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19 SUMMER SPECIAL] Interview with_Erwin Wu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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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3, 2019

글 고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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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부름(Erwin Wurm)이라는 이름은 현대미술을 ‘애정’하거나 관심을 지닌 어떤 이들에게는 꽤 익숙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2017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오스트리아 국가관의 대표 작가를 맡기도 했던 그의 개인전이 지난해 봄부터 5개월 가까이 서울 이태원에 자리한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또 지난봄 열린 아시아 지역의 최대 아트 페어 아트 바젤(Art Basel) 홍콩 기간에도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메이저 화랑인 리먼 머핀(Lehmann Maupin) 갤러리가 그의 개인전을 진행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 말 아트부산 2019에 참가한 독일 쾨니히 갤러리(KÖnig Galerie)는 여러 작가를 소개하는 대신 에르빈 부름의 단독 전시를 선보였다. 작가 개인이 전시 콘텐츠를 들고 ‘영업’하면서 다니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그는 다양한 도시를 섭렵하면서 지구촌을 누비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그의 존재감을 부쩍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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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분서주’하는 작가와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필연적인 인터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에르빈 부름을 남프랑스의 항구도시에서 마주쳤다. 대대적인 전시를 앞두고 마르세유의 한 미술관에 들른 그를 아주 우연히 맞닥뜨린 것. 예기치 않은 만남이었고, 당시에는 일정도 따로 있었지만,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 될 운명은 아니었던가 보다. 마침 필자는 일주일 정도 뒤에 에르빈 부름의 주무대인 비엔나로 향할 예정이었고, 그도 긴 출장이나 여행을 떠나지 않는 주간이었던 것이다. 짧은 조우였지만 그는 예의 바르게 비엔나에 오면 한번 자신의 스튜디오에 놀러 오라고 초대했고, 흥미로운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는 글로벌 아티스트의 작업실을 구경할 기회를 놓칠 이유는 없었다. 에르빈 부름의 작업은 단지 ‘이름값’ 때문이 아니라 절로 관심의 촉수를 뻗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세로로 길고 좁다랗게 늘려놓은 듯한 집이라든가 몽실몽실한 느낌의 뚱뚱한 차라든가, 가늘고 빼빼 마른 오이나 젓가락처럼 늘려놓은 파격적인 비율의 인체 조각 등 그의 작품들을 보면 시각적으로는 언뜻 경쾌하고 재기 발랄하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진중한 질문에서 출발했을법한 생각의 토대가 궁금해진다. 실제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만나게 된 에르빈 부름은 꽤 진지한 대화 상대였다. 이 점은 놀랍지 않았지만, 그의 ‘작업실’은 예상을 빗나갔다. 사실 그의 작업실은 비엔나에 있지 않았고, ‘작업실’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엄청났다. 비엔나에도 거처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주로 차로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되는 외곽에 있는 림베르그(Limberg)에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비엔나 자체도 ‘녹색 도시’지만, 림베르그는 그야말로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인 한적한 전원 마을.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 속에 에르빈 부름의 ‘스튜디오’는 아주 넓고, 존재감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커다란 농장이라고 해도 될 만한 목가적인 부지에 여러 채의 건물이 흩어져 있고, 그의 가족이 비엔나를 오가면서 거주한다는 운치 있는 고택도 자리하고 있다. 어린 딸을 제외한 부인과 2명의 아들은 공식적으로 그의 일을 돕고 있기도 했다. “(이탈리아인들처럼) 가족 기업을 꾸리고 있는지 몰랐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오스트리안 마피아’의 아지트에 온 걸 환영한다”면서 웃었다.

‘조각’의 개념에 도전장을 던지다
스스로를 ‘조각가’로 규정하는 에르빈 부름의 정체성은 확고하다. 설치, 드로잉, 영상 등 대다수의 현대미술가들처럼 그 역시 다양한 매체(medium)를 넘나들지만 그는 “나는 그저 조각가”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가 빚어내는 오브제, 사진, 비디오, 심지어 퍼포먼스까지도 ‘창조물’은 다 조각으로 간주한다. 조각의 대상도 마찬가지다. 그 자신을 포함해 주변의 ‘살아 있는’ 사람들, 사물들, 거주하는 등 무엇이든 조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drinking sculpture’, ‘outdoor sculpture’, ‘performative sculpture’ 등의 독특한 분류법을 따른다.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이론을 공부하다가 2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한 된 그는 ‘조각이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전형성’을 지닌 조각이 21세기에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 게 그에게는 예술가의 당연한 ‘동시대적인’ 책무로 여겨졌던 것이다.
