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China 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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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2, 2016

글 고성연(상하이 현지 취재) | 사진 제공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글로벌 미술계에서 ‘차이나 웨이브’의 2막이 열리고 있는 것일까. 2000년대 중반 고공 행진을 하다가 잠시 풀이 죽은 듯싶더니 요즈음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그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는 작가 스펙트럼도 훨씬 더 넓어졌다. 장샤오강, 팡리쥔, 웨민쥔, 쩡판즈 등 흔히 중국 현대미술 하면 떠오르는 ‘4대 천왕’의 존재감은 여전하지만 그보다는 허리층, 신세대를 아우르는 다각도의 탐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지난 1월 말부터 예술의 본고장 파리에서도 중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면을 담아낸 대형 전시가 열리고 있어 화제다. 파리 16구에 터를 잡은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 FLV)에서 지난 1월 27일부터 다양한 세대의 중국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중국 현대미술에 헌정하는 대규모 전시를 개최한 것은 10여 년 만이라고. 크게 2개의 전시로 나눠져 있는데, 역사적 격동기를 겪은 12명의 작가를 묶은 <본토(本土)>라는 기획전(5월 2일까지)과 FLV 소장품을 소개하는 <컬렉션>전(8월 29일까지)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이 중 상하이와 베이징을 무대로 활약하는 작가 6명의 현지 스튜디오를 다녀왔다. 이번 호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장환(張洹), 도발적인 스타 작가 쉬전(徐震)의 상하이 스튜디오를 먼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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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예술은 단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일궈내는 망치나 다름없었다. _김지연 <중국 현대미술의 얼굴들>


‘20세기가 초대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도시의 세기’라는 주장은 거대한 중국에는 세기를 넘나드는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유구한 역사와 대륙적 기질을 뽐내는 고도(古都) 베이징, 그리고 유연함과 개방성이 돋보이는 비즈니스의 메카 상하이가 나란히 당당한 메트로폴리스로서의 위용을 떨치고 있는 나라, 동시에 갈수록 더 다양한 영역에서 G2 파워를 내뿜고 있는 초대국이 중국 아니던가. 요즘 이 도시들은 아트 신(art scene)에서도 ‘쌍두마차’ 역할을 해내는 모양새다. ‘798 다산쯔 예술구’라는 상징적인 명소를 거느린 ‘무게감 있는’ 베이징에 질세라 하룻밤 자고 나면 미술관이 생긴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트 붐’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하이의 역동성은 볼수록 놀랍다. 상하이는 아무런 뿌리 없이 아트 도시로 떠오른 것이 아니다. 중국 미술 전문가 김지연 씨는 자신의 저서 <중국 현대미술의 얼굴들>에서 상하이에는 20세기 초반부터 쌓아온 국제도시로서 유럽 전위미술을 소개하며 중국 현대미술에 첫 숨결을 불어넣은 공적이 있다면서, 오늘날 중국 현대미술의 역동적 변화를 일으킨 일등 공신은 바로 베이징과 상하이라는 두 도시 자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대항적인 카리스마와 진중한 무게감이 공존하는 작가 장환
문화대혁명과 급속도의 개혁 개방 등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기를 거쳐야 했던 만큼, 중국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보면 그런 상흔이 다분히 느껴진다. 또 저마다의 예술 언어는 다르지만 억압됐던 사회적인 자아, 예술혼을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발산한 데 따른 에너지도 엄청나다. 1965년생으로 이제 50대 초반인 장환(張洹)은 모국에 대한 애증을 예술혼으로 승화해온 그의 창조적 여정에 그런 상처와 에너지를 보듬어온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가다. 자신을 각인시킨 데뷔도 강렬했다. 1994년, 맨몸에 꿀과 생선 기름을 바른 뒤 좁은 공간에서 날아드는 파리들의 습격을 견디거나 자신의 나체를 체인으로 칭칭 감고 스튜디오 천장에 매달려 상처에서 난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게 한 파격적인 퍼포먼스. 이는 사실 불교 철학에 바탕을 두고 고통스러운 현세를 참아내는 인내력을 보여준 아방가르드 퍼포먼스였다. 통제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시선이 느껴진 이 퍼포먼스가 사진 작업으로 기록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그는 미국 뉴욕으로 떠나는 행운을 잡았고, 전업 작가로 활약했다. 그렇게 8년 동안 타지 생활을 하다 2005년 귀향지로 선택한 곳은 그가 학교를 다녔던 베이징이 아니라 상하이였다.
“상하이에 오게 된 건, 모든 게 다 그렇듯이 운명이에요. 우리가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인연처럼요.” 상하이 외곽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스튜디오에서 마주한 그의 진지한 말에서 종교관이 묻어 난다. 2005년 이후, 그의 작품은 ‘정신적인 세계’에 치중돼왔기에 그 근간은 철학적이고 사유적이며, 종교적이다. 그런데 소재와 재료는 다분히 중국적이다. 또 상당수 중국 작가들이 거칠 것 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추구하기도 하는데, 장환의 작품 역시 꽤 다채롭다. 강렬한 작품도 많지만 서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도 많다(한국에서도 학고재, 아라리오갤러리 등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파격’의 이미지로 더 각인돼 있지만). 마침, 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그의 스튜디오에는 그간의 대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건물 수십 채가 들어서 있기에 전시장이 따로 없었다. 소가죽을 활용한 커다란 부조 작품인 ‘부처 얼굴’ 같은 시리즈라든지, 공간을 가득 채운 공자 조각, 여유롭게 누워 있는 부처를 그린 회화 작품, 활짝 핀 양귀비꽃으로 가득 찬 봄 들판을 연상케 하는 추상 부조, 그리고 불교 의식의 잔해인 재(灰)를 재료로 한 애시 페인팅(ash painting) 등, 스케일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신을 떠받쳐온 사상의 핵심을 현대미술의 맥락으로 풀어낸 ‘애시 시리즈’는 ‘압권’이다. 중국 각지의 절에서 모아온 재를 밝기에 따라 분류해 캔버스에 뿌리고 입히는 이 작품들은 뭔지 모를 장엄함과 서정성이 느껴져 눈길이 자꾸 간다. 다빈치의 ‘마지막 만찬’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두고는 가까이서 한참을 뚫어지게 보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서 시각적 오라를 느껴보기도 했다. “재는 저에게 단순한 재료가 아니에요. 사람들의 영혼이 담겨 있는 거니까요. 어느 날 절에 가서 향을 피우는 걸 보고는 결심했죠. ‘이건 나에게 속한 거니 집으로 가져와야겠다’고요.” 이렇듯 중국의 전통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이 남다르지만 사실 장환은 그의 모국보다는 해외에서 훨씬 더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누가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번 생에서는 중국 바깥에서 주목받지만, 사후에는 분명 중국인들이 알아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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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권위와 한계를 재기 발랄하게 묻다, 상하이가 낳은 스타 쉬전

