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entury of Grace

조회수: 300
4월 16, 2025

에디터 김하얀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디자인은 브랜드에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유산이 된다.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의 가치 역시 말할 것도 없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펜디(Fendi)의 여정은 장인 정신과 혁신을 원칙으로 삼으며 현 세기까지 이어진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도심에 자리한 펜디 하우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지향적 비전을 만나볼 시간.

1
2
3


1백 년의 시간에 대한 경의

펜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11월까지 서울을 기점으로 중국, 미국, 이탈리아 등 세계 주요 국가를 순회하는 <2025 월드 오브 펜디(2025 WORLD OF FENDI)>가 시작됐다. 지난 3월, 서울 성수에 자리한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메종의 헤리티지와 비전, 브랜드의 노하우가 담긴 스토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펜디는 1백 년의 역사를 담은 10개의 아이코닉한 백과 아카이브 퍼 컬렉션을 재해석한 리에디션을 선보였다. 먼저 192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풍미한 10개의 백을 페르가메나(Pergamena) 컬러의 크로커다일 레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닥터 백에서 착안했으며 1925년에 창립자가 처음으로 선보인 ‘아델 백’, 펜디 디자인의 핵심인 듀얼리즘과 기하학적 미학을 담은 ‘피카부 백’ 등은 물론 1985년에 탄생한 ‘라 파스타 백’은 가장 특이한 형태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례없던 새로운 백을 디자인하기 위해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로마를 산책하던 중 푸실리, 마카로니 등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를 구입했고, 이를 백 디자인에 녹인 것이다. 메탈 보디와 스트랩 등 셸 파스타의 셰이프는 펜디 하우스 역사상 음식과 패션의 연결 고리를 만든 첫 시도였다고 한다. ‘메이드투오더(Made-To-Order, MTO)’ 프로그램 역시 전시 공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인 이벤트였다. 메종의 장인 정신과 창의성, 숙련된 인하우스 장인들의 기술을 집약한 것으로 소재 선택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커스터마이징 가능하다. 피카부, 바게트 백 등 다양한 제품의 디자인을 선택하고 정교한 3D 자수, 교체형 핸들 등 익스클루시브 디테일을 더해 나만의 백을 완성할 수 있다. 메탈릭 그러데이션 효과를 적용한 이그조틱 레더, 스톤 텍스처의 크로커다일 레더, 아르데코 패턴을 표현한 밍크 인레이 소재도 옵션으로 제공된다.
아이코닉한 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퍼 컬렉션은 절제된 직선과 유려한 곡선의 조합, 풍부한 디테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토록 독창적인 디자인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10개의 퍼 작품을 선별했고, 이를 재해석한 리에디션과 함께 전시해 인상적인 광경을 선사했다. 퍼 컬렉션의 시초인 ‘컬러 페퀸’ 보머 재킷은 비버 퍼 소재에 레더를 더해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꼽히며 퍼에 대한 개념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아이템으로 평가받는다. 이외에 V자 형태의 퍼 디테일이 특징인 ‘아스투치오’ 케이프, 정밀한 커팅 기법을 사용해 아스라이 피부를 드러내는 ‘레이스’ 등이 있다. 퍼 컬렉션 역시 메이드투오더 가능하다. 밍크부터 하이 퍼, 이그조틱 퍼까지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며,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패치워크 형식의 컬러 블록을 필두로 퍼를 활용한 기하학 및 플로럴 패턴은 펜디의 시그너처인 인레이 기법을 통해 정교하게 표현되어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퍼 소재의 기능과 실용적인 면을 넘어 창의적 디테일과 장식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하는 펜디(FENDI) 뒤에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헤리티지, 그리고 가족 간의 깊은 유대감이 서려 있다”


