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Leg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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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 2014

에디터 이예진(트리베로 현지 취재)

이탈리아 북부 비엘라 지역의 작은 마을 트리베로(Trivero)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철학과 비전을 보여주는 풍부한 유산을 품고 있다. ‘아름다운 옷은 아름다운 환경이 만든다’라는 남다른 기업 철학은 1백 년이 지난 지금,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이탈리아 신사복을 대변하는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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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수트 브랜드의 장기적인 비전과 철학

밀라노 두오모에서 약 2시간. 북부로 향하는 외곽 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좁은 산길을 오르면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트리베로(Trivero)에 당도한다. 잘 가꾼 숲과 울창한 나무가 일구어낸 고즈넉한 풍경, 한가롭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풋풋한 풀 내음이 자연 속 휴식처를 연상시킬 만큼 평화로운 작은 마을. 비엘라 시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태어나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방직 회사를 설립한 곳이다. 이탈리아 최고급 남성복 브랜드의 대명사이자 1조원을 훌쩍넘는 매출(2013년 기준)을 기록하는 데는 반드시 연유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트리베로 트립에 동행했다. 1백 년 전만 해도 낙후된 고지대였던 트리베로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장기적인 비전 아래 새로운 산업 지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변화의 시초는 1910년, 제냐의 핵심으로 꼽히는 패브릭 팩토리 ‘라니피치오 제냐’를 설립하면서 비롯했다. ‘아름다운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옷을 만드는 직원들의 행복과 아름다운 주변 환경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라는 제냐의 믿음은 지역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 초반부터 마을 회관과 도서관을 세우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영화관과 병원, 수영장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트리베로와 해발 1500m에 위치한 관광 리조트인 비엘몬테를 연결하는 14km 거리에 ‘파노라미카 제냐’ 도로를 닦았다. 공장에서 근무하던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현대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1993년에는 100㎢ 땅에 사람과 자연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고 산악 지역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녹지 조성 프로젝트의 일환인 ‘오아시 제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전히 수익의 3% 이상을 환경 보호와 지역 공동체에 지원하며, 재능있는 젊은이들을 후원하는 ‘제냐 창업자 장학금(Ermenegildo Zegna Founders Scholarship)’에 할당하고 있는 것이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철학은 트리베로 지역사회와 자연환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 세계를 돌보고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국제적인 사회 공헌 활동으로 확장한 것이다. 본격적인 활동은 ‘제냐 재단’이라는 이름 아래 환경과 문화 자원의 보존과 개선 지원, 이탈리아와 다른 국가의 지속 가능 발전 지원, 의학과 학술 연구 지원,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 지원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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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원단을 향한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
최상급 원단의 대명사로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꼽는 이유는 남다른 시작 때문이다. 라니피치오 제냐에서는 1910년대 초부터 낡은 프랑스식 직조기를 모두 새로운 영국식 기계로 바꿨다. 모든 옷은 최상의 원자재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단 가장자리에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새겨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방식을 1930년부터 지금까지 고수한다. 개인 테일러 숍에서 맞춤 수트를 제작할 때 ‘제냐 원단’이라고 하면 상위 등급의 높은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라니피치오 제냐에서는 원사를 뽑아 색을 입히고 직조해 가공하는 수십 단계를 거쳐 하나의 원단을 완성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공개했다. 원료 수급부터 마무리까지 생산의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컨트롤하는 시스템은 제냐만이 갖고 있는 자산이다. 최첨단 레이저 기술로 직물의 흠집을 찾아내지만 품질 검사와 흠집을 복구하는 작업을 모두 손으로 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방직 기계의 움직임에 주목하다 보니 스테파노 필라티가 진행한 제냐의 첫 번째 컬렉션이 떠올랐다. 공장에서 들리는 반복적인 리듬을 런웨이의 배경음악으로 차용한 것은 제냐를 이루는 근간에 그만큼 집중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제냐뿐만 아니라 유명 패션 하우스에서도 제냐의 원단을 가져다 쓰기에 1년에 무려 2백만 미터가 넘는 패브릭을 이곳에서 생산한다. 이에 더해 더 가볍고, 부드러우며, 기능적으로 진보한 기술력을 접목해 패브릭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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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역사와 발자취가 담긴 카사 제냐
1백여 년 넘게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아들 알도 제냐와 안젤로 제냐는 제냐의 역사와 전통, 문화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트리베로에 ‘카사 제냐(Casa Zegna)’를 설립했다. 제냐의 방직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이 건물은 제냐의 박물관이자 문화센터 역할을 한다. 카사 제냐에서는 브랜드를 구분 짓는 특징인 원사와 원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 시즌 바뀌는 전시, 패션계에 혁명을 일으킨 아카이브 컬렉션까지 만날 수 있다. 현재 1층 전시실 ‘하비투스제냐(Habituszegna)’는 원료를 고르고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부터 회사의 철학과 사회 공헌 활동까지, 제냐 그룹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구성한 여러 개의 기둥과 벽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 촉감을 느껴볼 수 있는 키드 모 헤어와 원사의 두께와 무게가 계속해서 진화하는 공간도 흥미로웠다. 11.1미크론 두께의 혁신적인 패브릭(인간의 머리카락 두께가 50~60미크론임을 감안할 때 무척 얇은 두께)만 보더라도 놀라운 기술적 성과를 느낄 수 있다. 남성복 최초의 실크 수트, 제냐 울 트로피의 발자취, 1960~70년대 제냐와 패션계의 동향을 담은 전시실 등등. 위층으로 올라가면 세대를 이어온 각종 문서와 사진, 기술 도면, 수만 개의 스와치, 거래 내역, 일기 등의 자료가 놀랍도록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이곳에서는 새로운 컬렉션을 위한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밖에. 기쁜 소식은 카사 제냐는 관광객들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사전 예약한 이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제냐 재단, 오아시 제냐 프로젝트, 파노라미카 제냐….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남성복 브랜드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단기적인 수익을 내기에 급급한 패션 기업과는 달리 제품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완성도를 추구하고, 거기에는 나눔과 공존의 가치가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오랜 역사가 현재와 미래를 대변한다면 이탈리아 최고의 남성복 브랜드로서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지닌 최고의 명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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