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o Series 01-오디오 道樂, 삶의 열정을 말한다
오디오를 취미로 삼는다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경험과 투자를 수반하는 일이다. 각종 기기와 음향 메커니즘에 ‘통달’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해박해야 하며, 음악 감상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자동차, 카메라와 더불어 ‘밥벌이’ 좀 하는 남자의 ‘3대 장난감’이라 일컬어지겠는가. 하지만 이만큼 뇌를 건전하게 각성시키고 영혼을 온화하게 정화시키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취미도 드물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오디오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자양분이며 휴식 같은 친구가 될 수 있다.
“It (music) is the most profound of all the arts; it expresses the deepest thoughts of life and being; a simple language which nonetheless cannot be translated.”- Arthur Schopenhauer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열망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에 반드시 공감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는 대부분 음악을 즐긴다. 그런데 요즘처럼 컴퓨터 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신의 인생에 ‘음표들’이 온전히 스며들어 있다고, 음악의 질에서만큼은 일상이 풍족해졌다고 흔히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PC는 물론 라디오, CD, 블루레이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최신 곡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행동과 경험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착각일 수도 있다는 걸 아는지?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음악이 귀에 항상 가깝게 있다는 사실이 아니고, 우리가 주의를 집중해서 귀를 열고 들을 때만이다.” ‘몰입 이론’으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의 예리한 지적처럼, 문제는 ‘집중도’다. 음악은 도처에 BGM처럼 깔려 있지만, 실상은 몰입하지 않으면 제대로 감상하기는커녕 본질에 전혀 범접하지 못한다는 논리다. 많은 이들이 라이브 공연에서 엄청난 몰입과 희열을 느끼는 건 한 장소에서 함께 참여하는 관중들이 소위 ‘집단적 흥분’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덕분이란 것. 이러한 맥락에서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듣는 이가 진지한 자세만 갖춘다면, 녹음된 곡을 며칠이고 계속해서 듣는 것이 몇 주일 동안 고대하던 콘서트에서 단 한 시간 음악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울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 이처럼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의 출발점으로 일정한 시간을 음악 감상에 할애하라고 조언한다. 감상할 음악을 미리 신중히 고르고, 구체적인 목표까지 설정해두라는 것. 단순히 유쾌한 반응을 유발하는 감각적 경험에서부터, 음의 양식에 따라 감정과 이미지를 떠올리는 유추적 단계, 궁극적으로는 화성을 인식하고 음향의 질을 평가하고, ‘카라얀이 이 부분에서 이렇게 해석했네’라며 음악의 구조적인 요소에 관심을 갖게 되는 ‘분석적 감상’ 단계에까지 이르는 발전을 거치는 경험은 대체 불가능한 인생의 흥취라는 주장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오디오 기기에 대한 관심은 음악에 대한 열정의 소산이며 극도의 몰입을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마력과도 같은 강력한 오라를 발휘하는 소위 ‘명품’ 기기 중에는 경이로운 수준의 폭넓은 음역과 투명도를 자랑한다는 하이엔드(high-end) 오디오도 있고, 따스하고 정갈한 소리로 영혼을 달래준다는 빈티지(vintage) 오디오도 있다. 분명한 건, 각자의 기호와 환경에 맞게 제대로 설치된 오디오 시스템은 음악의 수준을 높여주고 스펙트럼을 넓혀주며, 제일 중요하게는 몰입의 절정인 ‘삼매경’을 자주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서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할까. 그래서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오디오는 절대로 ‘럭셔리를 위한 럭셔리’가 될 수 없다. 휴식 같은 (또는 마약과도 같은) 삶의 동반자인 것이다. 이번 오디오 시리즈에서는 먼저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하이엔드 오디오가 지닌 치명적인 매혹을 전문가의 목소리로 전한다.