4
5
6
7
8

9

역사적인 메종, 그 찰나의 순간
펜디의 목적은 단지 패션을 선도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진정 즐길 수 있도록 독려하고자 했다. 당시 여성의 사회적 입지가 매우 좁았던 만큼, 펜디의 이런 진보적인 정신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어느 브랜드와 견주어봤을 때도 가히 독보적이다. 메종의 유업을 지켜온 펜디의 여정에는 늘 도전적인 여성상이 깃들어 있으며 이는 디자인 곳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1백 년이라는 펜디의 유구한 역사에는 긴 세월에 비례해 기록할 만한 순간이 다수 존재한다. 펜디의 서사는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랜드 창립자 아델 카사그란데 펜디(Adele Casagrande Fendi)와 에도아르도 펜디(Edoardo Fendi)가 로마 중심에 메종을 창립함으로써 펜디의 여정이 시작됐다. 브랜드의 첫 컬렉션으로 의미가 남다른 ‘셀러리아(Selleria)’는 오늘날까지 주요 컬렉션의 모티브로 활용되고 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펜디의 옐로 컬러는 페르가메나라는 천연 파피루스 색상의 여행 가방에 적용되면서 시그너처로 자리 잡았다. 최고급 소재를 선별하는 안목과 시대를 아우르는 디자인에 대한 창립자의 저력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초이자 뿌리가 된다.
아델 카사그란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명의 딸 파올라, 안나, 프랑카, 카를라, 알다를 회사 경영에 투입시키며 본격적으로 여성 중심의 가족 경영을 알린다. 5명 개개인의 독창적인 재능과 관점이 더해지니 획기적인 디자인과 미래 지향적인 전략이 정립되었고, 이는 브랜드의 입지를 글로벌하게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5명의 딸이 시사하는 바는 창립자의 가족 중심 사고와 최근 공개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 대한 영감으로 세계관이 연결된다는 것. 1965년에는 메종의 전성기이자 전환점을 알리는 2막이 열리는데, 당시 천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만나 브랜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그는 ‘Fun Furs’를 뜻하는 FF 로고를 디자인하고, 브라운과 토바코 컬러의 세로 줄무늬 패턴으로 구성된 페퀸(Pequin) 로고를 내세운다. 메종 역사상 무려 5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어진 그와의 운명 같은 만남은 레디투웨어와 아이웨어를 탄생시켰고, 타임피스와 오트 쿠튀르 컬렉션까지 카테고리가 확장되었다. 무엇보다 ‘펜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모피의 역사가 새로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로열패밀리만의 특권이자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던 모피가 럭셔리 하우스의 전통적인 장인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창조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탈바꿈되면서 모피의 입지를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브랜드의 가장 상징적인 컬렉션과 작품이 본격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한 건 펜디 가문의 3세대인 안나 펜디의 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합류하면서부터다. 그가 액세서리 부문을 맡은 직후에 펜디의 아이코닉한 바게트(Baguette)와 피카부(Peekaboo) 백이 세상에 알려졌다. 2020년에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딸이자 펜디 가문의 4세대 일원인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Delfina Delettrez Fendi)가 주얼리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브랜드의 DNA와 핵심 코드를 결합한 새로운 시그너처, 펜디 오’락(Fendi O’Lock)을 선보인다. 칼 라거펠트의 FF 로고를 카라비너(carabiner) 형태로 재해석한 것으로, 그 전까지 메종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그래픽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또 그는 펜디의 첫 하이 주얼리인 ‘펜디 플라보스 파뤼르(Fendi Flavus Parure)’ 컬렉션을 2022 F/W 펜디 오트 쿠튀르 쇼에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펜디 트립티크(Fendi Triptych)’ 컬렉션을 이어서 공개했다. 일반적인 커스텀 주얼리에 만족했던 펜디가 하이 주얼리를 새롭게 선보인 건 실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10
11
12



The HISTORY OF FUR

펜디는 브랜드의 핵심 요소인 퍼를 창의적인 표현의 주체로 사용하며 새로운 가공법과 재단 기법, 그리고 스타일을 주도하고 있다.

