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f·Frieze Seoul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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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4, 2023

글 고성연

Interview with _구마 겐고(Kengo Kuma)_자연과 예술에 조응하는 건축의 미학


단기간에 온갖 콘텐츠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도시 축제를 방불케 하는 큰 행사가 전개되는 ‘이벤트 주간’에 그 시기의 주인공 그룹에 속하는 누군가를 만나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는 건 지나치게 야무진 꿈일지도 모른다. 초가을, 문화 예술계에 느슨하게라도 걸쳐 있다면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을 만한 키아프 X 프리즈 아트 주간도 바로 그러한 시기다. 그래도 평소라면 마주치기 힘든 인물을 어깨 너머라도 눈에 담아두거나 운이 좋으면 짧게 담소를 나눈 뒤 서로 갈 길이 바쁘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쿨하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풍경이 어쩌면 이처럼 정신없는 행사의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늘 출장이나 여행에 나서는 건축가나 스트리트 아티스트, 아니면 직업과는 별 상관없이 정말로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 대상이 되지 않을까.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잠시라도 제대로 된 ‘만남’을 가질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 운이 닿은 대상이 올가을에는 아마도 서울에서의 일정이 가장 짧았을 건축가 구마 겐고(Kengo Kum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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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를 가도 온통 구마 겐고잖아요.” 지난 3월 말, 팬데믹 시기를 거쳐 오랫만에 해외 손님을 대거 맞이한 아트 바젤 홍콩에서 만난 한 일본 기자는 건축 얘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과장 섞인 말이지만, 그만큼 이 건축가의 브랜드 파워가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21세기 접어들어 세계 건축계에서 구마 겐고(b.1954)의 성장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대중적 인지도까지 꿰찬 계기는 아무래도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이끌고 있는 건축 스튜디오 KKAA(Kengo Kuma & Associates)가 설계를 맡은 2020 도쿄 올림픽 국립 경기장 프로젝트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치러진 2차 공모전에서 채택된 터라 미디어의 주목도 더 많이 받았기에, 그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일반에게도 얼굴이 알려지는 사회적 지명도로 갑자기 확대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술품 수집은 특별히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아마도 살 수만 있다면 분신술에 큰돈을 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구마 겐고. 그런 그가 당일치기로 키아프 X 프리즈 아트 주간에 서울을 찾은 이유는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Whitestone Gallery Seoul) 오프닝을 위해서였다.
서울 남산 인근의 소월로에 자리한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검은색 건물. 주변 나무들이 파사드의 일부를 덮고 있는 유리에 비치고, 세로로 부착된 긴 막대기들이 파사드를 장식하고 있는 이 건물(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은 여러 번 지나쳤을 법한 위치에 있는데, 딱히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구마 겐고 스튜디오가 갤러리 프로젝트를 맡고 나서 외관을 검은색으로 바꾼 덕분일까? 아니면 1층 창으로 보이는 내부에 전시된 미술품이 눈길을 잡아끄는 덕분일까? 본연의 건축적 의도가 성공적으로 작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건물을 어둡게 함으로써 건축적인 존재를 지우고 도시의 일상에서 하얗고 추상적인 아트 공간으로 전환되는 도입적인 체험을 만들어내고자 했다”는 게 구마 겐고의 설명이다. “아트 공간은 우리를 일상의 세계에서 비범한 세계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관람자가 시간의 흐름을 잊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대와 놀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죠. 공간을 거닐며 작품을 보면서 거기 존재하는 빛과 소리, 온도, 분위기를 체험하게 되잖아요. 저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고 작품과 작가가 마치 제 동료들처럼 실제로 갤러리 공간에 있다고 여기면서 설계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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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미 화이트스톤 갤러리 베이징 지점과 타이베이 지점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일본 갤러리’라는 국가 프레임으로 접근하지 않고 해당 지역의 위치와 프로젝트의 성격에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했다. 서울점의 경우, 층마다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는 변화무쌍함이 특징이다. 예컨대 2층에는 천장이 높은 전시 공간이 전개되어 3층 라운지에서 바라볼 수 있고, 4층에는 옥상과 통하는 돌마당과 더불어 정적인 감성의 전시실이 자리한다. 여기까지는 기존 건물을 구조를 나름대로 역동적으로 살렸다면, 옥상층으로 올라서면 ‘구마 겐고’다운 광경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탁 트인 주변의 건물 숲을 배경으로 친환경 재료를 활용한 나무빛 바닥, 그리고 작은 정원의 녹음이 묘한 정형성을 지닌 신원동 작가의 백자와 어우러지는 모습…. 자연과 유연하고 느슨한 조화를 이루는, 감히 이기려 들지 않고 자연에 기대는 ‘작은’, 혹은 ‘약한’ 건축을 줄곧 읊조려온 그의 스타일과 철학이 좀 더 느껴진다고나 할까.
물론 구마 겐고표 건축을 이 갤러리 하나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예다. 이미 존재하는 건물을 갤러리 공간으로 바꾼 경우라는 특수성도 있기에 그저 ‘힌트’만 볼 수 있는 정도다(사실 여러 장소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많이 꾸렸던 이력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일본 내에서도 꽤 흩어져 있다). 건축은 예술처럼 관조하기보다 ‘경험’하는 대상이라고 볼 때,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은 팬데믹 기간 일본 교토에 개장한 에이스 호텔 교토를 꼽을 수 있다. 구마 겐고 스튜디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에이스 교토, 그리고 호텔과 연결된 복합 아케이드인 신풍관은 중심가에 자리하는데도 북적거림이 방해되지 않고 경쾌하고, 심지어 여유롭게 느껴지는 공간의 미학이 안팎으로 펼쳐진다. 크지 않은 객실 공간을 쾌적하게 버무려낸 호텔 내부도 그렇지만 외부 공간에서 해사한 날씨를 맞이할 때면 풀 내음과 뒤섞인 공기를 느끼며 자연을 감상하고 사물과 호흡하는 기분이 드는데, 이는 곧 ‘건축에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나무, 종이, 돌 같은 자연 친화적 재료로 ‘투명한 경쾌함’을 구현해낸다. 구마 겐고가 말했듯 자연과 유유히 호흡하는 ‘재료’와 ‘텍스처’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이 공간을 경험하는 사용자에게 전해진 것이리라.
이 같은 태도는 그가 뉴욕 유학 시절 새롭게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건축적 태도로 체화해낸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전통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유리를 사용하지 않고도 투명성을 구현해낸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살던 집도 그랬어요. 그저 후스마 스크린(나무틀에 두꺼운 종이를 겹바른 일본식 칸막이)과 벽으로 단순하게 구획해놓은 방이 있는 집이었는데, 그것으로 ‘가벼움’과 ‘투명함’을 빚어냈거든요. 오래된 일본 가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디자인이에요.” 구마 겐고의 건축은 우리나라에는 춘천의 NHN 데이터 센터와 국내외 건축가 5명이 참여한 제주의 리조트 ‘아트 빌라스’ 등이 있다. 전자는 해인사 장경각에서, 후자는 제주의 현무암에서 모티브를 얻었는데, 역시 정갈하면서 힘이 있다. 웬만한 저자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알찬 내용의 책도 자주 펴내는 구마 겐고가 10년 전 집필한 한 저서의 추천 글에 전봉희 교수는 ‘정곡을 건드리는 간결함과 힘’이라는 표현을 썼다.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그는 결코 ‘약한 건축가’가 아니라고 했는데, 동감하는 바다. 그의 건축을 경험할수록 잔잔히 뿜어져 나오는 정적인 힘에서도 그렇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시각이나, 섬세하고도 솔직하게 의견을 전하는 태도에서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 서울의 에너지를 사랑한다는 그가 성수동에 일을 위한 거점을 둘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Interview with _웨민쥔(Yue Minjun)_시대를 대변하는 ‘웃음의 역설’


