 건 이미 1990년대에 패션 하우스로부터 독립성을 지니는 강력한 문화 예술 기관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과 바람이 존재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한 꾸준한 혁신과 도전의 행보 속에서 이제는 엄연히 브랜드에서 지원받는, 아스트리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립이지만 거의 공공’ 같은 문화 예술 플랫폼으로 인정받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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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른 개성과 매력을 품고 있는 글로벌 공간들

‘공공재’ 같은 위상을 지니다 보니 실험성이 예전보다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안드로이드 로봇이 등장하고 영화 세트장을 통째로 옮겨온 것 같은 기획전을 보노라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 느껴진다. 게다가 요즘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보폭은 더 빨라지고, 넓어지고 있는 듯하다. 밀라노에는 도심 한복판에 사진 미술을 위한 전용 공간인 오세르바토리오(Osservato`rio)를 운영하고 있는데, 건물 꼭대기 층에서 도시가 한눈에 보이면서 ‘비주얼 아트’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세련된 공간이 매력적이다. 또 비엔날레가 열리는 아름다운 수상 도시 베니스에서도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1년 베니스 운하에 자리 잡은 18세기 저택(palazzo)인 ‘카 코너 델라 레지나(Ca’ Corner della Regina)’를 인수해 운치 있는 전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이 고풍스러운 팔라초에서 그동안 주로 심도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한 ‘주제’가 있는 기획전을 1년에 한 차례씩 진행해왔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그리스계 설치미술가인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 회고전을 열었다. 또 아시아 지역에서는 브랜드 차원에서 상하이의 고택을 빌려 패션, 아트 등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프라다 롱자이(Prada Rong Zhai)’를 두고 있고, 올해에는 아트 바젤 홍콩에서도 전시를 선보였다. 한국에서도 2009년 트랜스포머와 같은 파격적인 프로젝트가 다시금 펼쳐졌으면 하는 기대가 그저 욕심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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