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02, 2025
글 강주희(객원 에디터)
기억의 편린을 모아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 세계를 구축한 2개의 전시를 소개한다. 유년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꿈같은 풍경을 그려내는 최민영 작가의 개인전(스페이스K 서울)과 생사의 경계에서 겪은 감정과 트라우마를 화려한 색채로 변주한 일본 팝 아티스트 케이이치 타나아미(Keiichi Tanaami)의 개인전(대림미술관)이다. 한 명은 차분하고 은유적인 서사로, 다른 한 명은 강렬하고 과감한 시각적 언어로 펼쳐낸 ‘기억의 콜라주’로 당신을 초대한다.
최민영, ‘밤 수영’, 2024, Oil on linen, 220×680cm, Photo by Peter Mallet, 이미지 제공_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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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침실’, 2023, Oil on linen, 160×210cm, Photo by JunHo Lee, 이미지 제공_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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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해 달 차’, 2024, Oil on linen, 150×200cm, Photo by Peter Mallet, 이미지 제공_스페이스K |
꿈을 담은 몽환의 풍경 #최민영, <꿈을 빌려드립니다>展 스페이스K
한강을 유영하는 아마존강돌고래, 낮과 밤이 동시에 공존하는 들판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 꿈속에서 본 듯한 침실 풍경.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는 최민영(Minyoung Choi, b. 1989) 개인전 <꿈을 빌려드립니다>는 현실과 비현실, 기억과 상상이 얽힌 몽환적 서사로 초대한다. 신작 회화 16점을 포함해 드로잉, 회화 등 3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공간 연출에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흰 벽이 점차 짙은 청록색으로 변하는데, 이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구성된 3개의 공간을 거닐며 서서히 무의식의 세계로 향한다는 상징적 연출이다. 최민영은 일상적 풍경에 섬세한 상상의 결을 더해 독창적인 장면을 그려낸다. 전시 제목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소설의 핵심 기법인 마술적 사실주의는 현실의 틀에 비현실적 요소를 녹여내는 서사 방식으로, 최민영의 작업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소설 속 꿈을 빌려주는 한 여자의 이야기처럼 그는 관객이 자신의 꿈 일부를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가상의 세계를 직조해낸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는 미국, 일본, 한국을 거치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감명받은 색채와 공간의 인상이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는 “제가 사용하는 색은 단순히 눈앞의 현실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제가 느낀 감정과 기억을 기반으로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작품 전반적으로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돋보인다. 낮과 밤의 구분이 흐려진 초원을 그린 ‘해 달 차’, 블라인드의 줄무늬를 따라 비치는 빛이 공간을 감싼 ‘침실’ 같은 작품이 그 예다. 일상에서 포착한 빛의 순간들이 화면 속에서 마법처럼 어우러지며, 뚜렷한 명암 대비는 장면에 입체감을 더한다. 작품 속 동물들 또한 중요한 메타포 역할을 한다. 물고기, 불가사리, 올빼미 등은 현실과 꿈을 잇는 존재로 등장한다. 특히 4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인 대표작 ‘밤 수영’에서는 고요한 밤바다를 배경으로 아마존에 서식하는 강돌고래가 등장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수면 위와 아래의 경계를 넘나드는 돌고래를 통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 일상에서도 꿈같은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현실의 경험에서 영감받아 작업한다고 덧붙인다. 어린 시절 반려동물과의 교감, 한강 나들이와 해수욕장에서의 추억 등 친숙한 장면을 마주한 관객은 자신의 기억과 맞닿은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전시명 <꿈을 빌려드립니다>
전시 기간 2월 23일까지
전시 장소 스페이스K
홈페이지 spacek.co.kr
전시 기간 2월 23일까지
전시 장소 스페이스K
홈페이지 spacek.co.kr
<Keiichi Tanaami: I’M THE ORIGIN> 공식 포스터. 이미지 제공_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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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ichi Tanaami: I’M THE ORIGIN>, CREATIVE ILLNESS, 2024, Courtesy of DAELIM MUSEUM, 이미지 제공_대림미술관 |
<Keiichi Tanaami: I’M THE ORIGIN>, CREATIVE ILLNESS, 2024, Courtesy of DAELIM MUSEUM, 이미지 제공_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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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환영의 유토피아 #케이이치 타나아미, 展 대림미술관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상상력.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Keiichi Tanaami: I’M THE ORIGIN〉은 아시아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케이이치 타나아미(1936~2024)의 예술 세계를 집대성한 전시다. 전후 문화, 대중 매체, 기억과 꿈, 죽음과 낙원 등 작가가 평생 탐구한 주제를 바탕으로 그의 예술관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지난여름 일본 도쿄의 국립 신미술관(NACT)에서 회고전이 열린 지 이틀 만에 작고한 그의 60여 년 창작 여정을 담은 작품 7백여 점을 전시하며 회화, 드로잉, 조각, 애니메이션,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된 방대한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만큼 대림미술관 본관뿐 아니라 바로 옆 공간 ‘미술관옆집’까지 전시 무대를 확장했다.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억의 파편을 끌어와 실험적 서사를 만드는 힘이다. 화려한 색과 비현실적 이미지로 가득하지만, 그 바탕에는 복합적인 내면의 기억이 자리한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에 대한 기억이 작업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도쿄 대공습 당시, 폭격기의 섬광이 할아버지의 금붕어 어항에 비치던 장면이 그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이미지로 남았다고 한다. 이 기억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금붕어, 두개골, 전투기, 벚꽃 등의 상징으로 이어져 죽음과 생명, 파괴와 재생의 이미지를 함축한다. 1990년대 중반은 작가가 기억을 시각화하는 드로잉 작업에 몰두한 시기다. 매일 저녁 낮은 식탁에 앉아 묻어둔 과거의 기억을 작품으로 남겼다. 이 과정에 대해 그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한 장면처럼 시간 속으로 미끄러지는 경험을 했다고 회고한다. 기억을 그림으로 남기고, 뒷면에 감정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쌓아 올린 무수한 드로잉은 훗날 그의 회화와 판화에 중요한 창작 자산이 되었다. 1981년에 겪은 결핵 투병 또한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사의 기로에서 마주한 환각과 불안은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이 시기에 탄생한 ‘생명 탄생’과 ‘엘리펀트 맨’ 시리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시각화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팬데믹 기간에는 ‘피카소 모자상의 즐거움’ 시리즈를 통해 고립과 불안 속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다. 케이이치 타나아미는 흩어진 기억의 편린을 조합해 독특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그의 예술 세계는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거대한 기억의 저장고와도 같다. 특히 온실 안에 작가의 꿈 일기와 스크랩북을 담아놓은 설치 작업물 ‘기억의 재구축’은 끊임없이 재조합되고 진화하는 기억의 속성을 암시한다. 그곳에 시공간이 중첩된 그만의 유토피아가 펼쳐진다.
전시명 <Keiichi Tanaami: I’M THE ORIGIN>
전시 기간 6월 29일까지
전시 장소 대림미술관
홈페이지 daelimmuseum.org
전시 기간 6월 29일까지
전시 장소 대림미술관
홈페이지 daelim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