‘도발적’, ‘재기 발랄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쉬전(徐震)의 작품을 훑어보노라면 왠지 모르게 웃음부터 난다. 그저 가벼워서가 아니다. 청나라 꽃병의 입구 부분이 확 구부러진 모습이라든지 목이 댕강 잘린 당나라 석상 위에 그리스 석상을 얹어 그 끝이 하늘을 향하도록 한 석상 시리즈를 보면 그의 위트 있는 ‘비틀기’가 느껴져서다. 이번에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 선보인 그의 작품들 중 컬러풀한 ‘팝아트적’ 인물로 변신한 관음상 ‘New’라든지 루브르의 상징인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을 결합한 조각 ‘Eternity’ 같은 작품도 비슷한 맥락에서 꽤 재미를 안겨준다.
“동서양을 별 고민 없이 억지로 맞추면 과연 그게 잘 돌아가기만 할까? 세계화를 외치는 흐름 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상하이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석상 시리즈가 탄생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일행 중에 세계적으로 ‘쉬전’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 작품인 ‘석상 시리즈’를 유심히 보다가 누군가 물었다. 어째서 서양의 석상이 대부분 거꾸로 얹혀 있냐고, 무슨 특별한 뜻이 있냐고(마치 ‘억지 꿰어 맞춤’을 먼저 시도한 쪽이 ‘서양’이라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냐고 묻는 것처럼). 그는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 위로 추켜올리면서 “그냥 그렇게 된 거예요. 별 의미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대개 작품은 작가를 닮는데, 그의 작품 역시 특유의 당당함과 함께 유머를 지닌 작가 자신을 닮은 듯하다. 그의 작품은 기분 좋은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언뜻 가벼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뭇 도발적인 질문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중·일 3국의 대표 작가로 <미묘한 삼각관계>전이라는 전시를 가지기도 한 쉬전은 본디 상하이 출신이다. 중국이 급속하게 경제 발전과 도시화 흐름을 겪은 1990년대를 통해 예술의 권위와 능력, 한계에 대해 고민했던 그는 나름의 틀에서 작가주의를 버리면서 ‘메이드 인 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 ‘상하이 슈퍼마켓’도 그런 고민과 관점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속이 텅 빈 상품을 파는 실제 가게를 재현하며 ‘껍데기만 있는 상품이 미술관에 들어오면 예술품이 되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일각에서는 마르셀 뒤샹의 ‘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고 평했다. 물론 그는 “쉬전은 쉬전이다”라고 말한다. 변화의 급물살 속에서 가치 질서가 뒤틀려버린 현대의 중국, 그리고 온갖 요소들이 충돌하는 세계상을 유쾌하게 풍자하는 작품 세계, 그리고 특유의 당당하고 여유 있는 태도. 게다가 작가로서의 활동만이 아니라 젊은 작가들을 키우는 ‘양성소’ 역할도 열심히 하고 있는 쉬전은 상하이의 문화적 토양에 윤기를 더해주고 있다. 어째서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팬층이 상당히 두꺼운지 알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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