눈을 꼭 감은 채 윗니가 훤히 보이도록 입을 활짝 벌리면서 웃어젖히는데,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중년의 남성. 중국 현대미술을 잘 모르더라도 불그스름하거나 노르스름한, 혹은 푸르스름한 색채를 띤 반(半)나신으로 ‘웃는 남자’의 강렬한 이미지를 어딘가에서 접해본 이들이 꽤 있을 듯하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차이나 아방가르드’ 세대의 한 축을 이끈 현대미술가 웨민쥔(Yue Minjun, 1962~)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전시 기획자 윤재갑 디렉터가 설파하듯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비서구 미술이 미술 시장과 비엔날레 모두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첫 사례였다. 2007년 가을 작품 ‘처형’(1995)으로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백90만 달러의 판매가를 기록하며 세계 무대에 두각을 나타낸 웨민쥔은 그해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커버 스토리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의 ‘웃음’ 시리즈는 처음에는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담아낸 자화상으로 출발했는데, 언뜻 ‘포복절도’로 치닫는 수준으로 보이지만, 여기엔 우리 인간 사회의 애달프고 공허한 현실을 풍자적, 냉소적으로 버무려낸 ‘웃음의 역설’이 투영되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선보인 ‘꽃’ 시리즈에서 얼굴을 ‘서늘하게’ 가린 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되곤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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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탕 컨템포러리 아트 서울에서 ‘냉소적 사실주의’로 유명한 웨민쥔(岳敏君, Yue Minjun)의 개인전 <Yue Minjun>이 진행 중이다(2023. 9. 5~10. 14). 전시의 부제는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에서 환상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으로’.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진짜도, 가짜도 아닌 현실을 뒤집어 표현한다는 맥락에서(‘anti’가 아니라) ‘반(反)리얼리즘’을 뜻한다고 한다. 이는 은유일까? 일종의 도피일까? 이번 전시는 웨민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웃음’ 시리즈를 비롯해 불안한 낙관주의와 기만적인 속성을 강조한 ‘꽃’ 시리즈 신작, ‘미궁’ 등 그의 30년 넘는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작품(20여 점)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작가의 30년 지기이자 중국 현대미술계를 잘 아는 큐레이터로 이 전시를 기획한 윤재갑 관장(하우아트뮤지엄 디렉터)과 함께 웨민쥔 작가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간추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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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웃음’ 연작을 보면 조롱, 관조, 우울 등 다양한 의미로 읽힙니다. 우리 시대에 이 웃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 자문하게 됩니다. ‘웃는 남자’의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Yue Minjun(이하 YM) ‘웃으면 복이 온다’는 그 웃음에서 비롯됐어요. 보통 중국의 절 앞에 가면 항상 웃음 짓는 부처가 있어요. 보통 미래에 올 부처라고 일컬어지는 미래불인데, 중국인들에게는 익숙한 부처예요(포대화상(布袋和尙), 소면화상(笑面和尙), 그리고 미륵불이라고도 부른다). 이 부처의 웃음에서 따온 방식입니다. 이 웃음에는 생로병사가 다 담겨 있죠. 단지 이중성이 아닌 다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비판일 수도, 조롱일 수도, 기쁨일 수도 있습니다.