하이엔드 오디오는 분명 ‘억’ 소리 나게 비싸다. 가격이 나간다고 해서 성능이 무조건 좋다고는 볼 수 없는 제품도 있지만, 월등한 성능을 자랑하는 ‘명기’들도 있다. 음악이 선사할 수 있는 극강의 희열을 놓고 볼 때, 하이엔드 오디오는 단순히 ‘비싼 오디오’라고 불리기에는 억울할 것이다.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오디오 기기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 그 밑바닥에 자리 잡은 본질은 분명 음악일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싼 취미를 가졌다’고 치부하기에는 하이엔드 오디오를 애용하는 이들에게 이를 통해 경험하는 ‘몰입’은 거의 종교와도 같은, 삶의 기쁨 그 자체다. 오죽하면 ‘오디오에 미친 남자는 바람을 피울 확률이 적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지금까지 명품 수준의 하이엔드 오디오를 만들어낸 제작자들을 봐도 음악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고, 그만큼 귀가 남다르게 발달한 데다 소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메이커들에게 자신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는 소리에 대한 철학과 미학,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복합적 결정체다. 설계 단계부터 부품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세밀한 메커니즘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일반 오디오처럼 대량생산이 이뤄질 수도 없을뿐더러, 마무리 단계에서도 튜닝 과정을 통해 정교한 핸드메이드 작품을 만들어내듯 세심한 공정이 더해진다. 국내에서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를 확장시킨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S씨도 어린 시절부터 소리에 유독 민감한 ‘모태 음악 애호가’였다. 기타리스트였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다양한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란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일제 컴포넌트 오디오를 선물 받고는 감격에 겨워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오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당시 흠뻑 매료돼 있던 영국 록의 전설 퀸(Queen)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도통 머릿속에서 춤추는 음표가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 아니었던 것. 고민 끝에 용돈을 모아 턴테이블의 바늘(카트리지)을 하이엔드 버전으로 교체해보았다. 놀랍게도, 소위 ‘필’이 좀 달라졌다. 작은 변화를 도모했는데 만족감이 더해지고, 삶의 질까지 달라지는 듯한 황홀경을 미약하게나마 겪게 된 것이다. 게다가 마침, <오디오와 레코드>라는 하이엔드 오디오 잡지의 창간호를 운명처럼 접하게 됐다. 책 속의 ‘소리 풍경’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보였다. 잡지를 탐독하면서 하이엔드 오디오에 대한 갈망이 싹트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개였다.‘이런 오디오라면 진짜로 마음속에 그리던 대로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끊임없이 솟구쳤다.
그런데 마침내 방에 들여놓은 하이엔드 오디오는 기대보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느낌을 안겨주었다. 당시 S씨가 주로 듣던 퀸, 들국화, 다섯손가락 등 록 성향이 강한 가요와 팝 위주의 음악이 당시로서는 나름 ‘거금’을 들여 사들인 하이엔드 오디오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내지 못했던 것이다. 선호하는 음악 장르에 따라 원하는 오디오 사운드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바로 하이엔드 오디오가 그 값어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요소들을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첫 번째는 ‘나의 음악적 취향’이다. 고흐와 피카소, 롤스로이스와 페라리를 놓고 우위를 논하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클래식을 좋아한다면 피아노와 현의 음이 뒷받침되는 오디오, 재즈를 사랑한다면 색소폰이나 보컬의 바이브레이션, 목소리의 깊이가 잘 전달될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오디오를 제대로 만나면서 의도치 않게 음악 취향이 바뀌거나 폭이 훨씬 더 넓어질 수도 있다. 클래식 음악이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건 사실 그 매력을 비슷하게라도 전할 수 있는 오디오를 못 만나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다시 S씨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는 어떻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른 음악을 좀 더 잘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하이엔드 오디오 매장들이 자리 잡고 있던 세운상가를 드나들게 됐다. 그곳에서 앰프 등 일부 기기를 교체하면서 갈망하던 음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음악 취향에 따른 스피커와 앰프의 조화가 빚어내는 ‘궁합의 미학’을 절실히 깨달은 계기였다. 아무리 좋은 스피커와 앰프라도 음악에 어울리는 앙상블을 이뤄내지 못하는 예가 종종 있다. 정교한 부품으로 점철된 고가의 앰프와 천상의 소리를 낸다는 스피커를 연결해봤는데, 의외로 소리가 퍼지거나 시끄럽게 들리는 실망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정작 둘이 함께 살아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어떻게 귀결될지 모르는 부부 관계와 유사하다. 록이냐, 재즈냐, 클래식이냐, 그리고 클래식 중에서도 실내악 같은 소편성 음악을 선호하느냐, 오케스트라나 뮤지컬 같은 대편성 음악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스피커와 앰프 등의 조합은 달라야 한다.