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in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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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 2022

글 고성연

팬데믹의 장기화 속에서도 일상의 시간은 흘러가고, 저마다의 여정은 계속된다. 특히 아트 생태계를 둘러싼 전시 콘텐츠의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 바삐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허황된 명성이나 성공에 천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하게 걸은 ‘컬러 사진의 선구자’ 사울 레이터 회고전, 20세기 초·중반 작품을 토대로 한국 사진사를 훑어볼 수 있는 기획전 등 서울에서 진행 중인 2개의 사진전, 그리고 부산 을숙도와 망미동에서 각각 항구도시의 아트 신을 물들이고 있는 결이 다른 2개의 전시를 소개한다.


#piknic,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세상에서 잊히길 바란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소탈하고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 지난해 말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2013)에서 자신의 오랜 작업실이 있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배경으로 등장한 노년의 사울 레이터는 “도대체 왜 (보잘것없는) 나를 찍고 싶어 하느냐?”는 의아한 태도를 보이지만 느릿느릿 다정한 말투로 삶을 회고한다(그는 다큐가 발표된 2013년 초겨울 세상을 떴다). 성취주의가 만연한 세상인데 정말로 잊히길 바랐을까,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가 아주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서 반짝거리는 많은 순간을 사랑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특별한 주제 의식이나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도시 풍경을 관조하며 틀에 얽매이지 않은 시각으로 세상을 담아낸, 차분하고 따뜻한 서정성이 절로 묻어나는 그의 ‘컬러 사진’을 보노라면 그 진심이 느껴진다. 서울 남산 인근의 문화 명소 피크닉에서 진행 중인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전은 풍요로운 시기이던 1950년대 뉴욕의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색감과 시선이 어린 그의 다채로운 사진 작품을 비롯해 미공개 슬라이드 필름, 그림, 패션 화보 등을 두루 접할 수 있다. 강력한 팬덤을 거느린 영화 <캐롤>의 토드 헤인즈 감독이 오마주한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그런 수사가 필요 없이 그저 작품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전시명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전시 기간 3월 27일까지 홈페이지 piknic.kr

#언주라운드, <사(寫)에서 진(眞)으로>

‘베낀다’는 뜻의 사(寫)와 ‘참된 모습’이라는 진(眞)의 결합어인 사진. 현대미술을 둘러싼 담론의 중심에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왔을까? 서울 논현동의 문화 예술 공간 언주라운드에서 열리고 있는 <사(寫)에서 진(眞)으로>는 규모가 작지만 진중한 의제를 품은 기획전이다. 한국 사진의 아키비스트이자 전시 기획자로 활약해온 박주석 교수(명지대)의 <한국사진사>(문학동네, 2021년)의 출간을 기념하는 동시에 한국 사진사를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사진학의 개척자 신낙균, 한국인 최초로 개인 사진전을 연 정해창을 비롯해 현일영, 임응식, 김한용, 민충식 등 작가 22인의 빈티지 프린트, 오리지널 프린트 총 50점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됐다. 박주석 교수는 “사진은 이미 포토그래피(寫)를 품고 있는 단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진(眞)의 문제”라면서 오늘날의 ‘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이 타 매체에 비해 압도적인 양으로 다뤄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분명 이 생태계에 기회이기도 하고 압박이기도 한데, 이는 한국 사진이 짊어진 무게와 나아갈 길에 대한 질문에 다름 아니다. 20세기 한국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언주라운드와 공동 기획으로 참여한 갤러리 혜윰, 대구의 사진 전문 공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순회전 형식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전시명 <사(寫)에서 진(眞)으로>(박주석 <한국사진사> 출간 기념전) 전시 기간 2월 26일까지 문의 070-786-8257

#부산현대미술관, <그 후, 그 뒤,>, <경이로운 전환> 등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의 창가에 세워진 유로화 동전 하나. 고속 열차가 국경을 가로지르며 내달려도 위태롭기는커녕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균형 감각을 뽐낸다. 언뜻 광고인 양 동전의 안정성을 포착한 이 영상은 사실 물신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체제 속 마치 국가가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화폐’에 대한 환상을 꼬집고 있다. 싱가포르 작가 호루이안의 ‘중국 고속 열차의 궁극적인 동전 실험’(2018)이라는 작품으로 부산현대미술관 기획전 <경이로운 전환> 전시장에 들어가면 바로 눈에 띈다. 기하학적 형태와 그림자의 앙상블이 아름다운 ‘일루젼 스페이스’(2021)는 어업용 통발에서 착안했는데, 실체 없이 부유하는 자본주의적 부의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강민기 작가의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 한복판에는 격자무늬 평상 위를 수놓은 다수의 책으로 이뤄진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끄는데, 60대 비정규직 노동자 루치에테 씨를 고용해 그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일대기를 책으로 펴낸 대만 작가 저우위정의 ‘직업의 이력-루치에테’(2012)다. 작가는 은퇴를 앞둔 친척과 이웃들이 반세기 가까이 일하고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고. 부산현대미술관은 동시대 미술을 다루는 기관답게 자본주의, 노동, 환경 등 오늘날 우리가 대면한 사회적 담론을 담은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경이로운 전환> 말고도 기후변화 시대의 생태계 문제를 다룬 <그 후, 그 뒤,> 등 4개 전시를 이른 봄까지 개최한다.
전시명 <그 후, 그 뒤,>, <경이로운 전환> 등  전시 기간 전시 기간 각각 3월 1일, 3월 20일까지 홈페이지 www.busan.go.kr/moca

#국제갤러리 부산, 문성식 개인전

3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문성식 작가의 전시명은 <Life 삶>이다. 제목처럼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풍경에 대한 소소한 기록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은은한 색감이나 두껍게 바른 물감의 질감이 박수근의 ‘고목’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겨울나무’(2021)를 비롯해 사계절을 아우르는 꽃과 나무 등 일상 풍경에서 마주치는 장면과 모습을 담은 유화 드로잉 1백여 점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이 같은 일상의 조각을 담아낸 대다수 작품에는 그가 대학 시절부터 적극 활용해온 연필이 주재료로 쓰였다. 두껍게 바른 유화 위에 연필로 그어 바탕을 긁어내는 ‘유화 드로잉’ 방식이다. 여기서 물성이 쉽게 섞이지 않는 연필과 유화의 마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연필과 유화 사이의 저항을 이겨내고 마치 캔버스 위에 부조와 같은 형태로 ‘그리려고 하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유화 드로잉에서는 번짐이나 뭉그러짐 등 연필만 사용할 경우에 나오는 우연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화면의 모든 부분에 연필이 세세히 닿아야만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문성식의 작품에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는 존재에 대한 애정이 깃든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우주 만물의 신비와 원리에 대한 진지하고 폭넓은 눈길, 그러면서도 다정하고 섬세한 손길을 머금고 있다.
전시명 <Life 삶>  전시 기간 2월 28일까지 홈페이지 www.kukje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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