Q2 중국 시인 어우양장허는 2016년 상하이에서 열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기획전의 도록에 ‘모든 영원한 슬픔은 이 웃음 속에 있다’라는 시구를 썼습니다. 작가님이 설명해주신 웃음은 이 말과도 상통하는 것 같아요.

YM 맞아요. 그래서 이 웃음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웃는 남자는 제 작품의 주제가 됐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요. 아마도 세계 미술사에서 ‘웃음’을 가지고 이처럼 오랫동안 작업한 일은 드물 거예요.


Q3 1990년 원명원 예술가촌에서 활동하면서 회화, 조각, 판화 등으로 작업 영역을 넓혀갔어요. 이 시기를 거치면서 중국 현대미술을 이끈 1세대 작가(팡리쥔, 웨민쥔, 장샤오강, 왕광)가 탄생했고요. 작가님도 그중 하나죠. 이 시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YM 1990년 원명원(圆明园) 예술가촌으로 이주한 후 웃는 자화상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1990년대 초기, 베이징은 중국의 경제 개혁과 더불어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였죠. 이때 원명원과 동촌에 아트 빌리지가 생겼어요. 저는 원명원예술가마을로 이주했죠. 예술가촌은 1995년 철거당했고 그 뒤 작가들은 베이징의 쑹좡(宋庄) 지구로 작업실을 옮깁니다. 그때만 해도 베이징에는 현대미술 전시를 열 공간이 거의 없었어요. 1994~1995년 정도 되어서야 안정적인 작업실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게 되죠. 그 후 해외에서 중국 현대 작가의 전시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동안 냉전이 풀리고 탈냉전의 시기였다가 이제는 신냉전 기조로 돌아섰네요. 전 세계가 완전히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번 키아프와 프리즈 기간에 와보니 한국의 문화적인 분위기는 훨씬 포용력이 크고, 개방적인 것 같습니다.

Q4 ‘웃음’ 시리즈의 초기 작업에는 누가 봐도 작가님을 닮았다고 느낄 만한 자화상이 많았잖아요. 그러다가 군중과 군집으로 확장됩니다. 최근 코로나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얼굴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요. 이 회화적 변화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되어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특별한 계기나 배경이 있었나요?

YM 우리가 2010년, 2012년에 사스와 메르스를 먼저 겪었다는 시대적 배경도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완전히 바뀝니다. 얼굴에 꽃이 활짝 피기도 하고, 얼굴을 꽃으로 덮기도 하죠. 누군가는 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꽃이 웃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전 베이징에서 생활하다가 겨울이 오면 중국 남서부 지방인 윈난 작업실로 옮깁니다. 2020년 중국 남서부 윈난성의 춘청에서 몇 달간 거주했어요. 팬데믹의 암울함을 꽃으로 견뎠죠. 윈난은 사시사철 꽃이 피는 곳이에요.