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음악에 맞는 앰프와 스피커의 삼각 구도가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의 기쁨은 그야말로 온몸이 짜릿하리만큼 강렬하다. 물론 개개인의 취향 차이를 고려할 때,‘입에 맞는 떡’을 찾으려면 몸소 CD나 LP를 갖고 다니면서 가급적 많은 오디오 기기를 ‘섭렵’해보는 등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는 ‛어디서 듣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제아무리 가공할 위력의 스피커와 앰프를 갖췄다 해도 오디오가 들어갈 공간이 협소하다면, 더구나 소음에 취약한 곳이라면 기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감당하기 힘들 수 있다. 설령 음질이 좋다 해도 오래 듣기는 어렵거나, 심한 경우엔 자칫 소음처럼 변질될 수도 있다. 인간은 소음에 굉장히 취약한 존재다. 단지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음악과 뇌, 그리고 ‘소리 환경’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 돈 캠벨은 무의미한 소리, 즉 소음을 영양가는 전혀 없고 열량만 높은 음식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정돈된 소리, 즉 느린 클래식이나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의 목소리는 음파 패턴이 규칙적이고 일관성이 있어 뇌도 그렇게 반응하지만, 처음 방출될 때는 음파가 아무리 규칙적이어도 밀폐된 공간에서 다른 음파들과 만나면 충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 생긴 무질서한 소리의 패턴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의 ‘소리 환경’을 최대한 이상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오디오를 설치할 공간에 잘 맞는 스피커와 앰프를 고르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좋은 오디오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은 ‘튜닝(tuning)’이다. 듣는 사람을 위해 최적화된 튜닝. 이것이 하이엔드 오디오를 통한 음악 감상의 마침표인 것이다. 다른 모든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더라도 오디오 튜닝의 정확성이 부족하다면 결코 만족스러운 소리를 구현할 수 없다. 스피커의 위치, 커튼의 두께, 음악을 접하는 감상자의 위치 등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음악의 질감이 달라질 수 있다. 바닥의 카펫과 같은 흡음 소재도 반사음에 영향을 미친다. 기기를 놓는 위치와 각도를 세심하게 잡아줘야 진동이나 전기 자기장 등 외부 영향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자신의 음악 취향과 소리 환경에 맞는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구비하는 일이 최고의 음악을 재생해낼 수 있는 준비 중 99%를 차지한다면, 나머지 1%는 바로 ‘튜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섬세한 메커니즘이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를 일컬어 흔히 ‘1mm의 미학’ 또는 ‘1%의 미학’이라고 하는 이유가 아닐는지.
음악 감상할 장소를 정하고, 나를 위한 오디오 기기를 찾고, 이와 함께 제반 여건을 제대로 구비해놓으면 그 공간은 아름다운 ‘소리 풍경’을 누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다. 열량만 높은 음식이 아니라 영양이 담뿍 담긴 ‘오디오 도락(道樂)’을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소리 노하우의 집적으로 하이엔드 오디오는 ‘아무리 소리가 좋아도 원음만은 못하다’는 주장을 재고해볼 정도로 탄복할 만한 사운드를 빚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라이브 연주나 노래가 주는 감흥은 분명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오로지 음의 가치만을 따진다면 완벽한 튜닝과 공간의 요소가 뒷받침된 하이엔드 오디오는 콘서트 홀에서 듣는 음보다 더 나은 사운드, 적어도 절대로 뒤지지는 않는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다. 누구나 늘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좋은 오디오의 척도가 되는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에 마치 홀린 듯 명품 오디오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말러의 교향곡을 듣노라면 연주회장 최상의 자리에서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나고, 퀸의 음악을 틀어놓으면 프레디 머큐리가 내 앞에서 콧수염을 휘날리며 열창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의 풍부한 실재감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일단 들어봐야 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혹은 소리의 환희를 되찾고 싶다면 ‘고음이 명확하고, 저음이 풍부하고…’라는 식의 설명을 수십 번 듣는 것보다는 ‘1mm의 세계’에 몸소 들어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로 이 천상의 소리가 발산하는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 오디오의 세계에 입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디오를 평생의 업으로 삼은 S씨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필자의 인생담이다. 음에 대한 조예가 깊어지면서 함께 여물어가는 삶은 즐겁다. 이런 종류의 열정은 좀처럼 시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 같은 묘미야말로 필자가 인생을 건 ‘오디오 도락’을 택한 것을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글 나상준(‘오디오갤러리’ 대표, www.audiogallery.co.kr)