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진화하는 기계 미학의 결정체, 자동차. ‘이동’과 ‘레저’가 라이프스타일의 키워드인 시대인 덕분인지 남들이 불황이니 어쩌니 해도 자동차 산업은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는 영역 중 하나다. SUV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실용성과 개성,
품격의 조화를 지향하면서 소비자 마음을 공략하는 다채로운 프리미엄 자동차들의 격전이 흥미롭다.
2 아우디코리아의 럭셔리 플래그십 스포츠카 ‘더 뉴 아우디 R8 V10 플러스 쿠페’.
3 재규어코리아의 신형 스포츠카 ‘뉴 F-TYPE’. 이 차종 최초로 2.0L 인제니움 가솔린엔진을 장착한 P300 모델은 오는 2월 선보이며 사전 계약이 가능하다.
5 2018년 상반기 중 선보일 포드의 스포츠 세단 머스탱 신형 모델.
6 슈퍼 럭셔리의 상징인 롤스로이스 8세대 뉴 팬텀.
SUV처럼 가파른 성장세를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럭셔리 세단 시장은 든든한 고정 소비자층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이 분야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대결은 흥미진진하다. BMW는 역대급 성적을 거둔 뉴 E클래스로 의기양양했던 메르세데스-벤츠의 콧대를 ‘520d’ 모델을 앞세운 뉴 5 시리즈로 최근 다시 꺾으면서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했다. BMW 그룹 코리아 관계자는 “BMW 5 시리즈는 지난 1월부터 11월까지 판매량이 2만3백7대로,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설명했다. 운전의 편리함을 배가하는 반자율 주행 기술을 전 모델에 기본적으로 적용하고, 직접 터치스크린을 조작하지 않고 간단히 손동작만 해도 볼륨 조절이나 전화 수신이 가능한 뉴 5 시리즈의 매력이 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메르세데스-벤츠는 E클래스의 라인업을 더 강화하는 한편, 1억~2억원대 고가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인 더 뉴 S클래스 시리즈로 자웅을 겨루고 있다.
BMW vs 벤츠의 양강 구도만큼이나 수요 다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가을 선보인 현대차의 야심작인 중형 세단 제네시스 G70을 비롯해 토요타의 뉴 캠리 8세대 모델, 닛산 알티마 등 국산 브랜드와 일본 차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행 안정성과 향상된 차체 강성을 보장한다는 TNGA 플랫폼을 내세운 뉴 캠리(가솔린, 하이브리드 모델)는 빠른 속도로 판매 2천 대를 돌파하더니 지난 11월 말에는 ‘누적 계약 3천 대’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럭셔리 스포츠 세단 세그먼트의 ‘워너비 아이템’으로 꼽히는 포르쉐의 신형 파나메라 4S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완전 변경 모델인 2세대 파나메라는 엔진과 변속기를 완전히 재설계해 기존 모델보다 20마력이 증가한 440마력을 발휘한다. 포드의 스포츠 세단 머스탱 신형 모델도 V8 GT 모델과 10단 자동변속기 등 역대 최고 성능을 갖춘 채 2018년 상반기 중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시작가가 6억3천만원대로 럭셔리 세단의 최고봉이라고 할 만한 롤스로이스의 뉴 팬텀은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스펙’을 자랑한다. 100%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공간 프레임인 ‘럭셔리 아키텍처’, 6mm 두께의 이중 유리창과 고흡수성 재료로 부쩍 향상된 방음 기능, 트윈 터보 V12 엔진 등 롤스로이스다운 화려한 면면이 돋보이는데, 그중에서도 맞춤형 옵션인 ‘더 갤러리(The Gallery)’는 단연 눈길을 끈다. 자동차 대시보드에 오너의 DNA 구조를 금도금으로 3D 프린팅한 조각, 도자기 재질로 정교하게 가공한 장미 줄기나 보석, 실크로 만든 디자인 아트 등 자신이 원하는 예술 작품을 ‘심어’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옵션이다. 자동차 자체가 움직이는 예술품이 될 수 있을뿐더러 ‘나만을 위한 특별함’을 품는다는 맥락에서 ‘N=1’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겠다. 비스포크 옵션은 긴 작업 시간이 소요되지만 실크, 목재, 가죽 등으로 구성된 ‘더 갤러리’ 컬렉션을 선택하면 즉시 장착할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카, 꽃을 피울까
‘친환경’은 줄곧 관심받아온 주제였지만 ‘디젤 논란’ 덕분에 가솔린이 위상을 되찾은 것은 물론 하이브리드가 부쩍 힘을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해 10월 성적을 보면 전체 수입차 중 하이브리드카가 10대 중 1대였다. 지난 하반기 이래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프리미엄 하이브리드 차종은 앞서 언급한 토요타의 뉴 캠리 하이브리드 버전, 렉서스 중형 하이브리드 세단 ES300h. 렉서스가 2017년 11월 발표한 하이브리드 SUV 모델인 NX300h에 이어 최근 발표한 플래그십 쿠페인 뉴 LC500h(New LC500h)도 ‘멀티 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BMW도 최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신차 3종을 내놓고 친환경차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데 나섰다. BMW 최초의 PHEV 스포츠 액티비티 비히클(SAV)인 X5 xDrive40e i퍼포먼스, 3 시리즈 기반의 PHEV 모델인 330e i퍼포먼스 M 스포츠 패키지, 그리고 뉴 7 시리즈에 eDrive 기술을 접목한 PHEV 럭셔리 세단 740e i퍼포먼스 M 스포츠 패키지가 그 주인공이다. BMW 브랜드의 카테고리는 크게 BMW와 고성능 부문인 M, 순수 전기차 부문인 i로 나뉘는데, PHEV 전기화 모델인 ‘i퍼포먼스’는 기존 모델과 i 브랜드 사이에 자리 잡은 친환경 지향의 라인업이다. 올해 아우디에서는 하이브리드 기능을 적용한 e트론 SUV를 선보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실 ‘친환경’은 이제 단지 화제어만으로 조명받기에는 막중한 무게를 지닌 단어가 됐기에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더욱 깊어질 듯하다.
올해 자동차업계에서 지켜볼 만한 또 다른 풍경은 수요의 다변화 현상에 따른 ‘비인기 종목의 재발견’ 여부가 아닐까 싶다. 해치백, 쿠페, 왜건 등이 세단이나 SUV에 밀려 소비자의 레이더망에서 거의 벗어났지만, ‘실속’과 ‘남다른 개성’을 따지는 소비자 집단이 성장하면서 2018년은 조금 다른 양상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점치는 전문가가 꽤 있다. 일례로 기아차가 소형 해치백인 신형 프라이드를, 그리고 르노삼성이 소형 해치백 모델인 클리오를 선보일 예정인데, 과연 차급에서 겹치는 소형 SUV 진영의 공세 속에서 어떤 성적을 낼지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신차 구입을 염두에 둔 소비자라면 점점 다채로워지는 선택의 장에서 즐겁고도 괴로운 고민을 각오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