Q5 ‘꽃’ 시리즈를 보면 서양 미술사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인물을 패러디하기도 합니다. 미술사에서 인정받고 권위 있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이유가 있나요?

YM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웃음 시리즈의 인물들을 제가 다양한 포즈를 사진으로 찍은 후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처럼요. 꽃의 사물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신유물론 같은 경우 사물과 인간이 동등한 관계성을 맺고 있죠. 그런 면에서 꽃의 웃음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웃음의 맥락에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요.

Q6 ‘미궁’ 작업은 중국 전통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 ‘이상향’인 무릉도원이 생각납니다. 혹시 이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표현 면에서는 전통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서양화적인 요소도 담겨 있고요.

YM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무릉도원의 느낌도 있네요. 그렇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미로, 미궁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테크닉 면에서는 중국화와 서양화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중국화는 주로 모필로 해요. 동물 털로 만든 것이죠. 상당히 유연하고 탄력이 있어요. 수성 잉크를 쓰고요. 반면 유화는 딱딱하고 넓적한 붓으로 면을 메우는 식입니다. 그 두 가지 느낌이 섞여 있는 거죠.

Q7 아직 밝혀진 바는 없지만, 코로나 시기에 중국은 그 진원지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사회적인 분위기도 달라졌죠.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지내고 바라봤는지요.

YM 작가로서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생겼죠. 중국에는 봉쇄 시기도 있었고, 단절과 고립을 겪었잖아요. 충격이 컸죠. 자신감, 오만함까지 있었는데, 그런 걸 상당히 내려놓게 되었다고 할까요. 전 세계가 문화적으로 연결된 문명권으로 변화되어가는 시점에서 (코로나를) 만난 거잖아요. 그렇게 단절되고 고립되니까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뭐라 정의 내리기 힘드네요.