사물을 마구잡이로 비틀거나 인체를 우스꽝스럽게 변형한 ‘왜곡된 모습’의 기저에는 우리가 스스로 던지곤 했던, 혹은 던질 수 있는 질문도 깔려 있는 듯하다. “나는 더 말라도, 뚱뚱해져도, 혹은 뼈를 깎아서 괴기스러워져서도 여전히 나인가?” 하는. 이처럼 도전적인, 아니 어찌 보면 누구나 품고 있을 만한 질문을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느끼고 고민’해볼 수도 있다. 1990년대 후반 에르빈 부름에게 처음 유명세를 가져다준 ‘1분 조각(one minute sculpture)’, 혹은 ‘60초 조각’이 바로 그러한 인식의 지렛대가 아닐까 싶다. ‘60초 조각’! 글자 그대로 60초, 1분이라는 시간 동안 멈춰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조각’으로서.
지난해 현대카드 스토리지 개인전에서 관람객은 실제로 60초 조각의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친절하게 지시 사항이 안내되어 있다. “혓바닥을 내밀어라”, “공 위에 누워 몸의 어느 부분도 땅에 닿지 않도록 하라”, “마커 펜을 신발 위에 올리고 1분간 유지하면서 데카르트를 생각하라” 등의 지침이다. 이처럼 작가의 개입을 받아들이면서 관객들은 기꺼이 ‘참여적인’ 태도를 취한다. 몸을 의자나 테이블 밑으로 구겨 넣기도 하고, 허수아비 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신발을 벗고 누워 있기도 하며 즐기는 이들이 많다. ‘신체 능력’만 된다면 물구나무를 선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처럼 단 1분 동안만 ‘실재’하는 조각을 경험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구적인 것만이 조각인가? 고정된 형태로 남겨질 수 없다면 조각이 아닌가? 순간은 영원할 수 있는가? 이는 결국 ‘인간’과 ‘존재 ’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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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유지한다는 것
흥미롭게도 그의 ‘개념’ 조각 시리즈가 더 큰 유명세를 타게 된 배경에는 독일이 자랑하는 슈퍼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 미국 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같은 유명인과의 ‘협업’도 있었다. 쉬퍼는 모델로서가 아니라 여느 관람객처럼 1분 조각 프로젝트의 ‘인체 조각’으로 참여하면서, 그 이미지를 공개하는 데 동의한 것이다. 에르빈 부름의 설명인즉, 사실 그는 패션 잡지 <보그>의 협업 제안으로 궁리를 하다가 반농담처럼 갤러리 관계자한테 이 프로젝트에 가담했으면 하는 ‘후보’를 얘기하면서 그녀를 언급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클라우디아 쉬퍼는 그의 작품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며 흔쾌히 참여했다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의 인연은 에르빈 부름의 조각 콘셉트가 그들의 뮤직비디오에 반영된 경우다. ‘Can’t Stop’이라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마커 펜을 콧구멍에 넣는 등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취하는 멤버들을 볼 수 있다. 에르빈 부름이라는 이름을 더 널리 알리게 된 계기로 작용한 건 당연지사.
이렇듯 작품을 ‘대중적으로’ 홍보할 줄 아는 그는 여러모로 영리한 작가다. 하지만 자신의 토대를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아니, 노력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기회가 있다면 지구촌 어디든 열심히 다닌다. 작가들 중에는 다른 문화 예술 콘텐츠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에르빈 부름은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문화적 체험을 좋아하며, 예술품과 오브제를 사들이는 컬렉터이기도 하다. 초심을 잃고 싶지 않은 그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순간은 블록버스터 전시가 아니다. “브레멘에서 개최한 첫 번째 전시였어요. 열흘 남짓한 시간이 주어졌는데, 모든 걸 다 해냈어요. 사실 (고민을 했어도) 구체적인 ‘뭔가’가 없이 일단 갔던 거죠. 아주 절실했어요.” 전시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인 호평이었고, 그는 이때 느낀 성취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겉모습만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그는 이미 60대 중반이다. 아마도 간절함을 잊지 않으려 애쓰면서 부단히 고민하고 흡수해나가는 자세가 그를 ‘살아 있는’ 작가로 유지시키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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