1967년

컬러 페퀸(Colour Pequin)
1971년

아스투치오(Astuccio)

1983년

듀얼리즘(Dualism)
2021년

레이스(Lace)
새로운 도전과 하이 주얼리의 탄생
화려함과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하이 주얼리는 원석의 선별부터 연마, 가공까지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 손꼽히는 주얼리 하우스에서도 하나의 컬렉션을 선보이기까지 수년은 걸리니 말이다. 장인들의 부단한 노력과 수고로 빚은 하이 주얼리에 예술의 경지라는 표현을 기꺼이 쓸 수 있는 이유다. 펜디 패션 하우스 역시 하이 주얼리의 영롱함에 매료됐다. 펜디 가문의 4세인 주얼리 아티스틱 디렉터,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가 커스텀 주얼리에서 하이 주얼리의 경계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 첫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포문은 2022 F/W 펜디 오트 쿠튀르 쇼와 함께 시작됐다. 하이 주얼리에 대한 찬사로 시작된 이 여정은 <2025 월드 오브 펜디>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첫선을 보이면서 이어진다. ‘2025 라디치 로마네 하이 주얼리’ 역시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가 디자인했으며, 로마를 향한 예찬을 담아 구성된다. ‘네무스’, ‘폴리아쥬’, ‘사파이어링’, ‘오니리코’, ‘마리아’ 등 모두 로마의 자연과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이번 컬렉션은 특히 화려함과 미니멀리즘이라는 양가적 디자인을 선택했고, 비정형적인 실루엣과 장인 정신의 조화로움이 보편적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하이 주얼리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화려함을 선사한다. 몇 세대를 이어 내려온 메종의 유산을 지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1974년 칼 라거펠트가 스케치한 펜디 자매 5명의 모습에서 영감받아 탄생했으며, 링 5개를 각각 다른 유색 보석으로 세팅해 특별한 피스임을 알린다. 이는 펜디 가문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1
2
3
4
BLOOMING GREENERY
푸릇푸릇한 자연의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네무스(Nemus)’는 풀 파베 다이아몬드로 완성한 나뭇잎 모티브 사이로 환한 빛을 발하는 사랑과 생명의 상징, 그린빛 에메랄드가 특징이다. 네무스는 라틴어로 숲과 숲을 이루는 작은 나무를 말하는데, 주얼리에 생명력이 깃든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네크리스, 이어링, 브레이슬릿으로 구성되었으며, 컬렉션 중 볼드한 피스에 속한다.


5
6
ARTISTIC RED
로마의 한적한 거리를 걷다 목도하는 덩굴 가득한 벽과 모자이크 타일에서 영감받았다. 식물과 나뭇잎을 뜻하는 ‘폴리아쥬(Foliage)’는 영감의 원천인 덩굴 모티브를 고스란히 담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반복적인 원형 실루엣이 특징이다. 투르말린 중 가장 희귀한 컬러로 알려진 분홍빛 투르말린을 선택해 호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크리스, 링, 이어링, 브레이슬릿으로 선보인다.



7
8
9
SYMBOL OF FAMILY
펜디 창립자 아델 카사그란데의 딸 파올라, 안나, 프랑카, 카를라, 알다를 형상화한 총 5개의 ‘사파이어 링(Les Cinq Doigts d’une Main)’을 소개한다. 각각 다른 다섯 자매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블루, 레드, 그린, 옐로 등 유색 컬러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선택했다. ‘2025 라디치 로마네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서 가장 핵심적인 라인이란 걸 알리려는 듯,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부터 페어 컷, 바게트 컷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세공 기술을 적용해 입체적인 구조가 인상적이다.


10
11
DYNAMIC SPARK
거친 듯 유려하게 흐르는 실루엣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잔잔한 파도가 떠오른다. ‘마리아(Marea)’는 풀 파베 세팅 기법을 적용해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든 빈틈없는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선사한다. 옐로, 핑크 골드로 만나볼 수 있으며 이어링과 링, 두 가지 디자인으로 선보인다. 컬렉션 중 가장 복잡한 구조를 이뤄 역동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12
13
SOFT & PURE
꿈을 뜻하는 ‘오니리코(Onirico)’는 펜디 패션 하우스의 DNA를 엿볼 수 있는 하이 주얼리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FF 모티브가 비정형적으로 원을 그리는 모습이 마치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의 모습 같다. 잔잔하게 흐르는 곡선의 부드러움을 풀 화이트 다이아몬드로 표현해 주얼리 고유의 순수한 모습이 돋보인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