Interview with _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_Behind the Scenes ‘휴먼 코미디’의 무대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 1952~)만큼 다양하게 해석되는 작가가 있을까. 그는 직접 관찰하거나 미술사적 레퍼런스에서 차용한 상반된 이미지를 화면에 구성하며 팝아트, 신표현주의,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고유한 스타일의 페인팅을 선보여왔다. 이는 대중문화와 미디어에서 범람하는 이미지의 차용, 전복, 해체와 재구성을 탐구한 픽처스 제너레이션(Pictures Generation)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1980년대부터 지속해온 작업 경향으로 보인다. 1987년, 불과 서른넷의 나이로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최연소 미드 커리어 아티스트로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영예를 누린 지도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지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진화해온 그의 작업은 최근 몇 년간 몰두한 ‘Tree of Life’ 연작에서 아낌없이 매력을 펼친다. 얼핏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미지가 자유롭게 조화를 이루는 그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는 유지한 채, 유머러스함마저 풍기는 만화풍 인물들이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작업이다. 이 시리즈의 최신작을 선보인 개인전 <World People>을 위해 리만머핀 서울을 찾은 작가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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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살레의 작품에는 마치 연극 무대의 한순간처럼 보이는 장면이 나타나 있다. 화면 속 인물들은 분명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 듯하지만, 그게 무엇일지 바로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리만머핀 서울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 ‘Tree of Life’ 연작에서 살레의 작은 연극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그림 속 인물들은 누구일까. 이들의 캐스팅은 그가 ‘신이 주신 선물’이라 표현한 <뉴요커> 잡지의 전설적인 삽화가 피터 아르노(Peter Arno, 1904~1968)와의 운명적인 조우에서 비롯되었다. “평소 바우하우스의 이상이 대중매체의 광고나 그래픽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던 1930~1960년대 잡지 속 광고, 그래픽 등 디자인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당시 매해 발간되던, 그해 최고로 선정된 디자인을 보여주는 잡지가 있어요. 면도 크림이었는지 향수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제품 광고 페이지에서 아주 독창적으로 그려진 인물 캐릭터를 발견했습니다. 단순한 광고를 넘어 ‘예술 작품과도 같은 중력감’을 느꼈죠. 그것이 아르노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아르노의 화풍에 나타나는 세련미와 인물들이 지닌 입체감에서 영감받아 탄생했다.
한두 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화면의 중앙을 관통하는 ‘생명의 나무’ 역시 시선을 끈다. 살레가 예전부터 구상하던 이번 연작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게 된 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앙이 닥쳐왔을 즈음이었다. 전례 없던 고립의 시대, 뉴욕주 이스트햄프턴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오로지 작업에 임한 농축된 시간의 결과물로 탄생한 작품이 ‘Tree of Life’ 연작이다. 이쯤 되면 ‘나무’라는 도상이 지닌 상징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창조의 근원이자 수많은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는 ‘생명의 나무’가 마침 이 시기의 작업에 등장한 게 결코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는 질문에, 작가는 참으로 그다운 답변을 내놓았다. “우리가 처한 안타깝고 슬픈, 독성 가득한 현실에서 나무가 지닌 은유적인 이미지를 떠올린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의미를 제한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무라는 표상은 단순히 당시 시대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유의 진동이 은은하게 퍼질 수는 있지만, 제가 기본적으로 회화에 접근하는 방식은 특정한 순간이나 사건에 대한 반응을 담는 것이 아닙니다.” 그간 살레는 <아트 포럼>,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모던 페인터스> 등 미술 잡지에 게재된 수많은 에세이와 2016년 출간한 저서 <How to See: Looking, Talking and Thinking About Art>를 통해 예술을 감상하는 시각에 대한 그의 관점을 내비쳐왔다. 한결같은 점은, 어떤 주제에 대한 의미를 단정 짓지 않는다는 것. 사실 그의 주제는 ‘보는 것(looking)’ 자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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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에 대한 살레의 관심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암실에서 사진을 배웠으며, 아홉 살에는 동네 아트 스쿨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지역신문의 광고 레이아웃과 디자인 관련 일을 하면서 ‘지나가다가 눈에 띄면서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이미지’ 만드는 법을 저절로 익혔으리라 생각된다(살레의 작품에 의도적으로 숨겨진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그의 페인팅을 보다 자세히 들여보게 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살레의 예전 작업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화면 구획’ 또한 그의 작품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다. 중앙의 나무를 중심으로 상반된 행동을 하고 있는 좌우의 인물들과 하단의 패널로 분할된 화면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몇몇 페인팅에서 하단부는 독립된 캔버스를 이어 붙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15~16세기 종교화의 패널 구조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프리델라 패널(predella panel)은 보다 추상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미지가 팽팽하게 대치하는 화면 안에서 눈길이 머무는 대로 그 흐름에 시선을 맡기다 보면 곧 여러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이를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우리가 늘 하고 있는, 동시에 다양한 양상을 스캔하고 이를 연관시켜 하나로 해석하는 우리 눈의 이미지 인식 과정을 따라서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살레의 작품을 들여다보자. 화면 속 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표정과 행동을 보고 있자니 이들 사이를 오가는 생략된 말풍선 속 대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특정한 스토리나 상황을 제시하는 대신 살레는 그의 작품에 담긴 내러티브가 ‘우스움(funny)’이라고 전했다. “내러티브는 단순한 스토리를 넘어 어떤 회화에든 존재하는 요소입니다. 추상화에도 존재하죠. 어떻게 그림이 만들어졌는가, 왜 이러한 형상을 하고 있는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감정적인 느낌 또한 모두 내러티브입니다. 남녀가 만났을 때 오해가 발생하고, 또 그걸 푸는 과정에서 우스운 상황이 발생하는, 전통적인 TV 시트콤 같은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단부는 상단에 복잡하게 나타난 여러 행동과 대비되는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위아래 패널이 또 다른 의미나, 아예 정반대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이를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건 하나의 페인팅이고, 이런 여러 요소가 하나의 작품에서 서로 부딪히지만 조화롭게 공존하며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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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우리는 종종 예술 작품을 즐기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행위인 ‘보는 것’의 힘을 망각한다. 살레의 말처럼 작품의 의미를 ‘배우는 것’보다는,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기반으로 작품을 ‘흡수’할 때, 데이비드 살레의 페인팅은 희로애락이 담긴 인간의 삶을 펼쳐내는 무대가 되어줄 것이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생이 참 멋지지 아니한가, 인생 참 재미있지 아니한가, 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답하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인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레의 휴먼 드라마를 엿볼 수 있는 <David Salle: World People> 전시는 한남동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10월 28일까지 계속된다.




[Kiaf X Frieze Seoul 2023]


01. Kiaf X Frieze Seoul 2023_Interview with_구마 겐고(Kengo Kuma)_자연과 예술에 조응하는 건축의 미학 보러 가기
02. Kiaf X Frieze Seoul 2023_Interview with_웨민쥔(Yue Minjun)_시대를 대변하는 ‘웃음의 역설’ 보러 가기
03. Kiaf X Frieze Seoul 2023_Interview with_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_Behind the Scenes ‘휴먼 코미디’의 무대 보러 가기
04. Brands & Artketing_10 프라다 모드(Prade Mode)_도시의 문화 예술을 대하는 그들만의 방식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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